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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양식 (요 4: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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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 중에 제일 불쌍한 귀신이 걸신이라고 합니다. 그는 늘 이곳저곳을 다니며 빌어먹어서 배를 채워야 하니 언제나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답니다.
  걸신이 들렸다는 것은 빌어먹어 굶주린 귀신이 몸 안에 들어앉아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전에 우리 민족은 사실상 걸신든 민족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사가 뭡니까? '식사하셨습니까?  "진지 드셨습니까?"하는 인사입니다. 한 때 볼록하게 튀어나온 배를 보고 사장님하고 인사를 드리기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식구들의 양식 문제를 위하여 딸들이 사랑하지도 않고 원치도 않는 대감집 첩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먹는 양식의 문제가 가장 커다란 잇슈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는 걸신에서는 해방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사랑하셔서 걸신에서 해방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양식의 문제는 우리 민족의 과거와 별다르지 않거나 더 심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사마리아로 가셨을 때 식사 때가 가까워지자 제자들이 동네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제자들은 사마리아 동네에서 어렵사리 떡을 구할 수가 있었고, 구해온 그것을 예수님께 잡수시라고 청했던 것입니다.(요 4:31), 그 청을 받은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요 4:32)고 하였습니다. 이 뜻밖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요 4:33) 하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근거리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나의 양식은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34절)'라고 하셨습니다.

  양식이란 게 무엇입니까?
  양식(糧食)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먹을거리" 즉 식량(食糧)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식의 기능은 육신에 양분을 공급하여 신체를 균형있게 자라게 하는데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먹지 않으면 기력을 잃고, 먹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양식입니다. 매일 매끼니마다 꼭 챙겨서 먹는 것이 양식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는 것이 양식입니다. 건강하면 건강한대로 먹어야 하고 병들면 병든대로 먹어야 하는 것이 또한 양식입니다. 아무리 고상한 자나 그렇지 아니한 자나 또한 먹어야 하는 것이 양식입니다. 선악미추를 불문하고 먹어야 하는 것이 양식입니다.
  "숫가락을 놓았다"는 말은 "별세했다"는 말고 동의어입니다. 양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 때는 결국 죽는 때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나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항상 사로잡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밥먹는 것보다 더 좋아신 것이 있었습니다. 밥 안먹어도 배부른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뜻, 하나님을 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어떤 값이라도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뒤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으시고 살으셨다고 하면 마땅히 우리들도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일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어떤 댓가로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너희 하나님 아버지께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 가르쳐주셨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필요를 공급해 달라는 기도이기도 하지만, 오늘 "행할 주의 일, 오늘 행할 "주의 뜻을 주시옵소서"라는 의미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무엇을 "나의 양식"으로 여기도 살고 있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이 "나의 양식"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일, 그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
  "온전히 이루는 것"이 밥보다 더 귀한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을 배울 때 철저하게 배우셔야 합니다. 중간치기를 배우면 안 됩니다. 자주 포기하는 것을 배우면 안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온전히 이루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엄청난 댓가를 치루고서라도 기여히 일을 온전히 이루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초만, 또는 골조만 쌓다가 부도를 내고 버려진 건축물들을 가끔씩 우리 주변에서 봅니다.
  일예를 든다면 진월동과 백운동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길 한편에 병원을 지으려던 것 같은 큰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나게 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구조물은 콘크리트 골조와 왜벽 공사만 마치고 계속 방치 되어 있습니다. 10, 수년이 훨씬 넘도록 그 옆을 통과할 때마다 유심히 바라보지만 별 진전이 없는 채로 그대로 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건축법에 저촉이 되고 이런 저런 문제를 안고 공사를 하다가 중도에 공사를 중단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건축주는 재산을 탕진했고 화병으로 건축주는 죽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 콘크리트 건축물은 그 건축주의 계산착오를 입증하는 기념비처럼 그곳에 서 있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그곳에 서 있을런지 우리는 알수가 없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광목간 대로변에 세우다가 중단된 저 콘크리트건축물처럼 그렇게 십수년째 방치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게 건물다운 건물 구실 한번 못하고 무너져야할 그런 건축물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무슨 일을 시작하고 끝내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한 적이 없습니까? 여러분들은 서원하고 갚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대부분은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더 이상 댓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온전에 대한 비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온전에 대한 비젼을 가집시다. 무슨 일이든지 특히 주님뜻, 주님 일하는 것에 온전함을 이루도록 합시다.

  주님은 하나님의 일이 양식이었으며, 하나님의 뜻이 양식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과 뜻을 온전하게 해내는 것, 온전한 순종이 주님의 양식이었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밥보다 더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주님의 일, 주님의 뜻, 그리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려는 것을 "나의 양식"으로 삼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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