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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 (롬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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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작가 볼테르(1694-1778)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글을 많이 썼고, 자신 스스로 인쇄소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부인하면서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언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미혹했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그의 논리적인 연설에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심지어 그는 파리의 큰 길에서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렇게 당신을 향해 욕지거리를 퍼붓는 나를 이 자리에서 쓰러뜨려 보십시오!”라고까지 했습니다.  그가 노인이 되어 병들어 죽음 앞에 이르게 되었을 때, 회진 온 의사에게 아주 간곡히 “만약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전 재산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의사는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볼테르 선생님! 선생님의 생명은 6개월은 고사하고 제 능력으로는 불과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볼테르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났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그가 운영하며 하나님을 부인하던 책을 펴내던 그의 인쇄기는 성경을 인쇄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가 살던 저택은 성서 공회에서 매입하여 성경 보관 창고로 사용되어 입구부터 다락까지 모두 성경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탄의 세력이 기독교를 지구상에서 없앨 수 있다고 호언장담해 왔습니까? 로마는 기독교를 없애기 무려 10명의 황제들이 나서서 큰 핍박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사자 굴에 보내고, 톱으로 켜고, 불에 태워 죽이고, 재산을 빼앗고, 노예로 삼았지만 로마는 결국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평양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옥에 가고, 지금도 북한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지만, 결국은 저 북한도 다시 복음의 꽃이 피고 열매가 반드시 맺을 것입니다. 싹이 나기 위해서 껍질이 벗어지는 것처럼,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이 떨어지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고난을 받을 수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교회는 언제나 시대를 넘어서 주님의 날까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음악과 소설과 영화와 다양한 문화의 양식을 통해 기독교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짓된 구원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소설 중의 하나가 댄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쓴 다빈치 코드라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2003년 3월 미국에서 출간된 후 전 세계적으로 44개 국어로 번역되어 약 3,600만부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린 메가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져 지난 5월 18일에는 59회 칸 영화제를 기념하여 세계적으로 동시에 개봉되었지만 세계적으로는 큰 비평과 함께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부활을 부인하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아닌 한 인간으로 전락시키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볼테르와 같은 무신론적인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반기독교적인 운동의 한 부분이며, 하나님을 반대하는 마귀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줄거리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장이었던 자크 소니에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그의 몸에는 암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파리에는 하버드대학에서 비전적인 상징들을 연구하고 있는 로버트 랭던 교수가 강연을 위해 왔는데, 프랑스 경찰은 그에게 이 비전적인 암호를 해독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곳에 간 그는 프랑스 경찰인 소피 느뵈라는 암호해독 전문가인 젊은 여자 경찰을 만나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은 살인 사건에 담겨진 암호를 추적하면서 결국 이 사건의 핵심에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기 위해 노력했던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되었던 성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때 그들 앞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티빙이라는 사람으로 평생 동안 성배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 두 사람에게 신약성경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했던 영지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영지주의의 복음서를 제시하면서 예수님과 마리아는 서로가 부부였다고 주장을 하게 됩니다. 결국, 다빈치는 자신이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통해 이 사실을 말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주장에 따르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 예수님은 딸을 낳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자 마리아는 그녀의 딸 사라와 함께 갈리아 지방으로 가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전신인 프랑크 왕국의 최초의 왕국인 메로빙 왕조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프랑크 왕조는 멸망했지만 아직도 “시온 수도회”라는 비밀 조직을 통해 그들의 후손들이 활동하고 있으면, 이 수도회의 회원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와 같은 사람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 기대어 있는 오른 쪽은 사람은 사도 요한이 아니라 마리아로서 그녀가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피를 이어 받은 진짜 성배이기 때문에 최후의 만찬의 그림에서는 성배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책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성배는 술잔이 아니라 자신의 자궁 속에 예수님의 혈통의 피를 간직했던 막달라 마리아의 사체가 바로 성배라는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댄 브라운은 어느 곳에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 책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정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교회의 수장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막달라 마리아가 교회를 이끌기를 소망하였으며,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를 제거하기 위해 그녀를 창녀라고 선언하였고,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지도자의 역할을 빼앗았으며, 교회는 그 때부터 교회에서 여자들의 역할을 축소하고, 여자를 성직자로 세우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이 진실을  숨기기 위해 로마 가톨릭은 예수님의 후손에 대한 비밀을 숨겨 왔고, 오랜 시간 동안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시온 수도회를 탄압하는 오푸스 데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후원하면서 영구히 이 비밀을 감추려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심한 핍박은 예수님의 후손으로 구성된 “시온 수도회”는 이 비밀을 감추기 위해 암호와 상징으로 예수님과 마리와의 관계를 드러냈고, 가장 성공한 그림이 바로 “최후의 만찬”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빈치 코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댄 브라운이 이 책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직접적으로 교회를 공격하고, 유일한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성을 부인하며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가 남성 중심의 사회가 된 것이 바로 베드로가 역사적으로 정적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제거한 것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며, 교회는 다시 여성 신이 필요하고 그 여성을 예수처럼 받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댄 브라운이 일생동안 성배를 연구하였다는 티빙 경이라는 소설의 세 번째 주인공을 통해 말하고 있는 영지주의에서부터 출발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여성과의 육체적 결합은 남성이 영적으로 완전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노시스’즉 ‘신에 대한 완전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구약에서 나오는 가나안 땅의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이방인들의 문화에서 온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철저하게 미워하셨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모두 제거하라고까지 하셨던 이방의 마귀적인 문화인 것입니다.

