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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부부 사랑 (엡 5: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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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남녀가 함께 만나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없습니다. 성격적으로 비슷한 사람까리 만나 가정을 꾸미기도 하지만 전혀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그처럼 신기하고 오묘한 삶의 모습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 헤어지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한 가정을 꾸린다고 할 때 영원히 정말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정말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결혼 생활인데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요? 부부 간의 참된 화목과 사랑을 이루어가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울 사도는 먼저 아내 된 이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무엇보다 먼저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순종하듯 하십시오.” 라고 권면을 합니다. 그 이유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되고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구주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 그들은 사랑으로 한 몸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아내 하와를 만드셨고 그 하와를 본 아담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부터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난 다음부터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가까이하였던 저들이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는 동산 숲 사이로 숨었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더냐?”고 하나님이 물으실 때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하와에게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여전히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세우신 질서는 남편이 아내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하였다”고 베드로전서 3장 6절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주어진 말씀을 따라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순종하듯 그렇게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내의 생각이 남편보다 앞서갈 때가 훨씬 더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보면 아내인 브리스길라가 훨씬 믿음에도 앞서고 섬기는 일에도 앞장섰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남편의 이름보다 아내의 이름을 먼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와로 인해 아담이 넘어졌듯이 아내로 인해 남편이 쓰러지고 망가지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까?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며 기도했고 그 마음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나타나셔서 “너의 정성과 마음을 보았으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여 주신 이 백성을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간구하였고 이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더불어 부귀영화와 장수의 복을 더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를 가지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해 올렸습니다. 그렇게 복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던 솔로몬이 믿지 않는 아내들의 말을 따라 우상 숭배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서 나라가 망해가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할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하지만 남편이 아내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요 또한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과 같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내 된 입장에서는 남편을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여야지 아무리 좋은 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남편과 의견이 다를 때 자기주장만 하다가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되더란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서 보듯이 분명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아담도 하와의 말을 따라 그 열매를 먹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건 아냐.” 하면서도 남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결국은 아내의 말대로 따라가고 말더란 말입니다. 따라서 아내 된 입장에서는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밀어 붙이지 말고 의견 제시로 끝나야 하며 모든 결정은 최종적으로 남편이 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바른 결정을 내리고 바르게 가정과 모든 일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기도로 뒷받침이 되어줄 때 남편이 현명한 결정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가정과 모든 일에 함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남편과 뜻이 다를 때 너무 내 주장만 하다보면 결과적으로 바른 교훈을 했다고 하더라도 남편과 사이가 불편해지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가정의 화평이 깨지게 되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남편으로 하여금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들게 되고 자신감과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들고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다운 일꾼 되지 못하게 만들게 되니 바로 그것이 악한 마귀 사탄이 노리는 바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 된 이들로서는 일단 기도하면서 남편을 돕도록 할 것이요 어떤 경우에도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 남편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 일과 더불어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보면 남편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도 있습니다. 또는 남편의 결정하는 것이 이건 아니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건 틀렸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지 마시란 말입니다. 그보다는 부탁을 하고 “제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네요.” 하는 식으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이렇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실수를 하거나 결과가 나쁠 때도 “당신 그럴 줄 알았다.”거나 “또 그랬어!” 하기보다는 오히려 격려해주고 붙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을 지으셨던 이유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의 어떤 남자도 아내의 격려 없이 큰일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어떤 불만스러운 모습이라든가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오히려 모른 척 하고 넘어가 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게 마음에 안 들고 저게 마음에 안 들고 하며 하나하나 계속해서 지적해 나가게 되면 결국 남편은 그로 인해 마냥 야단만 맞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의기소침해지고 점점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더란 말입니다. 그보다는 자녀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 이상으로 남편을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남편이 처음 결혼할 때와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고들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남편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아내 자신이 달라졌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가 생기고 난 다음부터 보십시오. 온통 관심은 자녀들에게 가 있습니다. 