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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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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를 변화의 시대라고 합니다. 모두가 다 변합니다. 몇 해 전부터 여자도 사관학교에 입학을 하더니 금년에는 여자가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여자들이 공수부대원이 됩니다. 비행기 조종사도 됩니다. 판사와 검사시험에서도 여자들이 수석을 차지합니다. 또, 남자가 미용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는 것은 옛날이야기 입니다. 지금은 남자 보모와 파출부가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 시대는 예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다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정의 영적 질서입니다. 가정은 흔들려서도 안 되고 변해서도 안 됩니다. 미국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핵무기도 아니고, 마약도 아니고, 가정의 붕괴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가장 무서운 위기는 가정의 위기 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절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순종하라!” 이 말은 평등을 강조하는 수평적 사고의 시대에서 구식처럼 들리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소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삼상 15:22).” 성도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목사님께 순종하고, 학교에서는 스승님께 순종하고, 가정에서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에는 기적이 따르고 축복의 첩경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베드로는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께서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했을 때 순종하였더니 그물에 고기가 가득히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어부 출신입니다.  예수님은 목수였습니다. 전공분야가 다릅니다. 그러나 순종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삭이 축복을 받은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부모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에서를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가라고 했을 때 순종했기 때문에 훗날 성공하여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요셉도 아버지 야곱에게 순종하여 형들에게 점심 심부름을 갔다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노예로 얼마동안 고생은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애굽에서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역사에 벤자민 프랭클린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열일곱 명의 자녀 가운데 열다섯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하여 정규교육은 딱 1년 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독학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재였습니다. 나중에 그는 정치가도 되고 사회개혁자도 되고 문필가도 되고 과학자도 되었습니다. 미국 헌법의 기초를 놓은 사람입니다.  대통령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 되게 된 비결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첫째는 청교도적인 믿음을 가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둘째는 매주일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그 말씀에 순종했고, 셋째는 어떤 경우에도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물질의 주인이 될 것을 다짐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었습니까? 생모 요게벳의 신앙교육 때문입니다. 어머니로부터 민족혼을 이어받았던 것입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명으로 와서 사명을 감당하고 가는 존재입니다. 모세는 어머니로부터 이 사명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자란 것입니다. 우리 집 막내 아브라함이 중학교 다닐 때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학교 농구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좋아하고 친구들하고 늘 운동을 합니다.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셋째를 보기만 하면 “공부해라, 공부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아버지, 아버지 직업이 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지” 했더니, “목사님이면 예수 잘 믿으라고 해야지 입만 열면 공부만 하라고 하면 돼요?” 하고 따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는 “성경 읽고, 공부해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막내가 믿음이 좋습니다. 이번에 목사가 되겠다고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 “공경하라(Honor)”는 원어의 뜻은 부모의 명예를 높이라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효도를 함으로써 부모의 이름을 빛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요즘말로 바꾸어 말하면 보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라는 뜻이 됩니다. 미국 풋볼 선수 하인즈 워드가 어려서 어머니 김영희 씨를 영어가 서투르다고 부끄럽게 여겼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가 가장 자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제 효자가 된 것입니다. 철이 나고 보니 어머니가 귀한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만약 여러분의 부모라면 여러분은 진짜 효자인 것입니다. 효자는 부모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늙었다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사별하고 시골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그 아버지를 생각하여 서울에 사는 아들이 서울로 모셔왔습니다. 서울에 와서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니 집안의 위계질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집안에서 가장 센 존재가 단연 며느리였습니다. 며느리가 위계질서 제 1호였습니다. 그리고 위계질서 두 번째가 손자손녀였으며, 세 번째가 아들이요, 네 번째가 이 집의 식모이며, 다섯 번째가 이 집의 강아지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여섯 번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며느리가 외출해서 돌아오면 먼저 식모에게 묻는 첫마디는 애들 들어왔느냐, 남편 언제 들어온다고 하드냐, 강아지 밥 줬냐부터 물어보지만 할아버지 점심 차려드렸느냐고 묻는 법은 없더랍니다.  그 모양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고 무료해서 시골로 내려가기로 하고 떠나면서 아들 앞으로 편지 한 장 써놓았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제 3호야 잘 있거라, 제 6호는 간다.” 지금 우리의 사회가 이렇습니다.

