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맥추감사절] 감사의 법칙 (눅 17:11-19)

  • 잡초 잡초
  • 408
  • 0

첨부 1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센병 시인이던 한하운이라는 시인이 있엇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분의 시를 좋아합니다. 인간의 아픔과 상처를 잘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시 중에 보리피리라는 시가 잇습니다.
“보리피리 불며 봄언덕 고향 그리워 필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청산 어린 때 그리워 필 늴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필닐리리

이 시에는 한세병 환자들의 애환이 묻어 있습니다. 고향에도 돌아갈 수 없고 사람 사는 동네에서 함께 살 수 없고 이곳 저곳을 피해 방랑생활을 했던 한센병 환자의 고통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제가 2년전에 여름휴가를 이용해서 소록도라는 섬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문둥이로 알려진 한센환자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곳입니다. 지금도 약 500여명이 함께 살고 있는 그 동네의 사람들은 바깥 섬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죽으면 그곳에서 화장하여 그곳 납골당에 묻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곳에 한세병환자 거의 100%가 교회에 출석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그냥 출석하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간절히 교회 생활을 하는지 모릅니다. 예배시간에 빠지는 일도 없고 예배 시간을 어기는 일도 예배시간에 조는 일도 드물게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사는 모습을 가 본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믿고 나서는 신세를 한탄하고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면서 감사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도전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열 사람의 나환자 지금은 한센병 환자를 고쳐 주셨다는 것과 고침받은 열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인 사마리아인만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그러니까 확률적으로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극소수의 사람만 감사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사람이 받은 은혜 누리는 복은 생명을 건지는 복입니다. 천하에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 생명이라면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소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10명은 모두가 한센병이였습니다.
이 병은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굉장히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구약에도 몇 군데 한센병 이야기가 나옵니다.잠시 동안이긴 했지만 모세의 손이 한센병에 걸렸던 일이 있었고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모세를 비웃고 헐뜯다가 한센병에 걸렸었습니다(민 12:1-10).
그리고 탐욕에 눈이 어두워 손대선 안 될 재물은 몰래 훔쳐서 숨겼던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한센병에 걸렸었고(대하 5:25-27) 웃시야 왕이 역시 한센병에 걸렸었습니다(대하 26:16-17).그리고 아랍 나라의 국방장관이었던 나아만도 한센에 걸렸었습니다(왕하 5:11).

그런데 이 질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저주라고 보았습니다.
성경(레위기 13:46이나 민수기 12:14)을 보면 일단 한센병으로 판명이 나면 집으로부터 떠나야 하고 진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그리고 역대하 26:21을  보면 한센병에 걸린 웃시야 왕은 성전에도 올라갈 수 없었고 별궁에서 혼자 거하였다고 했습니다.뿐만 아니라 역대하 26:23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 열왕의 묘역에 매장하지 않고 그 곁에 매장했다고 했습니다.그러니까 매장도 격리해서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기 22:4을 보면 성물을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그러기 때문에  본문의 한센병환자들 역시 멀리 떠나야 했고 예수님을 만났으나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질병에 걸린 10명의 환자들은 예수님께 긍휼을 구했습니다.
13절을 보면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일단 나병에 걸리면 신체 각 부분에도 이상이 일어나지만 성대에도 이상이 일어나 소리가 약해진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열 사람의 나환자는 모처럼 주어진 기회였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힘을 모아 소리 지르며 긍휼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14절을 보면 주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레위기 13:49을 보면 그 당시 한센병의 진단은 제사장이 했습니다.그러니까 이미 제사장에게로 가서 보이라는 것은 그들의 한센병을 고치셨다는 선언이었습니다.14하반절을 보면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고 했습니다.
10명이 같이 축복을 받았고,은혜를 입었고 사랑을 힘입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감사하는 일에는 오직 1명 사마리안만 감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이 한 사람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입니까? 질병이 치유된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열명의 한센병이 치료를 받아서 낳은 것은 큰 기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관심을 갖는 내용은 바로 감사의 사건입니다. 치료받은 열명중에 아홉명은 가고 한사람만 돌아와서 감사한 것입니다. 성경은 감사  그  자체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감사했 던  그  독특한  상황과  감사의  성격을  중요하게  부각하고  있습니다.우리의 삶에서 다 같이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감사를 잊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감사한 한 사람의 사람을 보면서 우리는 감사의 법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감사의 법칙은  우선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4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명령을  따라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제사장 에게  그  몸을  보이러  가던  도중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  사마리아 사람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돌아와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하였습니다. 
이  문둥병자는  감사를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신  그분의  은혜를  당장  감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어  혼자  가던  길을 되돌아왔습니다.  가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그  다음에  감사하 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 다.  당장  해야  할  일,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감사라고  생각 했습니다.

