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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맥추절의 감사 (신 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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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가 아주 뜨겁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우며 응원들을 하시느라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도대체 월드컵 축구 경기가 뭐 길래 그렇게 열광을 하는 것일까요? 물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항상 약소국가라고 하는 서러움을 다 날려 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니 평소에 쌓여 있던 스트레스들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쉬움 속에 이제 우리의 경기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 있기에 또 마음으로부터 진심을 다해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응원한 국민들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다음 주일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맥추 주일은 가을부터 시작해서 겨우내 지은 농사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봄 작물을 거두었기에 감사를 드리는 날은 아닙니다. 비록 많은 것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감사고 힘써 수고하고 땀 흘려 거두게 되기까지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 날이 신약에 와서는 가장 중요한 역사가 기록된 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날이 바로 성령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하신 성령강림절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밀 보리를 거두고 감사드리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날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이지 함께 은혜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로부터 일곱이레를 세는데, 밭에 있는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시작하여 일곱이레를 세십시오. 그리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신 복을 따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을 가지고 와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칠칠절을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맥추절 또는 칠칠절로 불리는 이 날을 이렇게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칠칠절이 단순히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나서 그 곡식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리는 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날은 바로 모세의 인도를 따라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자락에 머물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전하여 받은 바로 율법 전수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삶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곡식을 거두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뜻과 더불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영혼의 양식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뜻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은 것을 감사하며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깨닫고 은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말씀되신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어 들이게 된 것을 감사드리는 구원 감사절이요 동시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영과 육의 양식을 날마다 허락하여 주시는 것을 감사드리는 날이 바로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하지만 밭에 곡식이 풍성하게 열매 맺어 희어졌다 해도 낫을 대어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결코 내 것이 되지 않고 그것을 내 양식으로 삼지 않으면 결국 나는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주로 믿어 거룩한 백성 되어졌음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말씀을 따라 순종함으로 살아가고자 다짐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날이 바로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은 복 주신 하나님께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먼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의 첫 번째가 영생입니다. 영생을 얻어 우리가 하늘나라 백성이 된 그것으로 인해서 먼저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의 후사 즉 상속자로 세워 주셔서 하늘의 모든 아름다운 복을 누리게 하시며 이 땅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심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사의 예물을 얼마나 드려야 하느냐 하면 힘을 헤아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헤아린다고 하니까 내 나름대로 계산을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도 계십니다만 여기 헤아린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맛싸라고 하는데 이는 곧 힘에 비례하여 다시 말해서 내 힘껏 힘에 넘치도록 미리 준비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 형편에 넘치도록 힘대로 드리되 그것도 억지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원해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 예물 드리는 것 자체가 부담이 아닌 기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심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고 할 때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우리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돈으로 계산할 수가 있겠습니까? 값을 따질 수 있느냔 말입니다. 목숨이 얼마나 귀한지 온 세상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생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것을 생각한다면 하나님께 우리가 어떻게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단순히 우리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그 감사가 끝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풍성한 예물을 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풍성히 누리며 살 수 있단 말입니다.

레위기 23장 13, 14절에서는 첫곡식을 먼저 드리되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물로 또한 바쳐야 하고 이렇게 하나님께 첫곡식을 바치기까지는 빵도 볶은 곡식도 햇곡식도 먹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받았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벽에 나가 만나를 거두었듯이 먼저 주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따라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 주신 것으로 인해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칠칠절을 가리켜서 다른 말로는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구약 시대는 이날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해 받은 율법 전수일 이었다면 신약에 와서는 바로 이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던 120여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한 성령 강림절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날 성령이 성도들에게 임하게 된 것일까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따라 악한 귀신에게서 벗어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에서 고침을 받는 귀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기도 하며 많은 말씀을 듣고 배웠던 제자들조차도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렸습니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니 세상의 부귀영화를 얻고자 하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막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니 이리저리 흩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다니시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 생명의 시작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고 난 다음 이 땅에 남겨진 무리들에게는 여전히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500여 명이나 되었건만 막상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내가 가면 너희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은 120여 명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약속을 따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회개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했던 120여 성도들에게 오순절날 하늘로부터 세찬 바람이 부는 듯 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면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고 그날 이후 더 이상 제자들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조차도 저들을 두렵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강한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나아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그 전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그 날에 3천명이나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귀한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가 아니면 깨달을 수가 없고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역사하는 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의 주관자 되시는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실 때 내가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될 뿐 아니라 또한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로 살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가 아니고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로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 뿐 아니라 아직 우리가 연약하여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모를 때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 나를 깨우쳐 바른 길로 이끌어 가시며 능력과 권세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나를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을 말씀해 주실 것이다.” 라고 요한복음 16장 8절로 9절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성령을 통해서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였던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더 나가서 자신의 그릇된 행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고 요한복음 14장 26절은 또한 말씀합니다. 따라서 말씀을 받은 우리가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내 지식, 내 능력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가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맥추 감사절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길을 열어 주시고 이 길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 위해서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 내가 방황하며 두려워하고 염려할 때에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지 않느냐? 내가 네 하나님이 아니냐?”고 하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 여전히 변함없이 나를 도우시며 붙들어 주시는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 바로 맥추 감사절이요 성령 강림절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는 맥추절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울러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으로 인해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그 곳에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당신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것을 기억하고, 이 모든 규례를 어김없이 잘 지키십시오."라고 주님은 또한 명령하십니다.

