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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라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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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라
                     
“(합3:16-19)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1. 노르웨이의 한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에 사탄이 지구에 내려와 하필 노르웨이에다가 창고를 두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창고에는 각종 씨들, 미움, 슬픔, 눈물 등의 씨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씨들은 누구의 마음속에 뿌려도 잘 싹이 나는데 한 동네만은 효력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동네의 이름은 ‘기쁨’이었는데 어떤 슬픈 상황과 절망적인 처지에서도 그들은 언제나 감사했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를 뿌릴 수 없다.”는 노르웨이 속담이 나왔습니다. 금년 맥추감사절을 맞아 여러분이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있을지라도 조건 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므로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그 유명한 구약의 욥이 있습니다. 욥은 그 순전함과 정직함,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하나님께서도 인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졸지에 그야말로 폭삭 망했습니다. 게다가 그토록 사랑하는 열 자녀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렸고, 믿었던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저주하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의 온 몸에는 악창으로 고름이 터져 고약한 냄새로 찌들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욥은 자신이 당한 이러한 환난, 처참하고 비극적인 재난에 대해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찬미를 드렸습니다.

(욥1:20-21)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영국의 한 기자가 <버나드 쇼>를 찾아가 “세계의 모든 책이 불타도 남아 있어야 할 책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는 “성경 중에 욥기라 생각합니다. 그는 가난해도 병들어도 자식을 잃어버려도 아내가 배반해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당한 처참한 형편에서도 그 이유를 알려하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을 찬미하며 감사드리는 믿음을 가진 욥은 마침내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욥42:12)

