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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인을 찾습니다 (창 18: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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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말씀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 성이 심판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그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왜? 아마 소돔 성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에겐 심판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태리의 폼베이라는 도시가 주후 79년 베스비우스 산의 화산이 폭발하여 모두 죽었습니다. 저도 그 비참했던 현장을 가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있기 전 수염이 텁수룩한 어느 노인이 나타나 저 방탕한 도시가 화산이 폭발하여 망한다고 경고했답니다. 2천명의 마을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건지지 못하고 다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그 지역의 통치자인 로마의 장군 플리니(Pliny)라는 사람도 이 마을에 왔다가 같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 예언자 노인의 얘기는 플리니의 아들이며 나중에 소아시아 비두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 2세에 의해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아브라함은 감히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의인 오십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나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마치 불공정한 분인 것처럼 대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소돔 성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셨으므로 아브라함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소돔 성에는 의인 오십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겐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과 협상을 하려고 합니다.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 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닌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태도를 바싹 낮추어서 자신을 티끌로 묘사하면서 하나님과 협상합니다. 하나님의 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십 오인의 의인이 있어도 멸하지 안한다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습니다. 사십 명, 삼십 명, 이십 명, 그리고 의인 열 명이 있다면 어찌 하겠습니까?  결국 그 성엔 의인 열 명도 없다는 말에 아브라함은 포기하고 천사는 소돔 성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소돔 성은 죄 때문에 망한 도시입니다. 죄 중에서도 성적인 죄였습니다. 사람이 살만하면 짓는 죄가 성적인 죄입니다. 소돔은 하나님의 동산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성간의 성적 교제가 흥미가 덜해지면 동성간의 교제로 진보합니다. 소돔은 동성연애의 도시였습니다. 남색을 영어로 Sodomite, 즉 소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본문이 주는 교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의인이 없어서 심판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죄는 어느 사회나 있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의인이 없어서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역사가 토인비도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를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우리 교단의 모든 교회가 함께 이준열사기념주일로 지킵니다. 이준 열사가 순국한 것이 1907년 7월 14일이었습니다. 내년 이때면 100년이 됩니다. 그래서 1년을 앞두고 기념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초대 대통령 이승만, 독립 운동가 김구, 애국가 가사를 지은 윤치호, 그리고 유관순 여사가 감리교인인 것은 알지만 이준 열사가 감리교인이었다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1895년 일본의 자객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였을 때 고종이 제일 먼저 한 말이 “거기 밖에 누구 기독교인 없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라가 기울어가고 있을 때 그래도 믿을 사람은 기독교인 밖에 없다는 것을 고종은 느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선교사들이 고종에게 보여준 신의도 작용했던 것입니다.

1905년 을사강제늑약이 체결되고 1년이 지난 1906년 감리교 선교사인 헐버트가 고종에게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있다”는 정보를 주었습니다. 고종은 그때를 기회로 하여 당시 조선이 처한 현실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고종은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기로 하였는데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고종은 종친 관계이기도 했던 이준을 택한 것입니다. 

이준 열사는 1859년 1월 21일 함경북도 북청군 녹후면 용전리에서 이병관과 청주 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습니다. 18대 조부인 완풍대군은 이성계의 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종과는 종친 관계입니다. 1893년 당시 이화학당에 다니던 이일정과 결혼합니다. 이 결혼이 그를 교회로 이끈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자란 것은 당시 상동교회 담임목사인 전덕기 목사님을 만나서부터였습니다. 청년회장직을 맡았던 이준은 속장직도 함께 맡으면서 서재필, 윤치호 등과 함께 청년운동을 했는데 사실상 그것은 애국운동이었습니다.

