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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이 없다면 (시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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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N. Copernicus)가 지동설(地動說)을 발표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지구를 네모반듯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땅덩어리가 공처럼 둥글다거나 그것이 자전과 공전을 통하여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로 날아다닌다면 지구 표면을 덮고 있는 바닷물은 어떻게 되고 사람이나 물체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과학적인 지식이 꽃을 피운 르네상스(Renaissance) 이후에도 하늘이 움직일 뿐 지구는 그대로 있다고 하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한 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갈릴레오(Galileo Galilei)를 정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자기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이해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듭니다.

본문 말씀 1절에서 다윗은 자기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를 논했습니다. 그들은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며 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를 가리켜 “마음이 상실된 자”라고 하였습니다(롬 1:28).
그런데 세상에는 상실된 마음의 소유자가 너무나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적인 지식이 발달하고 물질문명이 향상될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만연하는 불신풍조에 따라서 만일 우리에게 예수가 없다고 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확실하게 다짐하기를 원합니다.

I. 역사의 축(軸)이 무너집니다.

오늘날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연대(西紀)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산정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을 BC(Before Christ) 곧 기원전이라 하고, 예수님 이후를 AD(Anno Domini) 곧 기원후로 표기합니다.

(1) 인류 역사의 중심입니다.

세상에는 민족이나 나라마다 제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고 또 그것을 가름하는 연대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민족의 뿌리나 나라의 건국과 함께 연호(年號)와 연대(年代)가 붙여지는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족이 있고, 또 특정인을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와 왕조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역사와 연대가 계속되지는 못했습니다. 풀의 꽃과 같이 잠시잠간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민족과 나라의 역사가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 지장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역사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와 역사의 근원자요 그것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2-3).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고 하였습니다(행 17:26).

(2) 선민운동의 중심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놓고 대부분의 경우는 시대마다 이루어져 나온 정치, 사회, 문화의 개념에서 보는 일반적인 역사가 있고 성경에서 말하는 특수한 역사가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모든 것이 역사의 경영자이신 하나님의 주권 속에 포함되어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민족 곧 자기 백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이를 가리켜 구속사(the history of redemption)적 경륜이라고 말하는데 이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타나는 선민의 역사는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게 되는 것의 예언이며, 신약은 그 사실이 성취된 것과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世系)라”고 하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민운동 곧 하나님나라 역사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3) 알파(A)와 오메가(Ω)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희랍어 알파벳의 첫 자와 끝 자를 말하는데 이 말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역사의 시작이요 끝이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22:13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인간이나 역사는 목적이 있고 그것을 이루게 하는 기한이 있습니다(전 3:1).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시간의 제한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히 13:8). 히브리서 1:12에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역사의 시작과 끝을 주장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의 시간을 열어주셨습니다(요 1:2-3).
또한 그는 세상의 종말에 친히 재림하시고, 역사의 문을 닫으십니다. 계시록 21:1에 주님 재림과 함께 체질세계는 완전히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신령한 세계가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주인 되는 예수님을 빼어 놓고는 역사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Ⅱ. 인생의 구심점이 없어집니다.

요한복음 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가지만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이 없이는 우리의 삶 자체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1) 생명의 근원자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자기 임의대로 났다가 자기 마음대로 죽는 자가 없습니다. 주권자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세상에 오기도 하고 때가 되어 불려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왕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전 3:1-2).
예수님은 생명을 있게 하신 근원자일뿐 아니라 또한 그 생명을 유지하도록 호흡을 공급해 주십니다. 사도행전 17:25에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28절에는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에게 산소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은 생명의 근원 자이신 예수님과 생명적인 연결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인생의 목적입니다.

바다에 항해하는 배가 반드시 목적하는 항구가 있는 것처럼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도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 마음속에 예수가 없는 사람은 삶의 목적의식을 갖지 못한 채 덧없이 왔다가 덧없이 가는 뜬 구름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삶의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것을 위하여 매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롬 14:7-8). 바울 자신은 그 인생의 목적을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빌립보서 3:12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3) 능력의 공급자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포로지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환상을 보았습니다(겔 37:1-10). 그는 골짜기에 가득한 해골 떼를 보았는데 그것은 절망상태에 놓여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현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생기가 그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마른 뼈가 소생하는 광경을 체험하였습니다. 여기에 계시된 대로 대언하는 말씀이나 살려내는 생기의 실체도 다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호흡과 생명의 원인자일 뿐 아니라 능력의 공급자입니다. 마치 발광체인 태양의 광선이 모든 반사체에서 빛을 공급하여 밤하늘을 영롱하게 비취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에베소서 1:18-19에는 마음눈이 밝아지면 그리스도로부터 힘의 강력한 역사로 날마다 공급되는 크신 능력의 실체를 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때를 따라 필요한 것이 공급됩니다. 사리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담대함과 용기를 주시고, 인내력도 주시며, 뛰어난 순발력을 행사하게 하십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바울의 서신에도 나타나는데 그는 로마 옥중에 있으면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하고 간증하였습니다(빌 4:13).

Ⅲ. 장래의 소망이 없어집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증거한 바울은 한사코 이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5:17-19).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삶의 근원이요 목적이며 또한 확실한 소망입니다. 예수님이 없다면 내일에 대한 꿈도 희망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시 39:5-7).

(1) 보이지 않는 소망입니다.

로마서 8:24-25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며 다분히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속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서 육신적인 요소들로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전 3:11). 오히려 겉사람의 즐거움보다 속사람의 욕구가 충족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린도후서 4:16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하였습니다.

(2) 미래지향적인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보며 사는 자들입니다. 내일에 대한 꿈이 없이 오늘의 일만 생각하거나 현재의 만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에게 진정한 소망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32에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자기보다 그 자녀들과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하여 준비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한평생 고생스러운 나그네의 생활을 하였으나 이삭과 야곱을 위시하여 오고 오는 후손들이 받게 될 축복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히 11:9).

야곱도 죽기직전 자손들을 불러 놓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그들의 미래를 열어주었습니다(창 49:2-27). 족장 시대의 인물 요셉은 후손들 앞에서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창 50:24).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도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그 후손들에게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리라”하고 가나안 시대의 환상을 제시하였습니다(신 1:11).

(3) 영원한 소망입니다.

고린도후서 4:18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영원하신 분입니다. 히브리서 13:8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소망이 영원하고 확실합니다. 히브리서 6:19에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배를 하나님으로 삼고 부끄러운 일을 영광으로 여기며 땅에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과 함께 끝나고 말겠지만,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사람은 영원한 소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빌 3:19-21). 만에 하나라도 어리석은 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가 없다면 인류의 역사도, 개인의 생명도, 그 의미를 잃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모든 존재의 근본이요 유일한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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