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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사람의 이름-나발(Nabal) (삼상 25:1-13, 히 13:1-8, 마 25: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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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때 유행하던 노래 가운데 “서울, 대전, 부산 찍고”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찍고”라는 것은 반환점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마라톤선수들이 풀코스를 달려가다 보면 반환점(turning point)이 있습니다. 일단 거기까지 가면 말하자면 거기서 “찍고” 출발점을 향하여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하도 기복이 심하니까 국민들이 정말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정책의 실패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경제가 내리막길로 곤두박질 하다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형편이 되면 “바닥을 쳤다”고 말합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어쨌거나 상향곡선으로 회귀할 것이라는 한심스런 소망이라도 가지게 됩니다.

역사도 그렇습니다. 비록 당면한 현실이 매우 어렵다고 해도 어느 시기에 이르면 그 한계점에 다다르게 됩니다. 일제 때 그들의 광란이 마치 하늘이라도 찌를 것 같았으나 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하여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함으로 결국 일본은 패전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치도 그렇습니다. 자유당이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꾀하려고 온갖 비민주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다가 결국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기폭제가 되어 자유당 정권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박정희의 유신 정권, 전두환의 군사 독제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turning point에는 반드시 그 계기를 마련해 주는 어떤 사건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흐름 속에서 역사나 우리 개인들의 삶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이 있으면 보라. 귀가 있으면 들어라. 보는 눈,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사무엘서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자연인의 죽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역사의  turning point를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현 왕인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울 왕에게 엄청난 박해를 받으면서 생명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형편에 빠진 다윗에게도 역시 기름을 부어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국부라고도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 바로 사무엘입니다. 그런데 그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사무엘의 죽음은 지금 이스라엘 역사에 무슨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탄입니다. 그 엄청난 변화가 무엇입니까? 이미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을 버렸다고 선언하신바가 있습니다. 그 선언을 한 사무엘이 죽었다는 것은 이미 사울의 운명, 즉 그의 왕조가 망하게 된 운명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나서 사울 다음 왕 될 사람이 바로 다윗이라고 선언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무엘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그를 통하여 선언한 다윗에 대한 말씀이 그대로 확정된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은 사람이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변경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 기회를 놓쳐버린 사울왕의 운명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최대한 선용한 다윗의 열린 미래를 봅니다.

