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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 (겔 1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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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시작된 후반기 첫번째 주일을 맥추 감사주일로 시작하게 하신 주님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잘 믿어보고 싶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작은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살전 5:16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요구합니다. 항상기뻐하며 살아라 쉬지말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라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은 후반기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항상기뻐하며 살고있는가입니다. 여기에서 항상입니다. 항상기뻐하라는 말씀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시간들속에서 모든 환경들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이니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또한 쉬지말고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라는 것이니 기도는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대화요 교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이니 하나님의 결국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국을 믿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십니까? 하나님앞에서나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도 말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앞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저는 우리 안산빛나교회 성도님들이 감사 할 것이 가장 많은 사람이기보다는 범사에 감사하는 그냥 가장 많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불가피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누가 말려도 어떤 일이 있어도 심판이 심판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아주 자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심판의 현장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의 현장에 이 세사람이 있을지라도 심판이 있을 것이요 이 세사람은 자기들의 믿음으로 자기 자신들만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믿음으로 가족들에게 구원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용이 무엇입니까? 13-14절에 보니 비록 노아 욥 다니엘 이 세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를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합니다. 이 말씀은 네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구원은 개인적입니다. 구원받을 저들의 의는 믿음의 의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나중 주님 오실때 아내 치마 자락 붙잡고 천국가겠다.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을 접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남자 성도님들 나는 아니지만 아내가 믿음이 좋으니 하고 위로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영적부분에 있어서도 나의 믿음은 나의 믿음 아내 믿음은 아내 믿음입니다. 그래서 좋은 부부는 서로에게 좋은 영적영향을 주는 부부여야 합니다. 서로에게 도전도 되고 말입니다. 부부 중 한 사람만 믿음이 너무 좋으면 이것도 언제인가 지치게 됩니다. 잊지마십시오

구원은 개인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식을 하는데요 23명이 예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세례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고백입니다. 자신의 고백이 중요합니다. 자기 믿음 자기 구원인 것입니다.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한 며느리가 예수믿고 시어머니를 전도했습니다. 시어머니 믿음은 좀 부족한 것 같았지만 세례를 받게끔 하고 싶은 며느리는 교육을 시킵니다. 어머니 목사님이 문답 때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하시면 무조건 내 죄 때문입니다. 내 죄입니다. 하셔야 합니다. 하니 시모가 알았다 합니다. 드디어 문답 날이 되어 목사님의 질문에 우리 예수님은 누구의 죄로 인하여 죽으셨습니까? 하니 시모가 하는 말이 네 우리 며느리 죄 때문에 입니다. 하고 대답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원은 개인적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적부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구원은 자신의 믿음으로 가는 것이니 긴장하셔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 사람을 절대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14,16,18.20절에 노아 다니엘 욥 이 세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입니다. 저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환경에서도 구원받은 사람들이라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앞에 이 정도 인정을 받기까지는 하나같이 장기간의 시험과 장기간의 시련에서 승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잠깐의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노아나 다니엘과 욥 이 세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입니다. 노아는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외로움에서 승리했습니다. 다니엘과 욥은 이들의 삶은 이해되지 않는 연단속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사람들은 불 가운데 물가운데라도 그 시련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저들의 믿음은 무엇인가

노아의 신앙을 창6:8절은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합니다. 노아의 신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러나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그러니까는 계산도 되고 이해도 되는 합리성이 있지만 그러나는 다릅니다. 이해도 안 되지만 계산은 안 되지만 형편은 안 되지만 입니다. 방주를 지으라는 음성에 아멘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이해 못하듯 이해는 안되지만 그러나 순종하는 것입니다. 방주를 산에다 지으라 하셔 이유는 모르지만 그러나 아멘하는 것입니다. 120년동안의 장기간동안 자기를 지켰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민감한 음성에 순종한 것입니다. 모두가 세상이 원하는대로 살아도 나는 그러나 입니다. 노아는 120년동안 방주를 지으며 전도했습니다. 쉬웠겠습니까 모두가 핍박했습니다. 방주를 누가 이해합니까 노아는 그러나 의 신앙으로 이겼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120년 동안 약속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언제인가도 말씀이 말씀될 것이다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그러니까 순종이 아니라 그러나 의 순종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다니엘의 신앙의 특징은 알고도의 믿음입니다. 단6: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 하였더라 합니다. 알고도의 믿음은 손해 볼 줄 알고고 죽을 줄 알고도 피곤한 줄 알고도 사자 굴에 들어갈 줄 알고도 입니다. 사실을 알고는 쉽지 않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복 받은 줄 알고 할 때 죽을 줄 알고입니다. 감옥에 갈 줄 알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에 가는 바울 또한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사자굴에 들어갈 줄 알고도 변하지 않았던 다니엘의 믿음은 환경을 이기고 시험을 이기고 인간적 방법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것 하루 세번씩 기도가 알고도의 믿음을 지켜주었습니다. 사자굴 앞에서도 죽을 줄 알고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을 소화해내는 사람이 되는 것 모든 환경을 소화해내고 감사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은 저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를 지켜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 한사람은 욥입니다. 욥의 신앙의 특징은 찌라도 의 믿음입니다.
욥6:10절에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가운데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치 아니하였음이라 합니다. 욥의 찌라도의 믿음은 10남매를 잃어버렸을지라도 거지가 되었을지라도 병이 들었을지라도 아내가 저주하고 도망갔을 지라도 친구들이 저주할지라도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욥1:22절에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합니다.

찌라도의 믿음과 신앙을 가진 사람은 또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의 친구들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입니다.
단3장에 보면 풀무앞에서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대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겠다던 믿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찌라도의 신앙은 영원을 소유한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신앙이 소유하고 얻는 것만이 전부이면 찌라도의 신앙을 절대 소유 못합니다. 신앙은 표현입니다. 때문이 아니라 찌라도입니다. 병들었기때문에 가난했기 때문에 누가 무어라 했기 때문에라고 때문에만 찾는 사람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에 매이면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욥의 시련은 고통은 고통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일찌라도 하나님안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소중합니다. 이런 믿음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해가 안될찌라도 하나님을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동시에 후반기를 시작하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이 후반기에 노아처럼 그러나의 믿음으로 다니엘처럼 알고도의 믿음으로 욥처럼 찌라도의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결국을 주시는 축복도 마음껏 누리는 후반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후반기에도 노아 다니엘 욥의 이름옆에 당당하게 저와 여러분의 이름도 써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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