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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도 삶의 한 과정이다! (롬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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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크게 뜨고 보면 우리 주변에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인생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전혀 도움만 받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남을 돕기 시작합니다.  다 망한 줄로 알았는데 오히려 당당하게 일어나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인생이 다 끝났다고 세상 사람들이 혀를 차는 바로 그 순간에 다시금 새로운 축복의 인생이 그의 앞에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들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가리켜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분명히 말씀하건데 우리는 처음보다 나중이 훨씬 더 좋아야 합니다.  모든 고통과 절망의 그늘을 떨쳐버리고 당당하게 일어나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안에서의 축복된 삶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헤아리고 그 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람들을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불어닥친 삶의 시련이나 고통 때문에 좌절이나 회의와 실망으로 암울한 인생의 늪에 빠집니다.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남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가 빠져 나와야 됩니다.  남을 일으켜 세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야만 합니다.  이때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삶의 모든 역경과 암울한 인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지금 내 가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주를 향한 바른 믿음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바른 믿음으로 주님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아십니까?  믿음은 우리의 삶의 모든 곤고함과 역경을 풀고 이길 수 있게 하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삶의 방향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가만히 보면 믿음이 나약해지면 방향성도 희미해집니다.  달려갈 푯대가 흐려집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사명도 희미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뜨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좋습니다.  그 믿음이 살아있기만 하면 분명히 하늘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음을 붙잡고 일어나 한 방향으로 달려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같은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한 마음으로 한 비전을 향해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불신을 털어 버리고 오직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갑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홍해와 같은 환경이 내 앞을 가로막아도 나는 내 믿음을 붙들고 주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분명한 믿음을 주옵소서.
역사하는 살아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믿음 없는 나에게 불같은 뜨거운 믿음을 주옵소서.
성령이여, 갑절의 영감을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든든하고, 희망에 차있고, 사랑의 능력으로 충만했던 1세기 초대교회 성령의 무리들을 바라보십시오.  결국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의식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능령을 받아서 체질 개선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변화의 선두에 서야 합니다.

보십시오.  어느 집단에서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담당한 사람을 보면 그 무리들 가운데 그 사람의 믿음이 두드러졌습니다.  헌신이 두드러졌습니다.  기도가 두드러졌습니다.  남다른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나 환상의 결론은 언제나 변화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나부터 먼저 변해야 합니다.  내가 달라져야 합니다.  삶에 변화가 없는 신앙생활은 거짓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종교놀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교놀이를 그만 두십시오.  종교놀이로는 나와 내 가정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종교놀이로는 하늘의 복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종교놀이에서 벗어나 바른 신앙생활로 나아가십시오.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뭔가 달라져야만 합니다.  누가요?  내가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삶의 기적의 열매는 변화의 작품입니다.  우리가 성령 받고,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사고로 의식개혁과 자기 정립을 하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역사의 주역이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고 미래를 창조하십시오.  교회는 변화의 진원지입니다.  교회는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는 곳입니다.  오늘 이곳 주님의 교회에 나오신 여러분, 교회와 함께 삶의 거룩한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가치관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전의 변화되지 않는 삶의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변해야 합니다.  변하지 않으면 역사의 흐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내가 변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자기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두려워서 말입니다.  때문에 자기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자기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칭 완벽주의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치는 한결같은 말이 있습니다.
"나는 완벽주의자다.  나는 고칠 것이 전혀 없는 완전한 사람이다"
결국 이런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메마른 사막과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스스로 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변하지 않는 자기 자신입니다.  바위보다 더 굳어진 자기 마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에 변화가 없고, 발전을 모르면 그는 정신적 장애자입니다.  영적 불구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자기 개혁을 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령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끓임 없이 자기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새 사람으로 거듭난 인생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새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가정이 진정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길이 무엇일까?
우리 민족이 살고, 인류가 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여기에 그 길이 있습니다.  나와 내 가정이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환경을 따라가지 말고 주님만 따라가십시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생명 되신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더 이상의 종교생활에서 벗어나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나온 인생을 한 번 가만히 되돌아보십시오.
환경을 따라갔더니 만족이 있었습니까?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에게 관심을 사려고 별의 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만족함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더 공허했습니다.  오히려 더 허전했습니다.  끊임없이 내 마음을 채우지 못하는 그 무엇 때문에 절망하고 낙심해야만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맞추어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초라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인생의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인생이 존재하는 삶의 이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시작이며, 또 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십시오.  날마다 때마다 주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주님만 따라가십시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참 만족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이 하늘의 소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그가 아무리 잘 배웠든, 그가 아무리 교양이 있든, 그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살든, 그가 아무리 나이가 들었던, 탕자 같은 기질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자기 내면의 깊은 곳에는 안티 기질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몫만을 챙기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나 규범이나 원칙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간섭받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제멋대로 살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방황이나 자기 파괴가 인생의 멋인 것처럼 여겨지는 착각의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 내면의 욕망을 따라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없이 무너지고 싶은 욕망에 따라서 한없이 무너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나방처럼 이리저리 내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자신 있던 탕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극한의 슬픔과 굶주림과 고독과 절망이 닥쳐왔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묶임과 문제 앞에서 밤새워 슬퍼하며 울어도 무슨 방법이 없습니다.

