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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부르신다 (마 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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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설교말씀제목은 ‘새하늘과 새 땅’이었지요.  오늘 말씀제목은 ‘나를 부르신다’입니다.
지난 주간에 부산에서는 우리 교단 총회세계선교회의 국제화 포럼이 있었습니다. 중진선교사님들과 교단의 선교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국제대학생선교회 총재 및 중요한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 집회가 연속되고 또 남은 시간에 모여서 향후의 세계선교 방향을 의논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집회장 바깥을 나가지 못하고 며칠을 지냈습니다.  신문도 방송도 볼 겨를이 없었는데 수요일 아침에 비로소 집회장 바깥에서 식사하면서 TV 아침뉴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폭우가 오고 일산 고양시 쪽에 물난리가 나고 지하철이 침수되는 등 큰 난리가 났더군요.  집회장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울에 전화를 했습니다. 부목사님을 찾아서 곳곳에 폭우로 인해 우리 교우들 가운데 피해가 없는지 살펴서 알려달라고 하는 얘기를 하고 핸드폰을 껐는데 그러고 보니 차 안에 탔던 목사님들이 의식되었습니다.  나만 별나게 그 곳에서 전화한 것 같아서 좀 미안했습니다. 내려서 할 것을….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에서 보니까 서울이 큰 난리가 난 것 같이 보이니 급히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해로 인해 곳곳이 피해를 입는 큰 현장을 보면서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보실 때 그렇게 보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사명의 큰 현장들이 있는 것이니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역사의 큰 현장 속에 부르시는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순종하는 삶을 살다가보면 주님은 우리를 깜짝 놀랄 그런 사명의 현장으로 이끄시기 위해 부르시는 일을 하십니다.  부르신다, 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라의 일을 걱정하면서 아, 누가 좀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서 나라와 민족의 일을 해결 했으면 좋겠다. 누구일까, 그 사람이,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더욱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 우리 나라를 잘 지도해서 북한 미사일 문제를 비롯한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하고 나라를 잘 이끌 지도자가 누구일까 그런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 때 우리는 그런 생각을 했을 수 있습니다.  나도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서 정말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또는 회사를 위해 또는 가정을 위해 아니면 교회를 위해 귀한 일을 해 봐야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을 겪습니다. 해보니까 안됩니다.  자기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리고 주위를 보니까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가득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너나 나나 별로 다를 것 없다, 다 안 된다, 희망이 없다, 라고 생각하고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40세가 되어서 민족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한 번 힘을 써보려고 했습니다. 의분도 있었습니다.  실력도 있었습니다.  민족 가운데 자기는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서보니 안되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결정타를 맞았습니다. 민족이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알고 깊은 실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가닥 희망을 가졌습니다.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이 믿음으로 광야로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세월을 지내는 동안 그는 이제 지쳤습니다.  더 이상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야, 라는 생각에 젖어들었습니다. 나는 그냥 목동이다, 광야의 목동! 그 이상이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생각지 않던 때, 그러나 40년의 세월이 가득하고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은 바로 그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이 부르심이 그를 바꾸었습니다.  처음에 거부도 했지만 사양도 했지만 그러나 그는 그 부르심으로 인해 바뀌었습니다.
순종했고 그리고 능력이 따랐고 결과는 놀라왔습니다.  출애굽 엑소더스의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나를 부르신다, 는 강한 소명감을 갖고 모세는 일어났습니다. 나를 부르신다.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관심입니다. 관심을 두시고 부르시는 사랑입니다. 출애굽, 엑소더스는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관심의 사랑!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너를 부른다, 는 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은 깨달았습니다. 아,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  이 부르심, 나를 부르신다는 그 부르심이 올 때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나를? 정말 나야? 왜 나지?  그러나 그런 질문을 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때가 되니까 더 이상 왜 나입니까, 라는 질문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마치 추수할 때가 된 곡식에 낫이 닿아서 거두어지듯이 그렇게 주님께 안겨 들어오는 것 밖에 남은 일이 없었습니다. 아, 나를 부르신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출애굽 이야기 엑소더스의 이야기는 나를 부르신다, 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부르시는 사랑의 이야기, 관심의 이야기입니다.

1. 먼저, 그늘진 인생일 때 부르심
예수님이 드디어 갈릴리해변에 나타나셨습니다.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갈릴리 해변.  어떤 곳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는 땅입니다.
마4: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마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사야서9장1절 이하를 인용한 말씀입니다.  이방의 갈릴리.  이방 취급을 받았던 소외된 사람들의 땅.  흑암에 앉아서 희망을 상실한 백성들.  사망의 땅, 그늘에 앉은 자들.  잊혀진 땅, 관심 밖의 백성들. 그런 사람의 땅이 갈릴리 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곳에 나타나셨고 잊혀진 인생이 된 제자들을 보시며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그 해변을 거닐으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늘진 그늘이 있습니까.  이방인입니까. 흑암에 앉았습니까.  사망의 땅, 그늘에 앉은 자이십니까.  주님은 여러분의 그 인생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부르십니다.

