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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가정은 우연히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신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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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

옛날 어느 화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그림의 소재를 찾기 위하여 아침 일찍이 집을 떠났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목사님!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이 되십니까?"라고 묻자 목사님 대답하기를 "그것은 바로 신앙 생활하는 모습이 제일 아름답지요." 라고 하더랍니다. “예배당에 가보세요. 성도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기쁨과 희망에 젖어 예배드리는 것을 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래서 그 화가는 다음날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리는 교인들의 모습의 그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러나 화가 자신은 여기에서 만족함을 얻지를 못했습니다.

다음엔 금방 결혼을 한 아리따운 여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물어 보았습니다. "보아하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댁 같은데 새댁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이 됩니까?"라고 묻자 그 여자가 말하기를 "그거야 사랑이 제일 아름답지 않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아 그렇겠군요." 이윽고 화가는 그 아름다운 얼굴과 만족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 속에 나타난 사랑의 자태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자신은 만족을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한 군인이 피곤한 기색을 하고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화가는 그 군인을 붙잡고 물어보았습니다. "군인 아저씨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나요? "그거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제일 좋지요."라는 대답을 듣고 바로 그거로구나 생각한 화가는 다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 시골의 광경을 그렸는데 들에 무르익은 곡식으로 누렇게 덮여있고, 그 옆에는 한 농부가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추수하는 장면을 그렸는데 야! 이거로구나 이 화가는 좋아 하면서 만족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상당히 변덕쟁이였는지 몇 일이 못가서 그 만족함은 사라져 버렸답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생각한 나머지 새로운 그림의 소재를 찾아야지 하고 집을 나섰다가 그날은 아무런 소재를 얻지 못하고, 실망만 가득한 채 피곤한 모습을 가지고 그냥 짐으로 돌아 왔답니다. 그런데 그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그의 어린 아이들이 "아빠 이제 오세요?" 하면서 두 팔로 아버지를 감싸 안고 반갑게 맞으면서 마냥 좋아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가 따뜻한 웃음으로 "여보! 이제 오세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하면서 반겨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온 집안 식구가 식탁에 삥 둘러앉아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그의 부인이 "자! 우리 아빠의 무사히 돌아오심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합시다."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이때 이 화가는 그토록 애써서 찾던 행복이 가득하게 넘치는 모습을 자신의 가정(家庭)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의 얼굴에 빛나는 광채와 사랑 그리고 신앙과 평화를 보고 그렇게 애써서 찾던 행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되 뇌이기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 그것은 바로 이렇게 따뜻한 가정 이로구나야!" 라고 했답니다. 옆 사람과 서로 물어 봅시다. "가장 좋은 것이 가정입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은 부부주일 혹은 가정 주일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러 복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정을 우리 인류에게 선물로 창설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행복의 터전은 바로 '가정(家庭)'인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의 원천은 가정이지만 행복은 우연히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노력해야 하지만 우선 가정이 왜 소중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1. 가정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기관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본문 1절에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치도록 하나님께서 가정을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의 창조적 산물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실 때 모든 피조물은 말씀으로 창조했으나, 특별히 사람은 하나님이 손수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사람은 흙으로 지어졌기에 그 이름을 '아담(Adam)'고 불렀습니다. 아담이란 그 말의 본 뜻은 [붉은 것]이란 뜻과 동시에 [흙](땅)이란 뜻이 있습니다. 그 리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특별 순서를 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그 자리는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서 취한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받은 그 생기는 곧 '인간의 영혼이다.'면 혹 어떤 사람은 묻기를 "하와는 하나님의 생기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냐?"할 것이다. 물론 성경의 기록대로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지어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여자에게 영혼이 빠진 것은 아닙니다. 하와의 영혼은 아담의 영혼에 포함이 됩니다. 고전 11:8에 "여자는 남자에게서 났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친히 그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남자(Adam)와 여자(Eve)를 짝 지워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연합의 신비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창 2:21-25).

그러므로 가족이 안주할 수 있고, 안식을 제공하는 보금자리인 가정의 탄생은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에 의해 탄생된 신적 기관입니다. '부부'가 된 것은 우연히(by chance) 눈이 맞아서 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한 몸에서 두 사람을 만들어 짝지어 주셨습니다. 한 마디로 결혼은 '자기 갈빗대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일생 동안 서로 사랑하면서 존경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부로 삼아 주셨다."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그 가정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6절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 하는 가정은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거역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부부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가정은 모든 창조된 영광들 중에도 최고의 절정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행복의 공동체가 될 수 있고, 지상의 천국이 될 수 있으며, 낙원 곧 파라다이스(paradise)도 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혹자(或者)가 말 한데로 홈스위트 홈(home sweet-home)이라고 합니다.