따라서 맥추절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반드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아야 하는가 하면 전에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생각해서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초청한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대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풍요로운 땅 고센 지방에서 살도록 허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풍요로운 강변에서 무엇하나 걱정할 것이 없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바뀌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듯 번성하다간 이 나라가 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나라가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니냐?”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들이 딴 마음 먹지 못하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여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종으로 삼아 버립니다. 그래서 졸지에 종의 신세로 바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하루를 신음하며 고생스러운 날들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바로 그 때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그토록 고생을 해 보았으니 지금 어렵게 사는 자들의 마음과 그 입장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당신들과 당신들의 아들과 딸과 남종과 여종과, 성 안에서 같이 사는 레위 사람과 떠돌이와 고아와 과부까지도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해야 합니다.”는 것입니다. 여기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지 말로만 우리 함께 즐거워하자 한다고 해서 즐거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즐거운 마음을 가지도록 실제적으로 그들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들과 아픔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웃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아니 마음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삶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3년에 한 번은 하나님 앞에 마땅히 드리는 수확의 십분의 일에 더하여 십분의 일을 더 준비하라.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와 객들을 돌보도록 하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너무도 힘든 때입니다. 무엇 하나 마음 편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편 가르기에 바빠서 나라꼴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그런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죽하면 지방 선거에서 야당 일색으로 바뀌고 말았겠습니까? 거기다가 모처럼 마음껏 고함지르며 들고 뛸 수 있었던 월드컵 축구마저도 16강 탈락으로 인해 열기가 식어버리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온 나라가 한편으로는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러나 아무리우리가 우리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지 않으면 나의 모든 계획하고 바라는 일들이 다 허사가 되고 만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까? 살기가 정말 힘들기에 더욱 우리는 연약한 자들을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을 돌보아야 합니까? 그것은 내가 베푼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저들을 섬긴다고 하는 자세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그들과 마음으로부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베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섬길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먼저 그런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도울 때 “나로 하여금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들의 발을 씻기면서 “주님 저에게 주님의 발을 씻길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섬기는 자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영화롭게 하시고 풍요롭게 하셔서 꾸어줄 지언정 꾸이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대적이 나를 치러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하게 되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고아와 과부 떠돌이들은 내게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베푼 것만큼 받아야 된다는 그런 마음은 처음부터 생각도 하지 말고 베풀어야 하는 것이요 그럴 때 하나님께 꾸인 것이 되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지극히 작은 자에게 눈을 돌려 무엇으로 섬길까를 찾아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펼치며 함께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거두어 들여야 합니까? 그리고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까? 우리는 먼저 사랑으로 심고 사랑으로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내가 어떻게 저들을 섬길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단지 육신적인 삶에 매여 한 푼 돈에 얽매이고 단지 편한 것만 생각하며 살지 말고 또 하나님 앞에서도 단지 쥐꼬리 같은 예물을 드리며 내 할 일 다 했다고 하는 그런 사람이 도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또한 지금의 세상에 내가 농부도 아닌데 왜 맥추 감사 주일을 지켜야 되느냐고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날이야말로 정말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날이요 하나님께서 성령을 내게 주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도록 힘주시며 성령으로 봉사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 나도 저렇게 버려질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나도 베푼다는 마음으로 작은 자, 연약한 자를 돌아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 앞에 풍성하게 예물을 드려 참된 감사를 드리고 그로 말미암아 심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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