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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영원히 감사하겠습니다 (시 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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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극동 방송에서 아흔 살 잡수신 장로님과 아나운서의 전화 대담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얼굴은 안보이지만 목소리가 쩌렁쩌렁 청년목소리 같았습니다.
아흔 살이 넘은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신답니다.
아나운서가 건강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건강비결이 두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조금씩 먹는다.
조금씩 먹고 싶어서 먹은 것이 아니고 젊었을 때에 장이 안 좋아서 식사를 남들이 하는 것 절반만 먹었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억지로라도 웃으려고 노력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안 들어도 억지로라도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면 기쁨이 오고, 감사한 마음도 생겨났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에 장이 안 좋아서 그것 때문에 소식(小食)을 하게 되었고 소식 덕분에 아흔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다 보니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이 감사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장이 나빠서 음식을 마음대로 먹지 못한 것이 그때는 불행한 일이었는데, 그 병 때문에 소식을 하게 되었고 90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면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 고통이었던 병이, 이제는 감사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긴 인생여정을 끝내고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면 도로 위의 표지판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직 감사’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인생의 뒤안길을 주-욱 돌아보았습니다.
즐겁기만 했던 유년시절, 작은 꿈과 희망도 있었지만 가난과 질병으로 힘들었던 청년시절, 감사하면서도 고독했던 학창시절, 사연도 많았던 목회의 길....
살아온 인생길을 돌아보면 남는 것은 오직 하나만 있더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려움도 많고, 힘든 일도 많고, 속상한 일도 많았는데, 잘 이기고 여기까지 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위로하시고 힘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아마도 여러분 역시,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고, 오늘 이 순간을 바라볼 때,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음을, 시인하실 것입니다.

1. 감사의 백미러를 다십시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백미러가 깨진 채, 몇 번 운전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불안하고 답답한지 모릅니다.
자동차는 앞으로 가는데, 뒤가 안보이면 답답합니다.

인생여정을 가는데도, 백미러가 필요합니다.
인생의 백미러를 보면, 감사가 보입니다.

우리의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면, 모든 사건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과, 어렵고 힘들고 눈물겹게 지나온 세월입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기쁘고 즐거웠던 일도 감사하고,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감사합니다.
기쁘고 즐거웠던 시절은,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하신 것이 감사하고, 어렵고 힘들고 눈물겹게 지낸 세월은, 그런 시절을 잘 버티고 이긴 것이 감사합니다.
뒤돌아보면, 모두 감사밖에 없습니다.

자동차에, 백미러가 필수인 것처럼, 성도에게도, 인생의 백미러가, 필수입니다.
그 인생의 백미러에는, 감사가 가득 보이는 백미러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백미러에는, 항상 ‘감사’가 가득 보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7월 첫 주,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수확하는 시기가, 일 년에 두 번이기 때문에, 가을에는 추수감사절로, 여름에는 맥추감사절로 지킵니다.
맥추감사주일은, 우리가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반년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남은 반년을, 하나님이 복 주시도록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특별하게 달라진 것도 없고, 삶에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지난 6개월 동안, 큰 사고 당하지 않고, 밥 굶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남은 6개월도,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 년을 지켜주시고, ‘나 피곤해서 못하겠다. 나 이제 지쳤다. 너희들 같이 말 안 듣는 놈들은 보기도 싫다’하시지 않습니다.
지난 6개월간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의 앞날을, 영원토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이 어둡고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않고, 즐겁게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살아온 지난 세월 뒤돌아보면, 커다란 글씨로 써서 세워져, “감사”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그 감사를 마음에 새기고, 입으로 고백하고, 목소리로 찬양하면, 오늘의 고달픈 삶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미래에도, 나를 지키시고, 복 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생깁니다.

여러분의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자랐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어린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롭게, 아이들에게 해 주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보다는, 삶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런데 자꾸 앞서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불안해집니다.
열등감이 생깁니다.
오늘의 삶이, 늘 불만이 됩니다.
그러나, 뒤돌아보며 감사하면, 희망이 보입니다.