  특히, 이 책은 성경에서 경고하고 오컬트 문화를 따르고 있습니다. 오컬트 문화란 과학이나 이성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마술, 점술, 점성술과 같은 이방 종교의 문화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신비적인 것을 마치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이 오컬트 문화가 진실된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다양한 영지주의의 복음서들이 있음에도 이 모든 것을 왜곡시키고, 거짓으로 바꾸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책들만을 골라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정경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신성을 거부한 영지주의자들의 후손은 무신론을 걸쳐, 범신론으로 범신론에서 20세기에는 뉴에지 운동으로 확산되었고,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확산되어 기독교의 정신인 구원의 유일성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방식에 따라서 구원을 받으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2:15-17절을 통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향해 서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오늘 우리 시대는 변화를 거부하고, 변신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TV와 잡지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신문과 같은 온갖 매스컴에서 다루는 것을 보면 우리들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변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몇 Kg 이었는데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인생이 달라졌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로또에 당첨되어서 갑자기 인생이 역전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집을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꾸며 예쁘게 되었다고 연일 나오고 있습니다. 매스컴은 우리들에게 삶과 인생의 변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을 인생들이 변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부모를 살해하고, 사람들을 위협하며, 거짓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죄악을 쌓아가며, 스스로 바벨탑을 쌓는 고통의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화장술과 의료기술을 이용해서 새롭게 변신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느 자료에 의하면 20대 여성 10명 중 1명은 성형수술을 한  경험이 있고, 35%는 성형 수술을 하기 원하며, 심지어 우리나라 여중생의 40.1%와 여고생의 71.6%가 성형수술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은 놀랍게도 색조 화장품 사용 개수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청소년들과 젊은 여성들의 가치관이 내면의 가치보다 외모를 가꾸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외모 지상주의의 삶에서  우리는 변화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남자에서 여자로 성형하여 몸을 바꾼 트레스젠더 하리수씨가 상하이 둥팡(東方)TV의 '빅스타(大明星)'라는 토크쇼 녹화 중 사회자 쉬루이(徐睿)에게 청혼을 해 사회자가 당황하고, 촬영진도 현장에서 놀라 녹화가 잠시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회자에게 사진 한번 같이 찍자고 바짝 접근한 뒤, 신체적 접촉을 감행하고, 곧장 나와 결혼해달라며 고백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녹화가 끝나고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도 어눌한 중국어를 사용하면서 재차 청혼을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 그는 한국에 자신과 결혼할 남자 친구가 있다고 한국의 모 방송에서 대담하게 밝힌 적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것이 급속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외적인 변신은 영원한 것이 되지 못하고, 잠시 지나가는 시대의 흐름이기에 참된 인생의 거룩한 영향력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변화를 받아야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얍복 강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야곱이 변화 되자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야곱으로 인해 동일한 은혜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모세 한 사람이 미디안 광야에서 가시덤불에서 하나님을 만나 변화를 받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지 않았습니까? 무디 한 사람이 변화 되자 미국이 달라지고 세계가 달라졌습니다. 리빙스턴이 변화되자 아프리카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칼빌과 웨슬레이와 슈바이처와 같이 성령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변화는 밖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내 안의 심령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성경에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기도할 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 마음 속에 성령의 불이 임하고, 성령의 바람이 불고, 전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를 받자 아시아가 변화되고, 유럽이 변화되고, 로마가 변화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가슴에도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합니다.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변화되면, 가정이 변화되고, 나라가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되고, 세계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투루나이젼이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젊은 시절에 "하나님, 저로 하여금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에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는 마흔의 나이가 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마흔이 넘으면서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바꿔주십시오." 그러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의 기도는 즉시로 응답되었습니다. 자신이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세상이 정말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내가 진작부터 세계를 바꾸려고 하기 전에 나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했더라면 나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제 결심해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성령에 붙들린 인생이 되어 살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나도 유사품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물건들이 중국산인지 한국산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도 분별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입이 맛을 분별하고, 귀가 소리를 분별하는 것처럼 우리 영혼은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런 영적인 분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세상의 쾌락에 빠지고, 이단에 빠지고, 헛된 육체의 정욕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지정으로 양과 염소를 분별하고,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하며,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이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용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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