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6.25기념]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 20:1-12)

  • 잡초 잡초
  • 305
  • 0

첨부 1


던 플라이즈라고 부르는 배 한 척이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항해하던 중에 이 배는 거대한 암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암초를 피해가야만 할 터인데 이 배는 바람이 불어야 바람을 이용해 방향을 틀고 움직일 수 있는 쌍돛을 단 배였습니다. 선장은 이 거대한 암초를 피해가기 위해서 갖가지 노력을 다 기울여 보였지만 조금도 배의 방향을 틀 수 없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 원망어린 시선을 던지며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이제는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선장님, 아직 우리는 한 가지 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바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 배에는 저를 포함한 4명의 기독교인이 있는데 우리가 이제부터 선실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바람을 보내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그는 자기 선실로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간을 기도했을까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선교사님, 좀 나와 보세요. 바람이 불고 있어요!“ 바람 한 점 없던 그 바다에 바람이 어디선가 몰려와서 이 배의 방향을 무사히 바꾸게 했고 거대한 암초를 피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에도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기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기도의 능력이 어디 있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는 능력으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전쟁의 모습을 본적 있으십니까?

  당연히 전쟁이라면 총과 칼을 가지고 무장한 병사가 앞서야 하고 탱크와 전차가 앞서야할 터인데 오늘 이 전쟁의 모습을 보십시오. 앞에 대적이 몰려오는데 이 군대 앞에 거룩한 예복을 입은 성가대가 앞장 서 있습니다. 나팔을 불며 그들은 입을 벌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곤 놀랍게도 성가대가 찬양을 시작하면서 적의 진영의 뒤편에서 복병이 일어나서 대적을 치기 시작합니다. 대적이 혼란에 빠지니 자기들 스스로 서로를 살육하면서 패배해갔습니다. 결국 그 대적은 광야에 다 쓰러져 버리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놀라운 전쟁이 오늘 성경 역대하 20장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남왕국 유다를 통치할 때에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남왕국 유다를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여호사밧 왕과 온 백성은 처음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곧 정신을 차리고 이 위기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온 백성이 연합하여 한 곳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중의 한 사람인 야하스엘이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너희는 대적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싸움은 너희의 싸움이 아니라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너희는 오직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설 것이다 너희는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놀라운 전쟁의 승리를 거두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특별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여호사밧 왕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 12절 말씀을 읽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아멘. 따라해 보십시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이것이 기도하는 여호사밧 왕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저 큰 무리를 대적할 능력도 없고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께만 소망을 둡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의지합니다.” 여기에 전적인 기도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호사밧 왕도 경험이 많은 왕이었습니다. 많은 재물도 있습니다. 든든한 국방력도 있습니다. 그 주위에는 많은 모사가와 제자들도 있지만 왕은 그들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계십니까? 아직도 주님을 의지하기에 뭔가 아직 남은게 많이 있습니까? 건강을 의지하고 재물을 의지하고 경험이나 지혜를 의지하십니까?

  어떤 크리스챤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양다리를 걸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서 인간적인 수단도 강구해 놓습니다. 매우 지혜로운 것 같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오늘 여호사밧 왕은 자신의 가진 것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가 의지할 것을 다 내려놓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시편 62편 8절에 보니,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시시로 저를 의지하라는 말은, 24시간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마음의 염려와 걱정을 그 앞에 토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26절에 보면,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이 기다림이 좋더라”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호사밧 왕은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백성과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요? 기적적인 승리의 삶을 이루는 조건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는 여호사밧의 기도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첫째로, 그들은 연합하여 기도했습니다.

