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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로암 (요 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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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때부터 소경되어 일생을 캄캄한 흑암속에서 지내다 예수를 만나 광명을 찾게된 위대한 신유체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의 오관중에서도 눈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환한 대낮에 수건으로 한시간만 눈을 가리게 된다면 모두 질식을 할 것입니다. 이제 이 소경이 치유받은 곳인 실로암이 어떻한 자리인가를 상고함으로써 이 소경의 체험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1. 소망의 자리

여러분은 날때부터 소경된자의 삶에대해 생각해 보았습니까? 20세게 위대한 기적의 인물이라하는 헬렌 켈러 여사는 두 살때 실명을 하고서 불굴이 투지로 법학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많은이들에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그러나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 소경상태,특히 본문과 같이 날때부터 소경된자의 상태는 생존을 위한 생존일뿐 그 이상은 아닐것입니다. 그에게 인생목표가 어디있겠으며 단란한 생활의 꿈이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의 소경도 절망과 실의의 한평생을 그저 운명으로 생각하고 지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께서는 실로암으로가서 진흙묻은 눈을 씻으라고 명하셨으며 이는 곧 캄캄한 절망속에 비치는 소망의 빛과도 같았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우리는 구약의 역사속에서 확고한 비전을 지녔던 인물로서 요셉을 기억합니다. 그는 어릴때부터 꿈꾸는자 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남다른 포부와 비젼을 가지고 살았으며 이러한 비전으로 말미암아 형제들의 시기를 받아 멀리 애굽땅으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요셉은 온갖 모함과 천신만고의 어려움을 당하게 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꿈과 소망을 끝까지 부여 안음으로서 주어진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하여 마침내 애굽의 국무총리의 자리에 올라 흉년을 피해온 야곱일가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창45)그러면 우리의 소망은 무었입니까?

우리의 궁극적 소망은 없어지고 변하여질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을때 우리는 이 나그네 같은 인생여정에서 만나는 갖가지 상황들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잘 선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순종의 자리

우리가 본문을 통해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소경이 예수의 명령에 순순히 복종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예수에 대해 얼마나 또 어떠한 것을 알고 있었는지는 기록 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의 상황이 너무나 절망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큰 어려움에 봉착하여 인간의 한계를 절감할 때, 하나님 앞에 무조건 항복하는 사례들을 경험합니다. 역으로 몸이 건강하고 사업이 잘되고 모든 상황이 자기의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어질때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약한자의 노예 내지는 부담스러운 짐과같이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형적인 성공보다는 내면적인 중심을 보시기에 순종을 제사보다 낫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이란 인간의 지혜나 인간적인 계산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때로 교만한 마음을 징계하사 먼져 하나님만 의지하는 깨끗하고 빈 심령을 준비시키십니다.
역사상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들은 하나같이 자존심이 강했고 하나같이 그러한 자존심의 깨어짐을 당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실패, 인간의 한계, 인간의 죄성을 통철히 깨달은 다음 비로소 이들은 이룰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순종의 자리가 여러분들의 자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기적의 자리

기계문명의 진보에 때라 보턴 하나로 많은 수고로움을 덜수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이 하나의 신화로만 느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기적은 늘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 생기는 일들은 기적이라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적이 오히려 당연지사이기 때문입니다. 창세 이래로 지금까지 하나님은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이적들을 통해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어 오기도 하시고 또 성도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붙들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뒤에는 성난 사자와 같이 바로의 군데가 달려오고 앞에는 망망대해가 떡 가로막고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내밀어서 홍해물이 갈라지는 체험을 했습니다.(출14:)
그리고 여호수아 군대가 견고한 여리고 성 주위를 나팔을 앞세우고 돌기만 하는 것이 인간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멍청하게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방법으로 그 여리고성을 가볍게 무너뜨렸습니다. (수6:) 그 외에도 성경에 보면 죽은자가 살아나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는등 수많은 이적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큰 기적은 역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옛 사람이 새 생명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옛 사람의 모든 부패한 행실들을 끊어버리고 날마다 새 사람의 표시들을 드러내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상태가 어떻습니까? 여러분을 둘러산 환경은 어떠합니까? 혹시 환경을 탓하며 절망과 한탄 가운데 아까운 생을 허비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확실한 비젼과 소망을 심어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시는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이 머물자리를 여러분 속에 비워 두기를 원하십니다. 기적은 늘있음을 믿고 사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감사의 자리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여 눈을 뜨게된 그의 기적만을 이 사건의 전부로 취급할 위험성이 많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걸인은 핍박이 가중될 수록 점점더 완벽한 신앙고백과 주를 향한 무한한 감사를 표현하고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고침받은 그를 계속 끌고 다닙니다. 그의 회복이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임을 꼬투리잡아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한 수단으로 그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그는 더욱 담대하게 주의 능력을 고백하며 믿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합니다. 내 세울것이 없던 인생 불쌍하게 그지없던 존재가 변하여 주님의 변호인으로 더 나아가 주님의 주되심을 증거하는 제자의 자리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본문을통해 우리는 참 제자의 모습을 발견하게됩니다. 먼저는 확실한 체험적 신앙인이 되는것이요 다음은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사는것입니다. 그 증거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어떠한 멸시와 조롱은 결코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열정과 감사의 고백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 고침받은 걸인이 주님앞에 절하는 모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주님앞에 어떤 모습으로 무릎을 꿇어야 합니까? 어떤 모습으로 감사를 표현해야합니까?
이 감사는 눈을 뜬 모든 사람이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년의 내 신앙성장,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모습 모두룰 묶어 주님앞에 감사를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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