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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의 축제와 기쁨의 행사 (신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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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이 지키는 세 가지 절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신명기 16장을 통해 보면 1절 이하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으로부터 해방 기념일인 유월절, 오늘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 칠칠절 즉 우리가 지키고 있는 맥추절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13절 이후에 초막절 우리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출애굽기 23장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세 가지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천 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 유리방황하는 세월 속에서도 그 민족의 맥을 유지하고 영토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그들은 세계 어디 있던지 그들의 고유한 교육을 통해 민족의 힘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교육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점은 가정교육, 회당교육, 절기교육입니다. 가정교육은 가정에서는 철저히 하나님을 가르치고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칩니다. 뿐만 아니라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함께 하셨던 은혜와 은총의 역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어려운 때를 잊지 않고 회상함으로 하나님 앞에 그것을 능가하고 이기게 하셨던 은혜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이어지는 남 유다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나라가 멸망한 이후에 그들은 절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총독으로 부임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이후에 그들은 예루살렘 수문 앞에 모여서 학사 에스라의 주도하에 영적 부흥을 이루게 됩니다. 즉 느헤미야 8장 14절 이하를 보면 학사 에스라의 지도를 받아 초막절 절기를 회복하고 마침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이루는 것을 봅니다.

오늘은 전 교회적으로 맥추절로 지내게 됩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의 해방 기념일인 유월절이 지난 이후 7주 지나서 즉 50번째 되는 날에 하나님 앞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로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을 감사하고 첫 번째 수확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날은 기쁨으로 모여 형제자매 이웃 모두가 함께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께 감사의 축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맥추절은 히브리어로 수확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후에는 칠칠절 혹은 오순절로 불립니다. 첫 번째 수확을 끝낸 후에 기쁨 속에서 수확을 가능하게 하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렸던 축제의 절기입니다. 동시에 우리 인생은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고백하는 심정으로 일상의 모든 일을 다 중단하고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재무장하는 날입니다. 더욱이 이날은 예수님께서 모든 백성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강림을 기념하는 오순절 성령강림절로 승화발전하게 됩니다.

도대체 농경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이와 같은 절기들이 이 시대, 산업사회를 살고 있고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연관이 되어질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것은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그 적용을 통하여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정하여 그들에게 지키게 하신 그 정신을 파악하여 계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맥추절을 지키게 하신 근본적인 의도를 파악하여 믿음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하고 우상으로 찌든 가나안 땅에 살면 무엇보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가운데 동화되어 우상을 섬기고 그들의 부패된 삶속에 빠져들어 갈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각종 규례와 거룩과 성별에 대한 일들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장년남자는 일 년에 세 번 즉 지금 말씀한 세 번의 절기에는 반드시 성소에 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은 이 절기를 준수하고 절기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와 거룩한 뜻을 기념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게 됩니다. 또 자신의 신앙에 성장을 이루게 되며 그것을 통해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현재화시켜 내 생활 속에 실제화 시키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2006년 맥추절을 맞이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맥추절의 교훈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맥추절에 가장 중요한 의미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나아가서 감사하는 행위입니다. 그와 같은 절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합니다. 그 인정과 감사를 내 마음과 행동으로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10절에 말씀합니다.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복 주신대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고 나는 그 축복의 수혜자라는 것입니다.
