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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은 기도 할 때입니다 (삼상 8: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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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처럼 밤을 세우며 열광을 했는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밤새도록 그 모든 사람들이 기도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이 주관하시겠지만 밤새도록 기도 했더라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근래에 들어오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여의도 광장에서 요즈음 밤에 모여 응원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 밤새기도 했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 한 것은 그때 그 기도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떻습니까? 그런 기도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모두 다 살기가 어렵지 않으니 기도 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지 않고 항상 인간의 방법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기도는 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 후 항상 불레셋에게 괴롬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위기 때마다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셔서 저들을 위기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살다가 법궤를 빼앗기는 수모까지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답답한 백성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기에 하나님 스스로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법궤가 돌아온 후 사무엘이 사사가 되고 미스바에 모여 회개하며 기도 합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에벤에셀이라는 말씀이 여기서 나옵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것입니다. 상상7: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불레셋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불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 했습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불레셋 사람을 막으셨다.

도대체 사무엘이 어떤 사람이 길래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막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작은 문구를 놓치면 안 됩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지키셨습니다. 그 말은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평안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업 드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아무나 하나요.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도움이 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 주심을 믿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입니다. 사무엘은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가 사는 동안, 어떤 사람이 기도의 사람이 사는 동안, 불레셋이 쳐들어오지 못했다. 하나님이 막으셨기 때문이다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왜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믿지 않기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수시로 기도 합니다. 어려운 일이 올 때마다 기도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면서 기도합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기도하고 일을 마치면서 기도 합니다.

기도 없이 산다는 것은 하나님 없이 산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 없이 산다는 것이 교만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의지 하며 살기를 촉구하면서 12장에서는 나는 기도하는 것을 쉬는 죄를 결단코 짖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기도하는 것을 쉬는 것이 왜 죄가 됩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기에 죄입니다. 불신의 죄입니다. 이 죄가 큽니다.

하나님이 기도의 사람 사무엘을 보고 이스라엘에게 평강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주었더니 백성들이 딴생각을 합니다. 우리에게 왕을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기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엉뚱한 짓을 합니다. 하나님중심으로 항상 생각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중심으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들어 갑니다. 생각은 그럴듯하지만 속에는 인간의 욕심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들 속에는 누구를 막론하고 그런 욕심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마세요. 비난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일을 하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지금 왕을 세워 달라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5절에 보면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했습니다. 무슨 말예요. 늙어서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나라가 되어가는 줄 아는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람을 쳐다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 하고 살았습니다. 장로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믿음이 없으니 한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는 동안 믿음이 없는 장로들 때문에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뒤로 후퇴하는 일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의 고집으로 교회를 이끌려고 하다보니 하나님이 준비 하신 축복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님들이 믿음이 좋아서 교회를 이끌어 가는 교회들은 날로 성장을 해 나갑니다. 어느 교회는 목사보다 장로님들이 더 믿음이 좋아서 교회를 크게 부흥케 하는 교회도 보았습니다. 장로님들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장로님들이 기도하는 장로님들이 계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믿음을 가진 장로님들이 계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장로님들이 큰 믿음을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보세요. 백성들이 왕을 세워 달라하니까?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했다했어요. 사실 기분 나쁘지요. 당신이 늙어서 안 되겠다 하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것도 그것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에벤에셀 아닌가요.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와 주셨다 한 것이 엊그제인데 벌서 그것을 잊어버리고 왕을 세워 달라. 섭섭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사무엘이 다른 소리를 안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거기에서 떠들고 잘하니 못하니 하면 어떻겠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어요.

거룩한 일로 죄를 짖지 마세요. 하나님일 한다고 성질내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데스바나아에서 그랬어요. 백성들이 물을 달라 하니까? 하나님께 기도 하지요. 반석을 쳐서 물을 나게 해서 먹게 하라 하니까? 지팡이를 들고 내려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모세를 보더니 물을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모세가 보니 한심한 백성들입니다. 자기는 그처럼 노력을 많이 하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믿음도 없고 하는 짖 마다 그렇게 못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질을 확 내면서 우리가 너희를 위해 물을 내랴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죄라고 지적을 합니다. 그 죄 때문에 가나안에 못 들어갑니다. 거룩한 일로 죄를 짖지 마세요. 하나님은 거룩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기도를 합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응답 가운데 사무엘이 알지 못하는 답이 있어요.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사무엘은 자신이 늙어서 버리는 줄 알고 섭섭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너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중심으로 사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18절의 경고를 보겠습니다. “ 그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응답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비극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없어 비극이 아닙니다. 적들이 쳐들어 와서 비극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것이 비극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 중심으로 살 때 응답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내안에 더 중요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기 보다 더 앞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우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그런 우상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이 앞서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고집이 앞서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무당이 앞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매우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영적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질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가정이 어느 것 하나 안전한 것이 없습니다. 도덕적, 윤리적 죄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6, 25로 두 동강 난 이 나라를 이만큼 잘살게 해 주셨는데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보세요. 무엇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최근에는 북한은 핵 확산 금지 조약 탈퇴 선언과 함께 대포동 미사일을 쏘아 올리겠다고 난리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쏠려면 쏘아 봐라 우리도 가만 안 잊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고 군비를 계속 늘리고 있습니다. 이 때야 말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자력으로는 자신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국제정세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변화시킬 능력을 갖고 계신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보호하시고 함께 해 주십니다. 군사무기가 하나님을 대신 할 수가 없습니다. 경제 대국이 하나님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손, 만대 살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평안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위기가 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고달프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이야 말로기도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 여러분이 사는 모든 날 동안 악한 영들이 넘보지 않는 평안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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