예수께서  문둥병자들을  치료하시면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한  것은  정결  의례상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단순한 종교  기능만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회  정치 면에서도  지도자였습니다.  문둥병자들은  일반  사회에서  살  권리가  없었습니다. 모두  성  밖으로  쫓겨나  어두운  동굴  등지에서  사회와는  완전히  격리된,  소외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사회로  돌아와  다른  사 람과  어울려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제사장이  몸이  깨끗해졌음을  선언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문둥병자들의  일생  소원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깨끗함을  얻은  문둥병자는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  몸을  보이고 사랑하는  가족들 정든 친구들을  만나서  자신의  몸이  정상이  되었음을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  감사를  우선으로  여겨  예수께  돌아왔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태도로  감사를  첫번째 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를  하게  되면  첫  열매를  주께  바쳐야  합니다.  남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흠  없고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는  것이  감사입니다.잠3:9-10에 보면 “네 제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주 즙이 넘치리라고 합니다. 여기 처음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앞에 우선 먼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감사는 그냥 입술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는 헌신이 있는 감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빚진  자로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삶을  가 장  중요시해야  합니다.예수께  돌아온  문둥병자는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자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한  그  순간,  지체하지  아니하고 즉시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이  문둥병자의  소중한  마음을  본받아야겠습니다.다음에 하자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사할일이 있습니까?  지체하지 마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먼저 감사할 때 감사하면서 살아가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먼저 결단하시고 감사를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2. 감사의 법칙은 겸손해야 감사합니다.

겸손하지  않고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리며  돌아와.”
이  문둥병자는  큰  소리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께  감사했던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16절).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18절).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천시하고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이  예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전 722년경에 앗수르에 망하면서 그들과 몸을 섞고 결혼하면서 유대인들의 피를 더럽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과 단순히 결혼한데 서 그치지 않고 이방인들의 우상을 섬기는 우상숭배행위를 보면서 천한 사람들고 멸시했습니다. 사마리아사람들도 유대인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알고 서로 미워하고 상처받으면서 살아갔습니다.
본문의 예수님 앞에서 감사한 이 사람은  이방인이라고  무시받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은혜를  은혜로  알  수  있는  안목이  있었을지  모릅니다.10명 중에서 사마리아 한 사람만 감사한 것은 그의  처지가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던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이방인인  사실이  그에게  축복이  된 것입니다.왜 우리가 감사하기 힘이 듭니까? 나를 세우는 자존심, 나를 높이는 교만함들이 감사를 상실하게 만들때가 많습니다.

어떤  설교가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은혜에  반응하는  모습은  비루한 사람,  평범한  사람,  고상한  사람,  이  세  부류로  나뉜다고  했 습니다.
첫째,  비루한  사람이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입니다.
둘째,  평범한  사람이란  은혜를  망각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고상한  사람은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 셋중에 누구에게 해당이 됩니까?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이  속상하여,  그  열등감과  자존심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  것을  당연한  일로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도운  사람을  비방하는  못된  심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마침내  이  은혜를  원수로  갚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망각합니다.
점점 이 세대 속에 우리가 보는 것은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해야 할 일도 많고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점점 감사가 인색하고 감사가 힘든 이유는 점점 세 대자체가 교만해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 사마리아 사람은 받은  은혜를  즉각적으로  감사하기  원했습니다.
마음에서  감사가  사라지기  전에  주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던  사 람했습니다. 이것은  겸손한  결단입니다.  겸손은  그가  감사했다 는  사실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할  미덕입니다.  당신이  감사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혹시  의식의  밑바닥에  이  치사한  자존심의  뿌리가  남아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겸손한 심령이 감사의 행동을 낳습니다. 겸손은 감사를 만들어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겸손이 있는 감사는 표현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감사란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내가 받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려면 내가 하나님께 어떤 복을 받았는지 가만히 계수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 한센병자는 자신이 치유받은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그 병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그는 사람이지만 짐승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병을 고쳐주신 주님 앞에 그는 감사했습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진정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잘 관리해서 낳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전적인 은혜로 고쳐주셨음을 겸손하게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단지 질병뿐만 아니라 사고와 환난에서 내 목숨을 건져주심을 체험하셧습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매일 매일 사는 것이 나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안다면 매일 매일 이렇게 평범하게 평상의 삶을 사는 것을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에는 정말 사고와 사건을 만나서 이미 생명이 끝이 날 수 있었을 수도 있는 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생명을 구해주셨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우리 교회 중에 어떤 성도님은 정말 끔찍한 일을 당했습니다. 아침 시간에 잠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동안 아파트 문을 열어놓았는데 그리고 강도가 들어왔습니다. 안방에 숨어있던 강도가 안방으로 들어온 그분을 목 뒤에서 잡고 칼을 들이밀고 돈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복면을 쓰고 목을 잡고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당하는 그 순간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이제는 죽었다 ” 생각하엿다고 합니다. 그때 담대하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직업과 상황을 소상하게 말을 하면서 정말 돈이 없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순간 목에 들이민 칼날을 손으로 잡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강도가 놀래서 “소리만 지르지 않고 신고하지 않으면 목숨을 살려줄테니 자신을 나가게 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에 칼을 대고 아파트 문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면서 위험을 모면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이렇게 매일 매일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감사하고 있습니까? 내 삶에 다시 겸손함으로 주님께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3. 감사는  고독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0명중에서 단 한사람인 사마리아 사람만 고독한 결단 속에 감사했습니다.
본문의  아홉  명의  문둥병자는  감사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예수께  돌아가자면  시간  낭비도  될  뿐더러  빈  손으로  갈  수도  없을  테고 ,  또  우리가  나을  때가  되어서  회복된  것인지  몰라”라고  합의를 보았던  모양입니다.
오늘의  문화는  “군중  심리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다수를 따라 모든 문화가 형성됩니다.개성이  없고  소신이  없고  확신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마 이것은 대중 방송  매체의  영향일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의  삶이  없습니다.  남이  살아가는  대로  삽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잘못되는  가장  큰  원인도  나쁜  친구 들의  영향에  노출되어  있는  데  있습니다.그래서 유행이 바른 것인지 떠나서 일단 따르게 됩니다.

