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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신앙 건강한 교회 (행 20: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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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인 1990년에 남가주사랑의교회에 처음 와서 집회를 한 적이 있었고 이것이 두번째 집회이다. 그동안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성숙해진 것을 감사하고 축하한다. 나는 36년째 목회를 해 오고 있는데 내 목회에 있어서 명백한 3가지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을 놓고 기도하며 목회하고 있다. 하지만 못한 것이 잘한 것보다 더 많아서 부끄럽다. 이제부터는 더욱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세가지는;

첫째, 내가 목사 이전에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여러가지 목사의 일을 잘 감당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 자신이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진실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이 실패하고 만다.

둘째, 내가 시무하는 교회를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야 한다.

큰 교회나 유명한 교회가 되는 것보다는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교회다운 교회인가? 먼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뻐하는 교회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 밖에 있는 일반 시민들과 국민들이 인정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셋째, 진실한 성도들이 모여서 교회다운 교회로 세워야 한다.

그래서 겨례와 백성과 국가를 세워가는 일에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복음주의권에서는 개인의 신앙은 뜨거우나 역사 의식이 부족하다. 겨례와 백성과 이웃을 돌아보는 것에 취약하다. 예수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잘하고 있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잘 못하고 있다. 창세기로부터 계시록까지 성경의 전통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은 특별히 교회다운 교회를 어떻게 세워가는 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한국 교회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성공한 교회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 우리에게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한번은 유럽에서 열리는 기독교 국제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 도착해서 등록을 할 때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예수를 잘 믿는 나라에서 왔다’며 환영했다. 참으로 명예로운 인정이었다.
지난 9월에 중국을 방문했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너무도 중요한 일이었다. 기독교인들은 깊은 생각을 통해서 ‘시대정신’을 창출해야하며, 복음을 기초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시대를 이끌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중국 베이찡에서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군인, 경제인, 정치인등 40여명이 모였다. 그곳에서 많은 세미나가 열렸는데 그 곳에 참석했던 한분이 내게 그곳에서 결정한 내용을 알려 주었다. 그들는10년 후 중국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를 협의했다고 하였다. 참석자들은 10년 후에 종교개방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등소평은 경제개방을 먼저 단행했다. 경제개방에 앞서서 등소평은 정치개방과 경제개방 중에 무엇을 먼저해야할 것인가를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정치개방을 먼저한 소련을 생각했다. 그 결과 고르바쵸프는 곤란을 당하다가 옐친에게 권좌를 내어주고 물러나는 실패를 맛보았다. 그래서 등소평은 경제개방을 먼저 택하게 되었다. 그는 매우 지혜로웠다. 지금 중국의 경제는 크게 발전 중이다. 이제 그들은 북경 올림픽 이후로 예상되는 종교개방을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개방과 함께 종교개방도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금 그들은 종교의 자유화를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종교를 탄압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개방을 앞두고 한국을 보고 있다. 그들의 서쪽은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그리고 말레이시아등의 국가가 있다. 그들은 이슬람 국가들이며 모두 후진국들이다. 그들은 동쪽에 있는 한국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한국이 일제의 압제와 6.25동란을 통하면서 완전히 황폐했다가 지금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개신교가 큰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앞으로 한국의 기독교 부흥의 과정을 받아 드릴 것을 심사숙고하고 있다. 유럽 교회와 한국 교회를 보면서 유럽의 기독교와 한국의 기독교를 비교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서방의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오고 그 직후에 상인들과 아편과 대포를 앞세운 군인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서방국가들이 중국을 식민지화하려 한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그들은 서방의 기독교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는 다르게 보고 있다. 일제시대 때에는 일본에 항거했고, 6.25동란 때에는 공산주의를 상대로 전쟁을 했고, 그후로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하며 사회 발전에 늘 함께하는 기독교의 역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북경 올림픽 이후에 종교개방을 할 때에 제국주의 기독교보다는 한국의 기독교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이다. 그 세미나에 참석한 한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한국 교회가 이러한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다.’라고 하였다. 우리 한국 교회가 이 정도의 가능성과 능력을 받는 교회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환경을 생각하며 교회가 교회다워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1)먼저 사도행전20장24절을 보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에베소시에서 개척교회를 할 때에 하나의 명백한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목회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는 목숨을 걸고 목회했다. 복음 증거할 때에는 목숨을 바치고 했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아무런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전통을 이어 받아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20장28절을 보자.