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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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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이비인후과 의사에게는 많은 목사님들이 찾아왔습니다.  하루는 그날도 두 분의 목사님이 연이어 병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두 분 모두가 성대를 과다하게 사용해서 성대에 무리가 와서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진찰을 하던 의사가 첫 번째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성대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설교를 하실 때 목소리를 낮추고 말씀하시고, 찬송가는 가급적 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목사님이 나간 후에 다음 목사님을 진찰하던 의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성대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설교 시간을 대폭 줄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찬송가도 짧은 것으로 부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료가 끝난 후에 옆에서 이것을 지켜본 간호사가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선생님.  제가 볼 때에는 증세가 비슷한 것 같은데, 처방은 전혀 다르시네요."
간호사의 물음에 의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목사님은 우리 교회 목사님이거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왔습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더 넘치도록 능히 축복하실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충만하게 채워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신앙은 끝없는 기대입니다.

아십니까?  제일 타락한 믿음은 기대가 없는 믿음입니다.  제일 못된 자식도 부모에게 전혀 기대가 없는 자식입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기대할 것이 없다.  나는 나 혼자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사람, 누구에게서도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거나 아니면, 지극히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허물어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나에게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십시오.  나에게 부어주실 성령의 충만함을 갑절로 기대하십시오.  이 마지막 시대에 나와 우리들에게 보여주실 하나님의 꿈과 환상을 기대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주님 앞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더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사모하는 영을 주시옵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시고 /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남아메리카에 가면 꽃 자체가 빗물을 받을 수 있는 꽃받침을 가지고 있는 아주 희귀한 식물이 있다고 합니다.  비가 내리면 바짝 메말랐던 모든 식물은 다시 싱싱하게 살아납니다.  그런데 빨리 내리는 비 때문에 다른 식물들도 싱싱하지만 곧 시들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이 꽃나무는 물받침을 가지고 있어서 오랫동안 싱싱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식물이 비를 받을 수 있는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구부러져 있거나 넘어져 있거나 자세가 잘못되어 있으면 빗물이 그 받침 속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그 식물이 빗물을 받을 수 있는 자세로만 서 있다면 언제나 싱싱합니다.  이것은 짤막한 묘사이지만 이 속에 담긴 의미는 대단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우리들도 매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비는 지금도 끝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그릇이 엎어져 있으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그릇이 작으면 조금 밖에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기적의 바람은 지금도 계속해서 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닻이 내려져 있다면 그 놀라운 구원의 바람을 맞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은혜의 그릇을 준비하고 있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닻을 높이 올려야만 성령의 기적의 바람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그릇을 크게 하십시오.  믿음의 닻을 높이 올리십시오.  갑절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일이면 늦으리.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넘치게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십시오.  기대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얻을 것도 없습니다.  입술이 터지도록, 가슴이 터지도록 사모하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십니다.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신다면,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십시오.  이것이 내가 살고, 내 가정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 교회가 살고, 이 땅이 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한 주간을 살아오면서 혹여 자신의 마음을 병들게 했던 것이 있었습니까?
내 마음에 쓴 뿌리가 되게 했던 힘들었던 사건이 있었습니까?
이 시간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의 마음을 병들게 했던 모든 것들을 보고 크게 웃어 넘겨버리십시오.
"다 잊어버리자.  그까짓 것 …"

내 마음을 휘감고 있는 우울하고 짜증나는 어둠의 그늘을 성령의 밝은 빛으로 걷어내십시오.  오늘 주님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아무쪼록 다 잊어버리고, 어둠의 장막을 다 걷어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싱싱하게 담아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단의 권세와 능력을 깨뜨리시고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복음의 능력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주님을 향해 달려가는 사명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는 역사 이래로 가장 살기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만큼 문명과 과학이 발달된 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만큼 심령이 곤고한 시대도 없었습니다.  오늘의 시대만큼이나 스트레스와 각종 질병에 시달린 시대도 없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미움과 분노와 불만과 질병과 정욕에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수많은 스트레스와 낙심으로 억눌려서 살아갑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가장 자유로운 시대인 것 같지만 실상은 참된 자유를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때문에 지금 당장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심령에 자유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어떻게 하면 곤고한 내 영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모든 포로됨과 억눌림으로부터 자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그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는 자유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자유는 모든 억눌림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입니다.  모든 스트레스와 정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입니다.  모든 거짓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심령에 성령이 임하는 순간 자유와 해방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은혜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붙들리지 않고는 이 어려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성령의 강이 폭포수처럼 흘러 넘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나라가 말에 있다면 그것은 소설입니다.  소설도 이런 소설만큼 딱딱하고 재미없는 소설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
로마서 1장 16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이다.  복음은 능력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바울 서신의 밑바닥에는 성령이 큰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령을 받은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도 바울이 서재실에 앉아서 연구를 한 결과를 가지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많은 책들을 보고, 세상의 수준 높은 학문을 탐구한 결과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의 삶의 현장에서 경험되어지고, 체험된 것을 우리에게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의 신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경험되고 체험되어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경험되지 않은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할 수 없다면 그의 신앙은 생명력이 없는 거짓된 신앙입니다.

