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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2) (시 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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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에 보니 4- 50대 사람들에게 자식들이 결혼한 후에 분가를 시킬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 것인가를 물었더니 80%가 분가를 시키겠다고 대답하였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우리 대부분이 요즘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대하여 서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서툴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불편합니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함께 있지 않고 혼자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병적으로 지나쳐 사랑하는 자녀들 하고도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연한 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자식을 결혼시켜 분가하는 일이 모두가 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형편에 따라 분가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형편과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여 분가를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부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도 분가를 생각할 수 없으리만큼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잘 사는 법’을 훈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잘 사는 법’을 알아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맛을 보게 된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함께 살지 않고 혼자 살겠다는 식의 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교인들과 이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행복하게 함께 어울려 잘 사는 법’과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도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다 부부와 부모와 자식들과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복을 받으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모르고 의무감 문에,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억지로 함께 사는 것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저도 차라리 분가하여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것은 차선이지 최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최선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쉽게 차선을 택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100인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뭐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았을까요? 일등, 그럭저럭 삽니다. 이등, 마지 못해 삽니다. 삼등은 무엇일까요? 예 맞습니다. ‘죽지 못해 삽니다.’일 겁니다.

많은 사람, 아니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등 가는 소원은 행복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이 투자하는 시간과 정력은 상상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전쟁 같은 삶을 삽니다.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사람들은 공부합니다. 그 과정과 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마음껏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놀아야만 할 어린 아이 때부터 가방을 들고 이 학원 저 학원을 뛰어 다녀야만 합니다.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면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습니다. 그와 같은 전쟁은 대학을 가도 끝나지 않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사람들은 돈을 법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우며 또 전쟁 하듯 돈을 법니다. 목숨을 걸고 돈에 매달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제법 돈을 법니다. 물론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을 버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체로 불행한 삶을 삽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돈을 버는 일에 성공한 사람도, 크게 성공한 사람도 막상 알고 보면 행복하게 살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확인해 보면 아는 일인데, 사람들은 그런 확인을 좀처럼 하지 않고 돈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것처럼, 돈버는 일에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온 인생을 돈에 걸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재벌 100인에게 물어 보십시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를. 아니 세계 재벌 100인에게 똑 같은 것을 물어 보십시오. 무슨 대답이 나올 것 같습니까? !!! ...

‘행복하게 사는 법’이 있습니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이 따로 있습니다. 정작 사람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때문에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법을 깨닫고 몸에 익혀 그 법에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습니다.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법을 모릅니다. 그 법에 서툽니다. 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은 행복에 서툽니다. 불행에 유능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성경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행복하게 잘 사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가리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행복과 구원의 길과 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수도 없이 많은 행복과 구원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대한 말씀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 그 법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답답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고, 새벽에, 밤에 잠도 안 자고 어떤 때는 밥도 안 먹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보면 그 법을 몰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음으로 결과적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과 똑 같아 집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헛된 일에 분주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이 있습니다.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이 있습니다. 그 법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 법을 성경에서 찾으시고, 배우시고, 몸에 익혀 그대로 한번 살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발 하나님의 소원대로 좀 행복하게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처럼 온 지면으로 흩어져 말 안 통하는 삶을 살지 말고, 오순절 날 성령 받은 사람들처럼 함께 모여 기쁘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복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랑하는 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잘 아는 바와 같이 고린도 전서 13장에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사랑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노래로도 부릅니다. 그러나 대부분 거기서 끝납니다.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이 자기의 말씀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습니다. 투자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래 참지 않습니다. 온유하지 않습니다. 무례합니다. 그리고 매사가 폭력적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이기적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모두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고 성경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겁 없이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잃습니다.

