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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요 3: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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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이 있다고 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모순 상황을 가지고 예수께 질문하였습니다. 한 여자가 여러 남자와 결혼했을 경우 부활한 후에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만 사고가 국한되어 있는 그들은 그 질문에 예수가 답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천국은 이 세상과 다르므로 그러한 것은 문제가 되지 못한다고 답하심으로써 사두개인들의 어리석음을 오히려 책망하셨습니다. 

부활 문제로 예수님께 시비를 걸었던 사두개인들이 돌아가자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계명 문제로 논쟁을 걸어왔습니다. 즉 천국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이 부활 문제를 거론했듯이 율법과 계명의 중요성을 따지기 좋아하는 바리새인은 '가장 큰 계명' 문제로써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신 6:4,5)의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신 말씀과 (레 19:18)의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신 말씀을 통해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을 드러내 주셨습니다.

(마 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있어서는 자신들을 능가할 자가 없다고 자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을 향한 사랑이 율법은 물론 선지자들이 말한 것의 핵심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이 해석은 바리새인들이 감히 힐문하지 못할 명답인 동시에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연고로 바리새인들은 더 이상 말과 지혜로 예수께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대강령은 우리가 그를 경배하고 찬양하며 순종하는 모든 일을 가능케 하는 기초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바로 성립되지 않는 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진 신앙일지라도 그것은 참 된 것이 못됩니다. 사람사이에서도 진정 사랑하는 이에게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 가운데는 부수적이고 제한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지엽적인 문제 하나하나를 취급하기 때문에 단지 그 문제에 해당하는 의무만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어떤 계명들은 보다 본질적이고 깊은 내면의 문제를 취급합니다. '사랑'에 대한 계명이 바로 그렇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에는 원천적이고 불변한 특성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신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가져온 절대적 사랑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절)라고 합니다.

여기서 '세상'이라 함은 '인류'를 가리키고 이 인류는 죄악에 빠져 있는 우리 인생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죄악에 빠져 있는 인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가 발견되었을 때 발동이 됩니다. 그것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마 5:45) 내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에 기인한 것으로서 죄악에서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하여 발동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 5:20,21) 하심에서 그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이며, 복음 안에 있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절) 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무한하고 불변하며 영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이며, 현실적입니다. 그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이 독생자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구속의 목적을 위하여 완전한 형체시며, 영원한 말씀이시며, 생명의 빛이신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화해자로, 대속자로, 그리고 치유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구속해야 할 죄악이 발견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보좌를 출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수고로 이루어진 지식, 선행, 권세… 이 모든 것이 폐하여질지라도 끝까지 불변하는 힘이 되어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와 함께 영원히 거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고전 13: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합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불변하는 사랑이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은 공간적인 제약도 시간적인 한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절)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접촉되었을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이 인간에게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은총은 하나님으로부터의 격리, 즉 무지와 불순종을 극복합니다.
(살후1:8-10)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파리로 여행하던 제네바의 '밀란' 박사가 기독교에 대해 시시콜콜 알고 싶어 하는 한 젊은이와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박사가 모든 질문에 대해 성구를 인용해 가며 대답하자 끝내 젊은이가 대꾸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그 성경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나요? 그런 대답은 나에게 무의미하답니다.' 그러나 밀란은 한 마디의 대답을 할 뿐이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너의 죄와 함께 죽을 것이다.' 둘은 헤어졌고 수년이 지났을 때 밀란은 다음과 같은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성령의 칼로 나를 거듭 찔렀습니다. 그때 난 당신과 논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싸웠던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을 극복합니다.

(계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합니다.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죽음을 극복합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합니다

