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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멋쟁이 성도 (행 13: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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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 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나갈 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행13:40-43)

우리의 마음에 참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시온 찬양대를 통하여 우리의 영광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찬양을 통하여 새 힘을 얻게 해 주시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말씀 중에 찾아오실 줄로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아멘’ 과 ‘은혜’라는 말입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성도님의 얼굴에 은혜가 넘칩니다.” 은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은혜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헬라어로는 「카리스」라고 하는 말인데, 이 말의 뜻은 은혜 받은 얼굴을 보면 기쁨이 넘칩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뜻이 하나 있습니다. ‘멋쟁이’ ‘매력이 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에 보면 ‘charm’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charm’ 이라는 말은 ‘카리스’라는 말입니다. 헬라어 ‘카리스 = 은혜’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 ‘charm’이라는 말이 ‘매력이 있다. 멋쟁이다.’ 라는 그런 뜻입니다. 우리 한남제일교회 성도들은 멋쟁이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속적으로 멋쟁이가 아니라 영적으로 멋쟁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멋쟁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멋쟁이로 사는 것인지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멋쟁이 성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보세요.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라고 말을 했습니다. 바울전서에 보면 감사라는 말로 가득 찼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도 감사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감사가 빠져버리면 불평이 되어 버립니다. 기도에 감사가 빠지면 원망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감사를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면 감사거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 거리가 많겠지요. 그러나 사도 바울은 환난 중에서도 감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나 같았으면 그런 상황에서 원망하고 불평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환난가운데서도 감옥에서도 감사를 했습니다.

멋쟁이 사람들은 환난 뒤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복을 바라보면서 환난 중에서, 병중에서도 질고 앞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서소문교에서 이 장로님 이라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7년 전에 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 하루 전 날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나이는 저랑 동갑인데 ‘이 장로님이 수술을 앞두고 얼마나 걱정이 되고 염려가 될까 얼마나 두려워하실까?’ 걱정을 하면서 순천향병원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문을 열어보니 분위기가 다릅니다. 목사가 온다는 말에 세수를 하셨는지 얼굴이 환합니다. 활짝 웃으면서 저를 맞으시더라구요. 제가 장로님 얼굴을 보니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장로님! 어떻게 장로님 얼굴에 이렇게 은혜가 넘칩니까? 두렵지 않습니까? 불안하지 않습니까?” 물었습니다. “목사님! 물론 처음에는 불안했지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나의 모든 병을 맡기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감사가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수술을 통해서 내 육성이 깨지고 성령으로, 성령의 불로 나를 수술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시더라구요. 제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오면서 “그 장로님 환난 중에서도, 고통가운데서도 감사하는 모습이 얼마나 멋쟁이이십니까?” 환난 중에서, 질고 가운데서, 고통가운데서 감사를 하는 사람은 참으로 영적으로 멋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나서 아주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직장예배와 교회에서 잘 봉사를 하고 계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감사거리를 주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이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금식기도원에 가 보았더니 군데군데에 「 감사하면 산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감사하면 산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면 삽니다. 하나님의 복과 은혜는 언제나 감사하는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불평하는 입을 통하여 빠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입이 항상 열려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개척교회 젊은 목사 부인이 소화가 안되서 병원에 갔습니다. “부인! 미안하지만 위암입니다.” “그래요? 내가 위암일 리가 없는데요? 내 나이 40인데요?” “위암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큰 병원에도 다 찾아가 보았습니다. 분명히 위암이었습니다. 사모님은 자리에 그만 누웠습니다. 남편 목사가 미웠습니다. ‘개척교회 사모라고 밤낮 수고만 하더니 그 뒷바라지하기에 얼마나 내가 피곤했나? 남편 때문에 내가 병이 났어!’ 그만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의 입에는 기도는 있었지만 감사는 없었습니다. 하루는 개척교회 목사님이 선배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선배목사가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서는 집에 가려는 이 목사에게 “여보게, 문방구에 가서 공책한권과 연필하나를 사서 부인에게 감사거리를 노트에 다 적어보라고 하게나... ” 후배목사는 선배목사의 말을 듣고 집에 가는 길에 노트와 연필을 사가지고 갔습니다. 자리에 누어있는 아내에게 노트와 볼펜을 내 놓으면서 “당신이 감사거리를 노트에 적어 보시오.” 아내가 화가 나지고 버럭 화를 냈습니다. “내가 이 꼴이 되어서 감사거리가 어디 있냐고? 뭘 적으라는 거요?” 화를 냈습니다. 그는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여러날이 지났습니다. 아내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감사거리를 한번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내 육신은 죽어가지만 내 영이 구원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첫째는 영혼구원에 감사드렸습니다. 우리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지는 못하지만, 좋을 옷을 입히지는 못하지만 학교에 가서 공부도 잘하고 이런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자녀를 생각할 때 이런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거리가 생겼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남편은 바람피운다고 하는데 우리 남편은 고지식하고 개척교회 한다고 바쁘지만 바람피움 없이 개척교회에만 온 신경을 쏟으니 이런 남편을 주신 하나님께도 감사거리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감사거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감사거리를 적다보니 노트 한권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인은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불평하고 원망했던 내 죄를 용서해주옵소서’하면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거리를 두고 회개를 할때 사모님의 마음속에 더 성령이 기름 부어지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사가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이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암이 치유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면 산다” 여러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놀라운 건강을 회복해 주시고 현대의학이 손을 못 대는 병도 하나님이 치유해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적은 감사하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솔직히 하루에 세 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하나님의 이적을 보여주실 줄로 믿습니다.” 감사하면 멋쟁이입니다.