전덕기 목사로부터 고종의 신임장을 받아든 이준은 1907년 4월 22일 가족들과의 고별의 아픔을 간직한 채 서울역을 떠나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기다리던 이상설과 합류합니다. 5월 21일 기차로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6월 4일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이위종을 만납니다. 이위종은 언어에 능통했다고 합니다. 6월 19일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25일 만국평화회의의 개최지인 헤이그에 도착하여 드융 호텔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역사적 만국평화회의는 1907년 6월 15일부터 1개월간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참가국은 46개국이고 대표는 247명이었습니다.

이에 세 특사들은 일제의 조선침략을 폭로하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각국 대표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치밀한 방해공작으로 인하여 회의장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뜻을 제대로 관철하지 못하게 되자 1907년 7월 14일 한을 남긴 채 이준은 순국을 한 것입니다. 장례식에는 이상설과 이위종 그리고 YMCA 회장 매케이 남작이 참석했습니다. 열사의 유해는 순국 후 55년이 지난 뒤 1963년 10월 4일 조국의 품안으로 모셔와 국민장을 치른 후 수유리 선열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네델란드를 많이 찾고 있습니다. 렘브란트와 고흐를 찾아서 갑니다. 히딩크의 고향을 찾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준을 기억하고 헤이그를 찾는 이는 적습니다. 지금 헤이그에는 이기항 장로님 부부가 이준 열사가 묶었던 드융 호텔을 20만 달러에 구입하여 평화박물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장로교 장로인데 이제 감리교단이 맡아 운영해 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그래서 교단 차원에서 내년에 거기에다 기념예배당을 짓기로 한 것입니다.

역사는 의인이 필요합니다.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은 의인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 5:1).”  마틴 루터 한 사람으로 인하여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요한 웨슬리 한 사람으로 인하여 영국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교목으로 학생들을 가리킬 때입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이 영화 본 얘기를 해달라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초원의 빛”이란 영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학생 중 하나가 진지하게 “선생님, 그냥 수업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영화 이야기를 했겠어요, 수업을 했겠어요? 물론 수업을 했습니다.  공부를 하자는 한 학생의 말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나의 부족을 깨닫고 죄인 됨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의인됨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매일 그리스도의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남의 흠만 보고 지적하는 것이 마치 의인이 된 것처럼 착각합니다. 의는 말에 있지 않습니다.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할 당시 산업선교를 하고, 독재정부에 항거하며 정의를 외치는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무척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차츰 그들의 삶을 보면서 실망했습니다. 돈 관계가 지저분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구제를 강조하면서 돈에는 너무나 인색했습니다.  희생과 헌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소위 “선지자 complex”, “아모스 complex"를 가진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의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또한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팔복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하시면서 이어서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머리에 붉은 띠를 뛰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 가운데 분명 교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대항해서 싸우는 공직자들과 기업인 가운데서도 분명 교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의 편일까요?  여러분, 정의도 중요하지만 궁극에 가서는 사랑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소돔 성이 심판을 받았으나  그 가운데서도 롯의 가정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왜? 롯이 천사를 대접한 점도 있으나, 성경은 “아브라함을 인하여”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롯의 가정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의인의 기도가 중요합니다. 남을 위한 중보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밤낮 자신만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이웃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부모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오늘은 절대로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고 다른 이를 위해서 기도 하십시오.”  그리고 돌아가면서 기도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한 자매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자매는 올드미스였습니다. “하나님, 오늘은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부모님을 위해서 기도드립니다. 우리 부모님에게 좋은 사윗감을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서 세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몇 개나 쏘았지요?  7개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사일을 쏘아올린 그 시간에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여객기가 5개나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정부는 그것을 알고도 항로변경을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불안해서 어떻게 삽니까? 어떻게 이런 지도자들을 믿고 삽니까? 성경에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딤전 2:2)”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들의 결정이 우리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도자가 이 역사를 잘못 끌고 가면 우리에게 불행이 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만 점령당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공산화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밤낮 부르짖었던 의인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건져주셨습니다. 기독교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인을 찾고 계십니다. 의인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의인의 반열에 서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제사장의 나라로 들어 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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