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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기본적인 선의(善意) (요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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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가장 섭섭해 질 때가 언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선의가 왜곡당하고 선의가 나쁘게 받아들여지고 평가되어질 때입니다. 처음부터 고의성을 가지고 나쁘게 하려는 의도였다면 당연히 냉정한 판단과 비판을 받아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기본적인 선의가 왜곡당하거나 잘못 판단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것처럼 사람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하고 난 후에 나타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가장 섭섭해하는 것은 "대북사업"이 왜곡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대북사업이 특검을 받고, 퍼주기라고 비난받고, 심지어는 빨갱이라고 까지 왜곡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일생에 심열을 기울이며 생명바쳐 한 일이 그런 대접을 받을 때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선의가 왜곡을 당할 때 사람은 가장 섭섭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면 내가 택한 백성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골똘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세상에 나쁜 아버지, 악한 아버지라도 제 자식에게만은 좋은 것을 줄려고 합니다. 그런데 천부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택한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을 더 나은, 더 좋은,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고 생각하시며 그렇게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독생자까지 희생하시면서까지 택한 백성들을 잘 되게 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추호도 의심해서는 안될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택한 백성들을 잘 되게 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말입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0장 10절 "도적이 온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하셨습니다.

  도적은 처음부터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입니다. 악한 마귀 사단은 이간질하고 싸우게 하고 분리시키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멸망시기는 것이 그들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뿐입니다.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고,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어떤 경우라도 이 기본적인 선의를 가지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지금 이해 안 되는 일도 차차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깨닫지 못한 것도 차차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이해가 안 되도 순종하고 유익이 없고 손해가 되어도 하나님의 기본적인 선의를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고 보면 아십니다. 하나님은 기본적인 선의를 가지고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롬 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하셨습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우리 성도들을 어떻게 하면 구렁텅이 빠뜨릴까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비록 성도들이 내게 어떻게 했던지간에 잠깐씩 나쁜 생각이 들다가도 퍼드득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원상태로 돌아갑니다. 그렇지 안다면 그것은 목회자가 아닐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삶을 가장 축복되게 살 수 있도록 지침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황홀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주님의 몸된교회가 내가 시무하고 있는 동안에 교회다운 교회로 건강하게 성장해 가는 것뿐입니다.

  사람이란 타인이 자신보다 더 나아지면 기분이 벌로 좋지 않다고 합니다만 이상하지요. 저는 나보다 믿음 좋은 성도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있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내 어깨위에 세워 나보다 더 믿음 좋은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렇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하며 설교합니다. 그리고 애정어린 교훈을 주려고 힘을 씁니다. 축복된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댓가를 치르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의가  왜곡당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섭섭한 일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시며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회자가 이끄는대로 순종하시며 교회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약속하겠습니다. 결코 나쁜 길로 이끌어가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도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여러분들의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며 여러분들이 스스로 결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문제들을 바라보지 않거나, 자신의 삶을 주 예수께 드리지 않거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마음을 닫아걸면 밖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심령인 것입니다. 예수님조차도 그 사람의 마음문 밖에서 두드리고 계실 뿐입니다.

  몇일 전에 홍수에 누나와 동생이 사이좋게 학교갔다가 오는 길에 누나가 발을 헛디뎌 개울로 빠졌습니다. 그러자 동생이 누나를 잡으려고 뛰어들어 함께 죽었습니다. 이 어린 것들도 형제를 구하려고 그렇게 생명을 던졌습니다. 이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물가로 기어들어가는 아이를 바라만 보고 있거나 오히려 잘 기어가고 있다고 박수를 치고 있다면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불길을 향하여 기어가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면서 즐거워하고 그것을 더 자극해서 불길을 향하여 가도록 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 할일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는 그 길을 막았다고 엉엉 울고 고집세게 그 길을 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아직 어리기 때문입니다. 아직 사리를 분병하지 못한 어린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법칙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우리를 많은 어려움에서 보호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생활을 잘 해보려는 사람들은 이 개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긍정적이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는 아무런 댓가도 필요없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2:8~9)하셨습니다. 이것은 망루를 만드는데 기초를 쌓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려고 하면 댓가를 치뤄야 합니다. 망루를 만들 때 기초를 쌓고 더 이상 진전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망루로서의 제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망루는 기초 위에 높이 쌓아올려야 망루의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단순한 성도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실까요? 그것이 우리를 만민중에서 택하신 이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성도나, 그리스도인에서 그의 충성된 제자와 사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주님의 군사로 자라나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아멘입니까?

  그런데 충성된 제자나 사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군사가 되는 것은 반드시 댓가를 치르면서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댓가를 치르는 것을 두려워만 하고 있으면 성도나 그리스도인으로만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은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정말 만나보기 힘듭니다. 

  대서양 멕시코만 연안의 해안도시 베라크루즈(Veracruz)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1519년 스페인의 탐험대를 이끌고 온 코르테즈 장군이 멕시코 정복을 시작한 최초의 상륙 도시입니다. 항구에 가보면 그때의 역사적 기념물들이 남아있습니다. 코르테즈 장군이 멕시코 정복의 꿈을 안고 11척의 배에 분승한 700명의 군사와 함께 멕시코의 베라쿠르즈에 상륙했을 때 그는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이 타고온 11척의 배들을 불살랐습니다. 그들이 철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배가 불타서 멕시코 해안 깊숙이 가라앉은 것을 바라보는 700명의 군사들은 생각했습니다. "이제우리들에게 멕시코 정복만이 살 길이며 그것이 실패할 때는 생명을 유지할 방법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생명을 돌보지 않고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했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서 멕시코 내륙을 정복하는 큰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값을 치를 때. 우리들도 우리가 되돌아갈 길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교회를 나올 때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갈 길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동물 중에 늑대는 잔인하기로 유명합니다. 한번 공격 목표를 정하면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입에 문 것은 이빨이 뿌려졌으면 뿌려졌지 결코 놓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늑대에게도 사냥의 성공율은 20분의 1 정도라고 합니다. 하루에 스무번 사냥을 나가면 한 번 정도 성공하고 열아홉번은 번번히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늑대는 끊임없이 사냥을 나갑니다. 성공하는 늑대가 되어야 합니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식의 그런 생활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영적인 늑대근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기본적인 선의를 믿고 20번을 시도하고서 19번을 실패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영적 사냥을 시도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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