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약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을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이므로 교회는 참으로 중요하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 직접 피를 흘리시고 목숨으로 사신 곳이 교회이다. 이같이 소중한 피와 생명으로 사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 가는 것은 정말로 영광스러운 사명이다. 31절을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사도는 삼년 간 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울면서 관심을 갖고 목회했다. 그렇다, 한 가정 한 가정을,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는 것은 교회의 귀한 사명이 아닐 수 없다. 은혜 중에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교회가 커질수록 어려운 것이 또한 각 사람을 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오랜동안 100명도 안되는 교회를 목회해왔다. 작은 교회는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다. 새벽 기도회 때에는 교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기도할 수 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돌아보는 것이다. 임신한 가정에게는 아이의 이름을 지어가며(?) 기도해주기도 하였다. 그때에 이러한 다짐을 하였다. 비록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지만 함께 일하고 한 가정 한 가정을 심방하고 어린이에게도 좋은 동화를 들려주며 목회다운 목회를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하루는 이웃 교회의 청년 한명이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먼저 내게 ‘예수 믿는 사람이 자살하는 것은 죄이지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하고나서 자초지정을 들었다. 이웃 교회에서 한 여자청년이 농약을 먹고 자살하였는데 교회에서는 ‘자살은 교리에 어긋난다’라며 장례를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쁜 모내기 철이었기 때문에 사람들도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이고 할 수 없이 나를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독한 술꾼이고 어머니는 정신병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동생들을 돌보는 일은 자연히 그녀의 일이 되었다. 모든 환경이 그녀를 너무도 힘들게하여 급기야는 자살을 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살은 잘못한 일이지만 자살한 자가 너무도 불쌍하여 도와 주기로 결심하고 함께 그 교회로 갔다. 청년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니 자살한 자의 장례를 돕다가 그들도 구원받지 못할 것을 걱정하였지만 설득하여 함께 갔다. 시신은 이미 많은 피를 토해서 매우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피를 다 닦아주고 머리도 빗겨주고 할 수 있는 대로 염을 하였다. 가마니를 이용해서 들것을 만들고 시신을 옮겨서 산으로 운구하였다. 시신을 운구하는 동안에 실수로 시신이 들것으로부터 떨어졌다. 시신은 비탈진 곳으로 굴러서 나무에 부딪혔다. 이 때에 가슴에 품고 있었던 작은 성경이 빠져 나왔다. 그 성경을 보고 참으로 안타까웠다. 내려가서 성경을 들고 그 안을 열어보니 손때가 묻은 예수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뒤에는 찬송가 364장(‘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과 창세기28장10-18절 말씀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면 좋은 세상이 올 때까지 조금만 참지 그랬니라고 생각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소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서 꽂아 주었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였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 교리를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 믿음을 보시고 예외로 천국으로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였더니 청년들이 많이 울었다. 장례 후에 그 집에 갔더니 술 취한 아버지가 바닥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몹시 화가 많이 났다. 딸을 어디에 묻었다고 알려주어도 소용이 없겠다싶었다. 정신병이 걸린 어머니가 보여서 그녀 앞에 가서 묻은 위치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막 돌아서려는데 그녀가 불러서 그녀 앞으로 돌아갔다. 오랫동안 요 밑에 보관 것처럼 보이는 색바랜 지폐 한장을 내게 건내주며 고맙다고 하였다. 교회로 돌아와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그 돈을 보고 한 시간 이상을 울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한 심령 한 심령을 돌아보는 목회를 하기로 다짐하였다. 사도바울이 한 대로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돌아보겠다고 결심하였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 아닌가? 교인들과 가족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2)사도행전20장32절을 보자.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헤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이 말씀 위에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다. 한 가정 한 가정이 그렇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마다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교회가 되어져야 한다. 시험이 와도 말씀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3)사도행전20장35절을 보자.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베풀고 주고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가난해야하고 교인들은 열심히 일해서 부유해지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 ‘청빈사상’은 깨끗한 가난함을 의미하고 ‘청부사상’은 깨끗한 부유함을 말한다. 개신교의 바탕에서 맺은 뚜렷한 열매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이다. 교인은 부유함의 축복을 받아야 하고 성직자는 깨끗하고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으면 된다. 교회의 통장은 비어 있을수록 좋다. 그리고 있는대로 나누어주고 베풀자. 남가주사랑의교회도 LA한인사회를 위해서 베풀고 나누어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달라고 기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받은 은혜는 모두 어디에 두고 달라고만 하는가? ‘걸뱅이 삼신’이라는 말이 있다. ‘걸뱅이 삼신’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자. 신앙은 기본적으로 베풀고 나누는 것이다. 교회의 기본도 베풀고 나누는 것이다. 우리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신앙다운 신앙으로, 교회다운 교회로 나아가자. (김진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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