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 (요일 5:13-21)

  • 잡초 잡초
  • 393
  • 0

첨부 1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의 저자 <켄 블렌차드>의 비전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시테크 전문가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둥이가 넓은 항아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주먹만 한 돌멩이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항아리 속에 넣었습니다. 돌이 항아리 주둥이까지 채워져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게 되자 그는 청중들에게 물었습니다.

[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 모두들 [ 네 ]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항아리에 작은 자갈을 어느 정도 쏟아 넣고 흔들었습니다. 자갈 조각들이 돌멩이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청중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
하지만 이번에는 선뜩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좋습니다 ] 하면서 이번에는 준비해온 모래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질문했습니다. [ 항아리가 가득 찼나요? ]  아무도 대답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물주전자를 쥐고 항아리가 넘칠 만큼 물을 부었습니다.
그는 청중들을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 지금까지 제가 한 행동의 핵심이 무엇일까요? ]
그러니 총기어린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 스케줄이 아무리 꽉 차있더라도 잘 궁리하면 얼마든지 더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겁니다. ]
[ 글쎄요 ] 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 그건 진짜 핵심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에서 진짜 배워야 할 교훈은 큰 돌을 가장 먼저 넣지 않는다면 절대로 이 모든 것을 다 집어넣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

성도 여러분 ! 내 인생에 큰 돌이 과연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온갖 잡동사니부터 먼저 채워놓고  나중에 큰 돌을 넣으려고 하니 큰 돌이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돌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인생의 가장 큰 돌은 바로 내 인생의 생명 되시고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내 마음에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나중에 채우
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진리의 책이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이 성경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두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과 그리고 다른 또 한 가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도 한 가지로 말한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놀라운 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1. 예수 믿는 자에게 주어진 최대의 선물이 무엇입니까?(13절)
13절 [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라는 말은  바로 예수 믿는 우리를 말합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믿는 신자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영생~! 사람은 너무 큰 것도 보지 못하고 작은 것도 보지 못합니다. 너무 큰 소리도 듣지 못하고 너무 작은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영원한 생명 - 영생 ! 실감이 안 나지요.
요3:16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니 사람들이 그런 것 어디 있나? 실감이 안나니 너나 믿으라고 합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어떻게 내가 예수 믿고 영생에 눈이 뜨여졌는가? 이건 축복 중에 축복이고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먼저 영생을 내 마음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예수 믿고 영원한 생명을 담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은 나중에 담으면 됩니다. 먼저 영생에 눈이 뜨여지시기 바랍니다. 영생이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 속에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뿐만이 아니라
    영생 속에 진정한 삶의 의미가 있고
    영생 속에 진정한 삶의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영생 속에 하나님 자녀의 특권이 있습니다.
    영생 속에 하나님 나라의 기업과 소망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잡혀온 노예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해서          <3>
3일 동안 왕으로 대접하며  온갖 좋은 의복과 음식과 여자와 3일 동안 즐기게 하고는  3일 후에는 죽이는 악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노예는 3일 후에 죽을 목숨, `에라 모르겠다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며 정신없이 놀다가 3일 후에는 실컨 즐겼으니 죽으도 한이 없겠다가 아니라  3일이 지나면 사시나무 떨듯이 먼저 초죽음이 되어 죽는다고 합니다.
소위 왕 같은 노예, 이것이 하나님 모르는 인생의 삶의 단면입니다. 아무리 호화로이 연락하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벌벌 떠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때로는 세상에서 노예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을지 모르지만 노예 같은 왕, 이것이 성도의 참다운 모습입니다.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란 소설이 기억납니다.
치섬이란 청년이 신부가 되어 중국 절강성 파이탄에 최초의 선교사로 나가 헌신적인 사역을 한 후 그것도 산적 떼의 습격을 받아 불구의 몸이 되어 고국에 돌아와 보니 동급생 안셀모 밀리는 주교가 되어 온갖 풍요를 다 누르고 있습니다. 그럴 때 치섬의 마음은 심히 혼란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보면 천국의 열쇠는 안셀모 밀리와 같은 출세주의자에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의 열쇄를 소유한 성도, 왕 같은 노예가 아니라 노예 같은 왕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믿게 되면 특권이 주어집니다.
마16:16절 이하에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베드로가 주님께 신앙을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