감사하지  않은  아홉  명이  볼  때  한  사람의  사마리아인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인간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같이  자기만  알 고  물질  위주인  사회에서  이  사람의  감사는  전혀  의미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남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자기  삶의  중요한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가”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는  홀로  자기가  가야  할  삶을  살기로 결정합니다.  다른  사람이  안  하는  일이라고  해서  같이  게으름  피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  생활이  형편없으니까  덩달아  대충대충  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 을  요구하시는가”가  더  중요해야  합니다.  “내  신앙의  모습이  어 떠한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둥병자는  자기의  삶이  확고했던  사 람이고  자기  삶에  성실했던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7절)고  물으셨을  때  저 같으면  이런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그  녀석들은  감사도  잊어버리고  저희들끼리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
그러나  이  사람은  주님의  질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성실했습니다.
현대인의  비극은  자기의  삶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들  눈치  보면서 체면  때문에  이런  저런  행동을  합니다.  신앙  생활도  체면  유지 용으로  겨우  교회만  다닙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 에  그러한  결과가  생깁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 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하여  모든  삶이  새로워졌습니다. 
이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는  상관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행동이  지나치게  광신적이라고  평가받을까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점은  당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진지하게  설  수  있느냐입니다.  본문의  이방인  문둥병자는  자기가  해야  할  도리를  성실히  수행하였 습니다.  이것은  고독한  결단이었습니다.  다른  아홉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나  혼자  과단성  있게  행동하였습니다.

초대  교부(敎父)  가운데  크리소스톰이라는  교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헌신은  대단히  철저했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이  와서  크 리소스톰에게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는  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다네.  온  세상이  그대를  저버릴  걸세.”
이때  크리소스톰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한다고?  좋아.  그러면  내가  온  세상을  반 대하기로  하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 별하도록  하라”(롬  12:2).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  앞에  신실한  자세를  취하는  고독한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4. 감사하면 더 큰 복을 경험합니다.

이  사마리아 문둥병자의  감사는  다음  두  가지  결과를  낳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과 관계가 풍성한 관계가 됩니다.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18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당신의  삶의  목적이요  이 유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입술에서 유감  없이  고백되어야  할  고백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본문의  문둥병자는  진실로  삶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요  본분인  주(主)  앞에  영광을  돌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멋지게  실천하였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과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삶의  초점이  자기 에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원천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변의  잔잔하고  소중한  행복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둘째로,  감사는  큰 인정을 받는 기회가됩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 시더라”(19절).그는  육체의  병을  고쳤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 믿음을  인정받게  되어  구원까지 받았습니다.  감사는  더  위대한  행복을  창조했습니다.  감사는  더 놀라운  복을  누리게  했습니다.  주께  영광을  돌리고  구원받은  자 ,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한  이  사람의  감사의  모범 을  우리도  따라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감사의 자리에 서계십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에 서있습니까?우리 주님은 본문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처럼 감사의 자리에 서있기를 원하십니다.집에 있든지,직장에 있든지,교회당에 있든지 우리가 서있는 자리가 감사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있는 곳엔 찬송이 있고 축복이 임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난 상반기 동안에 주님 주신 것에 감사하시면서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리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