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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자유 (갈 5: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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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유롭게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늘 아래 사는 모든 인간은 ‘자유 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도 인간의 자유를 빼앗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유는 어떤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의 ‘자유’를 위해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귀한 상급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인생은 자유롭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선택이라도 자유롭게 결정한 것이 아니면,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자유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자유를 주셨는가?
그 자유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오늘 설교는 이 문제에 대답을 드리는 메시지입니다.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년까지 거의 10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조그만 칼럼을 썼습니다. 4-5년은 족히 지난 것 같은데, 여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자유 주신  주님
해가 뜨는 아침을 보는 것은 기쁨 그 자체입니다. 한낮의 햇볕 아래 무더기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건 예술입니다. 떨어지는 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시간은 경이입니다.
      자유 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비무장지대 경계근무 중, 풀벌레 합창을 듣던 동기가 주의를 환기시켰을 때, 나는 딴 생각에 사로잡혔더랬습니 다. 같은 초소에서도 그는 자유의 세계, 나는 끌려가는 세계였습니다.
      자유는 소중합니다. 바꿀 수 없습니다. 새를 길러 본 나는 참새를 알고 나서 그 취미를 버렸습니다. 머리를 창살에 부딪다가 끝내 상처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던, 그래서 결국 차디찬 주검으로 그 새장을 떠나가던 참새에게서 나는 자유를 배웠습니다.
      자유는 예수님만 주실 수 있는 선물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주님의 보혈뿐입니다. 기왕에 지은 죄를 용서 받은 기쁨과, 죄질 생각에서 벗어난 기쁨과, 심판이 아니라 우리 주님 영접의 날을 기다리는 소망은 자유의 본질 아닙니까?
      자유를 위해 목숨 버린 이들이 많습니다. 노예로 오래 살기보다 자유  한  사람으로 순간을 살겠다는 겁니다. 자유를 찾아 이동하는 사람들을 “순례자”로 말합니다. 물론 ‘성전’을 향한 이동이었지만, 본래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시는 것 아닙니까? 우리 일생에 이런 찬란한 날갯짓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본래 질그릇 같았는데, 거기 자유가 담겼으니, 우리가 귀해졌습니다.
      자유 한 사람은 부자유한 사람에게 전할 메시지를 가졌습니다. 소리 높일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친히 억압을 당하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의 이야기입니다.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얽어매는 많은 족쇄들이 있습니다. 무지, 가난, 질병, 이런 것들은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는 ‘고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장 근본적인 속박은 죄입니다. 죄가 문제입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엉키고 설켰습니다. 죄가 아니라면, 다른 모든 불리한 여건들은 오히려 삶의 ‘도전’이 되고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오히려 다른 모든 ‘좋은 조건들’도 뒤바꾸어 눈물과 상처의 기회로 만들어 버립니다.

문제는 ‘죄’입니다. 이러므로, 진정으로 자유 한 사람은, “죄에서 해방된 사람”입니다.

누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할 수 있습니까?

인간은 스스로 죄를 짓지만, 그 죄를 씻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절망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양심의 투명한 거울 앞에 세워놓고 보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절망이 있습니다.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죄의식을 잊어버리기 위해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웁니다. 마약에 빠져듭니다.

넓게 보면 영화, 소설, 이런 문화의 대부분이 인간의 죄의식을 잊어버리게 돕거나, 아예 죄 자체를 “괜찮다”고 정당화시켜 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런데 깊이 빠져든다고 죄 문제가 해결됩니까? 오히려 깊어가는 고독과 괴로움은 “내가 씻을 수 없는 죄인이다”라는 생각에 직면하게 만듭니다.

죄의 용서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이것은 ‘절망’적 소식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로 인한 멸망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 즉 영생을 얻습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세례 요한이 외친 말씀입니다. 그의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첫 번째 외치신 말씀입니다. 그분의 모든 사역은 바로 이 두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두려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복음’입니다.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겠다. 그러므로 천국이 우리에게 있다. 그런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단지 회개’하는 일 뿐입니다. 씻는 일은 주님의 몫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금문성도 모두가 죄에서 자유 함 얻는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빕니다. 바로 오늘 여러분의 모든 죄가 사함 받았습니다. 믿으십니까?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있으면,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얻습니다.

1517년에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520년에 <그리스도인의 자유> 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 라는 소책자를 써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크리스찬 자유의 대헌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같은 해에 루터는 <독일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보내는 글>과 <교회의 바벨론 포수> 등 두 권을 더 썼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 권의 소책자를 “종교개혁 3대 논문”이라고 불렀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1.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자체와 2.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드러나는 모양은 다음과 같은 “상충”되는 진리에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운 존재로서, 이 세상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 2. 그리스도인은 더할 나위 없이 충성스러운 종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 

첫째는 “절대자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종입니다. 세상 누구에게도 억압당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절대예속”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종”입니다.

