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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슬의 은혜 (호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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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는 이스라엘 마지막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대 언 자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B.C. 720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호세아는 이 때보다 30년쯤 전에 북 이스라엘의 패역한 세대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역을 담당했습니다. 호세아가 선지자로써 사역을 감당했던 당시 이스라엘은 가장 큰 부와 번영을 이루었던 시절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부를 하나님의 덕으로 돌리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 사람의 계략과 궤술로 자신들의 부와 번영을 구가하는 세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저희가 먹이 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호13: 6)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을 오히려 배부르게 만들고 하나님을 잊어 버리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부유함과 편안함이 때로는 은혜가 아닌 시험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깨 달을 수 있는 말씀 입니다.

호세아서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비유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언약을 다시 한번 깨우쳐 주십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부정한 여인 이었던 고멜과 결혼 했습니다. 호세아와 고멜의 부부관계는 마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와 같습니다. 끊임없이 부정을 저지르는 고멜을 찾고 기다리는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이런 결혼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랑 되시고 교회는 신부가 되는 관계를 미리 예 표하셨습니다.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는 ‘피 흘림’ 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스르엘, ‘내 백성이 아니다’ 라는 의미를 가진 로암미 그리고 ‘긍휼이 여김을 얻지 못할 자’ 라는 의미의 로루하마 의 세자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 자녀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경고 하셨습니다. 호세아서는 호세아와 고멜 그리고 세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사랑과 심판을 대언하는 말씀 입니다.  이스라엘의 죄악과 심판은 12장과 13장에 이어 계속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멸망하기 바로 이전까지 하나님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인 14장을 보면 특이하게 마무리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 하시기를 요구 하시고 회개 후 회복의 약속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 오시고 돌아오기를 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상 숭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죄악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그들을 찾아 오시고 나중에는 심판도 경고 하셨지만 마지막 14장에서는 그들을 향한 사랑으로 말씀을 마쳤습니다. 14장 4절부터 마지막 절 까지는 ‘여호와의 사랑의 노래’ 라고 불려지기도 합니다. 심판 가운데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호세아서 마지막 부분에 잘 드러납니다. 특별히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에게는 새로운 언약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은 사실 앞으로 남을 의로운 자들, 즉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게 될 우리들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대, 신약 시대에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에게 새로운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5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내가 이슬과 같으리니” 라고 표현 하시며 새로운 은혜를 주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특별한 지역 입니다. 요단강 근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땅은 건조지대 입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가장 필요한 것이 물 입니다. 이들이 가나안 땅에 오기 전 애굽 땅에 있었을 때는 나일 강 주변에는 충분한 물이 있었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일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건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비를 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만 살 수 있던 땅이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 어떤 은혜를 주시겠다고 신명기를 통해 말씀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 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 14).  이 뜻은 이스라엘 땅에는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이른 비’는 보통 씨앗을 뿌리기 전, 10월에 내리는 비를 말합니다. 이른 비가 내리면 타종을 할 수 있게 되고 뿌린 씨앗이 충분한 수분을 섭취해 싹을 트이게 됩니다. 싹이 트고 자라서 추수 하기 전인 4월 달쯤에 내리는 비가 ‘늦은 비’ 입니다. 4월 달에 늦은 비가 적절히 내려주어야 알곡들을 잘 추수할 수 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잘 내려줘야 농사를 성공할 수 있는 것이 가나안 땅의 특성 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이른 비와 늦은 비로만 농사가 잘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의 대부분은 구릉지대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곧바로 흘러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지질 자체가 석회암층으로 되어 있어서 비의 흡수가 굉장히 빨라 그나마 고여있는 물도 금새 땅 속 깊이 스며들고 말았습니다. 물의 보존력이 약한 땅 이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있어야 파종과 결실이 가능하지만 그 중간에 수분이 공급되지 못하면 싹이 튼 식물은 다 죽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팔레스타인 땅에 이른 비와 늦으신 비뿐만 아니라 ‘이슬’ 도 주셨습니다. 이슬은 365일 중에 약 260일 동안 팔레스타인 땅에 내렸습니다. 비록 작은 이슬 이었지만 밤새 내려 식물을 촉촉하게 해 주고 지면이 수분을 흡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농경에 절대 필요한 것이 이슬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이슬에 비유하셨습니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신 32: 2). 이런 이슬의 은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5절을 통해 말씀하신,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의 ‘이스라엘’ 은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오늘날 성도가 된 우리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슬이 되어 주신다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슬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슬은 조용히 내립니다.
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에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민 11: 9).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주시며 표현 하신 말씀 입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중에 이슬이 내리는 것처럼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이슬은 조용하게 적셔주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우리 마음을 충분하게 적시며 느낄 수 있는 것이 비의 은혜라면 이슬은 쉽게 알아채기 힘들만큼 조용하게 가슴을 적시는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의 은혜 입니다. 말씀을 흔히 만나에 비유 합니다. 그렇다면 이슬 같이 만나를 내렸다는 말은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를 뜻합니다. 특별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확실하게 은혜를 받는 경험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느끼는 평범한 날의 은혜들은 이슬과 같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 가슴을 적셔줍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영혼을 소생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꿔줍니다. 아주 특별한 은혜는 파종 할 때나 결실할 때 필요합니다. 하지만 평범한 날들의 은혜는 이슬 같은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 주의 전에 나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 하는 것이 이슬의 은혜 입니다.

**이슬은 밤에만 내립니다.
이슬은 분주한 낮에 내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좌정되어 있고 조용히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이슬은 내립니다. 밤에 내린다는 것은 또한 우리 삶이 고달프고 좌절될 때 이슬 같은 은혜를 더 내리신다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인생의 밤이 올 때, 역경이 닥칠 때 그리고 실패와 환란이 다가올 때, 아무도 의지할 수 없고 사방이 꽉 막혀 짙은 어둠만 느껴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슬을 내리십니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슬로 우리 영혼을 적셔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밤과 같은 좌절 가운데 빠져있는 우리들을 말씀으로 세워 주십니다. 말씀으로 한 치도 볼 수 없는 캄캄한 앞 길을 보여주십니다.

이슬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열매를 보증 하십니다. 백합화는 순결을 상징 합니다. 신부를 상징 합니다. 성전을 지을 때도 약인과 보아스라는 성전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를 조각했습니다. 호세아와 고멜의 관계를 보면 고멜이 너무 부정해서 과연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의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고멜을 다시 데려오는 호세아의 사랑을 봅니다. 이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데려오는 정도가 아닌 순결한 신부로 만들어 주신다는 약속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우리를 완전하게 씻겨 주시고 그의 순결한 신부로 맞아 주신다는 약속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720년 전에 이미 호세아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보혈의 능력과 구원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 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백향목은 유익하고 아름다운 향기까지 갖춘 재목 이었습니다. 우리를 깨끗이 씻어주신 후 예수님의 신부로 삼아 주실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갖춘 존재로 만들어 주신다는 약속 입니다.

우리를 백합화처럼 순결한 신부로 만들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 수 있게 거룩한 존재로 만들어 주실 수 있는 것은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조용히 하나님을 만날 때, 좌절과 실패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될 때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이 것은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부정하는 고멜에게 그리고 아무 쓸모 없는 우리를 건져 내시는 하나님 사랑의 노래 입니다. 호세아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노래로 끝 맺었습니다. 그리고 2750년 전에 약속하신 은혜를 지금도 우리에게 내려주십니다. 오늘 하루도 이슬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에 품고 백향목 같은 향기를 내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박건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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