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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효자 성도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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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성도"  에베소서 6:1-3

I. 방송화면

  ① 추수를 마치기가 무섭게 콩이며 깨, 온갖 곡식들을 머리에 이고 지고 자식집에 달려오신 어머니.
    한여름 뙤약볕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시면서도
    어머니의 소원은 오직 자식들 배불리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먹고 살만큼 넉넉해졌어도 어머니의 보따리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느새 어머니의 몸무게가 줄어들고 당신의 키마져 작아져 버렸지만
    매년 가져다주시는 어머니의 보따리 숫자는 줄어들 줄 몰랐습니다.
    어머니, 그 보따리 속에 담긴 당신의 사랑이 눈물 겹도록 그립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② 아버지, 어젯밤 당신 꿈을 꾸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 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지게를 많이 져서 구부정한 등을 기울이고 물끄러미, 할 말 있는 듯 없는 듯
    제 얼굴을 건네다 보시는 당신 앞에서 저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옹이 박힌 그 손에 곡괭이를 잡으시고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같은
    삶의 밭이랑을 허비시며 우리 오남매 넉넉히 품어 안아 키워 주신 아버지! 

이제 홀로 고향집에 남아서 날개짓 배워 다 달아가 버린 빈 둥지 지키시며 “그래, 바쁘지?  내 다 안다.”  보고 싶어도 안으로만 삼키고 먼 산 바라기 하시는 당신은 세상살이 상처 입은 마음 기대어 울고 싶은 고향집 울타리.  땡볕도 천둥도 막아주는 마을 앞 둥구나무. 

아버지, 이제 저희가 그 둥구나무 될께요.  시원한 그늘에 돗자리 펴고 장기 한 판 두시면서 너털웃음 크게 한 번 웃어 보세요.  주름살 골 골마다 그리움 배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은 우리 아버지. 

                                - 이혜선 시 ‘아버지’중에서 -

  ③ 다 저녁, 팔다 남으신 고등어가 밥상에 오를때면 철없는 투정으로 숟가락을 팽개쳤고
힘들게 생선을 팔아 초등학교에 보내 주실때에도,
학용품 사라며 쥐어주신 돈을 생선 냄새가 난다며 뿌리치고 말았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때는 왜 그리도 철이 없었는지요.

일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깨달은 지금 시장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을 보면 왠지 낯설질 않습니다.  그 얼굴 사이에 어머니의 모습이 있는거 같아 머리라도 조아리고 싶어지지만 이제 어머님은 그 어디에도 계시질 않습니다.그 옛날로 돌아가, 어머니께 용서를 빌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II. 제5계명

  교회 유치부에 다니는 어린아이가 어느날 집에 돌아와서 무엇을 열심히 외우고 있어요. 뭘 외우고 있나 가만 들어보니 십계명이었습니다. 제5계명을 외우는데 “네 부모를 공격하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빠가 “이놈아,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야 공경!” “「공격하라」와 「공경하라」는 어떻게 달라요?” 아이가 묻자 아빠는 대답을 했습니다. “공경은 아빠 말씀을 잘 듣고 사랑하는 거고, 공격은 아빠한테 덤비고 말씀을 안 듣는 것이지.” 그러자 대뜸 아이가 말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왜 할아버지 공경하지 않고 공격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계명을 십계명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원래 두 개의 돌판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첫 번째 돌판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룬 4가지 계명이 새겨져 있었고, 두 번째 돌판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다룬 6개의 계명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계명 중 어느 것이 중요하지 않으리요 마는 십계명의 순서는 그 무게와 중요성의 순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둘째 돌판 여섯 가지 계명 가운데 그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5계명을 율법의 중심점이요 십계명의 배꼽이라고 합니다.

  둘째 돌판은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가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이 세상에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부모없는 자식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기초 윤리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건강한 가정을 위한 첫 번째 계명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모든 다른 계명도 바로 이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주신 계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 남의 가정을 파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 남의 가정의 환경을 소중히 여기라는 얘기입니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을 탐내지 말라 - 행복의 근원을 행복의 이유를 내 가정 안에서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기초관계가 무너진 사회는 주춧돌이 뒤집어진 주택마냥 많은 위기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을 떠난 사회의 여러 가지 현상들을 말씀하는 가운데에 “부모를 거역하며”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 이하에서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부모를 거역하며”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가 되면 하나님을 떠난 사회가 될 것이고 하나님을 떠난 그 사회의 가장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효도가 살아있는 사회는 희망이 있는 사회입니다. 반면 불효가 만연된 사회는 망해가는 사회입니다. 효도하는 자는 복을 받고 불효하는 자는 벌을 받습니다.