2. 본문의 시인도, 과거를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본문 시편의 앞부분만 읽어보면, 이 시인은, 아무 문제없고, 현재 큰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에게 구원을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 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 하리이다.(셀라)”(4-8절)
하나님을, 종일토록 자랑하며, 감사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이 시인의 현재 상황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삶의 큰 위기를 만났습니다.
시의 뒷부분은, 이 시인이 지금 당하는 현실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먹힐 양 같게 하시고, 열방 중에 흩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무료로 파심이여, 저희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이웃에게 욕을 당케 하시니, 둘러 있는 자가,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열방 중에 말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케 하셨나이다.”(시44:10-14)

대적에게 탈취 당하게 하셨고, 우리를 잡아먹힐 양 같게 하셨고, 열방으로 흩으셨고, 욕을 당케 하셨으며, 조소와 조롱을 받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조상들에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오늘의 어두운 현실만 보고, 낙심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돌아보았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받은 은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본문 1-3절까지는, 자신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저희가 우리에게 이르매,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열방을 쫓으시고, 열조를 심으시며, 주께서, 민족들은 괴롭게 하시고, 열조는 번성케 하셨나이다. 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 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주께서 저희를 기뻐하신 연고니이다.”(1-3절)

시인은, 조상들이 받은 은혜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조상들이 받은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왜 과거를 돌아보면서, 힘을 얻었을까요?
이 시인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셨던 일을, 오늘도 하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오늘의 어려운 현실 앞에, 용기를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 하리이다.”(8)
이 시인은,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로부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놀라운 일들에 대하여 듣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 때 하신 일을 감사드리고, 지금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도, 같은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3. 뒤돌아보고 감사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과거에, 나 자신과 사람들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면, 우리의 삶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다윗은, 어렸을 때에, 사자나 호랑이 여우같은 들짐승들이, 자신의 양을 잡아가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맞서서 싸웠습니다.

산상 17:34-37절에 보면,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러 나가기 전, 사울에게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불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 즉, 나를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다윗이 양을 칠 때, 맹수를 때려잡았던 과거의 경험은, 그가 골리앗이라는 불레셋의 장군을 만났을 때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사자와 호랑이를 이기게 하셨기 때문에, 사람도 이기게 하실 것이라’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불레셋의 거인 장군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경제적인 빈곤이 아닙니다.
병도 아닙니다.
불행한 가정도 아닙니다.
두려움 때문에, 불안합니다.

옛날에는, 가난하면 죽었습니다.
요즘은, 아무리 가난해도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진 것이 없으면, 왠지 불안합니다. 두렵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지금보다 더 어려워도, 잘 이겨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전 세대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만큼, 풍족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엄청나게 복잡해져 버린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불확실성과 위험이, 늘어납니다.
이에 비하여,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현 사회는, 그러한 불안과 두려움이, 극단적으로 높은 상태입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무엇이 불안하고 두려운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면, 저마다, 가지각색의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사고나, 예기치 않은 질병 등,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공포, 인간관계, 실직이나 실패, 새로운 시도, 혹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러한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너무 자주, 너무 강하게, 또는 너무 오랫동안 느끼는 사람은, 두려움이, 단순히 특정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반응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어버립니다.
두려워하는 상황을 만나서 두려운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두려움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두려움이 모든 것에 우선하게 되면, 그 생활양식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쪽이 아니라, 두려움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직장에서의 위험, 집에서의 위험, 대인관계에서의 위험,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위험 등, 갖가지 위험을, 끊임없이 경계하게 됩니다.

현대인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 두려움 때문에, 모든 것을 합니다.
정말 아이를 사랑해서,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어서, 아이들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고, 두려움 때문입니다.
내 아이들이, 다른 집 아이보다, 뒤처지면 어떻게 하나?

자녀에게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지금까지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난 날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지난날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세요.

그러면, 내일도, 지난날처럼, 지켜주시고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을 하기 전에, 오늘까지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세요.
그러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4. 감사를, 마음으로만 느끼지 말고, 표현하고 행동하십시다.

감사를 늘 표현하고, 감사를 행동으로 옮기면, 사람 체질이, 감사 체질이 됩니다.
무엇이든지 감사하게 됩니다.
슬픔이 체질인 사람이, 항상 우울해하는 것처럼, 감사가 체질이 되면, 항상 기쁨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한방에서, ‘사상체질’이라는 말을 합니다.
오장육부의 허와 실이, 각기 다른 네 가지 체질을 말합니다.

-사상체질-
[이제마](1836-1900)
<동의수세보원>

이제마(1836-1900)가 <동의수세보원>에 기록한 내용에 의하면, 인간의 체질을, 태양인과, 태음인, 소양인, 소음의 네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태양인은 어떻고, 태음인은 어떻고 말합니다만, 이런 체질에, 신경 쓸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감사의 체질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은 체질은, 감사체질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 때 서점가에서, 인기리에 팔렸던 책 중에,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49가지는, 누구나 다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쉬운 일이지만, 우리가, 잘 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 가운데, 감사를 표현하기에 좋은, 몇 가지를 골라보았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은사님 찾아뵙기,
부모님 발 닦아 드리기,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외쳐보기.
경쟁자에게 고마워하기,
남을 돕는 즐거움 찾기,
정성이 담긴 선물하기,
고난과 반갑게 인사하기,
사소한 것의 위대함을 찾아보기.

