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부주일] 부부 관계지수(NQ) 를 높여라! (창 2:18)

  • 잡초 잡초
  • 730
  • 0

첨부 1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정이 행복하려면 소유문제가 있지 않고 관계지수를 높이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유가 많다고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고 관계지수를 높일 때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영감! 나 좀 업어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업었습니다. 할아버지 역시 힘이 듭니다. 노인인데... 할머니가 얼마나 미안하겠습니까. 그래서 말하기를 “영감! 무거워? 많이 무겁지?” 하니까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 “그럼 무겁지. 얼굴은 철판이지 머리는 돌이지 간은 부었지... 많이 무겁지” 할머니를 내려놓고 같이 걷다가 지쳐버린 할아버지 “할멈, 나도 너무 힘들어 업어줘!”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업었습니다. 보통 힘든게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미안한 마음에 말씀하시기를 “할멈, 그래도 가볍지?” 할머니 아까 당한 것에 복수라도 하듯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에 바람 들어 갔지 양심은 없지. 그럼 가볍지”

여러분 웃자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런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평생 살아 왔지만 이 관계지수가 나쁜겁니다. 그러니까 웃음거리가 되는 겁니다. 사실 오래 살면 살수록 감동주는 관계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은 그러기가 힘듭니다. 만약에 할머니가 “무겁지”하면 그러면 할아버지는 “그럼 당신은 보물인데 내게는 무거운 존재지. 기도해 주어 든든하니 무겁지, 성령충만으로 능력으로 사니 무겁지, 항상 내 맘을 기쁘게 해주지 그러니 보물처럼 귀하니 당신은 무거운 존재지요. 사랑합니다.” 이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할아버지가 “가볍지?”하면 할머니는 “그럼 가볍지요, 평생 함께 하니 감사하지. 기쁨이지 같이 예수 믿으니까 행복하지, 죽어서 천국가니 내 마음 항상 가볍지.. 고마워요. 여보” 이러면 감동 주는 관계가 되지 않겠습니까. 관계지수 NQ가 높아져야 합니다.

부부는 같이 사는 것만이 아니라 관계가 좋아다 합니다. 친밀한 관계, 호감, 기대감, 신뢰감을 가지고 살아야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관계지수(NQ)가 높다고 하는데 이 시대는 개인보다 관계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IQ는 지능지수, EQ는 감성지수, MQ는 도덕지수, JQ는 잔머리 지수. 거기다 요즘은 BBQ라고 하는게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뻔뻔함 지수라고 합니다. 이와같은 것은 개인적인 지수를 말합니다. 그러나 NQ는 관계지수, 타인과의 어울림지수, 협력지수, 네트웍지수, 서로 돕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NQ를 높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NQ를 높으려면 격려칭찬, 무조건 감사하고 감탄사 연발, 설교말씀 중에는 아멘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이 힘이 나서, 성도와 목사님이 하나가 되어서, 설교가 더 씨너즈 효과가 나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부부의 관계지수는 나이들면 들수록 점점 떨어진다고 합니다. 30대 59.8%, 40대 53.7%, 50대 50.8%, 60대 48.2%이고 결혼 1년에서 5년 사이가 68.4%, 6-10년 사이는 56.4%로 살기는 오래 사는데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40대부터 급격히 떨어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관계지수가 높아질수록 행복합니다.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동차도 부속하나, 컴퓨터도 부속하나 망가지면 다 움직이지 않습니다. 관계가 안되는 겁니다. 월드컵 선수 선발이 됐습니다. 2002년 보다 낫다고 합니다. 그러나 걱정이 됩니다. 어떻게 조화가 잘 이루어질지 말입니다. WBC 야구대회에서 미국의 실력은 개인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관계지수, 어울림지수, 협력지수가 낮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국이 4강 진출을 한 것도, 야구가 2002년 NQ(관계지수)가 높으니 관계지수의 승리라고 말해도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의 행복도 NQ가 높으면 행복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습니다. NQ를 높여라! 더불어 사는 공존지수! 협력하는 관계지수! 하나되는 어울림 지수! 네트워킹 쿼션(quotient)을 높일 때 행복과 승리와 감사와 기쁨과 은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 형성해가는 NQ-관계지수가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자 행복의 열쇠입니다. 기업도 직원채용시 처음엔 개인능력을 보지만 중역될때는 NQ를 더 중시합니다. 얼마나 회사와 회사원들과의 관계를 잘 하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계지수가 높아야 합니다. IQ가 높다고 EQ가 높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대학 나오고 대학원 나오고 박사학위 있다고 해서 다 잘 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이 개인의 능력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부자들은 다 잘삽니까? 소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어울려서 어떻게 잘사냐는 것입니다. 가족간의 관계지수 높은 가정일수록 잘 살고 행복합니다. 뭔가 삐걱거리고 소리가 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가정, 부부의 관계지수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치심입니다. ‘돕는 배필’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IQ나 EQ를 높이라는 것이 아니라 NQ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가족간에 NQ를 높이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크게 3가지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부관계, 둘째는 부모자식간의 관계, 셋째는 형제관계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부부관계와 자식간의 관계만을 얘기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중에 하나님께서 하나 더 주셨습니다. 형제관계라고 말입니다.