한 쌍의 젊은 남녀가 결혼을 하였는데 부인은 신앙인이었고 남편은 불신자였지만 결혼 후에 남편도 예수를 믿기로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난 후에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부인이 교회에 가는 것까지도 반대하는 입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냉전이 계속되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온 남편은 밥상을 치운 채 가방 속에서 이혼수속을 밟아온 서류를 꺼내놓고는 도장과 인주까지 준비하여 내밀면서 "당신, 나를 택하겠소, 예수를 택하겠소? 만일에 예수를 택하겠다면 우리 서로 갈라섭시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님 때문에 당신을 버릴 수가 없소. 예수님이 내게 한평생 동안 당신만을 남편으로 섬기며 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마 19:5,6)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었습니. 만일 이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먼저 당신에게 이혼하자고 했을 것이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이 등 뒤에 와서 하는 말이 "정말 당신이 믿는 예수가 나를 버리지 말라고 하셨소? 여보, 내가 잘못했소. 그런 예수라면 나도 다음부터 교회에 나가겠소." 두 부부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 이후, 이 가정은 진실 되게 신앙생활을 하며 지금껏 행복하게 살고 있다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남편을 용서한 아내의 사랑이 남편의 마음을 녹였고, 예수님 때문에 이혼 직전에 이르렀던 가정에 행복이 찾아들었고, 예수님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부부의 마음이 평안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웃 사랑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38, 39절)라는 예수님의 대답에서 우리는 첫째 번 사랑의 계명이 연장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도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우리의 삶과 실질적으로 관련된 또 다른 한 인격과의 관계성 속에서 나타나야 할 태도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율법들 하나하나가 지향하는 바가 예수께로 나아오게 하려는 데 있듯이 첫째 되는 큰 계명과 둘째 되는 계명은 서로 상충되지 않습니다. 이 둘이 별개의 것으로 나뉘지 않는 한 우리는 한 가지 목적 때문에 이것들을 지켜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도 올바르지 못하며,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결코 올바를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가 실행해야 할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의 속성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할 때 거짓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으며, 그를 최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한 관계가 성립될 수 없듯이 우리는 형제를 대할 때 나와 동일한 소중한 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진실하게 대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일 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합니다.

형제 사랑을 가장 큰 의무로 우리에게 부과합니다. 이렇게 형제 사랑하기를 강력히 명령하는 것은 종종 삶의 형편이 우리로 하여금 형제를 미워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형제와 성격이 맞지 않을 때, 혹은 형제가 실수로 커다란 잘못을 범할 때 우리는 종종 형제와 원수 관계를 맺습니다. 본성으로는 도저히 형제를 사랑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엄격한 의무로 형제 사랑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자율적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의무감에 의해 억지로라도 해야 할 만큼 형제 사랑은 중요한 것입니다. 본성적인 힘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을 때 하나님의 법으로라도 복종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성경은 약하고 어려움 가운데 처한 형제가 곧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증거합니다
(마 25:40-43)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보다 어려운 자들을 도와주고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1, 2)고 훈계합니다.

우리는 곧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는바 형제를 미워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그것은 이율배반적인 행위로서 그러한 자의 예배를 하나님은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목숨을 바쳐 형제를 사랑할 때 주님에 대한 가장 큰 은혜 보답으로 인정하십니다.
(요 15:12,1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합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무료 결핵 요양소에 입원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요양소에 온지 1년이 다됐지만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여정이 아무도 믿고 대화를 할 상대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준 듯 했습니다. 매일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내다보며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근처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형제님! 예수를 믿으시죠. 평안과 기쁨이 옵니다." "예수? 웃기지 마쇼. 난 피곤하니 돌아가시오." 집사는 그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예수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너무 굳어 있었습니다. 집사는 결국 포기를 하고 문을 나서려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가 집사를 불렀습니다. "이봐요. 아주 추워요.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을 내게 줄 수 있나요? 그걸로 몸을 좀 덮어줘요." 집사는 잠시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곧 예수님을 생각하고 자기 옷을 벗어 그의 몸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방을 나서려 했습니다. 그때 다시 그가 그를 불렀습니다. "이봐요. 당신이 갖고 있는 성경책으로 내 머리를 고여 줘요. 베개가 너무 낮군요." 집사는 그 말대로 한 후 다시 방을 나서려 했습니다. 다시 그가 불렀습니다. "이봐요. 너무 덥군요. 이제 옷을 다시 치워줘요." 집사는 그의 몸을 덮은 옷을 걷어 옷걸이에 걸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봐요." 다시 그가 불렀다. 집사는 드디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습니다. 몸을 홱 돌려 한마디 하려던 집사는 그만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믿는 예수라면 나도 한 번 믿어보겠어요."
우리도 "당신 같은 사람이 믿는 예수라면 나도 한 번 믿어보겠어요." 하는 자리에 함께 합시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은 모든 율법의 총체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강조한 바와 같이 '남을 사랑하는 자야말로 율법을 다 이루는 자'(롬 13:8)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을 죄인들에게 친히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갈보리 십자가 위에 달리신 어린양 예수 안에서 이미 천명되었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사랑의 완성자시며, 온 율법의 성취자이십니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그의 사랑의 실체가 우리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재 확증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를 앞두고 교사 강습회가 열립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됩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고마워 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됩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깊은사랑으로 어린이를- 도로티 로톨트 )
교사 강습회의 주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아웃을 사랑하며 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참된 사랑을 배우도록 가르치기 위하여 먼저 배우는 교사들을 위하여 관심가지고 기도로 돕는 모두가 됩시다.(강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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