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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바람-숨-영 (창 1:1-5, 행 2:1-4, 막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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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40일간을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시며 하늘나라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예루살렘)성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분부대로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열흘 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열흘째 되는 날이 바로 유대인들의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날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그 다락방에 강림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탄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절은 곧 교회의 탄생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탄절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이라고 하면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 땅에 태어난 날입니다. 오순절의 의미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순절은 유대인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의미로 지켰습니다. 그 하나는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성령강림절도 역시 영혼을 추수하여 천국 창고에 들이게 된 날이라고 하는데 그 신령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 유대인들에게 오순절은 율법을 받은 날로 지켜졌습니다. 즉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10계명을 받은 날이 바로 오순절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율법과 함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오순절 날에는 성령께서 강림하시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하는 새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선민 공동체로 세우시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뜻 깊은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면서 성령님이 누구신가, 무엇을 하시는가? 아니 오늘 나에게 성령님은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는가 하는 것을 살펴볼 필요가 절실한 줄 믿는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 주변에는 성령께 대하여 전혀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 성령님을 단순히 무슨 기운정도로 오해하는 사람들, 또는 성령의 역사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전혀 일치되지 않는 사이비 성령운동도 도처에서 횡행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 에베소 교인들에게 던진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랬을 때 에베소 교인들의 대답은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것도 들은 일이 없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답에 큰 충격을 받은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님께 관하여 말씀을 증거하고 그들에게 안수 기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이것을 소위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문제는 아직 우리도 저 에베소 교인들처럼 “우리는 성령에 대하여 듣지도 못했습니다” 또는 “성령에 대하여 알지도 못합니다”라고 할 것은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고전12:3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 할수록 우리는 예수를 더 잘 믿게 되고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성령께 대하여 무지하고, 무관심하거나 오해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교회가 성령강림을 통하여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이 교회를 섬기면서 성령님을 제쳐놓고 인간들끼리만 주장하게 되므로 이것이 교회의 부패와 혼란의 원인인데 여전히 이런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누구이십니까?

우리가 잘 알듯이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나 헬라어로나 “성령”이라고 할 때 둘 다 바람-숨-영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루아흐”라고 하는데 이 말은 바람이라는 뜻도 있고, 숨이라는 뜻도 있고 또 영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프뉴마”라고 하는데 이 말도 역시 바람, 숨, 영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참 신기하고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너희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1. 먼저 창세기의 말씀을 보십시다.

창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시작하실 때 창조하심으로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배제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혼돈, 공허, 흑암입니다. 혼돈 대신에 질서를, 공허 대신에 충만을, 흑암대신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 땅에, 우리 심령에,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계속하여 창조사역을 하실 때 혼돈을 질서로 바꾸시고, 공허를 충만으로 바꾸시고, 흑암을 빛으로 바꾸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해야 할 기도 가운데 하나가 “창조주 성령이여! 오시옵소서!”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창1:2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유명한 영성 신학자 유진 피터슨이 현대어로 번역한 “메시지”라는 영어 성경에는 “하나님의 영이 수면위에 마치 새가 알을 품듯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암탉이 계란을 품고 한 20여일 지나면 껍질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게 됩니다. 성령께서 이 우주를 창조하신 모습이 그와 같았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눈으로 보듯이 그려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성령께서 이루신 창조의 역사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얼마나 장엄하고 광대한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는 제 3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눈으로 보듯이 그림을 그려줌과 동시에 성령님의 역사의 또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3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라고 했습니다. 창1장에만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말이 8-9번이나 나옵니다. 즉 성령님의 매일 매일의 창조과정에 대한 말씀을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이 광대무변한 우주 삼라만상이 “하나님이 이르시되....있으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고 아주 단순하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말씀 한마디면 없던 것이 생겨졌고, 있던 것도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4:17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신앙을 말하면서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성령님께서는 우리 몸을 성전 삼고 계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그 성령님께서는 오늘 여기 우리 안에서 계속해서 이 놀라운 창조의 일을 이루어나가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창조사역을 이루실 때 그 말씀을 통하여 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엄청난 창조의 새 역사를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2. 복음서의 말씀을 보십시다. 이 이야기는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되어진 일입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물위를 감돌고 계셨습니다. 창세기의 이야기는 우주론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예수께서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께서 비둘기 같이 예수님께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눈으로 보도록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했고, 귀로 듣도록 하늘에서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 부분은 구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창세기의 사건과 예수님 사건 사이에는 많은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창조된 이 세상에는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결과 질서와 충만, 빛으로 창조된 세상은 여지없이 망가져버렸습니다. 혼돈이 지배하고, 허무가 지배하고, 흑암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마지막은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우리 주님은 세상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므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생명의 길을 닦으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창시자”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길을 닦으신 개척자라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듯이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하여 우리 주님을 믿을 때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3.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예수님 승천 후 말씀에 순종하여 열흘 동안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한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거룩한 공동체, 복의 근원인 교회를 창조하신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눈에 보이도록 혀 같은 불이 각 사람위에 머물렀고, 세차고 강한 바람으로 임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수면에 운행하셨던 성령께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는 비둘기 같이 강림하셨으며, 이제 교회 공동체가 탄생하는 이 순간에도 역시 불의 혀같이, 바람같이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이제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행1:8에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권능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넓고 넓은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창조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망할 세상을 구원해 내시는 그 놀라운 구원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새 창조사역의 일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구원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18세기 요한 웨슬레가 영국에서 감리교 운동을 하기 전 영국은 온통 암흑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 웨슬레가 중심이 된 옥스퍼드 운동이 시작되면서 영국 사회는 새롭게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령 받은 성도들을 통하여 영국을 새롭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한창 이야기 하고 있는 1907년 평양 부흥 운동이 있을 당시 우리나라는 모든 소망이 사라져 버린 암흑천지와 같은 형편에 처해있었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국민은 그야말로 도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길선주 목사님을 위시하여 소수의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령 충만 받게 하셨습니다. 그 성령의 역사는 한 사람, 한 장소에 머물러있지 않고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평양이 소위 한국의 예루살렘이 되고 마침내 전국으로 확산되어 드디어 절망에 빠졌던 이 민족에게 소망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성령님의 생명과 능력의 역사가 아니었던들 우리가 어떻게 그 혹독하고 간악한 일제 학정에서 견디어낼 수 있었겠습니까? 나라는 망했지만 오히려 성령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슴 가슴마다 역사하셔서 민족 해방이라고 하는 새로운 구원과 창조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사정이 어떠합니까? 혼란 그 자체 아닙니까? 죄악은 이미 그 도를 넘고 있습니다.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절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새 창조의 역사요,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 일을 감당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야말로 이 민족의 소망이요 그런 의미에서 복의 근원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사모하십시오.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새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쓰임 받는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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