행복은 누구나 소망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며, 기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행복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누가 가져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행복한 가정보다 불행한 가정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 행복은 물질이 많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많아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아, 행복해 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여리고에는 부자 삭개오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의 직업을 가지고 많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삭개오를 겉으로는 멸시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부러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삭개오의 집에 몰래 와서 돈을 꾸어가기도 하였습니다. 돈의 위력이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이와 같이 많은 돈을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살면서도 항상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많은 돈이 모두 남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 평의 땅과 관 한 개면 족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부자라고 하여서 마음이 평안한 것도 아닙니다.

또 행복이란 명예가 가져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제에서 1945년에 해방을 한 후에 이승만 박사는 갑자기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분은 급기야 정부수립을 하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로가 어떠하였습니까? 4.19혁명 후에 하와이로 망명을 하여 그곳에서 죽어 겨우 그의 시신만 한국 땅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또 역대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저는 행복해지는 9가지 원리를 소개할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들이 이 원리를 적극적으로 실천할 때 더욱 복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1) 행복한 웃음(Happy smile)이 있어야 합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하시고, 상대방에게 웃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항상 삶과 만남 속에서 웃는 얼굴을 간직하십시오. 미소는 모두에게 기쁨과 행복을 고무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2) 행복한 대화(Happy talk)가 필요합니다.

칭찬과 격려하는 대화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격려는 모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매일 두 번 이상 칭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옆 사람보고 물어봅시다. "칭찬하고 사십니까?" 나를 만나는 분들에게 격려하고 장점을 인정해 드리고,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덕담은 좋은 관계로 만드는 견고한 밧줄이 됩니다. 모든 분들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하고, 가까이 하고 싶어 할 겁니다.

3) 명랑한 언어(Happy call) 를 구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언어는 나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진정한 나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달라지 원한다면 명랑한 언어를 습관화하시기 바랍니다. 왜? 짜증을 내시고, 신경질을 부리십니까? 그렇다고 상대방이 바뀌어 지던가요? 내가 먼저 나 자신을 조절하고, 명랑한 언어로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확신을 가지고 약속드립니다. 반드시 심은 것을 거두게 될 줄 믿습니다.

4)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귀하게 여겨서 행복하게 일해야(Happy work)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업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실한 자세로 사명감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직업과 임무를 맡겨주신 것임을 자각하시고,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과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섬기는 직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편지로 보내셨고, 선교사로 보내셨습니다. 성실한 직무에 대한 태도는 당신을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하며, 존귀한 자로 만들며, 모든 사람이 신뢰하며, 믿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요.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5) 매 순간마다 즐거운 노래(Happy song)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조용히 흥겹게 마음으로 노래하십시오. 콧노래도 괜찮고, 소리를 내어 부르셔도 됩니다. 마음에서 표현되는 노래는 감사와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이왕이면 찬송가를 부르시고, 긍정적인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유행을 하는 인기 있는 노래는 가수가 약 5만 번 이상 부르는데 조사해 보니 모두 그 가사처럼 운명이 결정되더랍니다. 이왕이면 찬송가를 부르면 은혜와 믿음이 생기고, 더욱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6) 아이디어를 기록해 보시기 바랍니다(Happy note).

떠오르는 생각들을 항상 기록하십시오. 그 생각들이 정리되면 훌륭한 이상과 경험과 아이디어 뱅크가 됩니다. 따라서 메모하는 습관은 돌아보면 감격과 추억이 되고, 당신을 더욱 감성과 지성과 지혜가 더 풍요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7) 감사하는 마음(Happy mind)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불평 대신에 감사하는 조건을 찾아내시고,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말하십시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임을 깨닫고, 가정의 소중함과 가족이 있음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8) 당신이 구원의 확신(Happy salvation)을 가지십시오.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분명하다면 가장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9)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정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삽시다(Happy obedience).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것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라도 그대로 순종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하나님께서 행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외면하지는 않습니까? 그 분 앞에 “예”라고 대답하기를 망설여지지는 않습니까? 선택의 순간에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사막에 길을 만드시고, 역전시켜 주실 것입니다. 순종하는 신앙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은총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고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 하셨습니다. 찬송가 495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아 멘>

주님의 뜻을 따르면 그 어디나 천국입니다. 할렐루야!

