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고넬료 집에 임한 제2 오순절 이야기 (행 10:44-48)

  • 잡초 잡초
  • 299
  • 0

첨부 1


  설교를 듣는 목적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있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데 있습니다. 오늘 아침 설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뜻이 어디를 향하고 계시는지를 분별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뜻이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과 뜻이 지금 이방의 땅을 향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다음 이방의 땅에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지금 이방의 땅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예루살렘서 가장 가까운 이방의 땅인 가이사랴를 바라보고 계셨고, 조금 후에는 더 이방의 땅인 안디옥을 바라보고 계실 것이고, 조금 후에는 소 아시아 땅과 마게도냐의 땅을 바라보고 계실 것이며, 그 후에는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의 제물이 될 로마 땅을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 성령을 바람과 불과 같이 보내주신 다음 이방의 땅에도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바라시면서 지금 이방의 땅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이 세상에 교회를 탄생시킨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120여명의 제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아 예루살렘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이 세상에 교회를 탄생시킨 획기적인 사건이었는데, 그 획기적인 사건이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하나의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은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이 아닌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이방에 교회를 탄생시킨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가리켜 ‘제2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마리아와 가이사랴를 거쳐 안디옥으로 그리고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와 로마로 확장해 나아가게 되어 있었는데, 이제 가이사랴에 ‘제2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의 땅에 성령이 강림하실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고 기대하지도 못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처음에는 가이사랴에 가는 것조차 싫어했고 그곳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었습니다. 가이사랴는 지중해 연안에 있던 항구 도시였는데 유대인들의 원수인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던 로마 주둔군의 본부였고 이방인들의 거주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에 욥바에서 가이사랴로 가라는 환상을 받았을 때 이렇게 말하면서 거부했었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행10:14). 옛날 요나가 했던 말과 비슷한 거부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령에 이끌려 억지로 가이사랴에 갔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기도했을 때 바로 그곳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님이 꼭 같은 방식으로 임하시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방의 땅에, 어떻게 로마 군인들이 득실거리는 이방의 땅에, 이런 엄청난 성령 강림의 사건이 일어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베드로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행10:45). 오늘 아침에는 이방 사람, 로마 군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어떻게 ‘제2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이방 사람 고넬료가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시면서 인류 구원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용하실 쓸만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모세를 발견하시기도 했고 그 후에는 한나와 사무엘을 발견하시기도 했습니다. 오랜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인 조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서 누구를 사용하실까 생각하시면서 하늘에서 조선 땅을 내려다 보시다가 길선주 도사를 발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성령을 부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다음 이방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누구를 사용하실까 생각하시면서 하늘에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이방 땅을 내려다 보시다가 가이사랴에 사는 고넬료라는 로마 군인 백부장을 발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 백부장을 발견하신 이유는, 그가 로마 군인으로 너무너무 바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펴는 것과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인데, 고넬료가 바로 그 세 가지 일을 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방 사람 고넬료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펴고 항상 기도하게 되었는지를 성경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고넬료가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고,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들 중의 하나인 빌립이 사마리아와 가사 광야와 아사도를 거쳐 가이사랴에 와서 복음을 전했는데 빌립이 전한 복음을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여튼 이방 사람 고넬료가 누군가의 전도를 받아 하나님을 믿는 새 신자가 된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특하고 예쁘게 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신자들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방 사람 새 신자 고넬료의 하나님 경외와 많은 사람 구제와 항상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언제나 누군가를 사용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이방인 구원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방인 고넬료를 사용하시기로 작정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때 천사들은 반대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수제자 베드로도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고넬료를 이방인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천사를 고넬료의 집에 보내셨습니다.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하여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사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3,4). 하나님은 사람들을 인종적으로 구별하지 않으시는 너무나 마음이 넓으신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방인 고넬료는 하나님의 눈에 발견되었고 너무나 축복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 구원의 도구가 되었고 ‘제2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시고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인류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시면서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방인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에도 저들의 민족주의적 선입견을 바꾸셨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행1:6).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강한 부정이었습니다. “이것은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니라 이것은 너희들의 관심사가 아니니라 너희의 알 바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아니니라 너희들의 알 바와 관심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땅끝까지 전하는 이것이니라”(행1:8).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민족주의적 정서와 감정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아직도 일본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과 모슬렘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사도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지만 베드로가 간 곳은 기껏해야 애니야가 살던 룻다였고 조금 더 간 곳이 도르가가 살던 욥바였습니다. 그 이상은 더 가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내려갔더니"(행9:32).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 유하니라”(행9:43).

