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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근심하지 말라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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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한 봉우리에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 나무가 4백여년간 거기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콜롬부스가 샌 살바도르에 상륙했을 때 그 나무는 묘목 정도였고, 청교도들이 플리 마우스에 왔을 때는 반쯤 자랐을 것입니다. 그 나무는 긴 세월동안 살면서 14번이나 벼락을 맞았고 헤아릴 수 없는 눈사태와 폭풍우를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딱정벌레 떼에게 공격을 받아서 쓰러져 버렸습니다. 벌레들은 나무의 속을 파먹어 나무의 버티는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오랜 세월에도 시들지 않고 폭풍과 벼락을 견뎌온 이 거목이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죽일 수 있는 작은 벌레들에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이 거목처럼 인생의 폭풍우와 눈사태, 벼락은 이겨내면서 근심이라는 벌레에게 심장을 갉아 먹히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데일 카네기의 '근심이여 안녕' 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현대인의 가장 큰 적은 근심입니다. 그래서 많이 팔리는 약 중의 하나가 신경 안정제 계통의 약이라고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마음을 조절할 수 없기에 약의 힘을 빌려 평안을 찾으려 하는 것입니다. 질병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질병에 대한 근심입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30만명 이상의 미군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전쟁에 참여하지 아니한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심장 질환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과 아들과 형제들과 친척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놓고 근심하다가 심장질환으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본문을 통해 근심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리고 27절에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십니다. 즉 근심을 하거나 두려워한다고 해서 상황을 좋게 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근심과 걱정이 무서운 적이 되어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파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5절을 통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어리석게도 매사에 근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근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 문제가 크기에 다른 사람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하고 삽니다. 공동체인 교회도 근심이 많은 교회가 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교회 건축이나 그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못합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할까 미리 근심하다 보니 아예 시작도 못합니다. 근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개인이든 공동체든 어떤 위대한 일도 성취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있는 근심을 물리치는 길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페이지' 라는 영국 비행기 제작자가 시험비행 중 이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비상 착륙할 곳을 찾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는 위기를 만납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비행기 기관 속에서 쥐가 바스락대는 것입니다. 혹여 기관의 배선이라도 갉아 고장을 일으키는 날에는 비행기가 추락할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는 즉시 비행기의 조종간을 잡고 하늘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랬더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없어져 버렸습니다. 착륙하여 기관을 열어보니 커다란 쥐 한 마리가 죽어 있었습니다. 높은 하늘의 기압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인생을 갉아먹고 뼈까지 마르게 하는 근심이 있다 해도 믿음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근심을 극복하려면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며, 견디기 힘든 40년의 긴 광야생활을 보존시켜 주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의 붙드심에 의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반대는 근심입니다. 믿음을 잃은 사람들이 근심하는 것입니다. 근심을 이기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근심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요, 믿음의 시작이 근심의 끝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려와 근심으로 사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인사를 나눌 때도 "염려 덕분에 잘 삽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속에 일어나는 모든 근심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순간부터 근심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으면 근심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는 본문 1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근심이 사라지는 평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천국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에 헬렌 스토크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신앙을 지키다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남편과 함께 사형장에 끌려가며 말합니다. "여보, 기뻐해요. 오늘 우리가 죽으면 가장 즐거운 날이 될 거예요. 우리 앞에는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날이 기다리고 있어요. 이 시간 나는 당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잠깐 후에 우리는 함께 영원한 나라에서 만나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이에요."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의 증언입니다.

출세를 꿈꾸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합니다. 제자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주만 바라보고 따랐는데,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근심하며 주님을 바라봅니다. 성미가 급한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고 묻습니다. 그 때 주님은 "지금은 올 수 없으나 언젠가는 너도 나 있는 곳으로 올 것이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소개합니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가 없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자신의 죽음도 인간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역설하십니다.

본문 2절과 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인생들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처소가 하늘에 있다는 것이며, 예수께서 처소를 예비해 놓으시고 다시 와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소망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크면 클수록 근심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닥쳐 올 때마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옛날 믿음의 조상들처럼 말입니다.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는 자들은 종말론적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오늘이 세상 끝나는 종말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근심하며 살지 않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들에게는 현실의 문제가 커 보이지 않고 작아 보입니다. 따라서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천국에 마음을 두고 사는 소망의 사람들이 되어 근심을 이기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남북 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은 전군에 휴가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한 군인이 아내가 죽어간다는 통지를 받고 휴가를 얻고자 대통령을 찾아갔으나 만날 수 없게 됩니다. 근심하며 나오는데, 뜰에 있던 소년이 묻습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자신의 형편을 말합니다. 이야기를 듣던 소년은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아빠가 대통령이에요. 만나게 해드릴께요" 라며 그의 손을 잡고 집무실로 향해 갑니다. 비서가 막습니다. "각하께서 바쁘시기에 만나실 수 없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소리칩니다. "아빠, 나 좀 들어가게 해주세요." 허락을 얻은 소년은 집무실에 그와 함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부하의 딱한 사정을 듣고 휴가 명령을 내려 주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면 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근심이나 걱정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13, 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라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시행하리라' 고 거듭 확인하여 주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게 되어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기력해집니다. 걱정이 앞섭니다. 항상 근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어떤 학자가 1세기 교회 문서를 조사하다가 그리스도인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문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이름 앞에 '티테디오스' 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를 연구하다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티테디오스' 라는 희랍어 단어가 '근심하지 않는 사람'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티테디오스 베드로' 라고 하면 '근심하지 않는 사람 베드로' 라는 뜻입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근심에 붙들려 사는 자들이 아니다" 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불신자와의 차이를 근심하지 않는 자신들의 모습에서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절대로 근심하지 않는 '티테디오스' 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근심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도 불신자와 똑같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문제로 인해 염려하고 근심하나, 성도들은 근심대신에 기도합니다. 기도하다 예수님이 문제의 해결자인 것을 믿고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겠노라고 찬양하게 됩니다. 484장입니다. "마음속에 근심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슬픈 마음 있을 때에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주 우리의 친구니 무엇이나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이 시간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고 명하시는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소망의 천국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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