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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막 5: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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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바로 ‘절망’과 ‘소외’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들은 주로 철학자들이나 작가들이 현대인들을 묘사할 때 즐겨 사용하는 단어들입니다. 이 시대는 과학 문명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서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편리함을 마음껏 누리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삶의 가치나 의미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시대의 어두운 현실입니다.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비극이라는 말입니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삶의 의미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절망적인 세계에 살면서 서로 통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깊은 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것은 오늘 우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겪고 있는 문제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귀한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나 범죄하고 타락한 까닭에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절망과 소외의 고통인 것입니다. 때문에 비록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리거나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을 것 같으면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절망과 소외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절망과 소외 속에 살던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여인은 혈루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그 병은 당시로서는 매우 고치기 어려운 난치병이었습니다. 병을 앓고 있어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만 있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에게는 그 병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극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혈루증이라는 병은 그 병을 앓는 사람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아주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심지어 혈루증을 앓는 여인과는 얼마든지 이혼해도 괜찮았습니다. 그 누구도 여인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입장은 말 그대로 철저히 버려진 존재였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여인의 이름은 ‘베로니카’였다고 합니다. 여인은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에 무리 중에서 뛰어나와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씻겨 드렸다고 합니다. 그 때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여간 오늘 우리는 그 어떤 고통보다 더 쓰라린 절망과 소외의 고통을 겪고 있던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경, 특히 복음서들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병이 낫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새로워지게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적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적들을 소개하고 있는 기사들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듣는다는 말과 믿는다는 말입니다. 즉 ‘듣고’라는 단어와 ‘믿고’라는 단어가 반드시 등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과연 무엇을 들었습니까? “예수의 소문을 듣고...”(막 5:27 상반절)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바로 그 소문을 들은 것이 여인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여인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노력을 다 동원했지만 병을 고칠 수 없었습니다. 여인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의 주인공이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숱한 사람들의 병을 다 고쳐 주었고 심지어 귀신들도 쫓아내었다는 그 갈릴리 사람 예수가 온다고?” 여인이 들은 소문의 주인공 예수님은 여인이 걸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스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구름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서로 먼저 만지려고 밀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종류의 손길을 예수님이 느끼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막 5:30 하반절) 그렇습니다! 그 손길은 오직 믿음으로 뻗은 손길이었습니다. 여인은 아마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지 모릅니다. “예수, 나의 마지막 희망인 예수, 난 이 예수를 믿는다. 이 예수가 내 병을 고쳐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기대한다.” 솔직히 말해서 여인으로서는 매우 위험한 도박을 했던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불결한 병을 앓고 있는 그 여인으로서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감히 손을 뻗어 예수님의 옷을 만졌습니다.

  과연 참된 믿음만이 믿는 사람과 그 대상을 연결시켜 줄 수 있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믿지 않았더라면 그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속아왔기 때문에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인은 그 소문을 믿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 소문을 듣고 믿었더라도 그 예수님과의 만남을 간절히 사모하지 않았더라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 소문의 주인공이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 온다는 소식을 듣자 그 즉시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 행동으로 인해서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면서도... 여인은 예수님의 옷을 만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여인을 보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딸아!” 얼마나 감격스러운 부르심입니까? 여인은 단지 병을 고치고 싶어서 예수님의 옷을 만졌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이상 다른 것은 바랄 수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인의 그 소박한 믿음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병에 걸린 후 지금까지 그 누구로부터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다정한 부르심이었을 것입니다. 가족들조차 접촉하기를 싫어했던 여인 아닙니까? 예수님은 입으로만 다정하게 부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실로 그 믿음을 귀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셨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과연 여인의 그 소박한 믿음이 그 누구도 흔들 수 없고 또한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주님과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여기서 “평안히 가라!”는 말씀은 “평안을 향해 가라!”고 번역하는 것이 올바른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 네 삶은 새로워졌으니 새로운 삶을 향해서 담대히 나아가라!” 사람들이 줄 수 있는 평화가 아닙니다. 세상이 줄 수 있는 평화도 아닙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신비한 평화가 여인의 믿음에 대한 선물로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아! 믿음이 너희를 구원하였으니 미래의 복된 삶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라!”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단 한 번에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십 년을 다녀도 변함없이 자리만 채우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비롯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은 단 한 번에도 얼마든지 변화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을 믿지 않고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결국 믿음에 관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는 자는 단지 고침을 받을 뿐 아니라 놀라운 구원의 은혜까지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말씀하시는 주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롭고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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