시편 65편 9절과 10절을 보면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 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의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일로 평평하게 하시고 그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즉 물이 없는 박토 지역 어느 곳에서나 물이 흥건하여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푸근케 되는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를 말씀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우리의 누림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일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가 성숙해진다는 것은 이전에는 우리의 모든 일은 내 손으로 수고해서 내가 결실한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 위에 더한 하나님의 축복과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수고해서 얻은 줄 알았는데 내 주변사람들이 나를 도왔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베풀어 주셔서 모든 여건을 허락해 주셨기에 내게 이와 같은 축복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우리의 주변사람들에게 감사할 때 우리는 더욱더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도대체 어떤 축복을 얼마나 주었는지 내게 어떤 힘이 있는지 한번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내 힘을 다해 헤아려 보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았는데 너무 좋아서 끌어안고 잘 사용하고 밤에 잘 때고 안고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그 선물을 찾는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보고 얼마나 받은 은혜가 큰지 헤아려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기뻐하시겠습니까? 얼마 전 저희 집 막내아이가 6학년인데 학교에서 만들기 시간에 쿠션을 하나 만들어왔습니다. 솜도 넣고 천으로 바느질을 해서 쿠션을 만들었는데 시중에는 파는 것과 별 진배없었습니다. “참 잘 만들었구나.” 칭찬을 해주고 “너무 잘 만들어서 아빠가 갖고 싶은데 가져다가 사무실에 놓고 써도 되겠니?” 하니 굉장히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무실로 가져와 두었는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전에 아이들이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인데 제 생일에 무엇을 주었냐하면 둘째는 저에게 곰 인형을 주었습니다. 저희 셋째는 강아지 인형을 주었습니다. 그것 가지고 놀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것이 좋으니까 그것을 아빠에게 선물을 한 것입니다. 조그마한 아이들이 돈을 모아서 그것을 사서 아빠에게 생일날 선물을 주니 기특하잖아요. 물론 그것 가지고 제가 재미있게 놀아야 하지만요. 그래도 굉장히 마음이 귀하지 않습니까? 제 방에 갖다 놓았습니다. 제 방에 있는 모니터로도 쓰는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았어요. 그리고 제가 매일 봅니다. 우리 꼬맹이들이 아빠 생일날 좋아하라고 이렇게 주었는데 제가 두고 봐야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주일날 되면 또 평일날에도 성도들이 기도받으러 오실 때 아이들이 함께 오면 아이들이 꼭 그것을 달라고 우는 것입니다. 주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목사가 인심 사납게 그까짓 인형 하나가지고 야박하게 안준다고 할 수도 없고 줄 수도 없고 주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참 난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일날은 치워놓고 월요일에 다시 갖다 놓았습니다. 자꾸 시험에 드는 것 같아서 주일날 치워놓았다가 월요일 날 다시 갖다 놓았습니다. 원래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들은 잘 모르지요. 아이들이 갖다 놓은 것을 보고 마음이 흐뭇한 것이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제 방에 가끔 와서 책도 보고 했는데 이제는 커서 아이들이 제방에 절대로 안오는데 그때 와서 보면 “아빠 우리가 준 선물인데” 하고 굉장히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보고 감사할 때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네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인지 네가 힘대로 한번 헤아려 보아라.’ 이것이 맥추절에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하나 세미하게 헤아려 본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헤아려 보라고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어떤 복을 받았지요? 어떤 선물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먼저 믿음의 선물을 받았지요? 베드로후서 1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물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선물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고 우리는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겠습니까? 사도행전 17장 2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셨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셨고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할 일을 주신 것입니다. 믿음주시고 생명주시고 모든 감사한 일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의 심정을 품고 하나님이 내게 얼마나 큰 감사를 주셨는가를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늘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감사가 넘치면 사단이 우리에게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면 사단은 그 순간 우리들에게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입니다. 따라해 봅시다. “감사는 은혜의 초청이고 불평은 사단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를 초청합니다. 그런데 불평은 사단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감사한 일을 헤아려 보고 감격할 때 하나님의 은혜 속에 우리는 주의 축복과 은혜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늘 이런 말씀드리잖아요. 마음이 울적하고 고독하고 외롭고 삶의 여러 가지 낙심과 의기소침해질 때 여러분 내가 살아가면서 감사한 일 100가지 써보세요. 100번까지 번호를 적어 놓고 하나하나 칸을 채워보세요.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 또 내가 잘하는 일 무엇이 있는가 여러분 번호 매겨놓고 1번에서 100번까지 채워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려울 때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감사한 일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적어 보면 우리는 그 사이에 슬픔과 눈물과 근심은 다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에 제가 도봉산에 간적이 있습니다. 그 입구에서 몸이 한쪽이 불편하셔서 기우뚱거리는 분이 있었는데 산에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아주 열심히 올라가셨습니다. 꼭대기까지 못 올라가시겠지요. 그래서 평평한 데까지 어느 정도 가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분은 그날 처음 온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 올라가다 보니까 그런 분이 또 계시더라고요.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좀 운동을 해보리라 하고 생각하고 산에 가시는 것 같아요. 