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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행복한 부부생활의 원칙 (엡 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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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법정기념일로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부부의 날입니다. 부부의 날은 공휴일은 아니지만 국회에서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날짜는 해마다 5월 21일입니다. 5월 21일에는 가정의 달인 '5월에 둘(2)이 하나(1)가 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부부의 날 제정 목적은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도록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부부의 날은 핵가족시대의 가정의 핵심인 부부가 화목해야만 청소년문제 고령화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법정기념일입니다. 부부문제만 해결되는 가정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부부가 행복하면 부모문제, 자식문제는 별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데이비드 멕케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정의 실패를 보상해줄 성공은 없다" 다른 모든 것을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가정이 실패한다면 결국 그 성공은 실패한 가정의 보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희생을 담보로 무엇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했을 때는 대부분 가정은 파괴되고 없습니다. 그러면 그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알아줄 가정이 없는데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남편과 아내가 지켜야할 부부사이의 원칙들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칙을 깨뜨리지 않고 지킬 때 안전함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생활에도 이처럼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로 산다는 것은 결혼을 디자인 하시고, 가정을 디자인 하신 하나님의 주신 부부생활의 원칙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부부의 날을 맞아서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한 4가지 원칙'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수용의 원칙

  31~32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하셨습니다.
  결혼은 각각 다른 환경에서 30년 가까이를 다르게 살아온 남녀의 결합입니다. 남녀라는 한 가지 사실만 해도 금성에서 온 사람과 화성에서 온 사람의 차이가 있는데, 나아주신 부모님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거의 모든 습관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작은 나무 한구루도 옮겨심으면 그 환경에 적응할 동안 심한 몸살을 합니다. 하물며 전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옮겨 심기를 한 결혼생활이겠습니까? 그래서 결혼은 서로 다름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깊어지고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설문 조사에 보니까 결혼후 1년이 못된 사람들에게 배우자가 어떻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98%가 "좋다"고 응답했습니다. 3년이 된 부부들은 30%만이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10년된 부부 중에는 10%만이 "좋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년이 넘은 부부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요. 다시 90% 이상이 "좋다"는 응답을 했습니다. 적어도 20년는 같이 살아야 둘이 서로 닮게 되어 편하고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0년을 같이 살아보지 않고 무슨 부부 사이에 중대한 결정을 해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상대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신화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어떤 경우도 서로를 자기 마음대로 바꾸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를 바꾸려하다가는 싸움만 많아질 뿐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가 나중에는 "저 왠수"가 되는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단 한 가지 바꿀 수 있는게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바꿀 수 있다'는 내 생각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 용납해야 합니다. 상대가 꽃병이면 내가 할 일은 꽃병을 깨는 일이 아니라 그 꽃병에 아름다운 꽃을 꽂아주는 일인 것입니다. 배우자는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 작품을 감상해야지 내가 고쳐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고치려고 하지말고 서로 감상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바늘과 실의 관계와 같습니다. 바늘이 너무 빨리 가면 실이 끊어지고 바늘이 너무 느리면 실은 엉키고 맙니다. 그렇다고 바늘대신 실을 잡아당기면 실과 바늘은 따로 놀게 됩니다. 더구나 실과 바늘은 자신의 역할을 바꿀수도 없고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실과 바늘의 조화, 여기에 부부화합의 비밀이 있습니다. 실은 바늘을 그리고 바늘은 실을 서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수용하고 나를 상대방에게 맞추어가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야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감탄의 원칙

  굼뱅이도 기어가는 재주가 있습니다. 거지에게도 자존심은 있습니다. 남자는 자손심 덩어리입니다. 어디 남자만 그렇겠습니까? 여자도 표현을 잘 하지 않으니 그렇지, 자존심 없는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상처받으면 누구든지 화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좋은 것입니다. 배우자의 좋은 점에 대해서 감탄을 쏟아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멋지다' '예쁘다'고 찬사를 쏟아 목졸려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배우자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배우자로 인해 감동을 먹고 살게 됩니다.

  한 소년이 엄마 품에 안겨 울먹거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산이 날 보고 자꾸 바보라 그래요."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물었습니다. "네가 뭐라고 했는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야, 이 바보야! 그랬지 뭐" 순간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일은 산에 가서 "'야, 이 천재야!!!'하고 외쳐보렴" 그러자 정말로 산이 소리쳐 주었습니다. "야, 이 천재야!!!!!"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대접하는 것이야말로 부부의 황금율이라 할 수 있습니다.

  28절을 보세요.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라"하셨습니다.

