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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라합의 믿음 (히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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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세계에게 가장 오래된 직업 중의 하나가 스파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스파이란 단어가 처음 쓰인 곳은 창세기 42장인데 요셉이 그의 형들을 만났을 때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이렇게 심문을 한다.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현대인의 성경, “너희는 간첩이로구나. 너희가 우리나라의 취약지역이 어디인가를 살피러 온 것임에 틀림없도다.”

두 번째로 쓰인 곳이 민수기 21장이다. 출애굽한 후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보내는데, 요즘 말로 하면 12명의 스파이를 가나안 땅으로 파견한 것이다. 

세 번째가 바로 오늘 본문과 관련되어 있는데, 모세가 죽고 난 후,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여호수아가 가나안 지경의 첫 번째 성인 여리고를 공략하기 위해 먼저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낸 것이다.

이 정탐들이 먼저 찾아 숨어 들어간 곳은 기생 라합의 집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의 정체가 발각되어 체포될 위기적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때 놀랍게도 기생 라합이 그 정탐들을 숨겨서 위기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들은 여리고 왕의 수색대의 추적을 따돌리고 무사히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라합은 그들을 그냥 돌려 보내지 않았다. 한 가지 약조를 받아냈는데 훗날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공략할 때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구원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기생 신분의 라합이 정탐군들을 숨겨주고 살려 보낸 일을 믿음의 행동으로 보고 기라성 같은 믿음의 사람들의 반열에 올려 놓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라합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1.믿음의 근거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합이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첫 번째 단계는 말씀을 들음으로 인한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여호수아서 2장에 언급되어 있다. 라합이 정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 2: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라합은 소문을 통하여 두 가지 사실을 듣게 되는데

1)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홍해물을 마르게 하셨다는 사실.

2)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전멸시킨 사실.

이 소문은 라합만 들은 것이 아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주변에 있는 가나안 사람들은 다 들었다. 그러나 듣고 난 후에 반응이 두 가지로 나타났다. 라합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오직 라합만이 믿음으로 반응했다. 그 소문을 듣고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가 참되신 하나님이심을 믿게 된 것이다. 라합은 이렇게 고백했다.

수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똑같이 말씀을 들어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있고 귓등으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 라합은 그 소문을 듣고 하나님을 만났지만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 떨기만 했지 그 일을 행하신 여호와를 만나는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순종치 아니한 자는 멸망을 당했다.” 듣고도 딴청피우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홍해를 건너게 한 여호와, 아모리왕 시혼과 옥을 패망케 여호와, 그 소문 만으로도 라합은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알고 믿게 된 것이다. 믿음의 발생은 들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지난 주일 낮에도 요셉의 믿음 중의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약속의 말씀을 들었고 어린 요셉은 그 말씀을 마음에 두었던 것이다. 그것이 믿음의 역사를 이룬 근거가 된 것이다.

라합 역시 그 소문을 듣고 그냥 놓치지 않았다. 그 소문은 구원의 복음과 같은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였는가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살전 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오늘도 들려지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는 심령마다 믿음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는다. 말씀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라합의 믿음의 근거는 말씀을 잘 들은 데서 시작되었다.

2.믿음의 확신

확신 있는 믿음은 지식에 근거한다. 라합이 정탐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 2:9,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이스라엘은 아직 여리고 땅을 밟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라합은 여기서 완료형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미 그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말 속에서 흔들림 없는 확신을 발견하게 된다.

라합을 포함하여 여리고 사람들의 간담을 녹아 내리게 한 것은 이스라엘 군대가 아니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군대도 없었고 무기도 없었다. 이스라엘은 전투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었다. 가나안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이스라엘 무리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권능이었다.

그러나 오직 라합만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녀의 심령 가운데 모시게 된 것이다. 앞서서 언급한대로 라합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소문으로 듣고 그냥 흘려 보내지 않았다. 많은 시간 그 일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골똘히 연구했을 것이다. 갈등과 고민과 관심과 연구의 시간들을 통해 그녀의 마음 속에 확신으로 자리 잡히게 된 것이다.

믿음의 확신은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 속에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 한다면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 관심은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게 되고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적 차원을 넘어서 신뢰의 관계로까지 발전되는데 이때에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간증.

어린 시절, 몇 년 간 주일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다. 그후 청년시절, 직장 생활을 할 때 진기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어느날, 입사 동기인 다른 과의 친구와 점심시간에 마주 앉았는데 식사 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 생소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 친구의 행동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교회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마음에 의심과 갈등만 생기고 믿음의 진전이 없었다.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단을 했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부흥회에도 참석을 했다. 많이 듣고, 배우고, 공부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할 것을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심을 가지고 많이 듣고, 많이 배우는 사람이 확신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중이 염불에는 관심 없고 시주통만 들여다 보면 돌중이 되는 것처럼 문턱이 닳도록 오래 다녀도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이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추구하며 다니는 사람에게는 확신이 없다.