천국 열쇠가 뭡니까? 말 그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의 모든 보물 창고를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사랑하는 내일의 가족 여러분 예수 안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는 특권이 있습니다.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특권이요, 천국의 보물 창고를 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 된 성도의 특권인 것입니다.        <4>
2. 우리가 예수 믿게 되면 누리는 하나님 자녀의 특권이 무엇입니까?(14-15절)
14절 보세요. [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
예수 안에는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기도의 특권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로 호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정란과 무정란의 비밀을 아십니까?  유정란과 무정란은 색깔, 모양, 크기, 냄새 그 어느 것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알입니다. 그러나 그 알은 결코 같은 알은 아닙니다.
유정란은 어미닭이 21일을 품으면 새로운 생명체인 병아리로 다시 태어나지만, 무정란은 그대로 썩어버립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교인이라고 자처합니다. 그러나 그 삶의 들여다보면 유정란 같은 삶도 있고 무정란 같은 삶도 있습니다. 과연 어떤 삶이 유정란 같은 삶입니까? 첫째, 유정란 같은 삶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삶, 예수의 이름을 소유한 삶입니다. 예수 이름에 생명을 건 삶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는 황무지에 꽃이 피어나며,  메마른 땅에 생수가 터져나고, 고목에서 새싹이 돋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유정란 같은 삶은 기도하며 응답을 확신하는 삶입니다.

본문 14절, 15절에는 우리가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기도하는 삶, 바로 유정란 같은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기도의 호흡을 통해 나타내 보이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뉴욕 타임즈와 조선일보(2000.5.19)에 실린 기사입니다
기사제목은 `졸업평점 A-, 인생점수는 A+..., 전신마비 여대생 하버드 졸업
교통사고로 온 몸 뼈 부서져 혀로 키보드 조작해 공부`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엘리슨 양입니다. 그녀는 하버드 사상 최초로 사지마비 졸업생이 된 것입니다. 그녀는 중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목 아래 온 몸이 마비되는 사고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5>
그녀는 입안 천장에 장치된 특수 키보드를 혀로 조작하는 방식으로 공부하여 하바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각오로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규정하게 하지 않겠다`
하버드대는 연간 3만 달러인 그의 학비는 물론 의료비까지도 지원해줬으며. 또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계단 등에 장애자용 시설이 없을 경우, 수업 자체를 다른 건물로 변경시켜 줬다고 합니다.
엘리슨 양의 졸업 후 꿈은 모든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는 강연을 하는 일로써 그녀는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격려가 필요한데 바로 그 자리에 있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 그래 자판기 두드릴 힘만 있어도 길이 열리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노크할 힘만 있으면 나의 삶에 놀라운 일이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구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담대한 믿음 가지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하나님과 세상을 향하여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숙명여대 총장 이 경숙 교수의 간증입니다.               
지금 대학들 마다 경영이 너무 어려워 경쟁이 치열합니다. 숙명여대 역시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대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4년 이 총장이 부임한 후 숙명여대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면에는 이 총장의 성공 이면엔 숱한 고뇌의 시간과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해 미지의 길을 헤쳐나왔다고 간증합니다.
[ 총장이 된 후 너무 두렵고 떨려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내겐 주님 밖에 없다’고 고백할 때마다 길을 보여주셨어요. 기도는 내게 생명줄이었습니다. ]
이 총장에게는 인생길에 길라잡이가 된 말씀이 있습니다.
수1:9절 [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  그녀는 기도를 통해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란 확신을 얻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총장이 대학총장으로서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은 것은 학교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하루하루가 기도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문을 새로 세우는데 학교 재정으로  <6>3억원의 새 교문 설치 예산을 마련한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녀는 이 문제를 놓고 새벽예배에서 기도하다가 한 독지가로부터 교문 설치비용을 기부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교문에 성경 구절을 새겨넣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기독교 대학이 아닌 일반 대학 교문에 성경 구절을 새겨 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총장은 우선 성경 구절을 교무회의에 회람시키고 찬반 토론을 벌였습니다.
또 2주에 걸쳐 학생회와 동창회 등의 의견도 수렴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것을 총장에게 일임한다는 결정을 얻어냈습니다. 대학정문에 하나님 말씀이 새겨져 있는 대학은 숙명여대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확신 있는 기도는 구한 그것을 얻은 줄로 아는 것입니다.
15절 [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하는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구하면 반드시 응답하신 줄로 확신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 내 뜻대로 안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내 뜻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옵니다. 왜 이렇게 헷갈리도록 하나님의 이름을 여러 가지로 계시할까요? 실은 우리가 너무나 잘 헷갈리는 존재인 줄 아시는 하나님께서 헷갈리지 말라고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은 다 약속하고 관계있는 이름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32,500가지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를 드릴 때에는 그 기도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찾아서  그 성경의 약속의 말씀 위에 서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속의 말씀에 서서 드릴 때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마21:22절 [ 너희가 기도 할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
요14:14절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믿고 기도하여 응답 받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가 우리 자신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7>
오늘 본문말씀의 사도 요한은 잘못하는 형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합니다.
3. 사도 요한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를 구하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16-17절)
16절에 보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왜? 이렇게 형제의 잘못을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었다고 하면서 첫째 기도도 하지 않고 기도응답의 확신도 없다면 그것은 거짓된 믿음이요, 둘째, 비록 범죄 한 형제라 할지라도 형제 사랑으로 그를 위해 기도해야  예수 믿고 영생 얻은 신자라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 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먼저 [ 사망에 이르는 죄 ] 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17절에 언급된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1) 사망에 이르는 죄는 `용서 즉 구원 받을 수 없는 죄`를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죄는 불신이나, 성령 훼방죄, 또는 이단, 배교와 같은 죄를 말합니다. 이러한 죄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보거나 듣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거나 거부하고, 또는 배신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는 문자 그대로 죽음에 이르는 죄를 말합니다. 또 다른 신학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용서(구원) 받지 못하는 죄`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 서신의 경우는 불신자를 위해 서 쓴 서신이 아니라, 이미 주님을 믿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성도들을 끝까지 지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용서(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범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언급된 `사망에 이르는 죄`를 용서(구원)받지 못하는 죄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2)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문자 그대로 `죽음에 이르는 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중대한 범죄를 짓고 끝내 회개하지 않을 때에 그들의 생명을 거두신 일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8>  구약 성경에서 고라(민 16장), 나답과 아비후(레 10장), 아간(수 6장) 등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다가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신약 성경에서도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다가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진신으로 예수 믿는 성도는 이런 죽을 죄를 범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 는 이 말은  사도 요한은 성도들을 향해서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 모든 형제들을 돌이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죄를 짓더라도 그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다고 죄를 안 지을 수 없지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죄를 짓고 거기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1984년 미국 LA 올림픽에서 중국 여자 선수가  최초로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딴 후 인터뷰를 했습니다. [ 당신은 동양 여자로 몸집도 아주 왜소한데,  어쩌면 그렇게 부드러운 동작과 침착한 모습으로  고공에서 아름답게 다이빙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까? ]
그러자 그 선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저는 어렸을 때부터 100미터 경주를 좋아했습니다.  근데 경주에 나가면 자주 엎어지고 넘어졌죠. 그래서 항상 거의 맨 뒤로 들어오던 제게 어머니는 늘 이렇게 얘기해 주셨어요.
[ 사랑하는 딸아, 나는 네가 1등 하는 것보다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견딜 수가 없단다. ]
다이빙을 시작하면서 실수도 하고 사고도 났지만 그때마다 저의 어머니는 동일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다이빙 스탠드에서도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습니다.