두 번째는 환난 중에도 찬송하는 사람이 멋쟁이 성도입니다.

시편 33편 1편에 보세요.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불교와 원불교에도 찬불가가 있지요? 그런데 찬불가는 진정한 찬송이 아닙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참되신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야 말로 찬송의 종교입니다. 성도의 찬송은 기쁠 때만 찬송을 하나요? 고난 중에도 슬플 때도 그래서 결혼식에서도 장례식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찬송을 끊지 말아야합니다. 욥기 1장 21-22절을 보세요.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 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언제 우리가 찬송을 불러야 합니까? 찬송은 평안할 때 불러야 하겠습니까? 물론 그럴 때는 당연히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환난 당할 때 소망이 없고 희망의 불꽃이 보이지 않을 때 더욱 그럴 때 일수록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가 바로 멋쟁이 성도입니다.

오래전에 영등포 시장에 큰 불이 났습니다. 1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 소방시절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너무 큰 불이 났기 때문에 미팔군 소방대에 연락을 했습니다. 미팔군 소방대가 지원이 될 정도로 큰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영등포시장 안에 영은교회라고 하는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 집사한분이 일 년 전에 남편을 여의고는 그 시장 안에 조그만한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을 개조해서 살림방도 있고 자그마한 가게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불이 났습니다. 영등포시장에 불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목사님과 성도들이 그 집사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다 시장으로 가버린 후에 그런데 불이 난 참혹한 상황을 보면서 그 여집사님은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고 한참이 지나자 그 여집사님 입에서 찬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일 당할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예수를 더욱 의지 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할 것 뿐일세. 아무일을 만나도 예수의지 합니다
(342장)하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미팔군 소방관이 보니까 어떤 여자가 불 난 것을 보고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 여인이 찬송을 부르는지 몰랐지요. 그래서 통역관에게 ”저 여자가 미친 여자가 아닙니까?“ 통역관이 알아보니까 그 여자는 교회에 나가는 성도로 자기 가게가 타는 모습을 보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소방관이 ‘저 여인이 부르는 노래는 단순히 노래가 아니라 찬송이다” 찬송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군대장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했습니다. “저 여인의 가게 터에 5층 건물을 지어 주겠소” 불이 다 꺼진 후에 몇 달 후에 그곳에 5층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찬송의 결과는 하나님의 엄청난 복으로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소망의 불이 보이지 않을 때, 환난에 부르는 찬송은 하나님의 이적을 불러 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을 당해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역대하 20장에 보세요. 여호사밧이 유다 왕으로 있을 때 모압과 암몬과 에돔 사람이 연합하여 연합군대를 조직하여 유다를 공격했습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민족이 얼마나 겁에 질렸던지 예루살렘에 모여서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중에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가 끝난 그 다음날 여호사밧은 찬양대를 조직했습니다. 찬양대에게 거룩한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는 몇 안되는 유다군대 앞에 찬양대를 앞세우고 찬송을 부르면서 연합군대를 진격했습니다. 그때 여러분 놀라운 이적이 일어난 것을 아시지요? 모압이나 에돔이나 암몬 사람과 싸움이 붙었습니다. 서로 죽였습니다. 유다군대가 적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곳에는 시체만 널려 있었습니다. 환난 때에 부르는 찬송은 하나님의 이적을 가져옴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신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홀연히 지진이 일어나서 옥토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발에 걸려 있는 쇠사슬이 끊어지는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이웃을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바울과 실라처럼 여러분도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까? 우리들 가운데 분명히 어려움을 만난 사람이 있을 줄로 압니다. 환난의 밤을 만난 성도들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질고와 고통 속에 있는 성도들이 있는 지도 모릅니다. 찬송 부르시기 바랍니다. 어떤 경우에도 찬송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칠흙같이 절망의 밤이라도 기도하고 찬송을 하면 하나님이 이적으로 응답해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하는 사람이 멋쟁이입니다.