전에 저희 집 앞에 있는 학교에 운동이라도 한번 해볼까 하고 갔는데 역시 이렇게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기우뚱거리면서 운동장을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니 건강한 사람이 이렇게 무엇인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저렇게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에 의미를 다시 한 번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전에 우리 성도님 한분 세상 떠난 분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몇 번 갔었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남자 분이었는데 모든 일을 다 정리하셨어요. 완전히 투병생활로 접어드신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오늘 집 앞에 있는 앞산에 다녀왔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아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에 갔더니 “제가 이제는 멀리는 못가고 저희 집 아파트 단지를 산보로 돌았는데 기분이 좋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이제 집밖에는 못나가고 집안에서 어정어정 다니는데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셨는데 그 다음에 갔더니 누워서 못 일어나시는 것입니다. 생명이 막 잦아드는 게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있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범위가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점 우리의 삶의 범위가 줄어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며 무엇인가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생각해보며 우리의 삶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받은 축복을 한번 헤아려 보아라! 너희에게 얼마만한 힘이 있는가 헤아려 보아라!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원하여 예물을 드리라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마음에 감사와 자원과 기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의 없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것 큰 축복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잠깐 비가 왔는데 비가 와도 녹아지지 않고 여기에 올수 있다는 것 얼마나 감사해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방황 했는데 씨 뿌리면 언젠가 거둘 수 있는 기약이 없어서 그들은 씨 뿌리고 기경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만나를 주셔서 하루하루 먹고 지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만나가 끊겼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하지? 그런데 만나가 끊긴 것은 굶기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나안의 소산물을 먹고 그 다음부터 그들은 씨 뿌려 기경하며 결국 거두어서 먹었습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삶이에요. 우리는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비가 오면 우산 쓰면 되고요. 눈 오면 우리는 눈피해서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믿음의 사람은 손에 물방울 하나 튀기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게 축복이 아니지요. 시편 128편 2절을 보면“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우리 손으로 수고해서 먹고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저러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우리 마음의 도를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더욱더 성숙해지면서 ‘하나님 제게 내려주신 은혜만으로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초신자 때는 “하나님 제게 이런 큰 축복을 주시면 제가 주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초신자의 시기를 넘어서니 “하나님 제게 주신 은혜만 해도 감사합니다. 제게 주신 은혜만 가지고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부딪혀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23장 10절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모아놓고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한 사람이 천명을 쫓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붙잡고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성도들 모두가 한 사람이 천명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우리 교인이 아이들까지 합쳐서 1만 5천명쯤 되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면, 천오백만명쯤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천명을 도울 수 있는 사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하신 분은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마음의 용기를 버리지 않고 정말 내가 천명을 도울 수 있는, 천명을 섬길 수 있는, 천명에게 기쁨과 은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마음먹고 기도하고 실행하고 노력하고 애쓰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고 믿습니다. ‘안돼, 나는 먹고 살기도 힘들고 내 가족 부양하기도 힘든데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무엇을 새롭게 해서 천명을 돕는 사람이 돼?’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정말 제가 상태가 어떻든 나이가 어떻든 여건이 어떻든 어떻게 해서든지 제가 천명 이상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눈물 흘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마음에 소원을 품고 그 소원을 인하여 간구하고 소원을 위하여 애쓰며 그대로 실행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의 꿈이 시들지 않고 우리의 기도가 끊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호흡을 멈추어 주실 때까지 하나님 앞에 은혜를 가지고 소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그냥 한 번 아멘 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은혜, 능력, 영광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도 어쩌다 한 번 선을 행해서 늘 가슴이 설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선을 행해서 선을 행했는지 아닌지 구별이 안되어서 그것이 우리에게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내려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다 헤아려볼 때 감사하고 감격할 일 뿐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다 헤아려보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정성으로 네 마음을 드리라, 뿐만 아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고 기뻐해야 한다” 이것이 맥추절의 메시지입니다. “너희 자녀, 노비, 성중에 있는 레위사람, 객과 과부와 함께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나온 사람은 식구들뿐만 아니라 당시에 물건처럼 여겼던 노비, 그 시대에 가장 어려웠던 고아, 과부, 객, 또한 레위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을 잊지 말고 배려하여 같이 은혜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맥추절의 절기 의미를 이 시대 속에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자원하여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축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어제 토요일 아침에 보니 교회에 남자성도님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토요일 무슨 일인가 하고 여쭈어보았더니 몇 남전도회에서 저희 교회 협력하고 있는 복지기관에 가서 봉사하기 위해서 모이셨다고 했습니다. 