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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의 걸림돌 (마 13: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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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덕수궁 근처에서 축구경기를 응원하던 한 대학생이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월드컵 축구에서 우리나라가 패하자 충격을 받은 모양입니다. 어제 축구경기는 심판의 판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쉽습니다. 심판 한 사람의 그릇된 판단과 고집이 너무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권한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경기 규칙에 따라서 언제나 공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심판도 사람인지라 실수가 있습니다. 빅게임에서의 실수는 여파가 여간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심판은 잘못을 깨달았을 때 겸손하게 판정을 번복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잘못을 돌이킬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릇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잘못된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잘못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아주 특별한 곳을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곳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치신 말씀에는 지혜와 능력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예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저 목수의 아들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업을 이어 아버지가 하던 목수 일을 거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학자로 자란 것이 아니라 노동자로 컸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이 성경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아주 유창하게 성경을 풀며 강론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지혜로운 인제가 났으면 함께 기뻐할 일입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 감탄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의 성숙함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어릴 때의 모습만 보았습니다. 결국 편견 때문에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57 절을 보면 예수를 배척했다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마을에서 쫓아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성경을 잘 가르쳤을 뿐입니다. 말씀에 능력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를 확인한 마을 사람들은 엉뚱하게도 예수님을 쫓아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씁쓸한 경험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운 측근이 선지자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불러 세우십니다. 특히 선지자에게는 예언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선지자에 비유하셨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선지자의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최고의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권세 있는 하나님의 대언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지자가 사람이지만 하나님에 버금가게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식구들 눈에는 선지자라고 해도 가족으로 보입니다. 고향 사람들도 어릴 때 크던 애송이로 봅니다. 그들도 선지자를 어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어릴 때 생각만하고 무례하게 대했습니다.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이렇게 잘못된 판단으로 생명의 주님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구원의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왜 예수님을 배척했을까요?

예수님을 자기들보다 아래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가족들에 대해서 잘 알았습니다. 가족의 내력과 이름을 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고, 모친은 마리아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여동생들이 여적 한 마을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족 내력에 대한 지식은 믿음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동네 사람들은 어설픈 지식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성숙한 예수님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여전히 자기들 발아래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우월의식이 믿음을 방해합니다.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을 찬양해야 하는데, 질투하고 헐뜯었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심리와 비슷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경쟁상대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매사 트집을 잡았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이런 편견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를 만나면 본능적으로 나보다 못난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꼬투리를 잡으면 그것으로 상대를 발아래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이를 따지고, 가진 것을 따지고, 배운 것을 따지고, 출신과 배경을 따집니다. 지금 현재를 보지 않고 과거를 보려고 합니다.

놀랍게도 새신자가 오면 텃세를 부립니다. 조금만 허점이 보이면 편견과 오만으로 새신자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교회에서 새신자를 쫓아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겸손과 덕을 본을 보이는 곳입니다. 본을 보이는 것으로 남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적하고 꾸짖는 것으로 가르치려고 들지 마십시오. 남을 가르치려다 오히려 흉잡힐 때가 많습니다.

한편 교회의 권위와 직분을 가지고 앞에서 가르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설교자, 둥지어미, 찬양인도자, 교사들입니다. 이들이 말씀이나 찬양을 인도할 때 순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의 나이와 경력을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과 은혜가 내 것이 됩니다. 앞에 선 사람을 제 까짓게 뭔데 하고 있으면 복과 은혜를 차버리는 것입니다. 나사렛 동네 사람들과 똑같은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로 세운 이들에게 순복하십시오. 저의 연소함을 보지마시고 하나님의 사자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 나사렛 고향은 예수님도 전도하지 못한 곳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말씀을 전해도 마음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을 보십시오. 58 절입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믿음의 눈으로 볼 때 나사렛은 참으로 불행한 곳입니다. 너무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모실 수 있었으면서 그 기회를 스스로 버렸습니다. 만약 저들이 믿었다면 예수님은 애착을 가지고 많은 능력을 행하셨을 것입니다. 많은 기적을 경험하고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천국의 놀라운 선물을 받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으니 예수님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그 후로도 어떤 가능성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원의 기회를 잃었습니다. 구주를 쫓아낸 패역한 동네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전도 자세에 주목해야 합니다. 가망 없는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향을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혜택입니다.

전도를 할 때 성공할지 실패할지 계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만민은 우선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그 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거절할지는 들은 사람 몫입니다. 전도자는 우선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범하는 잘못 중에 하나가 전도하기 전에 미리 따지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전도에 성공할 것 같을 때만 시도합니다. 거절당할 사람 같으면 아예 포기합니다. 머뭇거리고 따지고 망설이다가 전도하지 못합니다.

전도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전도되는 것은 의외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다싶었는데 의외로 순순히 따라나설 때가 많습니다. 예비 된 영혼은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것입니다. 전도자가 미리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안 믿는 사람이 눈에 띄면 무조건 전도합시다. 고구마 전도로 유명한 김기동집사님의 전도방법이 그것입니다. 무조건 만나면 일단 찔러본다는 것입니다. “저와 교회 함께 가십시다.” 한 번 찌르고 두 번 찌르면 속까지 익습니다. 어느새 순순히 따라나서게 되어 있습니다.

산삼 전도도 그런 원리입니다. 아무리 질긴 사람도 찌르면 2 년 안에 다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 년 동안 지켜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2 년 동안 끈기 있게 찌르라는 것입니다. 아주 질기고 고집 있는 사람이 2 년 이지 대부분은 한두 달 안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특별한 분을 초청했습니다. 이 분은 전도를 아주 열심히 하는 분입니다. 그렇다고 전도하는 것을 뽐내거나 자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분을 세우는데 힘들었습니다. 다니시는 교회 담임목사님의 힘을 빌려 겨우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분의 전도 간증을 통해서 새로운 각성과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교회 이애숙집사님을 소개합니다.
(전도 간증)
(황금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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