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실패 속의 은혜 (요 21:1-14)

  • 잡초 잡초
  • 286
  • 0

첨부 1


당신은  실패해본 경험이 있습니까?
혹시 지금 죄에 넘여져서 실패가 진행중에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이상 죄에 실패의 경험이 있습니다.어쩌면 성공하는 사람보다는 실패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실패는 일상적이며 보편적인 삶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실패하는 것은 현실이지만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너무나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음은 실패를 미화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실패를 무조건 덮어버리려고 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실패의 이유를 남을 탓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본문에는 실패의 본보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실패의 주인공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였습니다.3년동안 주님으로부터 제자훈련받은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 후에 철저하게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미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 부인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와 제자들이 함께 제자들의 사명을 망각하고 갈릴리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께서는 이 실패의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베드로와 제자들을 향해 실패 속의 승리와 축복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실패한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을 통해 실패 속에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복을 경험합니다. 실패를 통해서 주님을 배웠고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삶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실패가 있습니까? 그 실패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1. 베드로의 실패원인

조건없는 실패는 없는 이유없는 고난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원인없는  실패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지 못한  이유 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1) 과거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3절에 “나는 물고기잡으러 가노라“ 베드로는 다시 물고리를 잡으로 갈리리바다로 갔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대부분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리잡던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주님은 사람낚는 어부가 되라고 부르셨고 3년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신 다음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가 처형당하자 급히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고향 갈릴리로 갔습니다. 갈리리에 돌아간 베드는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였고 나머지 함께 했던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말을 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미 3년전 떠났던 곳으로 그들은  되돌아간 것입니다.여기  문제는 베드로였습니다. 그는 경륜이나 연배에 있어서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점에 있어서 수장이었습니다. 만일 그때 그가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러 간다"고 나섰더라면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섰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앞장서서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간다"면서 나서는 바람에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서게 된 것입니다.

주경학자들 가운데는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간다고한  것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기 때문에 갈릴리로 다른  제자들은 데리고 가기위한 방편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맥락은 허탈감과 실망감 때문에 십자가의 도시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마을  갈릴리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과거로 돌아간 것입니다.

종종 신앙의 실패자들은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신앙 생활 해보았자 현실은 여전히 어렵고 만족감이 없다고 느껴지고 생각하면 마음에 유혹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앞으로 앞으로]의 종교이지 [뒤로 돌아가]의 종교가 아닙니다.
성찬식에 참석하고난 어떤 남자교인의 농담이 생각납니다. 예수 믿고난 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끊지 못했던 술 담배를 세례받고난 후 끊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성찬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포도주 한모금을 마시는 순간 옛날 생각이 불쑥 나더라는 것입니다.크리스탈잔에 부어마시던 포도주 생각이 나서 그 생각을 지우느라 혼이 났다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초신자의 농담이긴 합니다만 성찬식 포도주를 마시면서  옛날에 놀던 술집이나 그 술맛이 생각난다면 안될 일입니다.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그 피의 공로로 죄사함 받아 들어가게 될 영원한 천국을 생각해야합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옛동네, 지난 과거로 회귀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그리워할 필요도없습니다. 오늘이 중요하고 내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이 있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베드로정도면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정도 있고 주님의 사랑도 받았고 주님 아래서 칭찬도 받았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유혹의 배경에는 사탄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사탄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친숙한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갈리리바다는 옛사람 베드로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곳입니다. 어쩌면 마귀는 베드로를 향해서 이렇게 속삭였을지 모릅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너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는 멋지게 승리하고 성공할 수 있을거야“ 라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이것은 이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포기하고 이전의 직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결정을 하고 함께 있는 다른 제자들에게 선포하는 것은 ‘누구 나와 함께 가겠느냐"하는 의미가 묻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선택한 갈리리바다가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이 될 수 있습니까?
주님 때문에 포기했던 술집일 수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포기했던 노름일 수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내려놓았던 세상친구들일 수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포기한 악한 습관일 수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까? 아니 과거로 돌아가서 이미 후회의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할 것은 그 과거는 주님 앞으로 풍성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유혹이 있고 사탄이 공격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이유는 아직 믿음이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께 3년동안 훈련받았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볼 수 없는 기적과 이적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들을 수 없었던 너무나도 귀한 말씀도 주님께 들어서 많은 지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은 아직 견고한 믿음,능력있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견고하지 못하면 능력이 없어서 세상에 영향을 주기보다 세상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베드로와 제자들같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2) 작당했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해도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라고 했습니다. 그날 배타고 함께 나선 사람들의 명단이 2절에 나옵니다. 시몬 베드로,도마,나다나엘,야고보,요한,그리고 다른 제자 둘입니다. 그러니까 11제자 중에 일곱 명이 작당하여 고기잡으러 떠난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은 군중심리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군종은 빵과 서커스만 있으면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말 한마디에 6명이 줄에 묶인 것처럼 따라 나섰다면 그 당시  그들의 정신상태가 어떠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 누구와 작당하느냐,누구와 친하느냐,누구와 자주만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과 신앙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내 신앙과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 작당하기를 즐기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과 작당하기를 즐기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색잡기에 열을 올리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면 석달을 못넘기고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짝을 잘 만나야 합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결국 노는 사람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면 먹기를 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제자들은 다시 갈릴리 바다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결과가 무엇입니까?밤새도록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그 갈릴리 바다는 베드로와 제자들의 힘이 최대로 동원된 자리입니다. 모든 기술이 합쳐진 자리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입니다.
그 실패의 자리에 누가 찾아왓습니까?