이 인터뷰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러십니다. 내가 넘어졌을 때, 내가 쓰러졌을 때, 내가 죄 속에 빠졌을 때도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가 일어날 때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그래, 네가 이 세상에서 일등으로 달려가는 모습보다 네가 실패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구나! ]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넘어진 형제를 위해 <9> 기도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성도들의 진정한 사랑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예수 믿고 영생 얻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 속에  어떤 특징이 나타나야 합니까?
4.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무엇입니까?(18절)
이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가장 확실한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죄를 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완벽한 삶을 산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본성을 소유한 자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거하기 때문에  다시 사탄의 손아귀 아래로 떨어질 염려가 전혀 없음을 말합니다.
18절 말씀 [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는 말씀은
해석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난해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이 말씀은 요일1:8절 [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 ] 는 말씀과 모순된 말씀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모순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짤막한 한 서신 안에서 모순된 말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범죄치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육적 신분을 나타낸 말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죄와 단절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죄를 경계하고 회개하면서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범죄치 아니한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을 밝혀 놓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영적으로 그 신분을 판단할 때는 절대로 범죄에 빠질 수 없는 것입니다.왜 그러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 된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 결코 우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18절에 [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께서 책임지고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특권과 은혜가 포함된 영생  <10>

우리가 어떻게 예수 믿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까?         
5. 우리가 어떻게 예수 믿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까?(19-21절)
1)19절에 [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불러주셔서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바로 하나님의 선택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떻하다가 이 남편 만나 이렇게 고생하며 사느냐?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는 아내 희망이 없습니다.하나님 내게 부쳐준 나의 반쪽, 비록 지금은 하는 짓이 맘에 안 들어도, 내게 더 소중한 사람이야  이런 가정 희망이 있습니다.
내가 어떠하다가 예수 믿고 이렇게 직분자가 되어 고생하느냐?  거기에 무슨 삶의 기쁨과 감사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먼저 나를 택하시고 불러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20절에 또 한가지 아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참된 자를 알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면 예수 믿고 영생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 잘 믿으려면 영생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줄 때에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 잘 믿는 것 하고 나의 재능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21절에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보이는 우상이라기보다는  당시에 유행했던 이단적 가르침 전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된 가르침은 하나님과 성도들의 사이를 막아  교제를 하지 못하게 하므로 절대로 멀리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메시지의 결론은 예수로 얻은 영생을 내 마음에 먼저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담대한 것이 생깁니다. 바로 하나님께 대한 기도의 특권입니다. 그 기도가 형제 사랑으로 까지 미쳐야 합니다. 그리고 영생을 소유한 성도라면, 범죄의 자리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이 악한 자로부터 지켜 주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예수 믿고 영생을 얻었다면 천국의 열쇠를 가진 자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