참 마음이 기뻤습니다. 토요휴무제가 정말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토요일 쉬니 성도님들이 와서 봉사기관에 봉사도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휴가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가 먹고 놀아야 휴가인 것은 아니잖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기회가 있을 때 그 시간을 활용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우리에게 가장 좋은 휴가요 레저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마음이 기뻤습니다. 시간을 내어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저희 교회 남전도회들이 나누어서 여러 기관들에 가는 것을 제가 압니다. 여전도회도 마찬가지고, 청년공동체도 또래별로 각 기관들을 하나씩 맡아서 정기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압니다. 우리 중등부, 고등부도 그러한 것을 압니다. 참 마음이 기쁩니다. 제가 어제 우리 남전도회원들 떠나는 모습을 보고 내일이 맥추절임을 알고 하시는 건가 생각했습니다. 알고 하시든 모르고 하시든, 우리는 주의 일을 모르고 준비할 때가 많습니다. 참 마음에 감사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보고서가 올라왔는데 장학위원회에서 정리한 것을 보니 지금은 3기사역에 접어드는데 우리가 2기사역에 장학금 지급한 것이 26억 1천만원이라 하였습니다. 참 마음에 감사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헌금한 것을 가지고 우리가 26억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앞에 있는 교육관도 빌려서 쓰고 있는 것인데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건물을 구입하지 않고 장학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일단 장학분야에 있어서 우리는 교회 건물 하나 짓지 말고 그 교회건물 지을 200억을 가지고 우리가 인물을 키우자고 했습니다. 2기 사역 때 그러했으니까 이제 3기에는 배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넘어서 4기가 되면 그 배가 되니 우리가 예상했던 지급액 기준으로 200억 정도는 장학금으로 지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 교회는 한 번 시작한 것은 끝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또 사회복지나 국내선교 등 다른 여러 분야도 많이 있지만, 일단 한 분야에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은혜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성도들이 기도하고 정성껏 힘을 내고 또 그분들이 정성껏 그것을 잘 활용해서 또 사람들을 키우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가장 즐거운 모임은 바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빨리 예배드려야지 하는 마음의 조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뿐 아니라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우리의 목적인 것입니다. 예배 자체가 우리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것이 믿음의 백성의 모습입니다.
저는 요즘 비가 올 때마다 가장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제게 우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 올 때 우산 하나 없으면 만날 비 맞고 다닙니다. 그런데 우산 하나 있어서 비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또 비 맞은 옷, 젖은 옷 입고 있지 않아도 되고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옷 한 벌 밖에 없으면 젖은 옷 몸으로 말려야 하니까요. 너무나 감사하지 않습니까. 오늘도 돌아갈 집이 있고, 오늘도 먹을 음식이 있지 않습니까. 집에 없으면 우리 교회에서 국수 줍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람이 시험에 빠지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에 빠짐이라고 야고보서 1장 14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욕심에 끌려 미혹되지 않으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최대 행복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정말 마음에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마음에 정말 내가 가진 것을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어떤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축복받은 사람으로 어떤 은혜를 나눌 수 있을까하고 생각할 때 주님의 더 큰 축복이 우리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오늘 마음에 결심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천명 이상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아멘 안하면 안됩니다. “제가 천명 이상을 돕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믿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루어지나 안 이루어지는가 보십시오. ‘안될 것 같아.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뭘 하겠어.’ 그런 사람은 안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가 지금부터 노력해서라도 반드시 천 명 이상의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기쁨을 주고 은혜를 주고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하는 이와 같은 은혜를 끼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면 그것을 분명히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소원을 주셔서 우리 마음에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신 후에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그 일을 실행하게 하시고 실행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들에게 어떤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 마음에 소원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첫 번째 단계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오늘 12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너의 어려웠던 적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너의 어려웠던 적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웠던 적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때, 애굽에서 해방되었던 때, 광야에서 헤맬 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셨던 때, 가나안 정복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셨던 때, 그 어려웠던 때를 모두 다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어려웠던 때를 잊지 맙시다.”
“나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맙시다.”
