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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감사하는 마음 (엡 5: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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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절기가 되면 늘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우라 아야꼬라는 깊은 믿음을 지닌 일본 여류 작가의 말입니다.

“빙점”이란 소설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가 그의 수필집에서“은혜에 익숙한 것은 무서운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하나님! 아무쪼록 은혜에 익숙하게 되지 않도록 인도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그는 말하기를 “나는 오래 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동안 문병 오는 손님들로부터 선물 받는 일에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랜만에 찾아오는 친구가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왔다. 아마 물건대신 봉투를 준비해 왔겠지. 봉투를 주고 가는 사람도 있으니까. 하고 생각했는데, 오래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그럼 몸조심해요.’하고 돌라갔다. 아마 봉투 내놓는 것을 잊어버리고 가다가 깨닫고 황급히 되돌아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돌아오지 않았다.‘지독한 구두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깨닫게 되기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거지와 같이 얻기를 좋아하는 자기로 변해 있음을 알고 놀랐다. 여러 번 받는 선물에 익숙해진 것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기가 되어있음을 알고 선물 받는데 익숙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병약한 자기와 결혼해준 남편이 무척이나 고마왔는데 결혼생활에 익숙해진 지금은 처음의 그 고마움이 다 사라지고 화를 내거나 제 멋대로 행동하는 버릇없는 여편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렇습니다. 기술은 익숙할수록 좋습니다. 기계를 만들거나 고치는 기술, 농사를 짓는 기술, 질병을 고치는 의술 등은 익숙할수록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꼬의 말처럼 은혜에 익숙해지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은혜에 익숙함은 고마움에 대한 무감각으로, 버릇없고 천박한 사람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한해의 첫 수확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맥추감사절입니다. 이 절기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구약시대부터 지켜오는 기독교의 절기로 지구상의 모든 교회가 지키고 있습니다. 해마다 지키는 절기이기에 모두가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전 드린 말씀과 같이 은혜에 익숙한 것은 문제가 됩니다. 은혜에 익숙한 감사는 형식적일 수 밖에 없으며, 무성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은혜에 익숙한 감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릇없는 심령으로 낙인찍혀 하나님의 은총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감사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一. 어느 때 감사해야 할까요?

본문에는“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하나님께 감사하며....”(에베소서 5:20)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언제나, 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데에는 특별한 때나 계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와 장소와 형편에 상관없이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 전서 5:18) 하셨습니다.

초대교회에 “황금의 입”으로 불리는 크리소스톰은 항상 복음을 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살고 있던 당시의 로마 황제는 기독교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금령을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쉼 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크리소스톰은 채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하나님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곳에 파송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사형 언도를 받았을 때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죽음은 순교라고 하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의 반열에 동참케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감사했습니다. 사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갑자기 사형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 졌습니다. 크리소스톰은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이 할일이 더 남아 있군요. 죽도록 충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고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곧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二. 왜 범사에 항상 감사해야 할까요?

1. 항상 감사함은 인간 본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의 말씀에“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의 말씀은 말세에 나타나는 인간의 타락상에 대해 예언한 말씀입니다.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 은혜를 망각하여 감사치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속에 물든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곧 감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개혁자인 마틴 루터는“마귀는 만성적인 불평불만 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상의 말씀에 비춰 볼 때 마귀에게 미혹되지 아니한 사람, 그리고 타락한 세상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은 은혜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 감사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하되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2. 범사에 항상 감사함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은 오천 명이 넘는 큰 군중 앞에서 어린아이의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앞에 두시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셔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게 하셨습니다(요한복음 6:1-13).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감사는 어떠한 의미의 감사입니까? 조건을 초월한 감사입니다.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에 드린 감사입니다. 모든 여건을 초월하여 있는 그대로에 대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넉넉하게 채워주실 하나님의 능력을 내어다보며 드린 미래 지향적인 감사입니다. 이것이 곧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며,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감사의 모본입니다. 이 말씀에 비춰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성숙한 성도는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본 받은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나는 흑인으로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시인인 죤 밀턴은 한창 일할 나이이며, 정치계에서 출세의 가도를 달리던 44세 되던 어느 날 갑자기 두 눈이 멀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밀턴은 하나님께 감사하기를“주께서 내 육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볼 수 있도록 신령한 눈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맹인이 된 후에 남긴 작품이 그 유명한“복락원”과“실락원”입니다.

