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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삼중축복인가? (요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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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인한 사망과 저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아래
삼중축복의 은혜로 바뀌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한 이후로 죄와 사망이 임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은 단절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망은 저주를 가져왔고 온 땅은 저주를 받아 황무한 세상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환경의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헤치며 살게 되었고 육체적으로도 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고 살다가 일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1. 헬라 사상과 하나님의 가르침

헬라사람들은 헬라 철학을 바탕으로 인생을 바라볼 때 모든 만물을 이원론적으로 바라봅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은 선한 것이고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육체가 죽어 영원히 해방되어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중 ‘파이돈’에서는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이데아의 세상에 있다가 인간이 출생할 때 육체라는 감옥 속으로 들어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서 진리와 이상의 세계인 이데아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정신과 물질,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이원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이러한 헬라 철학이 기독교에 들어와서 영지주의라는 이단사상을 낳았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는 악하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은 영혼이지 육체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 육체가 다시 살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혼이 육체속에 들어있는 존재로 지으시고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영혼만 가지고 인간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육체만 가지고 인간이 되지 않습니다. 영혼이 육체속에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실 때 영혼만 구원하고 육체를 저버린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영혼은 천국 낙원에 거하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영과 육이 다시 하나되어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헬라 철학에서 가르치는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것은 잘못된 사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히브리 사상 즉, 하나님의 가르치심은 인간을 영과 육으로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이 일체가 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부활을 신앙의 근본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지금 죽어서 우리 영혼이 육체를 벗어난다 할지라도 낙원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 강림하실 때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되므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벗어 버리셔서 영이 해방되신 것이 아니라 죽은지 사흘 만에 육체속에 돌아오심으로 영과 육이 일체가 되어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를 무덤에 버리시고 영혼만 부활하셔서 천국에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비었습니다. 그 육체가 변화되어서 예수님의 영이 육체 속에 들어와 부활의 몸으로 일어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이란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함으로 육체는 벗어 버리고 영혼만 산다는 헬라철학적인 신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바사르’인데, 이는 원래 영과 혼을 포함해서 인간의 전 생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전인적인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병을 치료한다는 히브리어 ‘라파’ 역시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을 원래의 완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신학자인 마이클 그린은 성경이 말하는 영과 육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때때로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적 요소에만 관심을 두시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은 이러한 태도가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은 전인구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구원이라는 용어는 복음서에서 질병의 치유에 대한 언급으로도 빈번하게 사용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길 원한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전인간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완전한 구원은 영육이 하나가 되는 부활로서 이루어집니다.

육체의 장막이 무너지면 영혼이 낙원에 가 있으나 주님 재림하실 때 부활의 몸을 얻어 구원이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육체를 벗어 버리면 우리는 하늘 낙원에 들어가서 부활의 그날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부활의 그날에 살아 있는 자는 변화받고 죽은 자는 낙원에서 주님과 함께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장막집을 벗어 버릴때 육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부활의 몸을 얻어 영혼이 육체를 입어서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1절에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고 고린도전서 15장 52절에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몸을 얻겠고 이 더러운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부활의 몸으로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지금 죽더라도 낙원에 가서 영광 가운데 기다리고 있다가 부활의 그 아침에 아름다운 부활의 몸을 얻어 입고 완전한 구원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전인축복

하나님의 은혜는 전인축복으로서 영혼만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모세의 인도를 통해서 홍해를 건너 광야길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사흘동안 수르광야를 걸어 마실 물을 얻었지만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은 한 나뭇가지를 지시하셨고 모세는 그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로서 쓴물은 우리 영혼을 대신합니다. 죄악으로 오염된 우리 영혼은 쓴 연못물이 되어 마실 수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나뭇가지를 꺾어 던지니 달아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나뭇가지는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끌어 안으면 쓴 연못물 같은 우리의 영혼이 변화 되어서 달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새롭게 중생하게 되어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치료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말씀을 행하면 애굽에서 내린 모든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치료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인 엘림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막에서는 모래바람이 불고 물도 없고 생명체도 없었지만 그 가운데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림이라는 오아시스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예비하시고 그곳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광야를 지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쓴 연못물을 달게 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또한 엘림을 예비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더라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함을 기대하고 갈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이 광야같은 인생을 살 때에 언제나 주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통해서 쓴 영혼이 달아지고 우리의 환경에 주님이 오심으로 치료해 주시고 우리가 사막과 같은 광야의 길을 걸어가더라도 오아시스를 예비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은 전인축복인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2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 모든 은총이란 무엇입니까? 시편 103편 3절로 5절에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하시는 이 은총이 바로 삼중축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는 삼중축복의 하나님의 은총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은 전인구원인 삼중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3장 25절로 26절에 “네 하나님 야훼를 섬기라 그리하면 야훼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에서 주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은 영혼이 잘되는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영혼이 잘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마귀를 이기고 세속을 극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영혼이 잘 될 것이고 또 물과 양식에 복을 내리신다는 것 또한 범사에 잘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물과 양식에 복을 내려서 진실한 웰빙을 허락하여 주시고 그 다음에 병을 제하심으로 강건함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영혼의 구원만이 아닌 것입니다. 육체와 세상은 악한 것이니 벗어 던져 버리고 천당만을 향해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전인구원입니다. 영혼을 구원하시고 환경을 구속하시고 육체를 치료하심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축복