“내가 어려웠을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잊지 맙시다.”
우리 어려운 때가 있었습니다. 힘든 때가 있었습니다. 내게 조그만 도움을 준 사람들도 우리에게 있고, 모든 고통의 때가 있었는데 그 때를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어려운 때를 어떻게 극복하게 하셨고, 하나님이 어려운 때에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가를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상태가 조금 나아지면 교만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전과 달리 싫은 소리 듣기 싫고 내가 지금도 이런 소리 들어야 되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우리가 저 계곡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는 겸비한 마음이 들 때 우리는 언제든지 그 상태 속에서 새로운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한 부류는 상태가 좋아질수록 어려웠던 때를 생각해서 더욱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오히려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철저히 더 깊이 배려하고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더 겸손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높아지면 어느 정도까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이상은 안됩니다. 겸손한 이들은 어느 정도까지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높이까지 계속해서 주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봅니다. 가끔가다 이러저러한 어려움이 있을 때 이전의 어려웠던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냈던가 하나님이 내게 어떻게 은혜를 주셨던가 그 어려움을 통해서 내가 받은 축복과 은혜는 무엇이었던가 신음하며 고통하며 부르짖을 뿐 아니라 기쁘고 감사한 일을 생각하며 어려운 때를 극복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잠언 22장 3절을 보면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또 잠언을 보게 되면 미련한 자는 곡물과 함께 절구에 공이로 넣고 찧을 지라도 그 미련이 벗겨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미련한 사람을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는 것 같은 고통을 주어도 절대 어리석은 미련함을 벗어버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어디까지 하는지 끝까지 버텨보리라 해도 하나님께 버티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꼭 해를 받아야 거기서 깨닫습니다. 해를 보기 전에 숨어 피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절기를 통해서 교육을 합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때가 있었다. 쓴 나물을 먹으며 발효시키지 않은 굳은 딱딱한 빵을 먹으며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 주셨던 때를 다시 한번 회상합니다. 출애굽 시켜주셨던 때, 또 광야의 어려웠던 때 하나님께서 소산을 이루게 하셨던 때, 거두게 하셨던 모든 때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우리의 과거 어려웠던 때를 잊지 않고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의 뜻을 이루는 아름다운 주의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정리코자 합니다. 우리의 삶에 이러저러한 일을 겪으며 우리는 많은 결정을 하고 삽니다. 어떻게 결정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게 되면 우리는 사람 나름의 일정한 원칙이 있는 것을 봅니다. 현상, 현상, 현상이 이루어지며 그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면 그 현상 가운데 일정한 하나의 일맥상통하는 원리가 있는 것을 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저런 일이 일어날 때, 그곳에 일정한 원칙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원칙을 쭉 꿰면 하나의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현상을 꿰면 원칙이 됩니다. 사람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원칙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저런 일이 일어날 때,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유심히 보면 그 사람은 어떤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파악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어떤 일을 생각하십니까? 어떤 원칙하에 어떤 일을 결정하십니까? 어떤 원칙 가운데 사람을 만나고, 어떤 원칙 가운데 일을 진행하십니까? 우리에게 분명히 원칙이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나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원칙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기준이 없으면 판단하지 못합니다. 기준이 없으면 결정하지 못합니다. 결정하는 것은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원칙, 기준은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뜻을 나의 원칙으로 삼아 결정하고 실행하고 그것을 통하여 무엇인가 결과를 기대합니까? 아니면 내 마음에 일어나는 기분이나, 아니면 내 마음에 일어나는 인간적인 기질이나, 아니면 어떤 요행수 때문에 그것을 원칙 삼아서 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하십니까?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 앞에 믿음의 원칙을 가지고 사셔야 합니다. 오늘 맥추절을 통해서 하나님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희에게 준 축복을 한 번 헤아려 보아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헌신하며 네 이웃을 정말 사랑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같이 나누어라 그리고 어려웠던 때를 잊지 말고 네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믿음의 백성으로 우뚝 서라는 것입니다. 이번 맥추절 절기를 맞이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감사를 헤아리고 어려운 우리 주변사람들을 배려하며 정말 내가 천명 이상의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마음에 결심하는, 그리하여 우리 어려운 때를 회상하여 오히려 더 큰 힘을 얻게 되는 은혜의 백성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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