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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 사랑 (느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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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의 달 5월을 보내고, 이제 6월이 시작되었습니다. 6월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달입니다. 우선, 6월은 한해의 절반이 지나가는 달입니다. 마라톤으로 말하면 이제 반환 점을 도는 셈이 됩니다. 지금까지 잘 달려온 한해가 풍성한 열매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오르막길도 가야하고, 내리막길도 조심해서 내려가야 합니다. 이제 더 호흡도 잘 조절하고, 자기 페이스를 지켜서 완주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6월은 월드컵이 열리는 달이기도 합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 한국만큼 관심과 열기가 대단한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지난 2002년에 경이로운 수확을 얻은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도 많은 기대를 갖습니다. 선수들이 잘 해서 이번 월드컵을 통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대한민국을 다시 하나로 묶는 기회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국가적으로 6월은 호국과 보훈의 달로 지킵니다. 6월 6일은 현충일로서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한 애국인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또한 6월 25일은 이 땅에 전쟁이 발발한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국가적인 기념일에 맞추어 교회도 6월을 나라와 민족을 위한 달로 보냅니다. 그리스도인은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라를 위해 일했던 많은 선진들 가운데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바탕으로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해 수고했습니다. 그 수고로 한국이 지금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라가 잘 되고 평안해야 개인도, 가정도, 심지어는 교회도 잘 됩니다. 나라사랑이 가정이나 교회사랑 못지 않게 필요합니다. 문제는 ‘어떻게’입니다. 우리 믿는 자가 어떻게 나라를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할까요? 오늘은 그것을 본문을 통해 몇 가지로 살펴보면서 나라사랑의 실천을 다짐하기 원합니다.

  우선,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느혜미야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느혜미야는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에스라,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 포로이후 시대의 지도자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채 타락하던 이스라엘은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멸망했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많은 백성들이 죽고, 아까운 인재들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에서 그들은 많은 깨달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해방이 되면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기로 다짐했던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70년이 지난 후, 이스라엘을 본국으로 모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당시 귀환은 3번으로 나누어 이루어졌습니다. 그 중에서 느혜미야는 마지막 세 번째 돌아올 때 이스라엘백성들을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본문을 포함한 느혜미야서는 그를 포함한 백성들이 돌아오는 과정과 그들이 본국에 돌아와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백성들의 회복과 변화를 촉구하는 말씀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 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 1장, 여기 본문을 통해 우선적으로 느혜미야의 나라사랑의 면모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그가 본국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2절에 그는 본국에 갔다가 돌아온 사람을 만났고, 본국에 대한 형편을 자세히 물어보고, 그리고 본국에 대한 소식에 귀담아 듣는 것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 어려움이 있는 것을 알고, 앉아서 수일동안 금식하며 슬퍼하며 울었다고 말합니다. 느혜미야의 나라사랑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나라의 형편과 사정과 소식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슬퍼했습니다. 나라를 생각하며 그는 늘 고민하고 염려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나라사랑은 먼저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나라가 어려울 때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고, 어디에서든지 자기 할 일과 길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의 나라사랑입니다.

  중동전쟁이 발발할 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교에서 교수가 이스라엘과 아랍에서 온 학생에게 전쟁의 소식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두 사람이 동시에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교수는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알아보았는데, 이스라엘에서 온 학생은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귀국수속을 밟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랍학생은 혹이라도 나라에서 군대징집명령이 나올 지도 몰라 기숙사를 옮겨야 한다고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의 대표적인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느혜미야 때부터, 그 이전부터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에 대한 형편과 소식과 염려로 어디에 있어도 늘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 작은 소수민족이 세계를 주도하는 뛰어난 민족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관심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잊혀진 사람이다” 미움도 관심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나의 시선에서, 머리에서, 생활에서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사람, 잊혀진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무관심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먼저 관심을 갖습니다. 사랑하는 만큼 거기에 쏠리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나라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나라 사랑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해도, 관심은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정치에 대하여, 경제와 사회에 대한 관심부터 크리스천의 나라사랑은 시작됩니다. 이런 나라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기도하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느혜미야는 고국의 사정과 형편의 소식을 접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도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6절에 의하면 그는 주야로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를 살피는 회개의 기도부터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 뒤에 어려운 나라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도움으로 달려왔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든 것이 이루게 될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본문은 바로 그런 나라를 향한 그의 간절하고, 진솔한 기도가 돋보이는 말씀인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가장 귀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론 금식하며 간절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중단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주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먼저 나를 살피며 회개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한마디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기를 소원하며 간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위해서는 더욱 간절해야 합니다.