신약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길 계획을 가지고 있을 때 주님은 그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주셨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 기회를 외면한 가룟 유다는 결국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저 십자가의 죄수 한 사람은 그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을 믿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심으로 사형 틀 위에 있는 그에게 하늘나라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여러분 인생의 turning point를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그 일은 바로 지금 여기서 할 일이라는 것을 아사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만일 우리가 이런 기회를 놓치게 되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2. 오늘 구약 본문에는 3사람의 인물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다윗이요, 다른 두 사람은 나발이라는 사람과 그 아내 아비가일입니다. 부부인 나발과 아비가일이 어떻게 주어진 기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지게 되는 것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복음서에도 영원한 복과 영원한 저주로 갈라지게 된 두 부류의 사람들에 관하여 말씀했습니다. 한 무리를 향하여 주님은 “창세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들이여, 나아와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영원한 복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 무리들을 향해서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을 이렇게 상반되게 갈라놓았습니까? 그것은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발과 아비가일이 소위 한 몸이라고 일컫는 부부이지만 한 사람은 망했고 다른 한 사람은 나중에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다윗에게 대하여 어떻게 했느냐 에 의하여 결정되었습니다. 다윗이 선을 베풀었으나 나발은 그것을 악으로 갚았기 때문에 그는 결국 악의 보응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부자 집 대문 밖의 나사로와 같이 곤경에 처한 다윗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다윗은 자신을 해치는 사울에게 까지도 선으로 대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다윗에게 갚아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기 지극히 작은 자”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기름 부은 사람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러분에게 은혜 베푼 사람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러분의 이웃을 대하는 여러분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바로 주님께 직결된다고 하는 이 놀라운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 이웃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익명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소돔 고모라 성에 살고 있던 롯이 어느 날 문 앞에 앉았다가 지나가는 나그네 두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롯은 달려 나가서 그들을 영접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따뜻한 대접을 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었습니다. 롯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을 모셔 들였습니다. 그때 롯은 그들이 하나님의 천사들인 것을 알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롯에게 대접받은 천사들이 소돔 고모라성의 멸망을 알려주고 속히 피난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나마 롯이 생명을 부지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나그네를 대접했다가 부지중 하나님의 천사들을 대접하게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되 무감각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정말 불시에, 부지중에 나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나 내가 깨어있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무지하기 때문에 나를 찾아오신 주님을 박대해서 그 발걸음을 돌이키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은 시시로 나에게 축복을 가지고 찾아오지만 내 무관심한 신앙생활 때문에 그 축복을 놓쳐버리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세월을 아끼라”고 하는 말씀은 세월을 구해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최대한 붙잡고 살리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에서처럼 영원히 그 축복의 기회를 다시 찾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혹 나발이 다윗에게 한 것처럼 어려움에 처한 여러분의 이웃에 대하여 매정하게 대한 일은 없습니까? 나발이 다윗에게 한 것처럼 마구 폭언을 퍼부어 이웃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습니까? 선을 악으로 돌려 준 일은 없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복을 가지고 여러분을 찾아갔다가 여러분에 의하여 매정하게 박대당하여 쫓겨나게 된 일은 없습니까?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고 하십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말라 그 말입니다. 아직은 우리가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에 겸손하게 귀 기울이시고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위하여 예비하신 축복을 반드시 소유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옛날에는 나발과 같이 광야에서 목양을 하는 사람들은 숱하게 강도떼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광야의 무법자들을 만나게 되면 마치 메뚜기 떼가 온 산천의 푸성귀를 하얗게 갉아 먹듯이 약탈해 갑니다. 그러나 다윗이 나발의 목장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나발은 이런 위험에서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발은 이런 다윗의 은혜를 무시했습니다. 다윗이 너무 어려운 형편에서 무엇을 좀 도와달라고 요구했으나 나발은 홍포 입은 부자보다 더 냉정하게 부스러기도 주지 않았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속담에 “동냥은 주지 않고 쪽박을 깬다”는 말처럼 다윗을 마치 반역자라도 되는 양 악평했습니다.

다윗은 이런 나발을 응징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군사를 몰고 불같이 나발의 목장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그때 나발은 마치 왕이라도 된듯 연회를 베풀고 먹고 마시고 있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그 길로 나발의 목장에 갔다면 그 목장을 초토화시키고 말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야 했을 것입니다.

이 소식을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들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매우 지혜로운 여인이었기 때문에 그는 다윗 때문에 누리게 되는 자기 목장의 평화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듣자마자 급히 차비를 했습니다. 다윗에게 줄 예물을 마련해서 달려가서 다윗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다윗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중에 다윗이 왕이 된 후 이런 감정풀이로 피를 흘린다면 그것이 허물이 될 것이 아니냐고 아주 지혜롭게 다윗을 설득했습니다. 아비가일 때문에 다윗은 그 자리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하려던 일을 중지했습니다.

다윗은 이 일이 단지 아비가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감정풀이를 막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의 기회를 위하여 하나님은 아비가일을 사용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 위기일발의 기회를 위하여 순종하므로 선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아비가일, 나발의 목장 모두를 구해 냈습니다.  결국 나발은 다음 날 술이 깬 다음에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그길로 병이들어 자리에 누웠다가 열흘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악을 그 머리에 갚으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나중에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픽업되어 왕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선한 행위에 대하여 이렇게 보상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 보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필요적절 할 때 필요적절한 일을 위하여 쓰시려고 하십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사야가 국가적인 위기를 당했을 때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겠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일개 선지자가 이 국가적 위기에 처하여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그가 이런 난국에 무모하게 나섰다가 무슨 일을 당할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나 이사야는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이렇게 응답한 이사야가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이사야서를 “제 5복음서”라고 할 만큼 유명한 메시야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가를 잘 모여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이 교회에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무슨 역할을 해 주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러하신 주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시고 여러분에게 큰 은혜와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김이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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