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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개발해야 합니다 (잠 4:23, 잠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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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디언들 사이에 내려오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디언들에 따르면 어린이의 마음은 세모이고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랍니다. 때문에 어린이가 죄를 지으면 세모꼴 양심이 죄를 짓는 만큼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서리로 마음을 긁어내기 때문에 마음이 아픔을 느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이 모서리가 점점 닳아져 결국은 둥그렇게 변하게 되고 어른이 되었을 때는 큰 잘못을 범해도 아픔을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참 지켜야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재산도 지켜야 합니다. 가정도 지켜야 합니다. 내가 가진 체면도 지켜야 합니다. 건강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지켜야 할 것들 중에서 무엇보다 가장 우리 자신들이 소중하게 지켜야할 것은 놀랍게도 재산도 아니고, 명예나 체면도 아니고, 건강도 아닌 바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본문 23절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할 때 이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영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생을 통해 가장 소중하고 귀하게 지켜야할 가치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잃게 되면 그것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이라는 이 영적인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 첫째는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가인이 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아 주시지 않았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회개도 없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않는 제사를 받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긴장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예배가 영적인 예배가 되지 못하고, 쓰레기와 같은 예배가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1절에는 분명히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23절에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리라”고 했습니다. 예배는 영과 진리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마음으로 드릴 때 온전하고 거룩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려도 기쁨이 없고, 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린 후에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인의 예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신령과 진리로서 예배를 드렸으면 왜 하나님께서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겠습니까?

  문제는 본인에게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께 분을 내었습니다. 안생이 변하여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눈을 흘겼습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조건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가인은 달랐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그 마음에 분을 넣어 두었습니다. 자신 속에 계속해서 불순종의 악한 마음을 넣어 두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잠언 16:32절 말씀에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성 하나를 빼앗기가 얼마나 힘이 듭니까?  성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서 수천 명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수천명의 생명을 희생해서 성을 빼앗는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이 더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 새로 도입한 F-15 전투기가 사고로 두 명의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난 전투기 한대 값이 천억원이라고 말합니다. 조종사를 한명 만들기 위해 평균 10억원 이상의 돈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하고 귀한 용사를 키우는 것보다 더 훌륭하고 뛰어난 일이 바로 노하기를 더디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용사보다 낫고,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말씀에 의지하여 오직 믿음으로 지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분노로 채우고,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못했던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인도 그렇고, 에서도 동생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픔고 일생을 살았습니다. 사울 왕은 분노의 마음으로 다윗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일생의 2/3 이상을 바쳤습니다.

  여러분은 부정적인 자아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둠의 권세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밖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꼬더냐? ....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1,3)