마틴 루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주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욥과 같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욥과 같은 믿음으로 감사드려 욥과 같이 갑절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되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처한 시대적인 상황도 도저히 감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1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바벨론의 유다 침공이 임박했습니다. 바벨론 앞에 유다는 독수리 발톱에 낚아 채가기 일보 직전의 한 입거리 먹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나라 민족의 형편을 알게 된 하박국 선지자는 창자가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며 온 몸의 뼈마디가 썩어 문들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한 개인의 환난이 아니라 나라 민족이 당하게 될 엄청난 환난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찬미를 드린 것입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조만간 온 나라가 황폐화 되어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게 될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며 감사의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라 민족이 전쟁으로부터 평안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해서 감사 찬미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 같고 바벨론의 침공으로 나라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를 것이 분명한 데도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의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경과 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절대자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것을 ‘절대적인 감사’, 또는 ‘무조건적인 감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아침에 가정경제가 파탄 나고, 가정마저 풍지박산된 지경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는 감사의 찬미는 모든 것을 주시기도 하고 다시 취하기도 하시는 절대자 앞에 드리는 절대 감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는 말씀은 바로 절대자 하나님 앞에 “범사에”, 즉 환경과 처지가 어떠하든 절대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절대자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노먼 빈센트 필 목사님에게 한 중년의 신사가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평생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는데 그 동안 이뤄 놓은 제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이제 저는 인생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필 목사님은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조용히 물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셨다고요? 그럼 이 종이에 당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적어 봅시다. “부인은 있습니까?”
“예,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뒷바라지해 준 훌륭한 아내가 있습니다.” 필 목사님은 종이에 ‘훌륭한 아내’라고 적었습니다. “자녀들은 있습니까?” “예, 착하고 귀여운 세 아이가 있습니다.” 필 목사님은 ‘착하고 귀여운 세 아이’라고 적었습니다. “친구는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헌신적인 좋은 친구 몇이 있습니다.” 필 목사님은 종이에 ‘헌신적인 친구들’이라고 적었습니다. “당신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건강 하나만은 정말 자신 있습니다. 아주 좋은 편입니다.” 필 목사님은 ‘자신 있는 건강’이라고 적었습니다. 필 목사가 적은 종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신사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제게는 아직도 귀한 것들이 많이 남아있네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된다면 하얀 종이를꺼내 가진 것을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보다는 훨씬 많이 갖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필 목사님을 만나러 온 중년 신사는 아내가 도망가지 않았고, 자녀들이 죽지 않았고, 좋은 친구들이 있고, 자신 있는 건강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제 파탄은 그만두고라
도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도망해버렸고, 자식들은 순식간에 몰사 당했고, 게다가 자신의 몸마저 악창에 시달려야만 하는 지경에 이른 욥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절대자 하나님 앞에 자신의 처한 모습 그대로 무릎을 꿇고 감사의 찬미를 드렸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성한 나무 한 그루 없이 초토화되고, 그나마 남아 있는 나무일지라도 건져낼 열매 하나 없고, 밭은 온통 쑥밭이 되어 거둘 것이 없으며, 짐승들을 모두 약탈당해 텅빈 외양간과 우리 앞에 망연자실(茫然自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며 감사의 찬미를 드린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오직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미하는, 선지자의 위대한 감사 신앙을 우리는 옷깃을 가다듬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참된 성도에게 있어서 진정한 감사와 즐거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무엇에 있지 아니하고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발견됩니다. 이것이 참된 감사와 즐거움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이시기 때문에 하박국은 현재의 위기에서도 미래를 바라보며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이신 하나님은 하박국의 삶에 있어서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합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하박국이 어떠한 환경에서도 절대적으로 감사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구원의 하나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수학은 내가 받은 은혜를 계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어찌 값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다만 이러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우리의 최고의 예물은 감사입니다.(시 95:2) 절대자 하나님 앞에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절대적으로 감사드릴 때 최고의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성도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감사의 찬미를 드리므로 갑절의 축복을 경험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절대적인 감사를 드릴지라도 나중에 믿음이 생긴 다음으로 미루지 마시고, ‘지금’ 무조건인 믿음을 가지고 ‘지금’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펄 벅(Pearl Buck)이 쓴 <대지>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습니다. 그 책의 주인공은 왕룽이라는 젊은이입니다. 이 왕룽이 자기마을에서 농사를 짓는데 매년 흉년이 듭니다. 죽도록 농사를 지어 놓으면 홍수가 나서 쓸어버리고, 또 땀 흘려 농사를 지어놓으면 수확기에 가서 메뚜기가 와서 농작물을 모두 먹어 치워버립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이 젊은이는 고향을 떠나 아내와 함께 도시로 갑니다. 가서 리어카 하나를 사서 장사를 합니다.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밉니다. 땀을 흘리며 그 날 그 날을 부부가 함께 고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그 부인은 그 생활에 매우 행복해 합니다. 남편과 함께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땀흘린 만큼 돈을 벌고, 그 날 그 날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왕룽 부부는 열심히 노력한 끝에 몇 해 후에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서 땅을 사고 큰집을 사고서 잘 살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금의환향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삶의 방향은 그렇게 순탄하게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 왕룽이라는 남편이 잘 살게 되니까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립니다. 하루는 첩을 하나 데리고 들어와서는 부인을 부엌으로 내보내고 첩을 안방에 앉혀 놓습니다. 그리고 밥 먹을 때가 되면 이 부인은 밥상을 들여놓고는 자신은 부뚜막에 밥그릇을 놓고 그 곳에서 밥을 먹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마디를 내뱄습니다. “그때가 좋았는데, 그때가 좋았는데.” 그때가 언제냐 하면 남편은 리어카를 앞에서 끌고 자신은 뒤에서 밀며 땀을 흘리며 살아가던 때를 말합니다. 즉 고생도 되고 돈도 많이 없었지만 남편과 함께 도시에서 땀흘리며 살아가던 그때가 좋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일평생 가운데서 가장 행복할 때, 감사 할 때가 언제라도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것이며 그 때가 감사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이요 기대일 뿐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내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의 상황에서 행복해 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진정 행복하고 감사할 시기는 바로 이 순간입니다. 지금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내일이 더 나을 것 같고, 내년이면 더 좋아질 것 같지만 그날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
리들의 삶 가운데서 가장 행복한 때는 다름 아닌 바로 오늘인 줄을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이 행복한 날인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내일이 되어도 행복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내일 하는 것이 아니고, 내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성도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 지금 바로 절대자 하나님 앞에 무조건인 감사를 드리므로 조건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지금’ 경험 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이러한 절대적인 감사, 무조건인 감사 생활을 위해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는”(골 4:2)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 절대자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에 감사의 내용이 풍성하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처럼 자기 자랑이나 늘어놓거나,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라며 원망 불평을 털어놓지 마시고 무조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수도원에 잔소리가 심한 늙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 곳의 한 젊은 수도사는 늙은 수도사의 방에서 신나게 잔소리를 듣고 나오면 늘상 문을 쾅! 닫고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저 늙은 수도사, 빨리 죽었음 좋겠다!’ 그런데 방밖에 있던 앵무새가 이 젊은 수도사의 말을 배워서 문이 콰앙! 하고 닫히기만 하면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저 늙은 수도사, 빨리 죽었음 좋겠다!’ 난처해진 젊은 수도사는 다음부터는 문소리가 나지 않게 살살 닫았지만 바람에 문이 쾅! 닫히기만 해도 앵무새는 큰소리로 외쳐대는 것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젊은 수도사는 수도원 원장을 찾아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수도원 원장은 싱긋 웃더니, “거 참 고민되시겠군요. 이러면 어떨까요? 제가 기르는 앵무새가 한 마리 있는데 그 앵무새를 함께 길러 보세요. 짝이 생기면 그 말을 잊을지 혹시 압니까?” 그래서 한 새장에 새 두 마리를 넣고 길렀습니다. 물론 문을 살살 닫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실수로 문을 콰앙! 닫고 아차! 하는 순간, 얄미운 앵무새가 잊지도 않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저 늙은 수도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러자 수도원 원장이 준 앵무새가 하는 말,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감사함으로 깨어 기도하는 생활이 뒷받침되지 아니하면 이같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임을 깨우치는 이야기입니다.

다니엘은 항상 감사함으로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니엘서 6장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은 포로 출신으로 바벨론의 수석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탁월한 행정 능력에 청렴결백한 생활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하거나 허물된 것이 없었습니다. 다른 총리들과 신하들이 다니엘을 없애고자 빈틈을 찾고자 애썼으나 허사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악법을 만들었습니다. 왕 외에 그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게 되면 사자굴에 던져 죽이도록 하는 악법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날마다 자기 집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을 미리 알고 만든 악법이었습니다. 다니엘로 하여금 피할 수 없는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신하들의 이러한 계략을 모르고 왕은 악법에 어인(御印)을 찍었고, 게다가 그 악법을 그 누구도 개정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수석 총리인 다니엘이 모를 리 없습니다. 평소대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사자굴에 던져져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보여준 행동은 어떠했습니까?

성경 다니엘서 6:10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른 총리들과 신하들의 예상대로 다니엘의 그들의 함정에 빠져 사자굴을 피할 수 없게되었습니다. 뒤늦게 왕도 악법으로 인해 유능한 총리 하나를 읽게 되어 안타가운 마음으로 살려내려고 애썼으나 악법을 개정불가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감사 기도를 기쁘게 보시고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사자굴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감사함으로 깨어 기도 할 때 구원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감사 기도의 기적과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부터 감사가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가 어떠할지라도 절대자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감사, 무조건인 감사를 드리므로 욥과 같이 갑절의 축복을, 하박국 선지자와 다니엘처럼 구원의 기적과 능력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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