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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도리를 배우라! (요 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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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만찬석 자리에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으로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하나의 규례로 정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도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말을 씻기는 행위보다는 정신과 도리를 설명하셨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전쟁터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병력이 부족하고 또 졸지에 일어난 전쟁이기 때문에 각 지방의 젊은 청년들은 영장을 받은 후 큰 도시로 집결해서 기차를 타고 훈련소로 갔습니다.

당시 국민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장정들을 태운 기차는 주로 밤늦게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워싱톤에도 밤마다 유니온 기차 정거장에는 수백 명의 장정들이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나와서 그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시민들 가운데 밤마다, 밤늦게까지 다리를 절면서 뜨거운 코코아잔을 쟁반에 들고 젊은 장정들에게 봉사를 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임시로 마련된 주방에서 친히 코코아를 끓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장정 하나가 그 노인을 자세히 보니 보통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대통령이었습니다. “각하.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니십니까.”

루즈벨트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자유스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불편을 무릅쓰고 밤마다 기차 정거장에 나와 기차로 떠나는 청년들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다니며 봉사했습니다.

대통령이 친히 기차 정거장에 나와서 따라주는 코코아를 마신 청년들의 사기는 대단했습니다. 이처럼 섬기는 일에는 위아래가 없는 법입니다.

성경 말씀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했습니다. 종이 되는 것이 으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1. 사랑의 도리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고난의 임박함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있을 제자들의 심경 변화도 예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이토록 사랑한다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어떠한 고난과 환란 앞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굳센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1 절). 사실 예수님은 승천 이후에도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위한 중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강력한 기도 후원자로서 세상 끝날 까지 그의 사랑하는 자기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께 끊임없이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끝까지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은 성도를 어떠한 고난에서도 담대하게 처신케 하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 스스로가 씻어야 할 발들을 대신 씻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애정의 표시입니다.

자기 사람들이 당해야 할 것을 대신 당해 주셨습니다. 대신 채찍 맞으셨고, 대신 가시관을 쓰셨고,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대신 알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영국의 “미들랜드” 지방에는 어떤 사원 앞에 참으로 이상한 두개의 무덤이 있습니다. 또 그 무덤을 더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무덤 앞에 서 있는 오른손이 없는 여자의 동상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십자군이 예루살렘 성지를 짓밟은 회교도의 손으로부터 그 성지를 탈환하기 위하여 싸우던 때로 돌아갑니다. 그 전쟁 중에 십자군 소속의 무사 하나가 회교의 정복자인 “살라딘”에게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포로가 된 무사의 약혼자는 자신의 애인을 석방해 줄 것을 집요하게 애걸하여 보았으나 결국은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악한 살라딘 왕은 그들의 애정이 얼마나 강한가. 테스트 해 보기 위하여 그녀의 오른손을 잘라 보내면 그 무사의 사형을 사면해 주고 석방해 돌려보내겠다는 사연을 적어서 사신을 시켜서 그녀에게 보냈습니다.

이 편지을 읽는 순간에 그녀는 즉석에서 자기의 오른손을 칼로 잘라서 종이에 싸서 정복자인 살라딘 왕에게 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숭고한 사랑 앞에서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2. 겸손의 도리를 배워야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행위에서 우리는 겸손의 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것은 “겸손”으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사복음 중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섬김을 받으실 만왕의 왕”되심을,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고난당하시는 인성”을, 마가복음은 “섬기는 종”이신 그리스도를 부각시킨 책이라 한다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알리고자 기록한 책입니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심을 바울은 간파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고 바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빌 2:6, 7).

즉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포기”와 “자기 비하”로 스스로 “섬기는 종”의 사역을 일평생 하셨던 것입니다. 큰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것을 실천적인 행동으로 보여 주신 생애였습니다.

“에든버러 대학”의 “제임스 심프슨” 경은 진통제를 발견해서 고통 없이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그것은 의학계의 노벨상감인 대 발견이었습니다.