예수님은 십자가 대속을 통해 아담과 하와가 가져온 삼대재앙에서 우리를 구출하사 삼중축복을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나올 때 영혼이 죄로 말미암아 죽었으니 영적인 재앙이요, 환경의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가난과 저주의 생활이니 환경적인 재앙이요, 육신이 늙고 병들어 죽게되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으니 육적인 재앙을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땅에 삼대재앙을 가져와서 자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이 삼대재앙을 다 짊어졌습니다. 영적인 모든 죄악과 저주를 모두 담당하시고 육체의 질병을 짊어지셔서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서 이를 다 청산해 버리시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대재앙이 제하여지고 우리는 삼중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5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영원히 인간이 율법을 범한 죄를 대신 청산하시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예수 앞에 나와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이면 그 보혈로 말미암아 죄 씻음과 함께 용서를 받음으로 주님께서 의롭다 하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2천년 전에 이미 로마의 뜰에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의 질병을 청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말씀하고 있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질병의 부채를 다 갚어 버리셨음으로 우리는 2천년 전부터 법적으로 고침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병든 것은 마귀가 불법정차한 것이므로 마땅히 물리쳐야 할 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땅에서 육신를 덧입고 있는 동안에 육신의 병에서 반드시 해방되고 치료받고 연약함에서 자유를 얻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십자가에서 우리를 저주를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이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청산하셨으므로 예수 안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법적으로 말하면 2천년 전에 이미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므로 저주를 물리치고 복을 누릴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전 아담의 자손으로 유전된 삼대재앙은 지나가 버리고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삼중축복을 받은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세상에서 누리는 삼중축복의 완성된 곳은 천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삼중축복이란 모형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성된 곳은 천국으로서 우리가 그곳에 올라가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삶의 본처로 들어가는 것이요, 본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로 4절에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항상 계시는 천국은 우리에게 영적 낙원이 되고 기쁨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우편은 즐거움이 넘칩니다. 천국은 기쁨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면 모두 다 행복에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천국이 우리에게 멀리 있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랫동네의 삶이라면 천국은 윗동네의 삶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예수님의 인도로 윗동네인 천국낙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곳과 저곳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윗동네에도 주님을 모시고 살고 아랫동네도 주님을 모시고 삽니다. 윗동네의 아버지가 아랫동네에서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아랫동네도 살아있고 윗동네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모든 자가 살아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랫동네에도 살아있고 윗동네에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우리가 살게 될 새예루살렘이 얼마나 좋은지 도저히 설명할 말이 없기 때문에 신부가 신랑을 위해서 단장한 것 같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1절로 3절에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낙원이 있으므로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낙원에 들어가게 되면 주님과 함께 거하다가 주님이 강림하실 때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추한 몸이 영화로운 몸으로 죽을 몸이 영생할 몸으로 변화되어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로 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삼중축복과 전인구원의 완성된 단계가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13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탐험가였던 마르코 폴로는 그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중국으로 건너와서 17년을 살았습니다. 그 뒤 조국으로 돌아가서 유명한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의 임종 시에 친구들이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그 책에서 도무지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만 잔뜩 기록해놓지 않았나? 이제라도 그 책의 모든 내용이 자네 상상에 의해서 꾸며졌다는 사실을 밝혀주면 좋겠네” 그때 마르코 폴로는 “아니야, 내가 책에 쓴 것은 모두 진실일세. 사실 나는 내가 보고 겪었던 것의 절반도 채 기록하지 못했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천국에 대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으며, 문들은 진주로, 길은 정금으로 되었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천국의 영광을 설명하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이나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장차 가게 될 천국의 영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타락하여 삼대재앙으로 비참하게 된 인생을 구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보혈을 통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의 조그마한 부분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하나님과 교통하므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땅에 사는 동안에 저주를 제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이 더하사 병을 고치시고 강건하게 하사 장수의 복을 누리다가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땅은 영원히 살 곳이 못됩니다. 주님께서 이제 강림하시면 주님이 새하늘과 새땅과 새예루살렘을 만드시고 우리가 그곳에 가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날이 곧 오게 됩니다. 그 영광스러운 본향의 지극히 작은 부분을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부분에서만 전인구원의 은총을 체험하지만 주님 오시는 그날에는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은총과 약속을 갖고 있으므로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보다 내일이 더 좋은 곳에 갈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이 오늘보다 나빠지고 더 고통스럽고 슬프고 괴로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좌절과 절망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보다 내일이 더 좋은 곳으로 갈 소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장차오게 될 영광스러운 그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타락한 아담의 후예로 태어나서 삼대재앙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님은 삼대재앙을 삼중축복으로 옮겨 주시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이 일을 이루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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