  옛날 조선 시대에 어느 임금님이 한양을 떠나서 개성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방을 부치고 소문이 나니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있는 한 나이 많은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요청을 하는 겁니다. “내가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한 번도 임금님의 용안을 뵙지를 못 했는데 죽기 전에 임금님의 용안을 멀리서라도 좀 뵙고 죽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그래서 이 아들은 왕이 오시는 그 날을 기다렸다가 오십리길 어머니를 업고 길가에 나가 섰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지나갈 때에 잘 보이도록 해 드렸어요. 임금님은 멀리서 이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 다음에 “그 때에 그 어머니를 업고있던 그 사람을 불러오너라.” 그리고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고나서 “너는 효자 중 효자다.” 그래서 금 백냥과, 쌀 한 섬을 상으로 주었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불효자 한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해서 어머니가 원치도 않는 걸 강제로 업고 나가서 임금님이 지나시는 그 길가에 나가서 왕을 뵈었다는 겁니다. 왕은 역시 그를 불러 “금 백냥을 주라”고 명할 때 신하들이 말하기를 “임금님, 그놈은 불효자랍니다. 효도가 아니고 남이 그렇게 해서 돈 받았다는 말을 듣고 상 받으려고 어머니를 억지로 업고 나가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상을 줄 것이 아니라 벌을 줘야 될 것 같습니다.” 그때 임금님 하시는 말씀이 “효도는 흉내만 내도 좋은 거야. 그런고로 상주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이 사람이 그 뒤에 뉘우치고 진짜 효자가 되었답니다. 여러분 효도는 흉내만 내도 괜찮은 거예요.

  따라 하십시다. “효도는 - 흉내만 내도 좋은 거다.”

III. 효자 성도가 효도하는 이유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여기 공경이란 무겁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높은 가치를 메기라는 얘기입니다. 이 공경이란 단어가 명사형으로 쓰여질 때에 우리의 오장육보 가운데 간장을 일컫기도 합니다. 오장육보 가운데 간 기능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바로 그 간기능과 공경이란 말은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존귀와 영광을 돌리라고 할 때 바로 이 존귀라는 단어와 공경이란 단어가 또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만큼 네 부모를 존귀히 여기고 공경하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이 명령에는 어떤 조건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네 부모가 훌륭할 때만 공경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할 만한 품위가 있을 때에만 존경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부모가 공경 받을 자격이 없다해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목표가 있다고 하면 바로 효자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는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효자로 살아간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효자이기에 아버지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셨고 예수님 가정에서 효자로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하는 것은 효자 성도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효를 가르치지 않는 도덕이나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효는 효도를 하는 이유가 다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 계명은 적극적으로 “하라”는 명령입니다. 다른 모든 계명은 하지 말라, 하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 효도의 계명은 아무리 잘 감당하더라도 끝이 없는 계명입니다. 안하면 되는 그런 윤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어릴 때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기록이 분명치 않습니다. 한 두 세절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 두세 절 가운데 누가복음 2장 51절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린시절을 기록하는 유일한 성경기록은 “예수님은 효자로 이 땅에 살아가셨다. 육신의 어버이에게 효도를 다 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며 아픔을 겪고 계실 때에 자신의 어머니를 불러주셨습니다. “여자여~(구낭)” 구낭 - 이 말은 황후에게 붙이는 극 존칭입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제자를 불렀습니다. “네 어머니라” 사랑하는 제자에게 홀어머니를 부탁하며 효를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는 자리 아닙니까? 인생의 무거운 짐을 다 감당해 주시는 자리 아닙니까?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덮어주는 자리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서 효의 무거운 짐을 감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불효의 허물을 덮어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속의 엄숙한 자리에서 내 불효의 죄를 주님께서 씻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자식들 가운데 나는 효도에 자신이 있습니다. 효도를 완성했습니다.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효도만큼은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불효의 죄악이 무거운 줄 아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불효의 죄악을 덮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지난날의 모든 불효의 죄악이 지금까지 부모님에게 공경을 다하지 못했던 허물들이 십자가 밑에서 다 사해지고 용서받았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를 믿었으면 예수님으로부터 효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효의 비밀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IV. 효자 성도 효도의 방법