무엇이 행복해 지는 방법인가 제가 소개한 9가지 방법을 삶에 적용하여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더욱 멋있는 인생과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영위한다면 무엇이 두렵겠으며,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행복하지기 위해서 성도 여러분들의 삶에 적용해 보시기를 소원합니다.

시편 128편 1절 말씀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부부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헌신하여 행복하고, 귀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가정이 소중합니까?


2. 가정은 '경건한 자손을 이어가는 산실(産室)'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가문은 수 천대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본문 2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현제 가족들과 후손을 향한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역시 3절 후반 절에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의 수효가 심히 번성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어릴 때부터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특징과 주제는 “들으라.” 라는 것입니다. '쉐마'란 '들으라.'는 히브리 언어로 "듣고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라.”(5:1), 이것이 신명기에 반복해서 나오는 주제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성경의 공통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복을 받는 길이고(3,19,24), 우리의 날이 장구케 되는 길이며(2), 우리의 번성함과(3), 의로움이 되는 길입니다(15).

들을 수 있는 귀는 복이 있는 귀입니다. '성경말씀이나 설교는 본질적으로 듣고 받아서 먹는 것이지 연구나 판단의 대상은 아닙니다'. 듣고 받아먹을 수 있는 비결은 십자가의 보혈과 성령을 의지하며 회개하며,??겸손과 사모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한 귀가 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본문 5절의 말씀처럼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레19:18).' 이것이 십계명 두 돌 판의 내용이며(신5:6-21),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마22:40).

그래서 말씀을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되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가르치고’ ‘항상 강론하고’ 몸과 집과 일터 곳곳에 ‘써서 붙여 놓고’ <바라보고, 묵상하고,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우연히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자녀들에게 바로 가르쳐 지키게 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바로 행복한 가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가정이 될 때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 집니다. 할렐루야!

말라기 2장 10절에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고 말씀합니다. 또한 말라기 2장 15절에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설정하신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구원받은 경건한 자손을 창대케 하는 행복의 산실이 되어야 합니다. '경건한 자손'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자손' 곧 '신앙인'의 자손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으로 구성된 가정'을 말합니다.

경건한 자손은 바로 아담과 아벨, 셋과 노아, 모세와 다윗, 사가랴와 세례요한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혈통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나아가 '경건한 자손'은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정은 구원의 역사를 창조하고, 계승하는 복된 기관인 것입니다.

전 교육부 장관 <이어령 교수>는 말하기를 "삭막한 세상에서 '가족적'이란 말처럼 정다운 것이 없다. 타인들 끼리지만 형이요, 아우요, 어머니요, 아버지요, 아들이고, 딸이라면 그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잘못이 있어도, 서운한 일이 있어도 한 울타리 안에서 한 핏줄기를 나눈 가족끼리는 모든 것이 애정의 이름으로 용서된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즐기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슬픔을 나누는 것이 가족의 모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한 핏줄, 한 혈족이란 뜨거운 애정이 가족을 동여매는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혈통에서 더 뛰어넘은 아가페의 힘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하신 보혈이 영적 가족공동체를 이루는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건한 자손이 있는 가정에는 하나님 경외가 있고, 부모 공경이 있고, 부부사랑이 있고, 형제우애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용서가 있고, 감사와 찬송과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전파의 능력이 생활속 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가정이 되어 행복의 산실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대 영국 제국의 영화를 누렸던 '빅토리아 여왕'이 어느 때인가 한적하고 이름 없는 한 시골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여왕은 한 가난한 농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은 그 가족 중에 한 사람에게 '무슨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 가족 중에 한 사람은 '우리 가정에는 아무런 소원이 없고, 그저 만족하고 행복할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왕은 다시 강청하면서, '그래도 왕을 향한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왕을 향한 소원은 왕께서 주 예수를 믿고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둘러선 모든 가족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소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왕은 '나는 이미 당신들처럼 주님의 사랑을 받고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한 사람은 '그러면 됐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뵙겠습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누구 앞에서나 복음전파를 주저하지 않는 경건의 능력이 우리의 가정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가르치는 가정'이 되어 경건한 자손을 이어나가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가정이 왜 소중합니까?