저는 사랑이 무례하지 않을 때 깊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禮)를 모름으로 불행해 집니다. 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함께 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사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연 사람과 함께 살 수 없게 되고 결국 외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의하면 아래 사람이 위의 사람에게 지켜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의는 아래 사람과 위의 사람이 모두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예의 없는 아래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는 예의 없는 위의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강해지면, 사람이 부해지면, 사람이 높아지면 대개 교만해 집니다. 교만해 질 때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현상은 무례해 지는 것입니다. 말을 함부로 합니다. 기분 나쁘게 합니다. 가정에 있어서 강자는 대개 남편과 부모입니다. 아내와 자식은 대부분의 경우 약자입니다. 가정에 있어서 강자인 남편과 부모가 대부분 무례합니다. 말을 함부로 합니다. 기분 나쁘게 합니다. 그리고 함부로 지배하려고 합니다.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기다려 줄 줄 모릅니다. 그리고 함부로 소리를 지릅니다. 때로는 폭력도 행사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성경을 말씀하는데. 사랑은 온유한 것이라고 성경을 말씀하는데 성경과 정 반대로 행동합니다.

여러 번 예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둘째가 처음 귀 걸이를 하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는 김동호 목사 아들이 귀 걸이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 납득이 잘 되지 않았었습니다. 당장 ‘사내자식이 귀 걸이는 무슨 귀 걸이’ 또는 ‘목사 아들이 귀 걸이?’하며 소리를 지르고 엄포를 놓아 당장 떼게 하고 싶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깊이 그리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참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둘째가 귀 걸이를 할 때 충동적으로 쉽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하고 싶었는데 참고 참다가, 미루고 미루다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다시 말해서 몇 번을 생각하다가 용기를 내어 귀 걸이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아버지인 나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이도 아비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참다가 했다면, 아비인 나도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참다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최소한 몇 달을 참은 후에 말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귀 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하여도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고 납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함부로, 강제적으로 그것을 떼게 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은(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귀 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한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저는 오래 참음으로 제 둘째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음으로 제 둘째를 사랑하였습니다. 결과 둘째가 저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둘째와 함께 살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둘째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법을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동안교회 담임목사로 부임 할 때 큰 아이가 동안교회로 함께 가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자기는 영락교회 교인이고 영락교회가 더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아버지 따라 동안교회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무시당하는 것 같아 조금은 화도 났습니다. 그냥 ‘잔소리 말고 아버지 따라 와’라고 명령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만 하지 않고 실제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꼭 일년 동안을 제가 주일 날 직접 큰 아이를 영락교회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큰 아이에 대한 저의 예의였습니다. 그 결과 큰 아이가 저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큰 아이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그 결과 실제로 큰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다보면 마음에 안 드는 일들이 종종 생깁니다. 아내에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제게 있습니다. 많습니다. 대부분 아내는 참아줍니다. 그런데 저는 잘 참지 못합니다. 강자의 교만입니다. 아이들에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틀림없이 제게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함부로 말 못하고 참습니다. 참아 줍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조금만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강자의 교만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무례함입니다.

요즘은 많이 노력합니다. 저도 참습니다. 참아 줍니다. 소리 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함부로 기분 나쁘게 이야기 하지 않으려고 참 많이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참으로 소중한 것을 얻습니다. 그것은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평범한 말씀 같으나 사실은 비범한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들을 즐거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식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정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법입니다. 지혜입니다. 행복하게 잘 사는 법입니다.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잘 사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 즉 계명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에서 지혜를 얻어 그 지혜대로 살려고 하는 자에게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사는 복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백날 다녀야 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복을 받습니다. 믿음은 입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으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 하나를 경외감을 가지고 실제의 삶에 적용하려고 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가정이든, 가족이든, 아니면 세상에서 문제가 생겨 갈등과 고통 중에 있으신 분들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거기서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처방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치료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여러분의 가정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가족이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를 섬기는 여러분들의 가정에 사철에 봄바람이 불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잘 믿고 그 계명들을 즐거워함으로 여러분들의 모든 가정이 강건해지고 행복해 지는 복이 넘쳐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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