여러분. 모처럼 청소하려고 빗자루를 들었는데, “제발 청소 좀 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기분이 상하지요.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일이 귀합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즐겨하는 마음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심부름꾼입니다. 한자로는 사(使)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같은 데서 일하는 심부름꾼을 ‘소사’(小使)라고 합니다. 국가를 위해 수고하는 심부름꾼을 ‘대사’(大使)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 심부름꾼은 누구일까요? 천사(天使)입니다.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정치인은 ‘심부름꾼’입니다. 그러고 보면 기업가도 ‘심부름꾼’입니다. 교육가도 물론 심부름꾼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섬김’과 ‘봉사’의 사명을 감당하는 심부름꾼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자유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억지로는 그런 아름다움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심부름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 땅에 이루는 일에 귀하게 사용된 종입니다. 가장 순수해야 합니다. 가장 온전해야 합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죄 중에 거할 때는 사탄/마귀의 종이 되어 산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아니었을 때는 “사탄 마귀의 손아귀 아래서 지배 받은 백성”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 사탄 마귀가 우리를 조종하는 때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피 흘리는 투쟁”이라는 과정을 거쳐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써 원수 마귀의 세력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마귀의 손 아래 있을 것입니다.

마귀는 1. 죄의 사슬로 우리를 얽어매고, 2. 죽음이라는 열매를 맺도록 날마다 역사합니다. 우리는 원수 마귀와 싸워 이기는 “영적 전쟁”을 날마다 수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오늘도 우리는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원수 마귀를 영원토록 무저갱 속에 넣고 봉인할 때까지, 이 싸움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1. 어떻게 자유인이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됩니다. “오직 말씀으로!”입니다. 말씀은 “열쇠”입니다. 죄의 사슬을 풀어 버립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원수 마귀를 이깁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슨 뜻일까요?

a.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가 성경을 “의심”하도록 부추킵니다.

      그렇게 오래 전에 기록된 성경이 어떻게 지금 네게 가당하냐?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고? 그건 너무 황당한 이야기 아니냐?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러나 마귀를 물리치는 성도는 한 자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믿습니다. 그냥 “꽉 꽉” 믿습니다. 성경말씀은 ‘과학적 리서치’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건 얼마든지 의심해야 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성경을 100% 그대로 믿습니다.
그런데 모르면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알아야 믿습니다. 몰라서야 무엇을 믿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공부에 참석합니다. 성경말씀으로 자유 한 사람은 성경공부에 열심입니다.

b.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      니” (요한복음 1:12).

예수님께서 주인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예수님의 종으로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은 “어떤 것에도 예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에베소서 6:10-17의 말씀입니다.

      진리로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이 여섯 가지는 결국 하나입니다.

      진리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 주시는 권세입니다. 시편 1편을 보십시오.
      평안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믿음의 방패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실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을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성령의 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마귀의 권세를 무찌르는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늘 말씀을 들고 다니십시오. 읽고 묵상하십시오.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적용할까?” 생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원수 마귀는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를 결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 속에 ‘병폐’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중독’입니다.

중독 문제가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중독은 인간이 예수님께 매여 있지 않을 때 세상에 매인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예) 일 중독. 일의 ‘목적’이 상실된 채, 일 자체가 목적이 되면 중독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구체적으로 중독의 내용을 말합니다. 모두 “육체의 일”입니다.

음행 sexual immorality
더러운 것 impurity
호색 debauchery
우상 숭배 idolatry
술수 witchcraft
원수 맺는 것 hatred
분쟁 discord
시기 jealousy
분 냄 fits of rage
당 짓는 것 selfish ambition
분리 dissensions
이단 factions
투기 envy
술 취함 drunkenness
방탕함 orgies

중독은 중독 자체가 사람을 조정합니다. 사람은 자유가 없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삶의 주인이신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주인의 자리’를 돌려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추구하는 일은 이렇습니다.

사랑 love
희락 joy
화평 peace
오래 참음 patience
자비 kindness
양선 goodness
충성 faithfulness
온유 gentleness
절제 self-control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갈고 닦아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육체의 일을 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2.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길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종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의 종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서 ‘자유’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독성향이 강합니다. 월드컵 축구 하면서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전 국민이 빠져 들어간 나라는 세계에 없습니다. 알콜 중독도 심각합니다. 20%가 됩니다. 그런데, 미국 와서 사는 한인들은 그 혜택이 큽니다. 술 끊고 담배를 끊을 수 있습니다.

중독은 intoxication입니다. 해독은 detoxication입니다.
심리학적 의미의 중독은 addiction입니다. 중독을 이겨낼 길은 말씀에 집중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말씀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말씀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자유 주시는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이 어쩔 수 없는 모든 죄의 사슬에서 영원한 해방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결론

저녁 시간에 조용히 차 한 잔 마시며 음악 들을 수 있는 자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만한 행복이 따로 없습니다. 식구들과 함께 교회 가서 찬송 부르고 예배 드릴 수 있는 자유. 성가대나 주일학교 봉사를 하면서 교회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 이건 정말 은혜로운 자유입니다.

이제 주님 앞에 기도드리겠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입니다.
이미 영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오늘 다시 주님을 영접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후부터, 다시는 사탄의 노예가 되지 말고 온전히 주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삶에, 참된 자유가 늘 있어서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합시다.
성경공부와 예배
섬김과 봉사의 삶에서 진정한 은혜를 발견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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