예수님께서 찾아왔습니다. 베드로를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셨습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고 “실패”한 그 자리에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제일 처음 부르던 자리가 어떤 자리였습니까?
바로 갈릴리 바다였습니다.그때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그래서 주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결국 3년만에 3번 주님을 부인하고 그리고 나는 물고기나 잡겠다고 다시 그 바다로 돌아온 것입니다.
영적인 사역에서 실패하고 그는 육신적인 사역으로 돌아와서도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이런 실패의 자리에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신 것은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승리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2. 성공원인

6절 끝을 보면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그들이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다고 했습니다. 실패가 성공으로,빈손이 차고 넘치는  축복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십시다.

1) 실패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갈릴리 바다에 찾아오신 주님께서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한 장면이  나옵니다.
우린 여기서 실패자와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는 예수님 사이의 진솔한  대화를 보게 됩니다. "있느냐""없나이다"라고 실패를 인정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존심 때문에 실패가 점점 꼬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실패했을 때 그 실패를 솔직하게 내 모습을 그대로를 인정해야 합니다.없는데 있다고 한다거나 없는데 괜찮은 것처럼 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영적으로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경우에 교회 속에서 나눔을 할때에 자신의 실패를 나누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혹시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헛된 자존심을 앞세우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 점점 나아질 수 없습니다. 내모습 이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나를 오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속에서 사역하는 전임사역자들이나 평신도 사역자들도 그렇습니다.
만약에 안되어진다면 먼저 우리 자신들이 주님 내가 지금 안되고 있습니다. 지금 어렵습니다 안되는 것에 대해서 실패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주님 앞에 내려놓고 나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면 남의 도움을 조금도 받고 살지 않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물론 그 자립심의 생활 태도는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교만이 됩니다. 인생은 서로 돕고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힘과 내 가진 것만으로 살 수 있는 것으로 안다면 그것은 교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체면문화가 강한 나라입니다. 없는데 있는 것처럼,약한데 강한 것처럼 위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시작의 자리가 무엇입니까? 나의 연약함 나의 부족한 나의 실패를 솔직하게 내려놓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게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께 의지하기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먼저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실패했는지 우리에게 묻기를 원하십니다.

