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몸의 부활(6) :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고전 15:50-58)

  • 잡초 잡초
  • 269
  • 0

첨부 1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 올 때>
할리우드의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Kirk Douglas, 1916―)는 1995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중풍에 걸려 언어 능력을 잃고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인생을 비관해서 권총 자살을 시도했지만 잘 안됐습니다.
그 후에 그는 산송장처럼 되어서 날마다 잠만 잤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집에서 기르던 유일한 친구 애완견 한 마리에게서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그 개가 문을 열어달라며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불현듯,
"아, 모든 생명은 이웃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지요.
이내 더글러스는 자존심 때문에 거절했던 이웃의 도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입으로 하는 오럴 에어로빅 훈련을 통해 언어를 다시 배웠습니다.
그 때부터 더글러스는 중풍이 무더기로 행운을 몰고 온 '변장된 축복'이라고 믿었습니다.
더글러스는 뇌졸중으로 인한 후유증을 극복해 가면서 오스카 수상식 때
멋진 연설을 했으며, 영화 「다이아몬드」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습니다.

「시련은 곧 희망입니다」(My Stroke of Luck, 2001)라는 책은
이러한 경험을 기록한 책인데 여기에서 그는 뇌졸중과 같은
중병과 싸워서 이기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늘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떤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유머 감각을 잃지 말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향해 웃어주라는 것입니다.
넷째로, 다른 사람을 적극 도우면서 수시로 찾아오는 좌절감을 털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기로부터 벗어나 이웃을 돕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습니다.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1888-1960)는 유명한 신학자요 사회 사업가요 저술가였습니다.
그는 젊은 날에 폐결핵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암울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폐결핵이 별로 대수롭지 않지만 도요히코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불치병이었습니다.
폐결핵 3기에 매일 각혈을 하며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루 하루를 지내던
도요히코는 어느 날 아직도 젊은 나이에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왕 죽더라도 뭔가 좋은 일을 하다가 죽자며 새로운 결심을 세웠습니다.
"죽는 시간을 기다리지 말고 남은 시간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바치자."

그 때부터 도요히코는 자신을 주님께 맡기고 빈민굴을 다시 찾아가 그 곳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다 보니
도요히코는 자신이 아픈 것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폐병이 언제 나았는지 조차도 모른 채 자연치료가 되었습니다.
그 후 도요히코는 50년이나 더 건강하게 살았는데
그 때의 경험을 기록한 책이 유명한 「死線을 넘어서」라는 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어두컴컴한 영혼의 밤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미래의 죽음이 두려운, 그런 절망의 밤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 자신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 마음의 초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문제 많은 나로부터 벗어나 우리를 지어주신 하나님과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이웃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제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몇 분의 죽음을 애도해야만 했습니다.
우리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함께 했던 할머니 권사님 한 분이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또 한 분은 멀리 서울에서 우리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젊은 자매님의 남편으로서
아직 40세가 조금 넘은 분인데 평소에 앓던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분의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또 한 분, 우리 교회의 전임 목사님이신 이복희 감독님께서 많이 위독하십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이 좋은 편이었는데 갑자기 악화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니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여러분도 감독님과 사모님, 그리고 여러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산 자의 부활은 어떻게?>
그동안 우리는 고전 15장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부활론을
쭉 살펴 왔는데 오늘은 마지막 차례입니다.
제 생각에는 고전 15장이 워낙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하기에
모두 여섯 차례로 나누어서 연속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절기 행사도 있었고 또 제가 미국에 다녀오는 바람에
연이어서 계속 설교를 해올 수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고전 15: 50-58절은 부활론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죽은 자나 산 자나 다같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역설합니다.
먼저 50절 말씀을 보면 바울은 지금까지 자신이 주장했던 내용을 요약해줍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누차 강조해왔던 진리는 이것입니다.
혈과 육, 즉 피와 살을 가진 우리 현재의 몸은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썩을 몸은 썩지 않을 신령한 것을 유산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지금의 몸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신비하게 변형된 靈體,
즉 신령한 부활의 몸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떠오릅니다.
우리의 죽은 몸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신령한 몸으로 변형되어서 부활한다고 한다면,
우리의 현재 살아 있는 몸은 어떻게 될까요?     
다시 말해, 우리가 아직 현재의 몸을 가진 채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하는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임박한 종말론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살전 4: 17 참조).