  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아멘.
  유다 사람이 여호와에게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모든 성읍에서 모여왔다고 했습니다. 흩어졌던 성읍에 있던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연합하여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연합된 기도, 마음과 뜻을 합한 기도가 가장 강력한 기도요, 능력 있는 기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에 보니,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하지 않습니까? 바로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를 주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함께 나누며 기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구역에서 남녀신도 기관에서 또 여러분의 모임에서 연합하여, 합심하여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권사님 한 분이 하시는 간증을 들으니, 어느 날 부인되시는 권사님께서 여러모로 몸이 불편하여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봤더니 목 전체에 갑상선이 퍼져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답니다. 이제 어떻게 하나 싶어 크게 상심이 되었습니다. 남편 권사님이 소그룹 모임에 와서 그 사실을 다른 그룹원들에게 알리며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위해 통성으로 함께 기도했습니다. 일주일 후 다시 진단을 받으러 갔는데 놀랍게도 그 갑상선이 깨끗하게 나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간증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연합하여 드리는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심야기도회 나와서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두고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능력 있는 기도인지 모릅니다. 심야기도회 나와서 기도하시는 분들 가운데 다리도 낫고, 머리 아픈 것도 나았다는 분들을 종종 뵙니다. 일일이 여러분들께 알려드리진 않습니다만, 실제로 많은 교인들이 하는 간증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 교회가 합심하여 연합하여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기도요,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는 기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자주 모여야 합니다. 능력 있는 교회는 모이기를 즐겨하는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영신교회 교우들이 예배에 잘 나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에 한 번의 모임으로 만족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참여하실 수 있는 모든 모임에 열심히 나오신다면 거기에서 기적이 나옵니다.

  특별히 우리는 월드컵의 열풍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스위스에게 어찌 보면 부당하게 심판의 판정 때문에 져서 마음이 참 아픕니다만, 이제 월드컵의 열풍은 한층 가라앉은것 같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역사이래로 이렇게 온 국민이 하나가 된 적이 언제였겠습니까? 신문, 텔레비전은 온통 붉은 색으로 도배를 했습니다. 만나면 축구얘기 뿐이었습니다. 두 주간 동안 신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어땠습니까? 지방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를 당하고 백성은 대통령을 향해 손가락질을 당했습니다. 온 국민이 갈가리 찢겨져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참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오늘 6.25 발발 56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선배들의 피 흘림과 고통 속에서, 그리고 우방 국가들의 도움 속에서 안정과 번영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갈갈이 찢긴 분열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대에 교회의 사명이 크다고 믿습니다. 먼저 교회가 연합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을 중심으로 이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민족으로 하나될 때, 이 민족이 푸른 미래를 향해서 멋진 항해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연합한 기도가 힘이 있습니다. 1970년대에 보면,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오셔서 집회할 때 100만 명의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집회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연합집회가 됩니까? 안됩니다. 10만 명도 안 모입니다. 부흥회를 해도 교인들은 안 움직입니다. 자기 교회에서 해도 안 모이는데 다른 교회에서 모인다고 가겠습니까? 연합할 줄 모르고 모이기에 힘쓰지 않습니다.

  오늘 여호사밧 왕과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을 합하여 연합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역사해주셨습니다. 저는 우리 영신교회가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 연합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3절 말씀 읽습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아멘.
  구약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를 당했을 때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국가적인 위기를 경험했을 때 그들은 금식하며 때로는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에서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능히 물리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 인생의 위기 가운데 있다면 질병의 고통 가운데 있다면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 가운데 던져져 있다면 여러분, 금식하며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식은 가장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금식은 기도에만 전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금식은 바로 우리의 마음과 뜻을 하나님만 향해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 59장에 보면, 금식은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끊어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흉악의 결박, 멍에의 줄을 끊어주는 것이 금식 기도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 앞에 부딪칠 때 마다 여러분이 작정하시고 한 끼든 두 끼든 하루든 이틀이든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오늘 여호사밧 왕의 드린 능력 있는 기도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읽습니다.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사밧 왕은 여호와의 성전 앞 뜰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드린 기도는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8절과 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저희가 이 땅에 거하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건축하고 이르기를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아멘. 오늘 여호사밧 왕은 솔로몬의 봉헌기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새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혹은 우리가 재앙이나 온역이나 전쟁의 위협이나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이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면 하나님 응답해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여호사밧 왕은 그것을 기억하고 이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드리는 기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더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면 우리가 남의 집에 지하실 방에 전세 들어서 어렵게 산다면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집 하나 지어서 살면 좋겠다는 바램이지 않겠습니까?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저축을 해서 땅을 사고, 자기 집을 지었다고 칩시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제 그 좋은 집을 지어 놓았으면 그 집에서 가족들이 함께 시간도 보내야 하고 공부도 하고 잠도 자고 생활도 하고 예배도 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집은 다 지어 놓고 나니 이제 할 일 다 했다고 밖으로만 돌아다닙니다. 집에 와서는 자는 법이 별로 없습니다. 여행만 다니고 이웃 집, 친구 집만 전전하며 다닌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성전을 건축할 때는 “이 건축하다가 교회가 잘못되면 어떡해?”하며 열심히 나와서 기도하고 부르짖고 모이기에 힘썼는데, 건축 잘 해 놓았으니 이제 걱정이 없다고 일주일에 한번만 가면 된다고 혹시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예배당 잘 지어놓고 우리가 와서 예배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이 건축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새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기를 원하시는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이 아름다운 성전을 계획하실 때는 이 성전을 통해 영등포 지역에, 여러분의 삶에 복을 주시기를 작정하신 것입니다. 복을 아무리 주려고 해도 기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복 받을 그릇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배당 지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예배당을 잘 지어서 헌당했으면 이 예배당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머리 숙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목사님, 우리가 건축할 때는 긴장해서요 40일 기도하고 작정했지만 이제 건축 잘 했으니 집에서 자면 어때요?”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성전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이 성전에 나와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여호사밧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고백하면서 기도했습니다.

