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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둠의 골짜기를 통과 할 때에 (시 23:4, 요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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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등산가가 원정대를 모집하고 에베레스트 산을 점령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이 그 원정대 중에 한 사람으로 그곳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원정대로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큰 모험과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거친 길도 건너야 합니다. 산이 깊은 만큼 깊은 골짜기도 지나야 합니다. 자신의 체력적인 한계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들 중에 많은 사람이 정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정상 아래에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삶은 아무런 변화 없이 거친 광야를 지나 갈 수 있습니다. 목마를 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정상에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하고 도전만 하다가 끝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일까요? 실패한 골짜기에서 어둠의 골짜기에서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는 것일까요?

  우리의 인생에서 정상이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 골짜기를 타고 올라오면서 많은 교훈을 얻고, 도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상에서는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정상에서는 잠시의 쉼과 성취감이 있을 뿐이며,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잠시 후에 그는 또 다시 그가 올라 왔던 그 골짜기를 향해 내려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지금 인생의 골짜기를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믿음의 사람인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은 혼자서 그 골짜기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곳에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 정상에 올라가는 것보다 골짜기에서 어떻게 승리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골짜기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정상에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다보면 우선 부딪칠 수 있는 인생의 골짜기가 바로 불확실함의 골짜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분의 강한 오른 손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투명한 유리로 밖을 보는 것처럼, 혹은 안개 속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불확실한 믿음의 골짜기에서 우리는 고통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도 시편 23편을 통해 말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라고 했습니다. 이 때 우리는 그분의 살아 계심에 대한 확신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1:6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은 자신의 의지로 내가 예수를 영접한 것이 아님을 고백했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인생을 출발시켜 주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끝까지 자신을 지켜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자신의 의지대로 지구에 온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출발시키신 분입니다. 그분께서 시작하셨으니 오늘도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며, 그분의 뜻이 모두 이루기 전까지 그분은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나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다. 나에게는 확실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목적 없이 계획 없이 교회로 부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며, 예수를 믿게 하신 하나님도 아닙니다.

불확실함의 골짜기는 길수도 있고, 큰 아픔과 고통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골짜기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나에게 그분의 목적이 있다는 사실에 확신만 가진다면 너무나도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분명히 데살로니가 전서 5:24절에는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부르신 그분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십시오. 그것  만이 여러분들의 불확실함의 골짜기에서 나올 수 있는 구원을 줄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두려움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이 두려움의 골짜기에서 우리는 물질의 두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가정이 깨지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내가 해고당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사업이 잘 될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하여 나를 마고 짓누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두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불신앙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불안과 두려움의 골짜기에 갇히게 된다면 여러분은 이것만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아직 나는 하나님께 속해 있고, 아직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의 두려움과 근심이 계속된다면 여러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평안을 주시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하나님은 우리들이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제자들은 두려움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그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년 동안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통치자요 자신들의 왕으로 서실 것을 그들은 믿고 따랐지만, 이제 주님은 죽음에 대해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들었을 때 제자들은 두려움과 근심과 그들의 마음을 짓누리는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려움과 답답함 속에 있는 그들을 향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요청하셨습니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자신과 함께 하신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려움의 골짜기에서 아주 견고하고 단단하며 구체적인 믿음의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간 동안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더욱 견고하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 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며, 어떻게 마음의 평안을 얻고 이 골짜기를 벗어날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두려움의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분의 견고한 오른 손을 붙들고 계십니다.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두려움의 골짜기를 넘어가는 방법은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지금 나를 안위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요 성경을 조금만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고난은 대단히 영적으로 큰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119:67절에는“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했습니다(시 119:67). 고난은 믿음을 바로 세우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시편 119:71절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난의 골짜기는 사망의 골짜기가 아니라 율례를 배우는 곳이며, 그릇된 영혼이 바르게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심지어 베드로 사도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벧전 3:17)고 했고, 베드로전서 4:13절에서는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고난 속에서 나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사망 후 블레셋 땅에 머물 때가 있었습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버린 황량한 광야에서 농사를 지었고, 100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가 사용하는 우물을 모두 막아 버렸습니다. 쓰레기와 돌멩이를 집어넣어 못쓰게 했습니다. 그는 그 고난 속에서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그들은 또다시 그 우물을 못 쓰게 했습니다. 그는 결국 그 우물을 포기하고 또 다른 우물을 구해 이동했고, 결국은 르호봇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르호봇이란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고난을 통해 더 넓은 장소를 얻게 되었습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 처음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의 두 배나 더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고난을 통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모세는 미디안 광야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고난을 통해 예루살렘에서 로마와 안디옥으로 흩어졌고, 안디옥과 로마를 통해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는 보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지? 그렇지 않니? 네가 나를 더욱 의지하는 법을 내가 가르쳐줄께!” 혹은 “너는 더 좋은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었니? 이제 내가 나를 더 신뢰할 수 있는 기회를 너에게 줄께!” 혹은 “너는 나에게 나를 더 많이 알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지 않았었니? 내가 너에게 나를 더 알 수 있도록 도와주마!” 혹은 “네가 나에게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었니? 내가 너에게 더욱 나의 영광된 삶에 대해 알려 줄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영적 요구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요구한 만큼 그분으로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성숙함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까? 고난을 이기기를 원하십니까? 두려움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로마서 5:3-4절을 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가 어떻게 영적인 성숙을 이루게 되는지 그 비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환난 중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환난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인내가 우리가 무엇을 줍니까? 그렇다면, 연단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어에 Impossible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아주 재미있는 말입니다. Impossible 자체로는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Im과 possible을 떼어 놓으면 전혀 다른 말이 됩니다. 이 말을 따로 읽으면 I'm possible이 됩니다. 즉, 나는 가능하다라는 말입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마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말씀은 야고보서 1:2-4절 말씀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예레미야 32:40-42절 말씀입니다. 함께 찾아서 읽겠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렘 32:40-42)

  만일 여러분이 내가 지금 폭풍과 파도가 치는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쁨으로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채워 주심의 은혜를 체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두려움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고 있다면 이제 여러분은 그분께서 여러분은 버리지 않으시며, 떠나지 않으시며 고난 중에라도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더욱 견고하게 그분을 의지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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