2)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하셨고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했습니다.  어부는  그물을 던질 때 배 오른편과 왼편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던집니다. 그리고 배 앞부 분이나 뒷부분에도 그물을 던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잡지 못했습니다.
'배 오른편에 던져라' 이 명령은 이미 수십번 되풀이해서  던졌던  실패의 경험을 다시 해보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대로 순종했을 때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비슷한 장면이 누가복음 5장에도 나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헛수고의 연속뿐이었습니다.  그때 그곳을 찾아오신 주님께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르리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며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르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3년전 부름받을 때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결정한 오른편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결정한  오른편은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선택한 것이라면 내가 해야 할 것은 순종 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여기서 베드로와 제자들이 주님 앞에 자신의 이론 경험 논리를 앞세우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베드로와 제자들이 그물을 던진 시간은 4절에 보면 날이 새어갈 즈음인 새벽입니다. 제자들은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을 맞이한 것입니다. 새벽 그 시간은 고기가 가장 잡히지 않는 시간대입니다. 고기는 밤에 활동을 가장 많이 합니다. 바다의 전문가인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새벽에 오신 주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할때에 그들은 그냥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지식 중요합니다.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지식으로 그 경험으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승리하고 더 나아질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지식 이런 경험들이 얼마나 우리를 교만하게 합니까? 교회 속에서 또는 신앙생활 속에서 정말 중요한 신앙의 지침이 무엇입니까? 지식입니까? 경험입니까? 예수님이십니까? 내 지식에 비추어 판단하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 초점을 맞추면 우리는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조금 혼미스럽게 잘 판단이 안 설때에는 이렇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에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지 못했다면, 사업가가 사업에 실패한다면, 장사꾼이 돈을 못번다면, 교육자가 교육에 실패한다면,그것은 큰 문제이며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패의 연속으로 절망하고 좌절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허탈감에 빠졌던 갈릴리 어부들이 성공한 비결은 간단했습니다.
바닷가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살아서 찾아오신 예수,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순종하는  것이 실패로부터 해방되고 성공의 깃발을 꼿는 비결입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실패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불순종할 때 그들의 모든 경험과 기술과 노력은 헛수고였습니다.
여러분 알아야 할 것은 죄의 본질은 바로 불순종입니다. 사탄이 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의 권위에 불순종하게 했습니다. 먹지 말라 한 선악과 열매를 따먹음으로 불순종하여 그 결과 엄청난 진노가 우리 인간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본래 이 불순종의 영 거역의 영인 사탄과 죄에게 속한 자로서 순종하면서 살아오기보다는 불순종하면서 살아왓습니다. 그런데 명심할 것은 지금도 먼저 순종하기보다는 불순종하기를 따릅니다.

나를 믿고 경험을 믿고 배경을 믿다가 실패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조건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깨어지는 바람에 주저앉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실패와 허탈과 절망의 바닷가에  찾아오신 예수를 만나면 됩니다. 그리고 그분이 뭐라고 말씀하시는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물에는 가득힌 찬 고기가 153마리나 되었고 큰 고기였습니다.
바이블 루트라는 프로그램에 “베드로 고기”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갈릴리 바닷가에서 잡은 고기를 가리켜서 베드로 고기라는 것입니다. 아주 크고 다양한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고기엿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순종하는 베드로를 육지숯불가로 인도하엿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풍성함에 만족할 베드로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숯불가로 인도하는 것을 그냥 우연으로 여기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바다의 상황 그리고 숯불의 상황 다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숯불의 추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3번 주님을 부인하엿을 때 바로 숯불가였습니다.

요18:18 “그때가 추운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베드로를 정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불순종하던 자리를 통하여서 베드로의 죄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던 베드로 결국 실패하였고 그러나 순종으로 다시 숯불가로 나오게하심으로 그 마음 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 경험과 내 생각과 내 상식에 안맞더라도 즉시 지금  순종하십시오.
즉 예수 방법대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반드시 고기를 잡는  성공이  올것입니다. 그날 아침 디베랴 바닷가가 예수님을 모신 축제의  자리가  됐던 것처럼 우리네 실패와 고통의 자리도 축제와 성공의 잔치자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말입니다.
실패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실패를 넘어 우리의 부족을 인정하고 순종으로 승리와 성공을 경험하시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춘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