  과부로 늙은 어떤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길을 가는데 길모통이에서 "같이가 처녀!", "같이가 처녀!"하고 자신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늙어도 여자는 여자인지라 흥분이 되고 얼굴이 빨개져서 도망치듯 그 곳을 피했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제 그 시간에 그 장소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어제와 똑같이 자신을 향하여서 "같이가 처녀" "같이가 처녀"하고 자신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늙은 어머니는 고민이 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저렇게 애절하게 "같이 가 처녀" "같이 가 처녀"하는 사람을 만나줘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아들에게 그 사정을 이야기를 했더랍니다.
  아들아! 어쩌면 좋니?
날더러 "같이 가 처녀" "같이가 처녀" 하면서, 날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데 어쩌면 좋으니? 그러자 아들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어머니 내일은 귀에 보청기를 끼고 나가보세요." 그래서 다음날엔 귀에 보청기를 끼고 나갔는데 그 젊은 아저씨가 여전히 자신을 향해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까 "갈치가 천원!", "갈치가 천원"하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늙어도 처녀라고 하면 좋고 칭찬하면 좋습니다. 예쁘다고 해서 싫어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건드리는 것칸큼 움직입니다. 가만 있는 물건이 저절로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살짝 건드리면 부드럽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거칠게 다루면 거칠게 움직입니다. 욕하는 사람은 욕을 먹고, 주먹으로 치는 사람은 주먹으로 맞고, 돌을 던지는 사람은 돌로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에게 화내면서 남들은 우리에게 친절하기를 바라고 자신은 욕하면서 남들에게서는 칭찬을 듣기를 바랍니다. 서로 큰 소리를 치며 싸우고는 상대가 자신에게 너무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게서 나온 것이 내게로 돌아온 것뿐입니다. 
  사람은 그 진가를 알아 주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보답으로 다가옵니다. 진가를 알아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 진가를 드러내게 됩니다.
  자꾸 구박하고 못난이 취급하면 주눅이 들게 되어 그 가진 진가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스러져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편 직장 보낼 때 구박해서 보내면 안됩니다. 어찌 집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남편이 밖에 나가서 인정을 받겠습니까? 그리고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아내들을 무시하고 멸시해서는 안됩니다.

  사랑은 원래 유치한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할 때 처음에는 온몸에 닭살이 돋고 벌레가 스멀거리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미친척하고 사랑한다고 해보세요. 미친척하고 부드럽게스킨쉽을 하십시오. 너무 고상 떨면 사랑을 잃습니다.
  자신의 손바닥 안에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편해서, 너무 익숙하기에, 그 보물의 가치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손바닥에 놓여있는 보물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죽어야 사는 원칙

  25~27절 "주님은 교회를 살라시기 위해서 자신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은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부부로 산다는 것은 서로를 위해서 자신에게 든 바람을 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집에서 불이 난 이외에는 절대로 고함을 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교회당에 불나기 전에는 고함치지 마세요. 그 어떤 경우라도 그것이 회의든, 사사로운 모임이던 그 어떤 모임이던지 고함치고 소리지르는 교인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나 가정은 그 고함 소리 때문에 상처받고 파괴되는 것입니다.
  사막의 모래밭에서 차가 빠져 나오는 방법은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일입니다. 공기를 빼면 타이어가 평평해져서 바퀴 표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래 구덩이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부부가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져 헤멜 때 즉시 자존심과 자신의 고집이라는 바람을 빼는 일입니다. 그러면 둘 다 살 수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결혼을 했으면 자신의 소원의 바람도, 욕구와 욕망의 바람도 약간씩 빼야 합니다. 죽여야 합니다. 

  배추는 5번 이상 죽어서야 김치가 됩니다. 땅에서 뽑힐 때, 칼로 배추의 배를 가를 때, 소금에 절일 때, 매운 고추와 젓갈과 마늘의 양념에 버무러질 때, 그리고 입 안에서 씹힐 때.. 그래서 입안에서 김치라는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맛을 내기 위해 부부도 죽고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이 피어납니다.

  주님이 죽으셨기에 우리가 산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셨기에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4. 고객의 원칙

  제 시조이기도 한 우암 송시열선생님은 "부부 사이 극진히 친밀하게 공경하는 것을 높은 손님 대접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높은 손님, 귀한 고객 대하듯이 서로를 대하면 얼마나 우쭐해 지겠습니까? 남편은 황제가 된 기분일 것이고, 아내는 황후가 된 기분일 것입니다. 
  요즈음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고객이 얼마나 까다로운가? 그러나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고객에게는 절대 화를 내지 않습니다. 고객에게 화를 내면 그 고객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어떤 고객은 온 가게를 들쑤셔놓고 사지도 않고 그냥 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 고객을 향하여 "마음에 드신 것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혹 필요한 것이나 찾으신 것이 있습니까? 꼭 구해 놓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합니다. 그리고 그 고객이 다시와도 미소로 맞이해야 합니다. 항상 미소를 잃으면 안됩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재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뜨네기 고객도 그렇게 해야하거늘 하물며 거물급 고객이라면 두 말할 것이 없습니다. 

  어느 책에서 보니까 "손님이 더 이상 오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1% : 사망, 3% : 이사, 5% : 위치가 좋지 안아서, 7% : 물건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84% : 직원 한 명이 보인 무관심한 태도 때문에"
  관심 있는 눈짓, 따뜻한 미소, 한 마디 건넨 인사가 사람의 마음을 오랫 동안 머물게 하고 붙잡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고객이 되게 합니다. 처음엔 작은 고객이지만 나중엔 막대한 영향력을 가저다주는 큰 고객이 되기도 합니다. 

  부부란 서로를 거물급 고객으로 여기며 살 때만 멋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나의 마지막 고객이라 여기시를 바랍니다. 거기에 황홀한 부부관계를 이어가는 해답이 있습니다.

본문 33절에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남의 부부는 아무리 보기 좋아도 남의 부부일뿐입니다. 남의 삶은 아무리 행복하게 보여도 남의 삶일 뿐입니다. 그들 부부라고 다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삶이라고 다 완벽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부부, 우리의 삶 속에 있는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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