이 부부관계는 가정의 시작이고 기본입니다. 부모자식관계는 두 번째 관계입니다. 그리고 형제관계는 세 번째, 마지막 관계입니다.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부부, 부모자식, 형제관계로 진행되어야 될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 관계지수를 높이는 것입니다.

1) 부부관계에서 NQ를 높이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는 채워주는 관계입니다.
부부는 책임의 문제가 있습니다.
남녀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해서 부부가 됐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혼자 사는 것이 부족하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배필은 알맞은 짝이라는 뜻입니다. 돕는데 알맞은 짝이라는 것입니다. 부부는 돕는 배필로 만났습니다. 도움을 받는 배필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부부는 서로의 인생을 책임져 줘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믿고 시집온 아내, 나를 믿고 장가온 남편의 행복, 불행을 책임져 줘야 합니다.

그러니까 남편과 아내, 여보와 당신, 영감과 마누라라고 호칭이 바뀝니다. ‘영감’은 종2품 벼슬이고 ‘마누라’는 「신라의 고어로 왕비」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높여 주는 겁니다. ‘여보’는 보물같은 이가 여보입니다. ‘당신’-마땅한 내몸이라는 뜻입니다. ‘남편’은 영어로 “husband”입니다. “house +band"입니다. 「집의 울타리」라는 뜻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남들 앞에서 아내편 들어 주는 것이 남편입니다. 형제나, 친구 더 나아가서 부모앞에서 아내편 들어 주는 것이 남편입니다.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그게 맞습니다. 가정행복은 거기에 있습니다. 왜? 아내는 살림을 합니다. 집안을 살리우는 일을 합니다. 살림하는 사람이 편해야 가정이 살고 남편도 삽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의 부족을 채워줘서 책임져주는 그 관계지수가 높을수록 그 가정은 행복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의 원리입니다.

2)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부모자식 관계의 NQ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자식간의 관계는 세워주는 관계입니다.
부모자식관계는 도리의 문제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세워주는 것, 자식이 부모를 세워주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마땅한 일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는 누어있던 아이를,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를 먹기고 재우고 씻겨서 서서 다니게 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당연히 해야 합니다. 부모의 도리입니다.
반대로 자녀가 스스로 서서 사회생활하고 자기 짝 찾아서 결혼해서 살 때 쯤 되면 부모는 점점 더 약해져서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일터에서는 젊고 유능한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 줘야하고 육체적으로 노화 현상이 일어나서 힘이 없어집니다. 이때 자식들은 부모를 세워줘야 합니다. 이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세워줘야 합니다.
이처럼 부모 자식관계는 서로 세워주는 관계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이것이 옳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네 목에 금사슬이 되게 하리라 자녀에게는 네 부모에게 효도해라 그러면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의 원리는 형제관계에서의 NQ를 높이라는 겁니다.
형제관계는 함께 하는 관계입니다.
형제관계는 아름다움과 미의 문제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어느 가정의 팔순 잔치에 갔더니 잘 차렸습니다. 형제, 자매가 같은 색, 같은 디자인의 한복을 입고 부모님께 절을 하는데 보기가 참 좋았습니다. 자식이 많으니까 좋고, 형제자매가 많으니까 좋았습니다. 인사를 하는데... 이 날 잔치는 형제자매가 돈을 모아서 마련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형편이 더 나은 가정이 더 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나 함께 했습니다.