라합의 믿음은 하나님께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그분을 더욱 알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 수고의 산물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확신 있는 믿음은 관심과 노력에 달려 있다. 성경책 들고 왔다 갔다만 하지 말고 그 분을 알기 위해 책을 펴서 읽고 배우고자 하는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

3.믿음의 행동 -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다

신앙 성장의 3단계가 있는데, 첫 번째는 듣는 단계, 두 번째는 확신의 단계, 세 번째는 행동의 단계이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이방여인, 그것도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기생 라합을 믿음의 사람의 반열에 올려 놓게 된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의 믿음은 확신하는 단계에서 머물러 있지 않았다. 행동하는 믿음으로 빛이 났던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정탐꾼들을 영접하는데 있어서 라합의 태도에 대하여 “평안히”라는 부사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말의 의미는 - 호의를 가지고, 친절하게, 전혀 마음의 동요가 없이, 자기 편인 것처럼이란 뜻이다.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차분하고 민첩하게 그들을 숨겨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만약 라합이 믿음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았다면 그녀는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적국의 스파이를 숨겨주는 일은 이적행위일 뿐 아니라 목숨을 거는 모험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라합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다.

이와 같은 믿음의 행동이 히브리서 11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녀의 행동은 단지 자신과 그녀의 가족을 구하고자 하는 이기적 신앙 차원이 아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탐꾼을 살려 보내는 일이 단순히 이스라엘을 이롭게 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것 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과 상천하지의 유일하신 참된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이렇게 무모한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15장에 보면,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경으로 가셔서 가나안 여인의 딸의 병을 고쳐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으나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이방인 여인 하나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쳐주기 위해 일부러 예수님께서 두로 시돈 지경까지 가셨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마음에 확신을 가졌다. 그 분에게로 가면 내 딸의 병이 고침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 순간 그 심령에 믿음이 발생했고, 그 믿음은 곧 확신으로 발전했다. 이 여인은 제자들과 예수님에게 천대를 받아가면서도 포기 하지 않았다. 더 소리를 질러댔고, 개 취급받으면서도 부스러기라도 먹겠다는 심정으로 달라 붙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올바른 신앙적 확신은 믿음의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어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했던 야고보선생은 라합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했다.

약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라합의 행동이 믿음의 행동일 뿐 아니라 의로운 행위였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뜨거워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믿음은 유익이 없다. 그것은 죽음 믿음일 뿐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말잔치가 되기 쉽다. 그러나 행함이 있는 믿음에는 말이 별로 없다. 행동파다.

언제까지나 주저 주저하고 저울질하고 있겠는가? 이제는 여러분의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기 바란다.

4.믿음의 결과

그녀의 이와 같은 믿음의 행동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1)그녀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라합은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정탐꾼들에게 가족 구원을 위한 증표를 요구했다. 그리고 정탐꾼들은 그의 집 창문에 붉은 띠를 달아 놓으라고 했다. 약속은 그대로 지켜졌다.

수 6:23,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수 6:24,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수 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그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족들까지 다 구원을 받았다. 연약한 한 여인의 믿음의 행동은 온 가족을 구원한다. 여성들이여 그대들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다.

2)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

마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라합은 이스라엘 중에 거하면서 유명한 가문 유다족속의 살몬과 결혼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보아스를 낳았고, 다윗의 할머니가 되었다.

요셉의 스토리 못지 않은 감동적 스토리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유대인들의 편견을 무시하고 그곳에서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다.

지독한 독선과 편견과 우월감에 빠져 있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족보에 기생 출신 라합을 넣고 있다는 사실을 실로 모순이라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복음이 전파될 사실에 대한 예언적 증거라 할 수 있다.

비천한 신분의 이방여인이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과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구원의 계획은 유대인들만 아니라 인종과 민족과 언어를 초월하여 모든 열방 가운데 구원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라합의 믿음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하나님을 믿기에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여자요, 이방인요, 직업은 기생(창기)이었다. 그러나 라합은 모든 악조건들을 믿음으로 뛰어 넘었다.

요즘 말로 얘기 한다면 나같은 사람도 예수 믿을 수 있고, 나 같은 사람도 팔자 고칠 수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라는 소망과 비전을 보여준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라합의 성공을 요약한다면..

1)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

2)하나님에 대하여 집중하는 것.

3)하나님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

이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 없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변명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는 죄가 많다.” “나는 시간이 없다.” “나는 환경이 좋지 않다.” “부모님이 반대한다.” “아르바이트를 한다.” ....

다람쥐 쳇바퀴 돌듯 똑같은 생활을 습관적으로 반복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기 바란다. 내가 지금 어디에서 막혀 있는가? 왜 나가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가? 내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이제는 결단을 하자. 나쁜 습관들은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올인할 수 있는 행동하는 믿음이 되기 바란다. 여러분의 믿음이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위해 모험이라도 감행할 용기 있는 믿음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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