결국 사랑하는 자녀라고는 하지만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그 모든 사랑을 다 빼앗긴 꼴이요 모든 일에 우선순위가 자녀들일 뿐 남편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자녀들은 자상하게 보살펴 주면서 오히려 남편을 종 부리듯 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시란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우선 순위를 남편에게 두어 남편으로 하여금 가장의 자리에서 가정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줌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바울 사도는 남편 된 이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했던 바울 사도는 이제 남편 된 이들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그것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아내를 위해 남편은 자기 목숨까지 바쳐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몸처럼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내의 협력이 없으면 남편은 망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남자가 큰 소리를 쳐도 결국은 여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되도록 처음부터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말 자기를 위한다면 먼저 아내를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왜 아내에게 남편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까? 남편이 아내의 도움 없이 설 수 없는 것처럼 아내는 남편의 사랑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끊임없이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말과 행동으로 아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책임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잘못될 때도 있고 실수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가 사랑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내가 잘못을 하고 실수를 했다고 해도 그때 화를 내기보다는 너그럽게 감싸 안아주라는 것입니다. 아니 이것은 비단 남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가 동일합니다.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오히려 못 본 척 넘어가 줄 수 있어야 하고 작은 수고에도 서로 간에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수고 했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상대방에게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자녀들 앞에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한다든가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들이 자녀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기 때문입니다. 특히 남들 앞에서 아내를 칭찬해주고 남편을 자랑해주고 할 때 그것이 바로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내게 있어서는 당신뿐이야.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당신과 결혼할 거야. 세상에 당신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어 이 세상에 당신이 제일 예뻐.” 라고 말해 줄 때 에이 거짓말 하면서도 아내는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네는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치명적인 상처를 상대방에게 안겨주기도 합니다. “어쩌다가 내가 눈이 뼜지 당신 같은 사람하고 결혼한 것이 내 생에 최대의 실수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내는 아주 마음에 큰 상처와 응어리를 안고 살아가게 되더란 말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니까 결코 서로 간에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지 마십시오. “누구는 이렇게 하는데 당신은 뭐냐?”는 식으로 말을 하게 되면 “그럼 그 사람하고 살아!” 하고 팩 돌아서게 되지를 않습니까? 그리고 그런 상처가 쌓이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베드로 전서 3장 7절은 말씀합니다.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그릇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약하다는 것이요 깨어지기 쉽다는 뜻입니다. 그릇이 깨어지게 되면 어떻게 다시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연약한 그릇이 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간직해야 합니다.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생명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고 또한 베드로 사도는 말씀합니다. 사실 아내와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할 때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기도가 됩디까? 물론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축복권을 지닌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 기도가 막힌다고 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가족 전체가 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여겨 주지 않는다면 남편도 귀하게 여지지 않는 아내를 누가 귀하게 여겨 주겠습니까? 그리고 아내가 망가져 버리게 되면 아내의 도움 없이는 설 수 없는 남편 역시도 망가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아내를 지켜 주어야 할 책임이 남편에게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하와가 뱀의 시험을 받을 때 남편 된 아담은 어디 있었습니까? 아담이 그 곁을 지켜 주었다면 그래도 하와가 이렇게 잘못되었을까요? 그러니까 아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남편은 아내를 사랑으로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이런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부는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하며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찌로다”라고 창세기 2장 24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부부 사이에 누구도 방해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는 말은 둘이 똑같은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함께 살아가지만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는 어느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인지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이 하나로 되지 못할 때는 아내가 남편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배필이 되어 서로의 부족을 메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설 수 있고 또한 거룩하고 흠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의 뜻을 따라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사랑과 순종함으로 하나가 될 때 자녀 또한 이 사랑과 순종함을 배워 좋은 믿음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하게 될 것이요 그럴 때 우리의 모든 기도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느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보살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약속을 따라 모든 복을 받아 누리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남녀가 결혼해 살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애정표현에 더 관심이 있고,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며, 남편이 가족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헌신이 있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가정에서 조용히 쉼을 갖기 원하고 오히려 아내에게 위로와 칭찬 받기를 원하며, 여가 활동의 동반자가 되어 주기를 원합니다.

결혼한 부부가 서로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서로에게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욕구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완벽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은 남자와 아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적응하는 만큼 더욱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좋은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섬기는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래서 가정의 화목을 이루고 하나님이 복 주시는 천국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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