  12절 말씀 읽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아멘.
  여호사밧 왕은 이 큰 무리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할 줄도 모르겠다고 자기의 무능과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주님을 향해 그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한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나의 무능함을 고백하는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약할 때가 가장 강한 때라고...말입니다.  내가 연약할 때 성령께서 내 위에 가장 강하게 역사한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보시고 주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성전에 나와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정이 믿지 않는 가정이라면 여러분 가정의 파수꾼은 믿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파수꾼이 누구입니까? 바로 교회와 성도입니다. 세상이 죄악의 나락 속으로 빠져가고 영적 어둠이 깊어질 때 교회는 깨어서 기도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1950년 6월 29일, 6.25 전쟁 발발 나흘째 되던 날 미 극동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이 한국 전쟁 상황을 살피기 위해서 도쿄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짚차로 영등포의 한강 인도교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는 쌍안경을 가지고 인도교 건너편의 인민군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한강 인도교는 폭파되어 있었고 강 저편에는 인민군들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맥아더의 눈에 한강 인도교 이편으로 한 부동자세로 총을 들고 서 있는 한 병사가 보였습니다. ‘참, 이상하다. 다른 부대는 다 후퇴했는데 왜 저 친구 혼자 저기 서 있을까?’하는 의아한 마음에 다가가 물었습니다. “여보게, 다른 부대는 후퇴했는데 자네는 왜 여기를 지키고 있나?”하고 물었더니 그는 “저는 군인입니다. 상관의 명령이 없이는 절대로 후퇴할 수 없습니다. 철수 명령이 있기 전까지 저는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 것입니다.”하고 대답하더랍니다. 맥아더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훌륭한 병사가 있는 한 대한민국은 결코 망하지 않을 거야. 자네는 정말 훌륭한 군인이야. 내가 일본으로 건너가면 곧 지원군을 보내 주겠네.” 맥아더는 일본에 돌아가자마자 연합군의 한국 전쟁 참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국군의 여러 가지 기록과 참전한 장성들의 회고록에 의하면 맥아더 장군이 한국전 참가를 결정하게 된 것은 이 사병 때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병사의 당시 나이는 20살 이었습니다. 그는 백골부대의 180연대 1대대 3중대 소속으로 영등포의 진지를 지키고 있던 신동수 일병입니다. 그는 현재 77세의 노인으로 생존해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맥아더를 만난 이후로도 나흘이나 더 버티다가 후퇴 명령을 받고서야 퇴각을 했고 부상으로 한쪽 다리는 의족에 의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이런 병사가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안정과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민족이 잠들어 있다면 언제 또 이런 위기가 찾아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바로 교회와 성도는 오늘날 이 민족을 지키는 기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6.25 발발 56주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민족과 교회를 위해서 기도의 무릎을 꿇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