"내 꼴이 어쩌다 이 꼴이 되었는가?  내가 이곳에서 굶주려 죽게 되었구나.  주는 자도, 도울 자도 없으니 어찌할거나?  곤고한 인생이여, 내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탕자에게는 돌아오려는 자기 의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기 결단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주권 밑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기 포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 주변에 이런 자기 결단과 자기 의지와 자기 포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 되는 줄을 알면서도 자기 고집과 자기 체면 때문에 자꾸만 어긋난 그 길로 달려가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탕자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간의 타락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버림받은 탕자로서 인생이 끝나야만 할 존재들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배신의 문제도 아닙니다.  죄의 문제도 더더구나 아닙니다.  탕자가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고난과 고통의 문제는 여러 길, 여러 곳, 여러 방향으로 오지만 이 모든 것의 해결의 길, 해결의 방법은 오직 아버지의 품 밖에 없다는 축복의 비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많은 문제, 여러 고난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일순간 갑자기 다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아버지 품에 안기면 살 길이 있습니다.  여기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리라.  돌아가면 삽니다.  돌아가면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고난 중에서라도 내일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하나님 품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내 인생의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이전 보다 갑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사람을 미워합니다.  환경을 원망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저주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든 믿는 사람은 고난을 새로운 삶의 창조에 대한 도전으로 삼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고난을 인격 변화의 최고의 능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에 더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고난의 때에 결코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원망의 불씨를 성령의 능력을 잠재워버리십시오.  원망할 시간이 있거든 욥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아십니까?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입니다.  기도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기도를 하고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무서운 실패는 기도의 실패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무서운 타락도 기도의 타락입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제일 어설픈 신앙은 기도 생활이 없는 신앙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우리의 삶에 기적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리 앞이 캄캄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서 복된 인생을 살기를 원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의 유일한 자산은 오직 기도뿐이다!'  신앙생활을 깊이 들어가다 보면 어느 날인가 내 유일한 자산은 기도뿐이라는 것이 강하게 부딪쳐 오는 날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두려움이 없고 담대해집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남다른 신령한 힘이 역사하는 것을 자신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는 한결 같은 고백이 있습니다.
"지금 나의 삶은 기도가 이룬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인간의 힘의 끝이 곧 하나님의 능력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기적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은 어떤 고난과 절망에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낙심해서도 안됩니다.

