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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나니아와 삽비라 (행 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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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굳게 언 얼음덩어리라고 해도 봄이 오고 날이 따뜻해지면 다 녹아내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다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자연이 어느새 새싹이 돋기 시작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생명들로 가득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가득했던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빛이 비쳐오게 되면 죄악의 어두움은 다 물러가고 은혜로 우리 마음이 채워지게 됩니다. 따라서 은혜 아래서 살아가게 되는데 문제는 어둠의 세력들이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우리를 흔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함으로부터 시작된 아름다운 역사들을 우리는 쭉 지켜보고 있습니다. 특히나 자기들의 가진 것을 하나도 자기 것이라 하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어 필요한 자들을 도움으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들이 없고 모두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귀한 삶을 살았던 초대교회의 모습은 진정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천국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본보기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었던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던 바 그에게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이후로는 그의 본명보다는 별명으로 불리며 더욱 크게 알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교회의 분위기는 많은 성도들로 하여금 함께 감동을 받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었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시험에 빠져 교회를 어려움에 빠트리는 사람들도 있어서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시험과 올무에 빠지게 만드는지 함께 살핌으로서 믿음 안에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교훈을 삼고자 합니다.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사도행전 2장을 통해서 먼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무리들 가운데 임하고 나니 먼저 저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담대함을 얻어 예수가 그리스도라 증거합니다. 즉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무리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서 모여든 무리들을 향해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주었던 예수야 말로 우리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로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시었고 이 세상의 끝 날에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시게 될 것이라"고 증거하였고 그 전하는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믿는 무리들이 그 날에 삼천 명이나 더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아울러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쓰게 됩니다.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는데 이는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습니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고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성전 아름다운 문 앞에서 구걸하던 날 때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며 사도들과 함께 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성도들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으며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가운데 성도들을 돌보는데 으뜸 되는 사람이 바로 바나바라는 별명이 붙여진 요셉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요셉의 섬기는 모습은 다른 성도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어서 앞 다투어 섬기는 일에 동참을 하게 되었던 것이요 그렇게 섬기는 무리들 가운데 동참했던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으로 충만한 초대교회의 모습은 마치 칭찬 릴레이처럼 서로의 마음을 섬김의 자리로 이끌어 주었고 서로가 서로를 섬기다 보니 많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요 그래서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믿는 무리들 가운데 동참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만 갔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우리가 진정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주의 종의 가르침을 따라 말씀 안에 살아가야 합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6절로 17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디도서 3장 4절로 8절에서는 “그러나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께서 그 인자하심과 사랑하심을 나타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을 따라 거듭나게 씻어주심과 성령으로 새롭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령을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서,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참됩니다. 나는 그대가, 이러한 것을 힘 있게 주장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일에 전념하게 하기 바랍니다. 선한 일은 아름다우며, 사람에게 유익합니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 심령에 부어주시어서 거듭난 자녀요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로 삼아 주셨기에 우리는 마땅히 선한 일에 전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선한 일이란 먼저 담대히 나아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요 또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마치 주님을 섬기듯이 섬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필요한 도움이란 먼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은혜로 붙들어 주어야 하고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와 칭찬을 아까지 말아야 하는 것이요 물질적으로도 어려움이 없도록 필요한 것을 미리 예비하여 도움의 손길을 펼쳐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사랑을 가지고 이웃들을 향해서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원망과 시비를 버리고 오직 사랑으로 용납하고 감싸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원망하고 시비합니까? 서운함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사랑과 관심을 덜 받고 있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먼저 관심을 주고 내가 먼저 사랑을 베풀도록 하십시오. 그럴 때 나 또한 관심을 얻을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 않고서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사랑으로 심으십시오. 관심을 받고자 원한다면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아부어주십시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섬김으로 하나가 될 때 다시 말해서 한 마음과 한 뜻이 될 때 거기에 오붓한 정이 깃들고 거기서부터 참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먼저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내가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다가 설 수 있도록 하십시오.