3. 가정은 '경건한 삶의 교육적 도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령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신 6:7)고 하신 말씀을 실천할 때 가능합니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권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열심히, 꾸준히, 계속해서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경건한 삶을 위하여 가정에서 부터 ‘쉬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왜 가정이 경건한 삶의 교육을 담당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자녀들을 타락하게 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하여 영원한 지옥 불속의 고통 받는 곳으로 끌고 가려는 사탄의 역사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녀들을 그리스도를 닮은 장성한 분량의 성숙한 성장을 위해 영적 양식을 계속해서 공급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에 앉았을 때에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신 6:7). 그것은 부모와 자녀가 가질 수 있는 절호의 대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길에 행할 때'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신 6:7). 여행 중에나, 다른 용무로 가족끼리 움직일 때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네 손목에 메고, 기호를 삼고, 두 눈썹 사이(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고, 가르치기를 계속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바로 '신앙의 가정교육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경건한 자손은 경건한 부모의 가정교육의 열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ell)>은 자녀를 영적으로 갱신되는 가능성의 존재로 보면서 '자녀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첫째,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신6:4-5).

신명기에 기록된 유대인의 자녀교육의 장(場)인 쉐마의 첫 조건은 부모들이 신앙적 모범을 보일 것을 강조한 내용입니다.

둘째, 말씀을 통하여 자녀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야 한다(신6:6-7).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므로 자녀의 양육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가정의 분위기를 신앙적으로 이끌어야 한다.(신 6:8-9).

분위기는 말 보다 더 큰 영향을 줌으로 부모의 애정과 보호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깨닫게 하며, 가족 간의 우의와 의미는 세계인류는 한 형제라는 정신과 동족애를 갖도록 해 준다." 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기독교 가정은 항상 주님의 은혜 안에서 나타난 믿음의 생동력을 지녀야 하고, 발전 시켜야 합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스라엘의 역사가 중단되는 날, 유대인 랍비였던, '벤자이카'는 ‘웨스 파샨’ 장군을 만나서, 교육의 도시 '아브레'만은 남겨달라고 애원한 일이 있었습니다. '벤자이카'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어도, 그 성전이 불타버려도, 영토와 주권이 송두리 채 박탈당한다 할지라도 교육이 계속되는 민족은 언젠가 역사에서 재기할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말은 이천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적중되었음을 볼 때에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이민을 간 우리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해서 유대인들이 하던 과일가게 채소가게 세탁소등을 점령했어도 유대인들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미국에 이민 간 교포들의 65%가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에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자녀교육에는 실패했다고 고백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자녀교육에 성공한 요소는 선민공동체, 가족공동체, 예배공동체라고 여긴 것입니다. 즉 그것은 학교나 어떤 교육기관이나 교육제도를 통한 교육이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교육이 되고, 특히 가정은 교육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의 교육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철저한 종교교육으로 시작됩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름을 지으며 40일이 되면 어린양을 잡아 번제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때부터 유대인의 최고 신앙고백인 신명기 6:4-9, 11:13-21, 민수기 15:37-41을 암기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성년으로 인정 받는데 반드시 외워야 할 암송구절입니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신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교독해 봅시다.

"(신11:13)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신11: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11:15)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신11: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 절하므로(신11: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신11: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신11:19)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신11:20)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신11:21)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서 너희의 날과 너희 자녀의 날이 많아서 하늘이 땅을 덮는 날의 장구함 같으리라."

"(민15: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15: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민15:39)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민15:40)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민15:41)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세계의 영광이라고 자랑하던 로마인들은 '유대 아카프다.'라는 "유대인을 잡았다."는 뜻이 새겨져 있는 '승전기념의 동전'을 만들어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던 그 때, 유대의 랍비들은 망국의 비참을 씹으면서 저들의 자손에게 율법을 교육 하였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교육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이나, 유대인은 지금도 건재하고 세계지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람아메드(The learuing pepole)' 곧 "배우는 백성"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자녀들에게 바른 신앙교육, 기독교교육을 시키고 있습니까? 옆 사람에게 서로 물어보고 대답해 봅시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가정은 행복의 원천’이요.’ [하나님의 축복의 기반‘입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개인이 흔들리고 축복의 터가 흔들립니다. 사람이 가정에서 평안과 안정을 찾지 못하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행복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들은 행복을 만드는 처소가 되어야 하는데 우연히 행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먼저 가정이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축복의 기관임을 믿어야 하고, 철저하게 주안에서 가르치고, 배우며, 한 인간으로 기독교적 인생관,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신앙의 정으로 만들어 나가며, 가정에서 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통잘 가르치는 교육기관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미래를 여는 행복을 만드는 교육기관으로 역할을 감당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동산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고 하신 말씀을 보모가 먼저 순종하여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 지키게 하도록 양육(養育 - 돌보아 길러 자라게 함)함으로 행복을 만드는 가정들과 부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황광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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