  효자 성도는 효도의 이유가 다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성도의 효도는 세상 사람들과 효도의 방법이 다릅니다. 진정한 효도는 감사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1. 생명에 대한 경외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어버이를 통하여 생명을 주셨다.” 내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가 효도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통하여 내 생명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는 한가지 사실 때문에 우리는 그분들을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모님들이 연로하셔서 못나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또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보면 실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우리도 실수가 많았습니다. 내 어머니 그것을 참아 주셨고 내 아버지 내 실수를 인내해 주셨습니다. 이제는 자식된 우리가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의 실수를 참아주고 인내해 주고 안아주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홀로 서지 못하고 거동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서지 못할 때에 내 어머니 나를 안아서 키워주셨습니다. 이제는 늙으신 내 어머니를 우리가 안아줄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내 아버지 당신의 손으로 밥을 드실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늙으신 아버지에게 수저에 밥을 담아 입에 넣어드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효를 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그것 싫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부모님이 옷과 이부자리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똥 오줌 가리지 못할 때에 내 어머니 싫다 더럽다 말씀하지 아니하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주셨습니다. 이제는 자식된 우리들이 그런 일을 감당한다 할지라도 싫어하지 말고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보답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부족한 내게 효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군요. 나를 효자 삼으시기 위하여 이런 기회를 내게 주셨군요. 그 일 감당할 줄 알아야 된단 말입니다. 옷을 입혀드릴 때 부모님이 나의 옷을 입혀 주시고 키운 것 생각하고 불평없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제 어머님이 너무 오래 살아 자식들에게 폐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을 하신 모양입니다. 이때 제 아내가 어머님께 “어떤 일이 있어도 기쁨으로 돌봐드릴테니 염려 마시고 오래만 살아달라”고 했답니다. 며느리의 이 말 한마디를 어머니는 크게 고마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버이의 최고의 영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식들로부터 공경과 사랑을 받고 늙어가는 것입니다. 가장 서러운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몸으로 낳은 자식으로부터 공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2장 19절에 솔로몬 임금도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 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왕좌에 앉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자리를 베푸니 그가 그의 오른쪽에 앉는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였던 솔로몬의 어머니, 양반 고관대작들로부터 얼마든지 무시당하기 쉬운 조건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식된 솔로몬 임금이 그 여인을 공경하고 높여 드릴 때에 그 누가 그 여인을 무시할 수 있더란 말입니까? 그 누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었더란 말입니까?

2. 신앙적인 효도의 방법은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제사상이나 차려드리면 되는 그런 효도가 아닙니다.

  늙어가면서도 부모님은 오직 하나 자식 생각,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고 사십니다. 내가 태어나 이제는 내 나이도 늙어가는 이 시간까지 오직 자식 위하는 마음 하나로 사십니다.

  어느 광고 카피라이터가 쓴 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스물 아홉 - 열 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신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 일곱 -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마흔 셋 -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 여덟 - 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 셋 -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 보고 또 입어 봤습니다.

예순 하나 -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예순 다섯 -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 광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상을 숨김없이 표현한 글입니다.

  이제 이토록 귀한 내 부모님 이 땅에 사시면 얼마를 더 사시겠습니까? 효자 성도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의 기회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열 가지 계명 중에 아홉 가지 계명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수 있는 계명입니다. 그러나 제5계명만큼 어느날 문득 내 곁을 떠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홉가지 계명을 내가 범하고 잘못 감당했다고 할지라도 돌이킬 수 있습니다. 새롭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5계명 만큼은 어느날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 나이 많지 않습니다. 이제 50대 중반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어느날 옆방을 열어보니 효도해야 될 내 아버지가 아니 계십니다. 나와 같은 분이 이 자리에 한둘이시겠습니까?

「어버이 살아 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한번 가신 뒤에 애달프다 어이하리. 생전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어버이 잃고 서러워하는 송강 정철선생의 시 입니다.

「반중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니 품음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이를 서러워 하노라.」 내 아버지 내 어머니 홍시 좋아했는데 잘 익은 홍시 손바닥에 들고 달려가 이것 어머니 드세요, 아버지 드세요, 드리고 싶었지만 이제는 반길이가 없으니 그를 서러워 하노라. 박인노의 조홍 시입니다.

  제5계명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야 슬퍼하며 자녀들로부터 푸대접받고 늙음의 비애가 내 인생에 넘치는 그때, 더욱 서러워지는 계명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슬퍼지는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입니다.