여러분, 부모를 잘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있던 미국 뉴져지와 뉴욕에서는 한인 교포들이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특별히 효도관광을 보내드리는데 주로 어디인지 아십니까?  나이아가라 폭포입니다. 미국 북동부 버팔로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입니다. 좋은 곳이 많은데 왜 꼭 하필이면 아이아가라 폭포에 효도관광지로 택하는지 아세요? 이름 때문입니다. “나이야 가라! 나이야 저리 가라!” 나이아가라 폭포에 한번 다녀오면 나이가 젊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선 어디로 보내드려야 합니까? 효자동입니다. 청와대 옆에 있는 동네입니다. 그 마을 이름이 왜 효자동이 되었는지 그 유래를 여러분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알아도 또 들으시기 바랍니다. 옛날 그 마을에 노인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손주를 얼마나 귀여워하는지 항상 옆에 꼭 데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손주를 품에 꼭 껴안고 낮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몸을 돌리다가 그 귀여운 손주를 깔고 누워서 손주가 죽었습니다. 며느리가 밭에서 일하는 아들에게 냅다 뛰어가서 알렸습니다. 자초지정을 다 들은 아들이 급히 와서 사정없이 죽은 아이의 볼기짝을 찰싹 때렸습니다. “이 나쁜 놈, 네가 이렇게 죽으면 우리 늙은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느냐. 이 불효한 놈아!” 그러면서 죽은 아이의 볼기짝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죽은 그 아이가 하품을 하면서 깨어나더랍니다.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을 이름이 효자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 모시고 그곳에 한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효자동에 가면 값이 싸고 좋은 식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맛있는 것도 사드리면서 그동안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 것,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해보세요. 아마 부모님이 그 동안 섭섭하게 생각했던 것이 다 봄눈 녹듯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효는 부전자전이라고 합니다. 대물림이란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고려장에 대해서 많이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고려장은 늙은 부모를 자식이 등에 업거나 지게에 짊어진 후 인적이 드문 산속에 버리는 반윤리적 악습이었습니다. 역사성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많습니다. 하여튼, 다 아시는 얘기들입니다만, 아들의 지게에 실려 가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뭘 하세요?”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뭘 뚝뚝 잘라 버리세요?” “나 버리고 난 후 네가 집으로 돌아갈 때 길 잃어버리지 않도록 소나무 가지를 꺾어 버렸으니 그걸 보고 돌아가도록 해라.”  이 얘기는 가슴 저리도록 슬픈 얘기입니다.

고려장에 얽힌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고려장 현장을 따라간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왜 데려갔는지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노모와 지게를 깊은 산속에 버리고 돌아서려 할 때 따라간 아들이 아버지가 버린 지게를 걸머메는 것이었습니다. “너 그건 뭐하려 걸머메니?” “이담에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걸 어디다 쓴단 말이냐. 그냥 버려두고 어서 가자.” “저도 이담에 아버지 버릴 때 이 지게가 필요할 텐데요.” 

고려장은 자식이 부모를 등에 업거나 지게에 져다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판 고려장은 부모를 소외시키고 학대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악랄하고 잔인한 그리고 용서받지 못할 구려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님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신분입니다. 물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에게서 왔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의 부모님을 통해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이 땅 위에서 우리를 키우시되 부모를 통해서 키워 주셨기 때문에 보모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다음으로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가정은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내는 남편을 하늘같이 대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저는 일본 사람들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독도 문제로 우리들의 감정을 건드리니 일본 사람들에 대하여 더욱 감정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부지런함과 바른 예절은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특별히 일본 여자들은 남편을 매우 존경합니다. 그래서 일본 전통 의상을 보면 여자들이 등에 매는 것이 있습니다.  그 속에 뭐가 있는지 아십니까? 바로 요가 있습니다. 이불을 갖고 다닙니다. 남편이 누우면 그것을 깔아 줍니다. 언제든지 남편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뜻입니다. 앉으면 방석이 되기도 합니다. 남편을 편안하게 해 주려고 하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남편을 하늘같이 보아야 합니다. 존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가 너무 변했습니다. 전에는 남편이 출근하면 부인이 대문 밖에까지 나와서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와 보는 부인이 없습니다. 그냥 이불 속에 누워서 문 잘 잠그고 가라고 합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보니 어떤 부인은 자면서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부인 잠 깰까 겁을 내고 신발도 아파트 안에서 신지 못하고 들고 나가 밖에서 신고 갑디다. 나는 그 장면을 보니 울화통이 터집디다. 나는 아들만 셋인데 저런 며느리 들어오면 어쩌나 싶어 열이 바치더라고요. 하여튼 속이 상합디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욕하고 업신여기고 때리면 안됩니다. 이 땅에는 하늘나라를 닮은 작은 천국이 세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마음이고, 하나는 가정이고, 또 하나는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정천국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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