참된 은혜 아래 살고자 원한다면 성령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귀한 본보기로서의 요셉을 통해서 우리는 교훈을 받습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아름답게 섬겼으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별명을 얻었겠습니까? 그는 그 별명에 어울리게 도무지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았던 사람들을 잘 위로하고 격려하고 붙들어 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귀한 일꾼 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살게 되었던 사람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과 마가입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로 불리는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데 앞장섰었던 사람입니다. 마가 역시 초대 교회 복음 전도 사역에 찬물을 끼얹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울을 붙들어주고 옆에서 격려하여 줌으로 바나바는 사울로 하여금 자기의 자랑스러운 히브리 이름으로서 “하나님께 청함을 받았다”는 뜻의 사울을 버리고 로마 시민권자로서 사용하던 헬라식 이름 “작다”는 뜻의 바울로서 살아가며 복음 증거자가 되게 하였던 것이요 그 복음 사역에 동행하였다가 너무도 힘이 든다고 해서 도망쳐 버림으로 말미암아 복음 전도 사역의 큰 걸림돌이 되었던 마가를 끝까지 붙들어 주고 격려함으로 말미암아 베드로의 수제자이자 나중에는 바울조차도 그가 우리에게 유익한 자라고 할 정도가 되게 만들어 이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귀한 사역자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귀한 섬김이 로서의 바나바를 보면서 마음에 크게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였던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바나바가 자기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어 필요한 자들을 돕게 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기들도 이렇게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너무도 아름다운 섬김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서 얼마를 따로 떼어 놓았던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재산이 자기들의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얼마를 가져다 사도들의 발 앞에 놓든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감동 되는대로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을 자기들이 판 것의 전부라고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들으시오.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사탄에게 홀려서, 그대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의 얼마를 몰래 떼어놓았소?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의 것이 아니었소? 또 팔린 뒤에도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숨졌습니다. 이 소문을 듣는 사람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으며 젊은이들이 일어나, 그 시체를 싸서 메고 나가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서, 아나니아의 아내가 그 동안에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옵니다.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들이 판 땅값이 이것뿐이오? 어디 말해 보시오.”
그러자 삽비라가 대답합니다.
“예, 그것뿐입니다.”
베드로가 삽비라에게 말하기를 “왜 그대들 내외는 서로 공모해서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고 하였소? 보시오. 그대의 남편을 묻은 사람들의 발이 막 문에 다다랐으니, 그들이 또 그대를 메고 나갈 것이오.”

그러자 삽비라는 그 자리에서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져서 숨졌습니다.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그 여자가 죽은 것을 보고서,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묻습니다. 온 교회와 이 사건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바나바의 섬기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 나도 저렇게 섬기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것은 성령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이렇게 섬기면서 살아가도록 감동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성령의 감동하심대로 순종했습니다. 문제는 그들 마음 가운데 성령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려고 하지를 않고 그 마음의 욕심을 따라 얼마를 숨겼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물론 그들도 바나바처럼 존경과 사랑과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속에 돈에 대한 집착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요 이를 잘 아는 사탄이 그들의 마음을 홀렸던 것입니다. .

디모데 전서 6장 10절에서 바울 사도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라고 권면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였던 것이요 그 돈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사단의 미혹을 받아 성령을 속였다가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돈을 사랑하면 안 됩니까?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사람들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입으로 주를 부인하면 사하심을 얻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역하게 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을 섬기도록 감동하실 때 그것은 바로 심은 그대로 거두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십시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로 풍성하게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시고자 해서 먼저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심도록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성령의 감동하심을 우리가 거역하게 되면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거두게 되지만 할 알 그대로 있으면 그 있은 것마저 빼앗기게 되리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왜 우리가 주님 앞에 십일조와 예물을 드려야 합니까? 왜 우리가 우리의 가진 것으로 지극히 작은 자들을 섬겨야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섬겨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우리를 복 주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여 나의 가진 것으로 섬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복 주시고자 하시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르게 되면 우리가 모든 필요한 것에 넘치도록 후히 부어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며 살게 되지만 그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르지 아니하고 가진 것을 내 품안에 숨기게 되면 그것은 곧 하나님 보다 가진 것을 더 사랑하는 것이 되어 그 가진 것이 하나님을 대신하게 되니 마땅히 하나님이 그것들을 내게서 멀리 던져버리시게 되고 아픔과 고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심지어는 우리의 목숨마저도 잃게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섬기는 일에 힘쓰십시오. 기쁨으로 드리고 기쁨으로 섬기십시오.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시간을 드리고 우리의 정성을 드리며 우리의 가진 것으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사람이 되어 멸망당하는 자가 아니라 바나바처럼 존경받고 칭찬받고 상급 받는 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우리의 가진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도록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는 대로 따르십시오. 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하십니까? 복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풍성하게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응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바로 순종하십시오. 깨어 기도하십시오.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바로 섬기도록 하십시오. 누군가 내 주위에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눈에 뜨이거든 즉각적으로 그를 돕도록 하십시오. 주님 앞에 해야 할 일이 있거든 없는 시간을 내어서라도 감당하도록 하십시오. 주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 마땅히 그들을 찾아 복음을 전하도록 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거든 사랑으로 용서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도록 하시는 배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그 어떤 일이든지 간에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뜻대로 순종하도록 하십시오. 주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준행하도록 하십시오.

아무쪼록 우리들 가운데는 교회의 풍성한 은혜의 자리에 찬물을 끼얹는 분이 아무도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들 모두가 바나바와 같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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