  우리는 영으로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오직 예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둡게 하는 어둠의 영들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악한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떠나고 성령이 여러분들의 마음의 주인으로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사람에게 이야기 합니다.“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행동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18절 이하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을 알 수 있고, 믿음의 정도를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그릇의 크기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말은 행동의 씨앗이 되고, 열매가 됩니다. 야고보서 3:2절에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큰 배라도 작은 키에 의해서 방향이 결정됩니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온 성을 태울 수가 있고, 광풍에 밀려가는 파선한 배가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혀에서 나오는 말은 작은 것같고 힘이 없는 것같아도 놀랍게도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언어는 우리의 인생에 큰 능력이 됩니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들고,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냅니다. 사람의 마음이 성령으로 가득차 있고, 성령의 능력과 권능에 붙들려 있으면, 부정적인 말이 절대로 밖으로 튀어 나올 수 없습니다. 현대의학에서도 인간의 언어중추 신경이 다른 신경을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할 수 없다. 이제 끝장났어!”라고 한다면 정말 그 사람은 그렇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갖게 되어 인생을 대하는 태도 또한 부정적이고 절망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은 환경이나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관없이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성공할 수 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자 이시다”라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말을 자꾸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부정적인 인생이 긍정적인 인생으로 바꿔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 자신들의 마음을 지키지 위해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봐야 합니다. 세상과 환경을 보지 말고, 세상과 환경을 다스리는 절대자이며, 모든 것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어린이가 길을 가다 5달러짜리 지폐를 주웠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이때부터 이 소년은 어디를 가든지 땅만 보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이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그가 일생동안 땅에서 주운 것을 모아 통계를 내었습니다.  그는 땅에서 단추 2만 9천개와 머리핀이 5만 4천개 그리고 값이 나가지 않는 얼마 되지 않은 많은 동전들과 쓸데 없는 버려진 물건들로 그 집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땅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늘을 봐야 가능성이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빌립과 안드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5천명을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큰 무리들이 오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빌립처럼 계산이 빠르고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모두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있어도 부족합니다.”빌립의 대답은 현실적으로 정확한 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우리는 할 수가 없다라는 패배의식과 부정적인 의식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머리로 계산을 했을 뿐 주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의 대답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 같아도 마음에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못하는 불신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그는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져 있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 앞에 가져왔습니다. 왜 그가 주님 앞에 그 도시락을 가져왔겠습니까? 안드레의 마음에는 주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님이시라면 이 적은 양의 도시락이지만 무엇인가 이것을 통해 하실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우리 마음을 긍정적인 믿음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나에게 있는 이 작은 것이 보잘것없어도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큰 능력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님께 안드레처럼 모든 문제를 맡겨야 합니다. 그분에게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분께 가까이 나와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자꾸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시인하고 믿음을 고백하고, 또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은 하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기적과 이적과 삶의 놀라운 변화는 이처럼 주님께 인생의 짐을 맡기고, 하늘을 바라 보는 삶을 살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영광의 주를 보라~”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하늘을 보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들의 능력이시며, 전능자이심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고, 적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주님께서 쓰시면 큰 것이 될 줄을 믿습니다. 세계를 향해 우리는 오늘도 믿음을 가지고 입을 크게 벌려야 하고, 장막줄을 길게 늘어 뜨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옆사람에게 말합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들이 마음을 지켜야할 이유는 바로 마음을 지키는 것이 그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바로 그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지켜 주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내 믿음을 지켜 주겠습니까?

  인간의 삶을 가만히 보십시오. 인간의 삶을 참으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지헤가 있어야 살아 남고, 돈이 있어야 경쟁이 되고, 건강이 있어야 남보다 부지런히 일을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 성공하는 인생들을 보면 지혜나 돈이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념입니다. 내가 아무리 지혜가 있다 할지라도 신념이 없어서 뒤로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신념이 없으면 결국 포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서도 신념이 있어야 그 일을 믿고 나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1:6절을 통해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4절에서는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이는 하나님이십니다.우리의 인생을 계획하시고, 이끄시며,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이런 믿음에 대한 철저한 신념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신념과 확신이 무너지면 안됩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영국과 미군의 포로 약  20.000명이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이 수용소에서 몇 년 사이에 포로 약 8.000명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고문도 아니었고, 영양실조나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죽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 속에 있었던 절망이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이 어떻게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믿음이 없이 어떻게 여호수아와 갈렙이 모든 백성들이 부인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하며, 분노하여 그 두 사람을 죽이려는 상황 속에서 “가나안 사람들은 우리들의 밥”이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생을 성공하게 하는 그 신념은 바로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야 이 마음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념입니다. 나는 꼭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야 한다는 이 신념이 없으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사는 인생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거짓된 영혼들은 이 영적인 신념과 믿음을 무너 뜨립니다. 우리 마음을 혼미케 하고, 시험에 들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의 유혹에서 이겨야 합니다. 교회를 떠나게 하고, 믿음을 혼미하게 하는 악한 영에게서 떠나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영으로 시작해서 육신으로 마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도 첫사랑을 떠나 주님을 버린 알렉산드리아와 후메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주님을 떠난 잃어버린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을 대적하는 곳에 영혼을 판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에서 가장 소중한 여러분들의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두고, 그 믿음을 평생토록 지켜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성령의 전으로 만들고 성령을 받아들이고, 성령님의 역사가 늘 우리 속에 일어나도록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옆사람에게 말합니다. “이제 마음을 굳건하게 지키십시오.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한용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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