독일의 신학은 아주 이성적이고, 지적입니다.  독일의 신학은 학문적으로도 굉장한 깊이가 있습니다.  독일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면 세계적으로 인정을 해 줍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독일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신학은 신학화 되어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 추상적이고 이론적입니다.

그래서 독일에는 신학은 있는데 교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독일의 교회는 텅 비어 있습니다.  이것은 구라파 대부분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사원으로 팔립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술집으로 팔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없는 신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생명을 살릴 수 없는 신학은 폐기 처분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누려야 합니다.  어떻게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요즘 성령론을 이야기하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성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죽음의 키스라고 합니다.  그만큼 성령론에 대해서 두려워합니다.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불안해합니다.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 이 땅에서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목사가 성령론을 이야기하면 아주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봅니다.  아주 극단적인 사람으로 취급을 합니다.  함께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불안해합니다.

물론 한 때 이 땅에서도 성령에 대해 너무 극단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령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이 위험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을 완전히 꺼버리면 곤란합니다.  불이 두렵다고 해서 불 무용론을 주장하면 결국 이 시대는 암흑천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불이 위험하지만 잘 관리하면 인간 사회에는 매우 유익합니다.

마찬가지로 몇몇 극단적이고 잘못된 사람들 때문에 성령 무용론을 주장하면  성삼위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올바른 성경적인 성령 이해를 바탕으로 복음을 누리면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임재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역사하심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제한 없는 성령님의 역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심이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있어져야 합니다.  주님을 만날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뜨거운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 체험되어져야 살아있는 신앙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하는 신앙의 연륜이 통하지 않습니다.  아십니까?  그래서 영적 성장에도 지름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기차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끊임없이 승객과 짐을 싣고 다시 일정한 장소에 내려놓고 또 새 것을 싣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것들을 내려놓고 새것을 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날 것이라.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급한 일은 내 안에 있는 거짓된 힘을 성령의 능력으로 물리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내 안에 독버섯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는 쓴 뿌리를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아십니까?  지금 이 시대는 능력자만이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하늘의 능력을 받은 사람만이 혼탁한 이 시대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늘의 능력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살아나야 합니다.  내 삶에 여호와의 성령으로 권능의 채움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꿈속에서도 떠나지 않고 끓임 없이 되새기고 또 되새겼던 단어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를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꼴 수 백 번도 더 되새김질했던 말씀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명문 가문을 만드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세워지는 축복의 명문 가문을 꿈꾸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이 받았던 축복을 여러분들도 받아서 누리기를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내 아버지 어머니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잘 믿어서 믿음의 신흥 명문 가문을 일으키십시오.  축복의 신흥 명문 가문을 여러분의 세대에 불같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꿈꾸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위해서 이 땅에 보내어진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눈길이 자주 가는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늘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미소짓게 하는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는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채움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영으로 채움을 받으십시오.

오늘 본문 말씀은 에베소 교회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몇몇 제자들을 만나서 대뜸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심각한 질문이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그가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이 험한 세상을 담대하게 승리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진정한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장 탐내야 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이 물음에 제자들은 아주 엄청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다"
사랑하는 여러분, 솔직히 오늘 우리들 자신에게 한 번 이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나는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솔직히 안타깝게도 오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교회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성령을 받지 못하고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오는 것조차도 힘이 들어서 허덕거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힘드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나와 내 가정을 살려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이 땅의 타락한 도덕풍조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주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갓난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고 또 사모하십시오.  내게 갑절의 능력이 임할 때까지 가슴이 터지도록 부르짖어 구하십시오.
"성령이여, 임하시옵소서.  성령이여, 나를 새롭게 하시옵소서.  성령의 불로 내 안에 있는 쓴뿌리가 제거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존재의 개념은 한 형태입니다.  권능입니다.  언제나 초자연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는 기사와 이적과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주여, 머리 머리마다 안수하시옵소서.  사모하는 심령마다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에 붙잡히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유명한 교회라도 교회에 붙잡히지 마십시오.  아무리 좋은 전통이 있더라도 그 교회의 전통에 붙잡히지 마십시오.  아무리 훌륭한 목사라고 하더라도 그 목사에게 붙잡히지 마십시오.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령에 붙잡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앞에 붙잡히십시오.  종교를 붙들지 말고 성령을 붙드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오늘 현대의 교회의 교인들은 종교를 붙든 사람은 많아도 성령을 붙든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바로 이 약속의 권능이 아닙니까?

지금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나와 내 가정이 살고, 이 민족이 사는 유일한 길은 우리 모두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권능에 붙잡혀 보십시오.  성령의 권능에 붙잡히면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놀라운 해방감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누릴 수 없었던 감격과 큰 기쁨이 내 속에서 강같이 흐르게 됩니다.  시간마다 사건마다 일마다 때마다 붙잡히는 이 기쁨과 감격과 자유함과 황홀감은 성령의 권능에 붙잡힘을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하늘의 특권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진정한 의미요, 진수입니다.

"말세에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들에게 부어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된 가장 강력한 영적 무기요,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늘의 능력을 받아야 더 아름답게 믿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능력을 받아야 더 확실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하늘의 도구, 평화의 도구, 믿음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사모하는 만큼만 받습니다.  갑절의 영을 사모하면 갑절로 받게 됩니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가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위해서 입술이 터지고 가슴이 터지도록 찬양하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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