  베드로가 욥바에 머물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자기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으로 가서 이방 사람들을 받아드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마치 드로아에 머물고 있던 사도 바울에게 아시아로 가는 대신 마게도냐로 가라고 지시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럴 수 없다고 대들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행10:9-14). 하나님께서는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보여주시면서 베드로로 하여금 가이사랴에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

  베드로는 할 수 없이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행10:28,29). 결국 베드로는 자기의 민족주의적 선입견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에 순복하며 지금 고넬료 집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선입견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종들을 사용하십니다. 베드로가 전에는 자기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이제는 조금씩 남이 띠 띠우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구원의 도구로 성령 강림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베드로는 이제 자기의 변화된 심정을 고넬료에게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자기가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즉 인종적으로 차별하여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을 깨달았도다"(행10:34,35). 그리고 베드로는 고넬료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민족주의적 정서를 내어버리고 이방에 대한 변화된 마음 열린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힘있게 증거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이방인 구원과 ‘제2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이방인 교회 설립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셋째, 고넬료의 전도의 열성과 겸손과 은혜 사모가 성령 강림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구제와 기도하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순종과 전도와 겸손과 은혜 사모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천사의 지시를 받은 다음 하인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를 데려오게 했고 자기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다 자기 집으로 불러 모아놓고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행10:24). 하나님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기다리는 곳에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기다렸고, 고넬료의 집에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기다렸고,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고넬료가 지금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모여 기도하며 기다리게 했습니다. 고넬료는 전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넬료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친척들과의 관계가 좋았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신앙이 좋은 것 같은데 친척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고 이웃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고 교인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은혜의 통로가 될 수도 없습니다. 고넬료는 지금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천사가 지시한 사람 베드로가 자기 집에 들어왔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물론 사람을 너무 높이는 것은 잘못이지만 고넬료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린 것은 그의 겸손과 은혜 사모를 나타내 보여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은혜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종들 앞에 무릎을 꾸는 겸손과 은혜 사모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 얼마나 귀한 고백이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생각을 하면서 또는 잠을 자면서 귓등으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릎을 꾸는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선 경건한 자세로, 하나님 말씀 듣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보셨는지 모릅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귀하게 보았는지 모릅니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고넬료도 베드로도 하나님도 성령님도 예수님도 모두 준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강하게 임재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윽고 베드로가 입을 열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간단한 그러나 명확한 복음이었습니다.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그리고]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셨느니라"(행10:39-3). 이렇게 사도 베드로가 십자가와 부활과 죄 사함과 구원의 복음을 전 했을 때 성령께서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방언을 하면서 하나님을 높였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실 때에 모두 방언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 방언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이스라엘인과 구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주셨던 방언과 꼭 같은 방언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고넬료 집에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 성령을 받고 모두 세례를 받아 이방인 교회의 초석들이 되었습니다.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넓게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후에는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고, 조금 후에는 소 아시아에 일곱 교회가 세워지고, 조금 후에는 마게노냐에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에 그리고 나중에는 로마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만을 사랑하시지 않았고 이방인들도 꼭 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만 성령을 부어주시지 않았고 이방의 땅인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도 같은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나중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 앞에서 이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15-18). 베드로의 세계관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나중에는 그 당시 악의 심장부인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영화 “쿠오바디스”는 베드로의 로마 순교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된 세계관 때문에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미신과 죄악의 땅인 조선에도 전해졌고 조선의 고넬료라도고 할 수 있는 길선주 목사님을 통해서 성령을 바다같이 이 땅에 충만하게 부어주셨습니다.

  아직도 구 공산권과 모슬렘권에서 사는 사람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어두움과 절망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시면서 이들 이방인들을 구원할 구원의 도구들을 찾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고넬료와 오늘의 베드로를 찾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땅과 북한 땅과 모슬렘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 중에서 고넬료를 찾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땅과 북한 땅과 모슬렘 땅을 찾아가서 저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오늘의 베드로들을 찾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고넬료를 일으켜 주시고 오늘의 베드로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우리들을 구원의 도구들로, 은혜의 도구들로, 성령의 도구들로, 써 주시옵소서.  (김명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