  예례미야 33장 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네게 보이리라” 여기 ‘부르짖으라’는 말은 보통 기도가 아닙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달라고 절규하듯이, 해산하는 여인이 고통 속에 소리를 지르듯이, 생애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속에서부터 뭔가가 튀어나오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부르짖으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 기도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부르짖는 기도는 먼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특히 나라를 위한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통해 이 나라와 민족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결국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가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움이 이 나라에 임해야 합니다. 민족의 소원인 통일도, 지금 가장 시급한 경제의 회복도, 동서의 화합과 계층의 일치도 하나님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녀와 젊은이들이 꿈과 비전으로 갖고 성장하는 것도, 모두가 존경하는 뛰어난 지도자를 세우는 것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는 더욱 필요하고, 간절해야 합니다. 간절한 기도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만큼 귀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전서 2장에서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나라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로 나라가 온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 민족 위에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가 임하도록 부르짖고, 기도하면서 그렇게 나라를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우리가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의 마지막은 매우 의미 있는 느혜미야의 말로 끝을 맺습니다. “그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었느니라....” 느혜미야는 고국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린 뒤, 마지막에 자기의 신분을 밝히는 것으로 기도와 자기 말을 끝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느혜미야의 이런 고백은 그가 과거에도 지금도, 자기가 속한 그 삶의 현장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느혜미야는 이스라엘의 뛰어난 지도자였지만, 그가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바사’라는 나라에서 술 맡은 관원으로 일한 사람입니다. 여기 술 관원은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당시 세계로 돌아가면 정말 중요한 일임을 발견합니다.

  이 직업의 가장 큰 일은 왕이 마실 술을 미리 맛보아 당시 왕을 독살하려는 일을 막는 것입니다. 당시는 술잔치가 많았습니다. 왕은 늘 연회를 베풀고 사람을 접견하고 호의를 베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잔치에서 종종 왕이 독살 당하거나,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왕은 술 관원을 두어 이 일을 사전에 막기 위해 술 관원을 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왕의 절대적인 신뢰와 인정을 받는 자리입니다. 술 관원은 왕의 가장 측근에서 때론 왕의 조언자로서, 때론 왕의 보호자로서, 막중한 권리와 책임이 주어진 자리입니다. 그래서 당시 왕은 아무에게나 이 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왕이 당대에 가장 신임하는 사람, 가장 왕에게 인정받는 사람에게만 맡겼습니다. 당시 왕에게 있어서 느혜미야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두터운 신임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느혜미야의 신임이 백성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느혜미야의 나라사랑은 바로 여기에서 그 빛을 발한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이방인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믿는 사람이었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는 왕궁에 있었지만 왕궁 밖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그의 성실하고 진실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나라를 사랑하는 가장 귀한 방법은 우리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많은 곳에는 뭔가 틀리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하는 일에는 뭔가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곧 나라사랑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어쩌면 지금 여기 이 곤고한 세상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오늘도 예배를 드리고 여기 머물지 않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우리 믿는 자가 인정받지 못한 부분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국민의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기독교의 막강한 영향력을 사회에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종종 교회에서 불려야 할 우리의 이름이 세상에서 부끄러운 사건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학자들에 의하면 신실히 믿는 사람 10%만 있어도 공동체는 변했다고 말합니다. 아니 5%만 있어도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25%가 기독교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젠 우리의 방향이 달라져야 합니다. 믿음의 목표와 방향이 삶의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가보든지 보지 않든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남이 한다고 따라가지 말고, 좁고 외로운 길이라도 진리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내가 가진 이 크리스천의 이름이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교회 밖에서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바로 그렇게 인정받을 때 이 나라는 달라지고, 믿음의 나라로 견고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나라를 사랑합시다! 이제 더 나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시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삶의 현장에서 믿는 사람으로 인정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나라를 사랑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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