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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승리의 은혜를 입은 요나단 (삼상 1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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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사랑의 교회에 와서 은혜와 영광이 충만한 예배에 참석하였다. 큰 은혜를 함께 나누는 귀한 자리가 되기를 소원한다. 오랫만에 다시 와보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강대상 주변도 많이 달라졌고 주보도 그렇다. 그렇지만 주보에 별지가 많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별지가 많은 것은 사역이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하니 좋은 것이다.

월드컵 축구는 참 아쉬움이 많았다. 선수들과 응원하는 자들은 잘하였지만 심판의 판정은 조금 아쉬웠다. 심판이 스위스를 많이 배려한 것 같아 보였다. 심판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했다. 스위스는 심판의 은혜를 많이 받았고 그 은혜로 인해서 경기를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심판의 은혜를 받으면 경기를 쉽게 이기는데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 인생의 모든 것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요나단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블레셋은 삼만의 병거와 육천의 마병과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군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와 비교하여 이스라엘은 오직 600명 가량의 군사 뿐이었고, 더욱이 그들은 고작 농기구로 무장이 되어 있었으니 도저히 블레셋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병력이었다. 하지만 요나단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어서 승리하였다. 하나님의 큰 은혜는 어떻게 임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자.

(1)하나님의 큰 능력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였다.
요나단은 전쟁의 승리가 사람의 재능과 지혜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만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믿었다. 당시에 블레셋은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요나단은 여호와만을 의지하였다. 여호와는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다. 모든 영적 전투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일어나야 한다. 믿음으로 일어나야 한다. ‘혹시’라는 말은 원문에서 ‘정녕’, ‘확실히’라는 말로 표현된다. 블레셋은 이스라엘보다 강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다.

(2)형식적인 신앙을 의지하지 않았다.
3절을 보면, 제사장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다. 그는 사울왕에 의해서 거기 있었지만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서있기만 하였다. 처음에 사울왕 곁에는 사무엘이 있었지만, 사무엘이 떠난 후에 왕은 에봇을 입은 제사장을 형식적으로 세워 놓았던 것이다.

우리의 기도도 이와같이 형식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주시면 좋고 안주셔서도 그만이라는 자세로 기도한다거나, 꼭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전 국무장관이었던 올 브라이트가 최근에 책 한 권을 썼다. 그녀는 그 책에서 ‘과거의 링컨 대통령은 하나님 편에 서 있기를 기도했는데, 지금의 부시 대통령은 하나님이 그의 편에 서 있기를 기도한다.’라고 꼬집었다. 아히야 제사장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고 그 분의 뜻을 구하는 좋은 도구가 있었다. 바로 ‘기도’였다. 하지만 그는 기도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직분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합당한 직분을 갖고 정성을 다해서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자리만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에서 사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3)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4절을 보면, 당시에 험한 바위가 이편과 저편에 있었다. 그 바위는 얼마나 험했던지 이름도 붙혀질 정도였다. 요나단의 주위에는 이같이 거대하고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서 있었다. 그는 이런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적진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도 이런 장애물들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이런 장애물 앞에서 상황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장애물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자료가 되어진다. 물론 장애물은 없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장애물이 있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있는 꺼리가 되어진다.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방에 홍해바다와 후방에 애굽 군대라는 장애물을 동시에 대적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큰 장애물이었며 모두 이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돌아가자는 의견도 분분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의지하고 기도하여 기적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장애물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오히려 은혜의 현장을 체험하게 한다. 장애물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은혜도 크다. 그러므로 장애물이 크면 클수록 더욱 감사하자. 장애물은 언제든지 있다. 하나님은 왜 장애물을 주시는가?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은혜를 경험하고 더욱 감사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찬송가503장을 보자.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풍랑이 일어나면 그 풍랑으로 인해서 더욱 빨리 갈 수 있다는 신앙고백이다.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속이 상하면 ‘남편(아내)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라고 찬양하자. 배우자가 힘들게 할 때에 힘들어 하지 말자.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상대가 돌아올 때까지 새벽기도도 하고 그동안 안하던 철야기도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이 은혜가 아닌가? 자녀들도 그렇다. 자녀들때문에 속상한다면 그들로 인해서 더욱 큰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이다. 직장과 Business, 질병과 건강문제, 실패와 부도, 신분문제와 관계문제등등… 이들로 인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역사들로 가득하다. 요나단은 그 험한 바위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더욱 크게 응답하셨다.

(4)사람의 수에 의지하지 않았다.
6절을 보면,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하였다. 요나단은 사람의 숫자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10-12절을 보면, 이제 하나님이 블레셋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는 장면이 나온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전진할 뿐이다.

짐승들은 땅에 있는 것을 먹고 산다. 하지만 사람은 땅의 것 이외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부터 오는 은혜와 감사를 기대하고 산다. 그렇게 때문에 사람의 눈 밑에는 짐승에게 없는 근육이 있다고 한다. ‘토끼와 거북이 경주’ 동화를 보면 왜 느린 거북이가 이기는가? 보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토끼는 경주 상대인 거북이만을 보았다. 한참을 뛰다보니 상대인 그 거북이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니 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북이는 상대인 토끼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목표만을 바라보았다.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리니 승리할 수 있었다. 우리도 우리 곁에 있는 경쟁자를 바라보지 말고 오직 우리 삶의 목표인 하나님만을 바라보자. 다른 집사, 권사, 장로를 (경쟁 상대로)바라보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달려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인생을 승리할 수 있다.

사울은 참으로 뛰어난 지도자였다. 그는 준수했고 정말로 뛰어 났다. 그러나 이후에 다윗이 등장하고나서 그를 경쟁 상대로 여기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서 모든 짓을 다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대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가 사울을 죽일 수 있던 기회에서 죽이기 않았던 이유는 그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복음서에는 기도하는 두 사람, 바리세인과 세리가 나온다. 바리세인은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지 않았고 세리는 하나님께 집중하여 기도하였다. 그 결과 바리세인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고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라는 세리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5)마음을 같이하는 사람과 함께 하였다.
7절을 보면, 한 명의 병기 든 자가 요나단과 함께하고 있다. 요나단은 600명의 병사를 의지하기보다는 마음이 합한 한 명과 함께 하였다. 함께 사역하고 함께 자라난 사람이 중요하고 그들과 함께 만드는 Teamwork이 중요하다. 마음을 함께하며 사역하는 자는 참으로 귀하다. 병기 든 자가 말하기를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라고 하였다.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또한 우리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원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들, 200만명은 거의 다 광야에서 죽었다. 그리고 모세와 함께 하나님께 순종했던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약속의 땅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함께 달려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6.25날이다. 그날도 주일이었는데 오늘도 주일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낙동강 전선을 형성하고 우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때에 하나님은 맥아더 장군을 보내셨다.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하려 했을 때에 모든 전략가들은 한결같이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역사상 수많은 상륙 작전(500여회)중에 오직 한번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그 한번이 바로 기상을 잘 예측한 놀만디 상륙작전이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인천 상륙 작전을 반대하였다. 또한 인천은 조수 간만의 차가 너무 심해서 심각한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이것은 우리 뿐만 아니라 적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니 적의 허를 찌를 수 있다고 말하며 선상에서 전심으로 기도했다. 그는 젊은 병사들이 최소로 희생되게 해달고 기도하였고 이 희생을 통해서 이 나라를 지켜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그리고 주신 응답을 갖고 큰 승리를 이루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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