말로 표현하고, 행동을 옮기는 것에, 감사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 딸이 아버지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사는 게 너무 나 힘들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딸은 한 달 전, 남편과 소사한 일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남편을 불만을 터트리며, 결국 짐을 꾸려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아이의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주일째, 무단결석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세상사에 신물이 났지만, 아이를 겨우 설득해, 학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일이 생겨 버렸습니다.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들어와, 쓸 만한 것들을 죄다 훔쳐갔습니다.
경찰이 출동해 조사를 하고 있는데, 아이의 학교에서,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친구와 다투다가, 계단에서 친구를 밀어, 다치게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처럼, 딸의 생활은, 엉망이었습니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랜 경력의, 주방장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불만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그녀를 데리고,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먼저 큰솥에 물을 넣고, 팔팔 끓였습니다.
그러더니, 홍당무를 물에 넣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계란을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커피 원두를 곱게 갈아, 집어넣었습니다.
그는, 세 가지를 계속해서 끓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딸은, 아버지에게 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놀림이 진지한 것을 보고, 그냥 기다렸습니다.
20분이 지나자, 아버지는 불을 껐습니다.
먼저, 홍당무를 꺼내, 그릇에 담았습니다.
계란을 꺼내, 또 다른 그릇에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커피를 잔에 따랐습니다.
그런 다음, 비로소 몸을 돌려, 딸에게 물었습니다.
“예야, 지금 뭘 봤니?”
“홍당무랑 계란이랑 커피요”  아버지는 딸을 손짓해 부르더니, 홍당무를 만져보라고 했습니다.
홍당무는, 아주 부드러웠습니다.
아버지는, 계란을 까보라고 했습니다.
딸은, 계란을 벗기며, 그저 잘 삶아진 계란일 뿐인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셔보라고 했습니다.
딸은, 향기 짙은 커피를, 마셨습니다.
맛있었습니다.
“아버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신 거예요?” 아버지는, 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습니다.
“어떤 게, 너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니? 너는 홍당무니,  계란이니, 아니면 원두커피니? 어려움에 부닥치면,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한 걸까?”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생각한 딸은, 아버지의 깊은 뜻을,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딸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집을 나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했습니다.
아이와의, 대화 시간을, 늘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딸이 풀이한 아버지의 뜻은, 이러했습니다.
홍당무, 계란, 원두커피는, 똑같이 펄펄 끓는 물에 들어가, 서로 다른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홍당무는, 솥에 들어가기 전에는, 딱딱하고 강했지만, 끓은 물속에 들어가자, 정반대로 부드러워졌습니다.
계란은, 쉽게 깨지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얇은 껍질로, 내부의 액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펄펄 끓는 물에 삶아 내자, 액체가 단단해 졌습니다.
원두커피는, 더욱 특이합니다.
끓는 물에 들어간 뒤, 물과 하나로 융화되었고, 마침내는 물을 변화시켰습니다.
향기를 가득 담아서,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에게, 쉼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원두커피 향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은, 마치, 은은한 커피 향과 같은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늘 밝은 웃음이 있습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평화가 전달됩니다.

***** 어떤 부자가, 말을 타고, 숲 속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몇 십 마일을 간 다음에, 드디어 어느 지점에서, 부자가 만났습니다.
그래서 서로 반가워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때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참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지요. 하나님의 섭리가 놀라워요.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 말에, 아버지가 궁금해서, 까닭을 물었습니다.
아들이 하는 말이,
“제가 지금 아버지를 찾으러 오는 도중에, 나무뿌리에 걸려, 말이 세 번이나 쓰러졌어요. 그런데 저는, 한군데도 다친 데가 없어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한지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도,
“그래, 감사할 일이구나. 그런데, 나도 하나 감사하자. 내가 너를 찾아오는 도중에, 내 말은, 한 번도 나무뿌리에 걸려서 쓰러진 적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참 우리 하나님, 감사하구나.”
우리는, 이 부자의 대화에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감사로 반응하세요.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들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오늘을 감사하며, 다가오는 내일을, 감사로 소망하는, 여러분의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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