그의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노교수 심프슨 경에게 “선생님의 생애에 가장 뜻 깊은 소중한 발견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무엇을 들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한참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천국 보화는 낮은 곳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발명도 독창은 없습니다. 전 인류의 공동 발명인 것입니다. 인류가 발견하고 발명하고 경험한 모든 것의 위에 그것을 토대로 해서 조그마한 발견 하나를 하는 것이 발명입니다.

☹노예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왕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왕을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노예도 한사람도 없습니다. 강도나 살인자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성자도 없습니다. 성자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살인자나 강도도 없습니다. 거지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부자도 없고, 부자를 조상으로 가지지 않은 거지도 없습니다.☹

세상은 낮은 자가 큰 자를 섬기지만 성경은 큰 자가 오히려 작은 자를 섬기라고 명령합니다. 이러한 겸손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나 이 교리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면 오히려 세상을 버릇없게 만들수도 있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제자로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섬기는 스승으로 성장 발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교회 내에서도 맡은 직분이 크면 클수록 섬기는 종의 자세를 적극적으로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직분이 권세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닌, 도리어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에 봉사하기 위해 주어진 직분임을 알고 겸손히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그의 직분은 더욱 명예롭고 존귀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직분이 될 것입니다.☹

☹곡식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를 많이 숙일수록 충실하게 익은 곡식입니다. 갈수록 곡식이 고개를 드는 것은 깜부기 아니면 이화명충이나, 도열병에 감염된 쭉정이에 불과합니다.☹

3. 섬김의  도리를 배워야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겨 주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들도 이렇게 행동하라고 본을 보여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라는 모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조금 전에 제자들 사이에는 서로 누가 큰 자인가 하는 다툼이 있었습니다(눅 22:24). 제자들은 세상적인 안목으로 섬김을 받기만을 원했지, 섬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고 말씀하시면서 그 말씀을 실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무지하고 세상적인 판단 기준을 바꾸시고 서로 “섬기라”는 교훈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큰 자는 다 “섬기는 자”임을 실증시킨 것입니다.☹

4. 배신자에 대하 도리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배신자 “가룟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사탄의 도구로서 자신을 팔 것임을 미리 아셨지만 그래도 그를 제외시키지 않으시고 그에게까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가룟 유다까지 섬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세계적인 소설 “빙점”에서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원수이기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이 성경의 요구입니다(롬 12:20, 21).

사랑 할 만한 것을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도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사랑 할 만한 조건이 없어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주는 것을 보람과 기쁨으로 알고 아낌없이 최선을 다해 주는 것, 이것이 진실한 사랑인 것입니다.

끝맺는 말

햇병아리 첼리스트 “피아티고르스키”가 첫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바로 그날 그는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 정상의 첼리스트인 “카잘스”가 청중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더 잘하려고 하면 더 틀리기 쉬운 법이 아니겠습니까? 

그날의 연주는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연주회가 끝나자 “카잘스”가 열렬한 박수를 보내주었다는 것입니다.

  <피아티고르스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는 카잘스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입어 마침내 세계 정상의 첼리스트가 되었습니다. 뒷날 서로 흉과허물 없는 사이가 된 “피아티고르스키”가 “카잘스”에게 그 옛날 자기에게 보내준 까닭모를 박수의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카잘스는 “그때 당신은 이렇게 첼로를 잡고 이렇게 활을 놀려 바로 이 음을 낸 적이 있소. 나는 당신의 연주를 통하여 그 음을 내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미친 듯이 박수를 쳤던 거요. 나는 누구를 막론하고 나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내 스승으로 생각한다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당신을 내 스승같이 생각하고 도왔던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성장하는 사람, 진정 훌륭한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입니다. 코흘리개 꼬마라도 좋고 까마득한 후배라도 좋습니다. 자기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 바로 그것을 명심하여 배우며 또 세상만물을 통하여 교훈을 얻으면서 자기가 배운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들입니다.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훌륭한 인격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잘스>

☹요즘 우리 주변에는 모든 사람들을 비웃으면서 스스로 배우기를 거부하고 언제나 남을 지도하며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고전 14:31)라고 바울 사도는 말했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것도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스승이 제자를 섬기는 일은 그리스도인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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