3. 효자 성도의 효도의 방법은 부모님이 구원받도록 해 드리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님을 생전에 섬기기를 잘한다 한들 영혼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다고 하면 제대로 효도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지요. 부모님 생전에 예수믿게 한 자녀는 최상의 효도를 감당한 것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세상에서 진수성찬으로 대접하고 능라주단으로 몸에 감아드리고 연락으로 즐겁게 해 드렸다 할지라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여 영원한 멸망을 받는 부모가 되었다면 이 어찌 효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묻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분들이 복음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와 함께 옆자리에 앉아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이라도 그분의 생애에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고 하면, 그들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만약에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금식하며 기도해 보셨습니까? 내 어머니, 내 아버지 예수 믿기를 원하여 제가 금식에 들어갑니다. 한주간 동안 어머님을 위하여 밥을 먹지 않겠습니다. 생명이라도 내어놓고 내 어머니, 내 아버지에게 구세주 예수님을 선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금식해 보셨습니까?

  60억 인구가 지옥에 가도 내 부모님만큼은 천국에 모신다는 각오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될 일입니다. 남들은 이억만리 오지까지 가서 선교하는데 나는 내 가정, 내 가족이라도 복음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 육신 공경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영혼 공경만 하겠습니까? 영혼 떠난 육체 5만개를 가지고 온다할지라도 단돈 100원 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영혼 떠나고 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순교적인 각오를 가지고 부모님에게 예수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효도이기 때문입니다.

V. 효자 성도의 효도는 그 상급이 다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효자 성도의 효도는 하늘의 상급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2)

  부모 공경만큼은 약속있는 계명입니다. 보너스가 두둑한 계명이란 얘기입니다. 땅에서 잘되고 내생에서 잘되는 계명이 바로 제5계명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모에게 효도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큰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과 요셉과 셈과 야벳과 다윗과 솔로몬 모든 성경의 위인들은 하나님 앞에 효자였고 부모 앞에 효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특별히 부모님을 기쁘게 하던 자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의 질투를 받아서 이방나라에 종살이를 하게 되지요. 그러나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심정으로 주인을 공경했습니다.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옥중에서도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옥살이 했습니다. 드디어 총무대신이 되었습니다.

  반면 다윗의 불효한 아들 가운데 압살롬이라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부모에게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그리하여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그 휘날리는 금발머리가 상수리나무에 휘청 감겨서 대롱대롱 매달렸습니다. 따라오던 적장이 심장을 찌른 다음에 난도질해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땅에 불효한 자들이 잘된 자가 없으며 이 땅에 효를 극진히 하고서 잘못된 자가 없습니다.

  명심보감 효행편에 보면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도 효도한다. 내가 불효하면 그들이 배나 더 불효한다”고 했습니다. 자녀들로부터 효도를 받고 있는 부모는 참 행복한 분들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효를 뿌린 자가 효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불효를 심은 자가 불효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VI. 공경받는 부모가 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 땅에 어버이된 사람들, 공경받는 어버이가 되라는 얘기입니다. 밤마다 자식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듣고 자랐던 자식들이 잘못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 받았던 자식들이 아버지의 축복을 먹고 살았던 자식들이 다른 길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밤마다 술에 취해 동네 개가 다 짖도록 만들고 집에 오면 부부싸움으로 시끌벅적 온 집안을 지옥으로 만드는 그 환경 속에서 자랐던 자녀들이 어떤 길을 가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내 아버지, 내 어머니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행복한 부모가 되겠습니까?

VII. 주 안에서

  오늘 본문의 시작 말씀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주 안에서”란 말은 주 밖에서와 반대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원문의 뜻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 네가 주 안에 있다면 어버이들에게도 효자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네가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었다면 어버이들 앞에 효자 성도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효자라면 육신의 어버이들에게도 효자로 살아라 그 얘기입니다.

  보십시오.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 효자 성도였습니다.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의 노모님을 향한 옥중기가 있습니다.

내 어머님 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우고 가르치신 은혜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 어머님은 나를 금지옥엽으로 길러주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맞아 상할 때 내 어머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실까? 춘풍추우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에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에 내 어머니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려 기도합니다. 어머님 봉양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는 더욱 없었습니다. 불효한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내 어머님, 팔순 넘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 손에 부탁하나이다.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없이 못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불효해도 가야하고 죽더라도 가야하네

  일제시대에 이흥렬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음악공부를 하다가 너무 피아노를 갖고 싶어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 피아노를 갖고 싶어요.” 그 편지를 받고 어머니는 허리가 휘어지도록 솔방울을 모아 팔아서 400원을 모아 보냅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땀 그리고 피가 묻은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너무 감격이 되어 눈물로 지은 곡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노래입니다.

  오늘 같은 날 어머니가 생각나고 아버지가 생각나고, 불효가 한스러워지는 날 - 생각이 나는 노래입니다.

어버이 은혜

1.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2. 어려서 안고 업고 길러 주시며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 사 그릇될 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버이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3. 사람의 마음 속엔 온 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에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오 어버이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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