여러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이 갑자기 재림하신다면
우리의 현재 몸은 어떻게 될까요?
여기에 대한 사도 바울의 대답은 신비로운 방법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죽은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형되듯이 우리의 산 몸 역시
죽음을 겪지 않은 채 아주 신비로운 방법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 51-52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기에 보면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다 잠자는 것이 아닙니다.
잠잔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이니, 살아 있는 몸이 죽어서
다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나팔이 울린다는 표현은 유대 묵시 문학에 있어서 주님의 날의 도래를 알리는 상징입니다(사 27: 13; 욜 2: 1; 습 1: 14-16; 마 24: 31; 계 9: 14 참조).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즉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재림주로 오실 때 온 세상 사람들 전체가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전반적인 부활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죽은 사람은 무덤에서 뛰쳐나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은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은 너무나 홀연히, 눈 깜박할 사이에 순식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을 막론하고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한 부활의 몸으로 바뀌게 될 터인데 중요한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몸과 부활한 몸 사이에는 여전히 연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신령한 몸으로 변형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현재의 몸이 완전히 폐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53절에서 옷의 비유로 말씀합니다.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우리의 썩고 죽을 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신비로운 방법으로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할 옷을 덧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창조주 하나님의 구속의 원리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몸을 비롯하여 하나님께서 손수 창조하신 우주 만물을 마지막 심판 날에 완전히 괴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영원불멸의 신령한 옷을 덧입혀서 구속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으며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자, 이제 아주 중요한 결론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부활의 날에 우리의 썩고 죽을 몸이 썩지 않고 죽지 않을 것을 덧입게 될 때,
즉 신령한 몸으로 변형되어 부활하게 될 때, 죄와 죽음을 정복하신다는
하나님의 오랜 약속이 마침내 성취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 다같이 54-5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 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때, 즉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게 될 때 사 25: 8의 말씀--즉,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이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55절에서 호 13: 14의 말씀도 인용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 자신의 부활로부터 시작해서 온 인류의 부활로 절정에 이르게 될 때
인류 최후의 적, 즉 죽음은 완전히 패배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쏘는 독침은 그 독기를 다 잃어버리고 무참히 꺾이게 된다는 것이지요!

죽음 앞에는 인간의 그 어떤 성취도 무력화된다는 인류 최후의 공적(公敵) 죽음이
하나님께서 죽은 자나 산 자를 막론하고 다시 살리실 때, 그 승리의 예봉이
완전히 꺾일 뿐 아니라 인간에게 두려움과 고통을 안겨주는 독침도 힘을 잃게 될 것입니다!

옳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기쁨에 가득차 57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6절의 말씀처럼 죄와 죽음과 율법의 권세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채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 모두의 부활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과 율법의 권세는 더 이상 맥을 못 추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이제 부활론을 끝내면서 58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사도 바울이 고전 15장에서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자의 몸의 부활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진리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은 물론이고 죽은 자나 산 자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지 믿음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간직한 채 주님의 일을 더욱 더 열심히 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사실성 때문에 우리의 그 어떤 수고도
주님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의 확신 그대로 부활은 우리 신앙의 근거이자
우리의 모든 윤리적 행위의 필연적 기반이 됩니다.
오늘 부활 신앙으로 여러분은 용기와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협하던 최후의 적, 죽음과 우리를 수없이 쏘아대던 죽음의 독침도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장차 그리스도처럼 부활하게 될 우리의 몸 때문에
더 이상 위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용기와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텅 빈 플라스틱 달걀의 비밀>
한 미션 초등학교에서 부활절을 맞아 선생님이 19명의 학생들에게 숙제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의미에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커다란 모형 달걀을
한 개씩 나눠주면서 그 안에 새 생명을 상징하는 것을 담아서 내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일제히 "녜!" 하고 힘차게 대답했지만 오직 제레미 하나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제레미는 다른 아이들보다 지능이 모자라는 데다가 불치병까지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이 선생님 앞에서 플라스틱 달걀을 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플라스틱 달걀 안에 꽃을 넣기도 하고, 모형 나비,
이끼 낀 돌멩이 등을 넣기도 해서 새 생명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마침내 제레미의 달걀을 열 차례가 되었을 때 선생님이나 아이들이 숨을 죽이며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제레미의 달걀 안을 열었을 때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달걀 안이 텅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선생님은 제레미가 숙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가 싶어서
제레미가 무안하지 않도록 달걀을 슬그머니 옆에다 놓고 다른 달걀을 집어 들었습니다.

이 때 갑자기 제레미가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왜 제 달걀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나요?"
"네 달걀 속에는 아무 것도 없지 않니?"
그 때 제레미는 선생님을 쳐다보면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녜, 그래요. 하지만 예수님의 무덤도 비어 있었잖아요."
"무덤이 왜 비었는데?"
"예수님은 부활하셨잖아요!"

제레미의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한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못하다가 돌아서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능아인 제레미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석 달 후 제레미는 불치병이 악화되어 결국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장례식날 제레미의 관 위에는 19개의 플라스틱 달걀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달걀들은 모두 한결같이 속이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빈 무덤을 자랑하는 종교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덤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무덤도 빈 무덤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우리의 최후의 적인
죽음까지도 정복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