보십시오.  위대한 음악가, 위대한 화가의 위대한 작품이나 예술품은 가장 극심한 고난의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고난도 고통도 문제도 삶의 행복도 환난도 모두가 삶의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왔을 때에 결코 이상한 일을 당한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고난이나 고통이나 환난과 같은 모든 것들이 인생사에서 누구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이나 환난을 당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깊은 신앙이 무엇입니까?
정말 깊이 있는 신앙을 가졌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삶의 고난이나 문제 앞에서 방황하고 반발하고 슬퍼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들은 실패와 실의와 번민과 불티가 날아오는 것 같은 인생의 어려움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반항하거나 반발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목사인 저는 이런 모습을 얼마든지 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때로 심령에 큰 고통을 느끼고 잠도 못 자고 얼굴에는 기쁨을 잃어버리고, 마음에 불안과 근심을 안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혼자 하늘이 무너지듯 깊은 한숨만 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이제는 이런 문제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이 모든 문제는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예수 믿고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펄펄 뛰며 살아갈 것이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무슨 근심이 있으랴.  주님 앞에 내 인생의 모든 짐을 맡겨버리고 나는 찬송하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태어나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에 부딪힐 때에 성공적으로 이것들을 처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자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을 향한 자기의 신앙고백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과할 때 그 고난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을 통과하는 삶의 태도를 보십니다.  우리 인간은 늘 "이 고난이 어디서 왔는가?"하는 고난의 원인과 내용을 알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은 따지지 않으시고 고난을 통과하는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보려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난의 원인을 알려고 하지 말고, 그 고난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결단하셔야 합니다.

고난을 당한 사람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욥을 보십시오.
열 명의 자녀가 한꺼번에 죽었습니다.  소와 양과 수많은 재산이 바람 불듯이 모두가 삽시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자신도 몸에 악청이 나서 가려워 잿더미 위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긁어야만 했습니다.  결국에는 그의 아내마저 차라리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고 하면서 떠나갑니다.  욥의 비참한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찾아와서 위로하기보다는 욥이 당한 고난이 어떤 원인이 있어서 그런 거라며 숨겨놓은 죄를 고백하라며 욥을 정죄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은 그 고난에 대처하는 자신의 태도를 중요시했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 정리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셋째는, 환경도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욥의 말년에 이전보다 더 많은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 길에 100% 완전히 행복한 사람도 없고, 100% 완전히 불행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긴급 동의를 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고난이 와도 주님 앞에서 내일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마십시오.  어떤 힘든 고난이 와도 주님의 교회와 함께 비전을 붙잡으십시오.

어떤 사람은 일에 따라서 교회를 정합니다.  그래서 교회보다는 일이 우선입니다.  직장이 바뀌고 사업터가 옮겨지면 교회도 바뀝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교회를 따라서 일을 정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터가 있어도 교회가 우선입니다.  이 교회는 내 뼈를 묻어야 하고, 내 자자손손이 복을 받아야 할 샘터이기 때문에 교회를 옮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축복하실까?  주님의 몸된 교회와 함께 비전을 붙잡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주님의 교회를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이 교회는 날마다 때마다 와서 누려야 할 축복의 샘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길에서 만나는 모든 실패도 모든 고난도 결국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다 지나가고 맙니다.  사실은 고난이 인생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절박한 상황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더 큰 뜻이 있음을 믿고 꿈을 붙잡으십시오.  꿈이 인생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속에 있는 꿈을 보고 축복하십니다.

꿈이 없는 자녀, 꿈이 없는 부모, 꿈이 없는 지도자, 꿈이 없는 교회, 꿈이 없는 나라 ….  얼마나 불행합니까?  꿈이 없으면 파괴됩니다.  꿈이 없으면 방탕해집니다.  꿈이 없으면 게을러집니다.  꿈이 없으면 인생이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꿈이 없으면 자기 믿음도 약해집니다.

기타도 줄이 늘어지면 제 소리가 나지 않듯이 꿈이 없으면 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여 지금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그때 약하다고 자기를 놓지 말고 믿음으로 조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고난은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삶의 기회이고 도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난과 환난 중에 있는 인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시고 준비해 두신 더 큰 소망의 항구를 향하여 믿음의 닻을 높이 올리고 날마다 때마다 일마다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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