어느 집에 장례식을 치루고 조의금 남으니까 제일 어려운 집에 줬다고 합니다. 아름답지요. 형제자매간에도 다같이 잘 살면 좋은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형제간에 힘을 함께 하면 아름답습니다. 조카들 등록금을 지원하고, 형제가 병원에 입원하면 모아서 주고, 결혼할 때도 그렇고, 이처럼 부부는 책임져야 합니다. 부족함을 채워주는 관계, 부모자식은 도리로 도리문제로써 세워주는 관계입니다. 형제는 아름다움의 문제로 힘이 되어 주는, 함께 하는 관계를 얘기하는데 부부가 부족하면 채워주고 부모자식이 세워주고 형제가 함께 해서 힘이 되는 관계지수가 높을수록 행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습니다. 이게 다 내 힘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주시는 것이 있는데 주안에서 사는 가정관계지수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주안에서 사는 가정관계지수를 높이는 것입니다.

주 안에 사는 가정 관계는
1) 부부관계에는 성자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성자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죽음에서 생명, 죄인에서 의인, 지옥에서 천국,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내 죄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었네”

예수님 때문에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됐습니다. 불행에서 행복으로 어둠에서 밟음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다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이 나의 허물과 죄를 책임져 주셔서 내 인생의 소위 팔자가 고쳐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남편들아 예수님이 우리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살아하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보면서 주안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죄를 보면서 허물을 보고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고 감싸주고 대신 책임져 주고 부족함을 채워주고 이것이 주안에 사는 신앙적인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사랑도 믿고 영접하는 사람만이 받습니다. 중요합니다.

여러분 잘 보세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내는 아내의 권세, 남편은 남편의 권세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영접해야 합니다. 누구를?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잘 들으세요. 부부간에도 나를 책임지게 하려면 영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곰처럼 살지 말고 여우처럼 살라는 겁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이곡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런 사람이 별로없기 때문입니다. 평생에 한번 이런 경우가 있으면 철드는 것이고... 그 정도로 안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오 주 없이 살수 없네 오직 주께만 구원있네 주님없는 세상 평화없네 오 주없인 살수 없네”

주님을 향해서 그런 것처럼 남편과 아내를 향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노래도 있더라구요 “그대 없이는 못살아 나 혼자서는 못살아”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을 요구할 때만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버려두면, 잘하겠지 하면 사랑이 안 생깁니다. 보지도 않습니다. 왜? 남남이니까.. 부모자식간으로 만난 것이 아닙니다. 피로 나눈 형제로 만난 것이 아닙니다. 남남이 만난겁니다. 이것은 보다 적극적인 애정이 필요한 겁니다. 영접하는 것입니다. 나를 책임지시오. 외롭습니다. 책임지라고 요구해야합니다. 깊은 마음으로 애교를 부리면서.....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어도 그 예수님이 하신 일을 영접할 때 내 것이 되는 것처럼 나를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과 아내도 사랑을 요구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관계지수를 높이는 부부관계입니다.

2) 주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부모자식관계속에는 성부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태어나게도 하시고 자라나게도 하시고 삶의 계획도 있으십니다.
우리를 향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에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위대한 임금 다윗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대로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배하신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으로 가는 것입니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에게 죽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라고 합니다. 스스로 본을 보이는 것이 최고의 교육입니다. 자녀 역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순종함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키워가는 겁니다. 부모자녀 관계속에는 성부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일년에 몇 번이나 이 노래를 부르십니까? 일년에 한번이라도 부르십니까? 거의 안부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냥 내버려두면 절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채찍으로 징계로 옳은 길을 가게 하라” 하나님 말씀안에 순종하며 가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게 주안에서 사는 가정의 부모 자식간의 문제입니다.