세 번째는 섬기는 사람이 멋쟁이 성도입니다.

마태복은 20장 28절을 보세요.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는 섬기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3장11절을 보세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6․25사변때 서울에 있는 연세대학교 분교가 부산 영도에 있었습니다. 저는 영도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영도교회의 목사로 있었는데 그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전에 영도교회에 오기형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지금은 서울 영락교회의 오기형 원로 장로님이십니다. 교수님, 연대 교육학 교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부산에 연대 분교의 학장으로 계셨습니다. 영도교회가 가난한 교회였기 때문에 의자 없이 맨땅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안내 당번들은 신발주머니를 나누어 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영도교회에는 연대교수는 물론 연대 학생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오기형 집사님은 주일마다 신발주머니를 들고 학생들이 오면 인사를 하고 신발주머니를 돌렸습니다. 학생들이 무안해 하면서 얼마나 겸손한 그 집사님께 은혜를 많이 받는지 모릅니다. 멋쟁이는 섬기는 사람입니다. 서울의 소망교회를 보세요.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이명박 장로님 주차장에서 호루라기를 불고 주차안내 띠를 두르고선 주차 안내원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그렇게 했습니다. 섬기는 사람이 멋쟁이입니다. 우리 서소문교회를 보면 집에 식모를 두 사람씩이나 두고 아주 부자로 살면서 찬물에 손하나 안 댄 사람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찬물에 손을 넣고 밥그릇을 나르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멋진지 모릅니다. 섬기는 사람이 멋쟁이입니다. 대접받는 사람이 멋쟁이가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멋쟁이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여인이 이유를 알지 못하는 두통과 불면증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찾아 갔습니다 의사가 한참 검사를 하더니 부인을 보고 하는 말이 “부인! 내가 약을 처방해 주겠습니다. 그런데 하나 꼭 명심을 해야 합니다. 이 약은 당신의 병을 고칠 수는 없어요. 그런데 한 가지 방법은 있어요. 자기에게 향하는 눈을 타인에게 한번 돌려 보세요. 자기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고 타인에게 눈을 돌려 보세요. 쉽게 말해서 봉사를 한번 해보세요.”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 자기에게 집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부인이 집에 돌아 와서 ‘나를 향한 눈을 어떻게 남에게 돌릴 수 있을까?’ 그래서 병원에서 호스피스가 되기로 했습니다. 호스피스가 되었습니다. 큰 병원에서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뒷바라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대소변을 받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말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들의 잔심부름을 해 주었습니다. 자기에게 향했던 눈을 타인에게 돌렸습니다. 봉사하는 시간에 시간을 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시간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몇 주일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면증과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남을 섬기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에서 멋진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환난 중에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멋쟁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멋쟁이 성도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멋쟁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늘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김호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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