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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공동체 (눅1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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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적 긴 오늘 본문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먼저 1-6절을 봅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식사하러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같이 있던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엿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앞에 수종병 든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날이 안식일이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 수종병 든 사람을 고쳐주실지 아닐지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종병이란 간이나 콩팥 같은 데가 좋지 않아서 세포조직 사이나 위나 늑막 같은 체강에 비정상적으로 물이 고이는 증세를 가리킵니다.  안식일에 식사하자고 예수님을 청한 자리에 예수님 앞에 수종병 든 사람이 왜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올무를 씌울 기회를 만들고자 일부러 꾸며놓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예수님께 그 수종병 걸린 사람을 가리키며 고쳐주실 것인지를 물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말로 묻지는 않았어도 그때의 그들의 표정과 주위의 분위기는 완전히 "자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며 예수님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런 생각을 다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되물으시기를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하셨습니다.  절묘하게 공을 그들의 손에 넘기신 것입니다.  그들은 "합당하다"고 답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답하기도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합당하다"고 대답했다가는 율법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고, "아니라"고 대답했다가는 몰인정한 사람들이 될 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빠뜨리려고 파놓은 함정에 순식간에 자기들이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잠잠했다"고 본문은 전합니다.  그들이 가만 있자 예수님께서는 그 수종병 든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보내시고는 또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7-11절을 봅니다.  우선 7절을 보면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했습니다.  거기에 초청된 사람들이 서로 상석에 앉으려 했나 봅니다.  그 광경을 보신 예수님께서 딱하게 여기시고 그런 자리에서 취할 지혜로운 처신에 관해서 한 마디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8-11절이 그 말씀입니다: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라. 그리하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 하는 것이 여기서의 가르침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12-14절에는 예수님께서 그 잔치자리를 베푼 주인에게 하신 전혀 다른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다시 말하면,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는 것은 좋은 일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은 하나도 칭찬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되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몸 불편한 이들을 불러 먹이는 것이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보상을 받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한 사람이 나서서 한 마디 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이렇게 화제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나라]에로 옮겨가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그 기회를 놓지지 않으시고 한 가지 비유로 하나님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16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 비유에서 본래 큰 잔치에 청함을 받고도 오지 않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뒤에 데려온 사람들은 이방인들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들어있는 이 몇 가지 이야기들 사이에는 별다른 공통점이나 상호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신 일과, 사람들 많은 잔치자리에 가면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라는 말씀과,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먹이려거든 가난하거나 몸 불편한 이들을 부르는 것이 칭찬 받을 일이라는 교훈과, 본래 청함을 받은 자들은 오지 않고 뒤늦게 다른 모든 이들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하나님나라에 관한 비유말씀들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들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잇달아 하신 말씀들입니다.  자연히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무 생각 없이 이말 하셨다 저 말 하셨다 하신 것이 아니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용상 서로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공동체, 예수님의 이름 아래 모인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의 공동체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지에 관하여 오늘 본문의 모든 이야기는 각각 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주님의 공동체가 어떠해야 할지에 관하여 오늘 본문의 첫 번째 이야기는 무슨 가르침을 줍니까?  그 이야기 속에 중심사건은 뭐니 뭐니 해도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수종병 걸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신 일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능력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수종병 걸린 사람이 낫기를 바라는 사랑의 관심은 없이 예수님을 시험하려한 자들의 불순하고 악의적인 시도가 좌절된 것입니다.  문자적인 율법주의에 대해 주님의 사랑이 승리한 것입니다.  주님의 공동체는 이러한 공동체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없고 남의 행실을 엿보며 정죄할 기회만 찾는 율법주의가 판치는 공동체는 주님의 공동체라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공동체가 어떠해야 할지에 관하여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이야기는 무슨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까?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먼저 낮은 자리에 앉으려 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오르려다가 끝자리로 밀리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고, 낮은 자리를 택함으로써 오히려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러워지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언제나 가슴에 새기고 겸손함을 좇음으로써 아무도 상처받고 떠나가는 일이 없는 공동체가 주님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든지 말든지 겸손하게 맡겨진 일에 묵묵히 충성을 다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잘난 듯이 드러내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알려서 빨리 권사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려고 애쓰는 공동체는 주님의 공동체답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의 공동체가 어떠해야 할지에 관하여 오늘 본문의 세 번째 이야기는 또 무슨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까?  그 이야기의 요점은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는 것은 좋은 일이나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은 하나도 칭찬 받을 일이 아니며, 되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몸 불편한 이들을 불러 먹이는 것이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보상을 받을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는 바리새인 지도자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셨습니다.  자기와 가까운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돈 있는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서로 청하며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는 공동체는 주님의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몸 불편한 이들이 소외되거나 망각되지 않고 여기저기서 청함을 받으며 따뜻한 대접을 받는 공동체가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며 상 주실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새로 온 교우들이나 아는 이 별로 없는 교인들이 발붙이기 힘들만큼 냉냉하고 텃세 심한 교회는 주님의 공동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공동체가 어떠해야 할지에 관하여 오늘 본문의 네 번째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얻는 가르침은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에 만사를 제쳐놓고 즉각적으로 응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그 무엇보다 앞서며 모든 일 위에 궁극목적으로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말씀 속에서 큰 잔치에 초청을 받고도 응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는 새로 산 밭을 살펴보는 일을 더 중히 여겼고, 다른 하나는 새로 산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하러 가는 일을 더 중히 여겼으며, 또 다른 하나는 장가들어 얻은 아내를 즐겁게 하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보다 다른 세상일들을 더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주님의 공동체를 이루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동체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이들이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는 관심 없고 물질적인 일과 세상적인 행사와 인간적인 즐거움에만 열심을 내는 교회는 주님의 공동체라고 불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을 줄 알아야 할 터인데, 오히려 오만 가지 일 때문에 항상 하나님나라 일을 제쳐놓고 사는 사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진정한 주님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이 있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삶의 궁극목적으로 삼기만 하면 그 누구든 다 들어올 수 있고 모든 사람과 어울려 주님의 잔치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먼저 부르심을 받았든 뒤늦게 부르심을 받았든 막차로 부르심을 받았든 다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집 주인은 종에게 이르기를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했습니다.  또 그 종이 이르기를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하자 주인은 종에게 다시 명하기를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했습니다.  이렇게 어디에서 왔건, 신체적 여건이 어떠하건, 소유한 것이 많든 적든 잔치자리에 나아온 이들은 모두 주인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주님의 공동체에서는 그 구성원들의 출신지역이나 삶의 환경이나 학력의 고하나 능력의 다소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라는 사실 하나로 모두가 동등한 한 식구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 교회는 과연 주님의 공동체라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냉철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가 진정한 주님의 공동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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