영국의 신학자인 메튜 헨리 목사는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나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빼앗겼습니다. 그날 밤 메튜 헨리 목사는 기도하기를“하나님! 제가 그전에는 강도 맞지 않은 것을 감사하오며, 강도가 내 지갑을 빼앗아 가도 나의 목숨을 빼앗지 않은 것이 감사하옵고, 그들이 강도질을 했지만 그것이 대단치 않은 것이었기에 감사하고, 끝으로 내가 강도를 만난 것이지 내가 강도질을 하지 않은 것에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본 받은 성숙한 성도는 모두 감사했습니다. 환경이 좋아서 드린 감사가 아니라 범사에 감사한 것입니다. 항상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리교의 창설자인 죤 웨슬레는“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시”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이 공산당에 의해 총살을 당했습니다.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손양원 목사는 아홉 가지 감사를 드렸습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셋째, 3남3여중에서 가장 귀여운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바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함께 순교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고서 와석종신해도 복이라 했는데 전도하다 총살순교 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더욱 감사합니다. 일곱째,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을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덟째,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써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을 믿으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아홉째,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처럼 성숙한 성도들은 모두가 범사에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갔습니다.

3. 범사에 항상 감사하는 것은 행복의 비결입니다.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행복의 비결을 가르쳐주신 귀중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요? 내가 바라는 모든 꿈들이 다 이루어질 때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를 정복하고도 더 차지할 땅이 없어 서럽게 울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마음속에 행복이 있었겠습니까?

지혜의 왕 솔로몬은 극한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가 깨닫고 한 말은“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도서 1:2,14)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결코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사치스러운 환경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종이 위에 태양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그림에서 햇빛이 발산되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과 같다.”그렇습니다. 행복은 부족함이 없는 환경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인 파스칼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말 했습니다.“하나님과 무관한 인생, 하나님을 탐구하는 인생, 하나님을 신앙하는 인생”으로 분류하면서 이들을 각각, 하나님과 무관한 인생은 어리석은 자, 하나님을 탐구하는 인생은 불행한 자, 그리고 하나님을 신앙하는 인생은 행복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은 감사와 무관합니다. 하나님을 탐구하는 사람은 감사도 자기 기준에서 탐구만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은 감사에 풍성한 사람입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사에 풍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싹이 나고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감사의 조건을 찾아야 합니다. 행복은 외부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눈이 가려 이미 얻은 것, 현재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리고, 현재 없는 것만 생각한다면 천하를 얻는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참된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것은 마음의 욕심을 비운 사람만이 가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4. 항상 감사함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입니다.
시편 50:23에 말씀하시기를“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셨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욥은 큰 부자였으며, 자녀도 7남 3여나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7000마리의 양, 3000마리의 약대, 500겨리의 소, 500마리의 암나귀와 수많은 종들을 스바 사람들과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다 빼앗아 갔습니다. 어느 날 거센 돌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져 그 집안에서 식사하던 열 남매가 모두 죽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 앞에서 욥이 기도하기를“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 1:21-22) 고 했습니다. 욥은 이처럼 기막힌 형편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욥에게 축복하셔서 그의 재산은 지난날의 갑절이 되게 하셨고, 자녀는 잃은 자녀보다 더 아름다운 열 명의 자녀를 주셨습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나타나 있는 다니엘이라는 사람은 바벨론 나라의 총리였습니다. 그는 충직한 사람으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다른 신하들의 음모로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 굴속에 던져 넣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다니엘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다니엘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다니엘 6:10)고 하셨습니다. 그는 사형을 받을 죄를 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억울하게 당하는 극형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니엘을 사랑하셔서 천사로 하여금 사자들의 입을 봉하도록 하셨습니다.

본문인 에베소서의 저자는 바울사도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다가 핍박을 받아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의 발은 착고에 채워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사도는 밤중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기뻐하며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홀연히 지진이 나며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리고 매인 착고는 다 벗어지는 신비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 항상 감사하는 성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세속에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사랑하며 즐겨 찾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오염되지 않은 사람을 즐겨 찾으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성숙된 성도의 증거입니다. 성숙되지 못한 사람은 어디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숙한 성도를 사랑하시며 귀하게 들어 쓰십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깊이 깨달은 바울사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거듭 기록하기를“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로새서 3:15)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 전서 5:18)
“항상 감사하라.”(에베소서 5:20)고 했습니다.

은혜에 익숙하면 안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무디어지기 때문입니다. 감사에 민감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에 민감한 성도는 범사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에게 만족함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는 행복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이 있습니다. 범사에 항상 감사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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