3) 주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형제간에는 성령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니까 새사람이 됐습니다. 전혀 다름 사람이 됐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은 이들에게 오히려 예수님의 구원자임을 증거합니다.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아도 성령이 함께 계시니까, 도와주실 것을 믿으니까 복음을 전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약하고 낙심될 때 성령은 능력이 되어 전혀 새로운 일을 해서 하는 것입니다. 함께하는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이 오셨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좋은 길을 걸으며 항상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하시네”
성령은 함께 하는 영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계시기에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시는 분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인가?

형제자매관계는 성령과의 관계와 같습니다. 함께 해주는 겁니다.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을 구할 때는 주십니다. 구할 때 얻은 것이 형제입니다. 형제는 피를 나눴습니다. 초대교회에는 그리스도인의 피를 나눈 형제들이 아름다운 공동체가 서로 나누고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아름답고, 선하고, 향기로운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가 힘을 나누는 형제자매의 아름다운일, 겨루는 일도 아니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길 바라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까지 품게 되고 함께 하는 우리교회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기본적인 가정의 원리는 부부관계는 채워주는 관계, 부모자식관계는 세워주는 관계, 형제자매관계는 함께하는 관계 이 관계지수를 높일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안되니까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 가정속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처럼, 하나님의 자라게 하심처럼 성령님의 함께하심처럼 부부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선물 주는 것을 높이고 부모자식은 하나님의 사랑, 의생을 높이고 형제자매간에는 성령의 교제를 함께함으로 힘이 되어 주는 것으로 우리 가정이 잘 살수 있다는 겁니다.

NQ를 높이려면 첫 번째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부부간에도 서로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하면 좋습니다. “여보! 고마워. 사랑해, 감사해. ” 부모자식간에도 형제간에도 감사하다, 고맙다고 말을 해보십시오.
NQ를 높이려면 두번째 GIVE & TAKE 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no give, no take가 아닙니다. 주고 받는 것도 관계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세 번째는 기적을 만드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따라해봅시다. “하나님의 기적을 만드는 가정이 되자!”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정의 원리 왜 모르시겠습니까? 주 안에서 사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래도 사람이기 때문에 안될 수가 있습니다. 또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또 마귀의 시험이 있으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부부가 헤어져서 혼자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부모자식 간에도 소원해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물며 형제자매지간은 어떻겠습니까? 이유가 있어서 혼자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러한 분들은 가정에 행복이 없느냐? 그렇지 않습니다.이 땅의 가정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 현상 내면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이라는 본질이 있습니다.

현상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입니다. 본질이신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를 살게 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게 되면 예수님의 조상이자 다윗의 조상인 다말이 있습니다. 이 다말은 혼자된 몸으로 시아버지의 씨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생 라합이 있습니다. 이방여인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에 들어 갈때에 정탐꾼들과 협력한 사람이었습니다. 모합에 룻이 있습니다. 이방여인입니다. 남편도 없고 시동생들도 없습니다. 시아버지도 없습니다. 외롭고 가난한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아름다운 가정의 삶을 이루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속에는 현상은 얼마든지 클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고 무너질수도 있고 부서질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상처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적으로 비교를 해도 저 사람보다 못살고 능력이 없는 것 같아보여도... 여러분 이세상의 크기나 소유를 가지고 간음하는 것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초대교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살았습니다. 왜? 예수믿는 사람들이 핍박을 받아 순교하는 분들도 많았고 전쟁이 많으니 혼자사시는 여인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믿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들의 가정에 함께하시니 그들은 혼자의 힘으로 자식들을 잘 키우고 훌륭하게 키우고 하나님의 축복받는 기적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혼자가 되어서 가정적으로 현상적으로 상처를 입어서 혹시나 낙심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왜?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가족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를 끝나면 마지막으로 축도를 하구요. 고린도 후서13장13절 말씀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은 성도들을 향해서 여러분이 혼자된 것, 가정이 어려움을 당한 것을 위로할 생각하지 않고 무엇을 얘기하느냐?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제하심과 교통하심이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지어다” 예수로 신랑을 삼고 “신랑되신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 하나님을 아버지삼고 성령님을 형제로 삼으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고 그 관계지수를 높일 때 하나님의 축복받는 그런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편모편부 가정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것, 한순간에 다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현상보다 중요한 것이 본질이니까 본질이신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승리케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창우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