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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전 1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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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둘째 주일은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감사하며 보답하는 날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감사하며 감격해하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그 이름은 바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말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0절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세 번씩이나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 같은 고백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여러분! 바울의 직분은 사도입니다. 그는 간 데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여기저기 세워졌습니다. 신약성경의 절반 이상을 그가 썼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사도입니까? 그런데 지금 그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합니다. 아니 자기는 사도라고 칭함 받을 자격도 없는 자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죄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본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딤전1:13절에 그의 과거의 경력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고백합니다. 과연 그는 지나간 날의 삶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복음의 훼방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악행을 가했던 포행자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을 했습니다. 핍박을 했습니다.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자기가 그런 인간이었는데 지금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 할 때에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18세기 영국에 존 뉴턴(J.Newton)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불량한 청년이었습니다.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그를 바르게 고치기 위해 영국의 해군에 입대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적응을 못하고 탈영을 했습니다. 도망을 다니다 체포당하여 매를 얻어맞고 철창신세를 지기도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변할 줄 모르는 뉴톤에 화가 난 함장은 그를 아프리카 노예선에 팔아 넘겨버렸습니다. 그는 15개월 동안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섬에 갇혀서 노예처럼 비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극적으로 영국 무역선에 구조되어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노예선의 선장이 되어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가 팔아넘기는 이런 못된 일을 사업이라며 하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지내던 어느 날 항해하는 중에 극심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거기서 그는 거의 죽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고꾸라졌습니다. 그리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의 어두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이 그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너무나도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찬송가 405장에서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찬송가 405장은 “Amazing Grace”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그는 일평생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죽는 그 시간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또 전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억력이 쇠퇴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말하기를 “내가 다른 것을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내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내가 과거에 너무나 큰 죄인이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의 크신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역시 큰 죄인이었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용서받기 어려운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도 못하였는데! 온전히 순종하며 살지도 못하였는데! 제대로 단 마음으로 헌신봉사도 잘 못하였는데 지금까지 인도하여 주시고 양육하여 주시고 살려 주신 것을 생각하면 이 모든 일들이 내가 잘하여서가 아니라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의 큰 은혜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2.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말씀 중에 상반 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바울은 본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변해서 지금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전에 마귀에게 끌려 다니며 마귀 짓을 하던 자기가 이제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교회에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직분을 지금도 가지고 있고, 그 직분을 감당하며 지금 살고 있으니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이것이 웬 은혜이며 웬 축복입니까? 바울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은혜로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과 직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미 과거, 창세전에 나를 사랑하셔서 자녀 삼아 주셨고 지금은 그 은혜를 내게 주셔서 자녀가 되게 하셨으며, 지금도 계속적으로 주님의 은혜 안에 거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말 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김익두라고 하는 안악 산골에 소문난 깡패가 있었습니다. 장날만 되면 서낭당 앞을 지나가면서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주소서.”라고 하면서 빌고 지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세례 받던 날! 그는 자기의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에게 부고장을 보낸 사람입니다. “깡패 김익두 사망하다.” 그리고 새사람이 된 뒤에 평소에 자기가 괴롭히던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용서를 빌면서 하는 말이 “여러분! 과거에 여러분을 괴롭히던 김익두는 이미 죽었습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새롭게 거듭난 김익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저처럼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 김익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를 간증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나 같은 죄인도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새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물며 여러분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저처럼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천국을 선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서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맞아! 하나님께서 김익두 같은 사람도 사랑하신다면, 나 같은 사람도 틀림없이 사랑하실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감화를 받아 예수님 앞으로 몰려오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덧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데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살았는데도, 그렇게 불순종하고 거역하면서 살았는데도 진멸되지 아니하고 이렇게 우리가 지금 살아있으니 여호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이 얼마나 큽니까?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애3:22,23) 내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부디 한날, 한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남은 생애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시편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시116:12절에 말씀하였습니다. 오늘 바울도 남은 생애를 이렇게 살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우리 함께 10절을 읽도록 하시겠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바울은 다른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매도 수도 없이 맞았으며, 감옥에도 여러 번 갇혔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때로는 춥기도 하고 굶주리기도 하고 헐벗기도 하고, 태장을 다섯 번이나 맞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워낙 하나님께 받은 은혜! 지금까지 지내오는 동안에 받은 은혜가 크고 놀랍기 때문에 수고를 수고로 알지 않았습니다. 고난을 고난으로 알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이 고난 때문에 장차 아버지 앞에서 받을 영광을 생각하면 그 고난은 고난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신앙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수고와 고난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았던 바울을 보시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는 무엇이든지 잘 되고 형통해야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병들었다가 회복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했다가 성공하고 난 뒤에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는 성공도 은혜요, 실패도 은혜였습니다. 자유 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요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건강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요 병들었을 때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는 살아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요 죽어서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교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기쁨으로 순교하였습니다. 부디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족한 줄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하면서 남은 생애를 은혜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따지고 보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그 무한하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심정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 부디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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