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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주시다 (출 12:21-24, 고전 11:23-26,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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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은 교회력으로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성경과 그리스도교의 독특한 신조요 다른 모든 하나님 신앙과 구별되는 요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해 놓은 것이 사도신경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모든 교파가 사도신경을 함께 신조로 채택하여 믿고 고백합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이야말로 전 세계 교회를 하나로 묶는 최대공약수가 되는 신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신경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먼저 성부께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 다음으로 성자께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께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성령을 믿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내용대로 믿고, 십계명의 가르침대로 살고, 주기도문의 모범을 따라 기도합니다.

오늘 삼위일체 주일을 맞이하여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총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를 모르면 그것이 우리에게 화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진리를 아느니만큼 우리 신앙은 더 풍성하여 지기 때문입니다.

(1) 먼저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없이 좋은 세상, 최선의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조의 매 단계마다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하나님은 “심히 좋았다”고 sign을 하셨습니다. 천지창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말로 할 수 없는 은총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렇게 좋은 세상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표시로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하나님의 동산은 망가져버렸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세상에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홍수 심판을 통하여 지상의 사람들을 위시한 피조물들을 깡그리 없애버리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노아를 통하여 방주를 만드시고 구원의 씨를 남겨두신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우리에게 줄기차게 보여주는 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인내와 사랑입니다.

(2)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취하신 가장 극적인 일이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일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의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하여 베풀어 주신 하나님 사랑의 최고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조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다 이루니라”고 sign을 하셨듯이 우리 주님은 십자가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구속의 완성을 sign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승리입니다.

(3) 옛날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되어라”고 하신 하나님은 이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공동체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일 성령강림절을 지켰는데 성령 강림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땅에 복의 기관, 복음 선교의 공동체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도록 하셨습니다. 이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중요성을 말할 때 “만물 위에 교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새로운 창조와 구원을 이루시고 복을 주시려고 할 때  반드시 교회를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옛날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되어라”고 하신 그 말씀이 바로 다름 아닌 여러분 각자와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인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를 향하신 성삼위 하나님의 삼중의 은총에 대하여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롬11:33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누리며, 또 항상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오늘 삼위일체 주일에 우리가 성찬성례전을 거행하는 것은 이 성례전이 복음의 핵심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성찬성례전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에서 거행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월의 변천과 교회가 흩어진 여러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전적인 이 예식을 고집스럽게 보존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복음의 본질을 바르게 물려받고, 지키며, 또 세상 끝 날까지 바르게 전해주려는 교회의 의지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행하는 성찬성례전의 중요한 네 가지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네 가지는 성찬 성례전을 거행하신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서 나타난 것이요, 교회가 성찬 성례전을 행할 때마다 되풀이 하는 몸짓입니다.

(1) 첫째가 오늘 마가복음 본문 22절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 “가지사”라고 하는 말은 “취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준비해서 주님께 드린 떡을 주님이 취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찬성례전의 첫 악장입니다.

오병이어 이적에 보면 어린 아이가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취하셔서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시고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때 기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도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하여 주님의 기적을 우리 가운데 이루십니다.

한 과부는 두 렙돈의 적은 돈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여인이 가진 것 전부였습니다. 그것은 그 여인의 하나님을 향한 절절한 믿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로부터 다른 모든 사람들이 바친 거액의 헌금보다 오히려 더 많이 바친 것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치라고, 가져오라고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주님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사람들의 그 무엇을 가지셔서 우리 가운데 놀라운 기적을 이루십니다. 예를 들면 우리 서부교회에서는 그 기적이 바로 새 성전 건축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함께 여러분이 가진 것을 믿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드렸습니다. 앞으로도 드리게 됩니다. 주님은 그것을 취하셔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고, 또 주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축복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예수님께 드리면 우리 주님은 그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바치십니다. 어린 아이가 바친 하찮은 떡 5개 물고기 2마리를 받으신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까짓 것!”이라고 시들하게 여기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떡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남자 장정만 5천명입니다. 그런데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은 고작 떡 5개 물고기 2마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여기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가 드린 예물과 우리 자신을 함께 받으시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셔서 기도하십니다. 그 예물과 우리를 동시에 축복하십니다. 여기 하나님이 주시는 기적이 있습니다.

우리 새 성전은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우리가 모두 열심히 건축 헌금을 했지만 우리 각자의 헌금은 참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헌금과 그것을 바친 우리를 함께 하나님께 내어놓고 기도하십니다. 함께 축복하십니다. 그럴 때 교회에 기적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을 주님께 드린 우리와 우리 가정, 그리고 사업에도 기적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3) “떼어”라고 했습니다. 여기 “떼어”라고 하는 말은 “부서진다”는 뜻입니다. 한 덩이 떡이 찢어지고 부서져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게 됩니다. 여기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의 몸이 찢어지고 상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내가 구원을 성취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자신을 찢으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둘째, 시51:에 “주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회개야 말로 우리의 상한 심령입니다. 주님은 이 상한 심령을 제물로 열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중심에는 오직 주님만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찬송가에는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라고 했으며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인의 신앙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중심에도 오직 주님만이 계시게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4) “제자들에게 주시며...” “주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이 떡을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주님이 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축복하시고 떼셨습니다. 그 다음에 그것을 다시 제자들에게 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돌려받는 것은 처음에 드린 것과 다른 것입니다. 거기에는 주님의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떡 5개 물고기 2마리를 주님께서 받으시고, 그것을 가지고 기도하신 다음 어떻게 했습니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참 놀라운 일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노력이나 경험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경제, 하나님의 계산이 있습니다.  한 사람 먹기에도 넉넉지 않던 음식이 5천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모두의 배가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특히 우리 서부교회 현실에서는 새 성전을 위하여 바친 기도와 물질과 땀은 그 모양 그대로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축복기도가 있습니다. 이미 거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 드린 우리에게 풍성한 은총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즉 우리와 우리의 새 성전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복 받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거룩한 주님의 사역에 저와 여러분을 들어 쓰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삼위일체 주일에 성찬 성례전을 거행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중적인 은혜와 복, 그리고 성찬성례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말로 할 수 없는 은혜와 복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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