2.먼저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부르심
주님이 갈릴리 해변을 거니실 때 주님은 두 사람씩 짝을 지어서 한쪽은 그물을 던지고 있고 한 쪽은 그물을 수리하면서 고기잡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4:18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주님은 우리의 일을 보십니다. 우리의 사업, 우리의 생활, 일, 하는 일이나 아니면 준비하고 있는 일을 보십니다.  그리고 생각하십니다.  저들이 저기로부터 새롭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일에서 주님의 일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부이니까 주님은 고기잡는 일같이 이제 사람을 구하는 어부가 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업가라면 주님은 우리가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여서 이문을 남긴 사람같이 그렇게 가진 달란트를 주를 위해 쓰게 하시는 쪽으로 생각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한 일을 주님은 사명의 바탕으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안에서 때로는 거기서 완전히 나와서 주님의 부르시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왕자로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든지 광야에서 목동으로서 지냈든지 다 주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자료와 바탕이며 경험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경험한 그 곳으로부터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그리고
그 경험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르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될 사람들이 그물던지는 것, 그물을 기우며 준비하는 것, 그 모든 것을 관심을 가지고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을 관심있게 보시는 줄 믿습니다.  저도 우리 교우들을 봅니다. 그리고 말은 별로 안 건네는 경우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분들이 차례 차례 보여집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대화가 시작되고 깊은 관심을 나누고 결국 주님의 일에 이끌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혹시 생각하실 때 예수님은 내게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시는 것 같다, 라고 생각되시는지요?  그러나 의외로 주님이 여러분에게 깊고 깊은 관심을 가지신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주님은 여러분이 아시면 깜짝 놀랍도록 깊은 관심으로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계신 그곳에 주님이 오셨고 그리고 부르십니다.  내가 너를, 바로 너를 부른다.

3.셋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부르심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을 위해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자기 백성들 사람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다 같이 지금 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구원이 가장 우선입니다. 그래서 나를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사람을 낚는 어부. 이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가지 사업을 잘했든지 못했든지 그것은 다 경험이 되어서 우리를 이제 어떤 곳으로 이끄시는 일이 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부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보험을 하십니까.  보험을 하시면서 보험을 소개하고 더 나은 행복을 권하시는 일을 하십니까.  주님의 복음을 소개하시는 일을 위해 그 일을 하시면서 훈련을 받으시는 것을 아시지요?  우리는 그 초점이 사람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3인의 교회 운동 태신자 구원운동, 전도운동을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힘을 씁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제가 지난주간 며칠 동안 부산에서 있었을 때 그곳에 모인 분들은 태풍이 오는 줄 알면서 모인 분들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캔슬되면서 불편을 무릅쓰고 모인 분들 선교사님들과 선교하시는 교회에서 모이신 분들입니다.  며칠 동안 새벽부터 밤까지 집회를 하면서 정말 바닷가도 못나가고 집회들을 했습니다. 집회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집회를 하면서 구원운동에 대한 강의 연구 토론들을 했습니다.  사람 구원하는 일 이방인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이지요.  전에 경주에서 중국선교사님들이 모여서 집회를 할 때도 택시기사님들이 기다리다 기다리다 실망했어요. 왜 경주까지 와서 이렇게 한번도 바깥에 나들이를 하지 않는가고 말입니다. 그만큼 생명의 구원 사람의 구원의 일이 급한 것입니다. 우리 총회세계선교회의 이사장 목사님, 다음번에 이사장되실 목사님을 비롯한 부이사장 목사님 두분과 나, 이렇게 넷이 앉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수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늘 폭우가 오든지 재난이 오면 그 때가서 헌금한다, 하고 대책을 세우지만 헌금 준비 하고 나면 이미 상황이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해외에서 재난이 나서 우리 선교사님들이 긴급한 도움을 요청할 때도 그렇게 신속히 대응을 못한다, 그러니 우리가 이 일에 대비하는 일을 하자, 는 이야기였지요. 미리 헌금을 해놓든지 하는 일, 그리고 의료관계되는 분들이 제안한다고 합니다, 어떤 봉사회를 만들어서 총회를 섬기게 해달라고 말이지요.  의료봉사회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교단 선교부를 GMS라고 하는데 그러면 ‘GMS재난구조대’를 만들자고요. 그리고 우리 교단 소속 되는 분들이 움직일 때 예컨대 GMS재난구조대 의료봉사회, 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면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재난구조대’가 필요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웃의 고난, 환난에 늘 신속히 대응하고 봉사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국에서 재난의 현장이 발생하고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듯이 사람들의 구원은 늘 우리 앞에 다가와있는 사명의 큰 현장입니다.  그래서 대응을 해야하겠지요. 신속히.  우리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람을 위해 나를 부르신다,는 각성이지요.

4.넷째, 주님의 엑소더스에 순종하는 부르심
주님은 엑소더스의 일을 하십니다.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엑소더스 시키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천국과 영생과 승리의 삶으로 엑소더스 시키시기 위해서 나를 부르십니다.  나를 부르시는데 나의 할 일은 따라서 순종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엑소더스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어디를 떠나는가 어디를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 나의 엑소더스입니다. 나의 엑소더스는 이제 옛 것을 떠나서 새 것으로 들어가는 순종입니다.  제자들은 나를 부르신다, 는 깨달음을 가질 때 곧 순종했습니다.

4:20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4:22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버려두고! 어제 뉴스를 보니까 수해로 고립되어지는 지역에서 탈출하는 분들이 귀중품만 갖고 나온다고 하면서 그 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빈손으로 나오더라고요. 아마 무슨 보석을 속에 갖고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맨몸. 그리고 다 버려두고 나오는 모습들. 그만큼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계곡을 가로지른 줄을 타고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줄이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한사람씩 한사람씩 위험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오는 그 모습에서 주님이 우리를 한사람씩 한사람씩 엑소더스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엑소더스하는 일에 주님의 손길, 생명의 줄이 필요하지요.  주님의 엑소더스 운동에 우리가 순종하고 그 생명줄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의 줄을 붙잡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순종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생명의 복음을 붙드는 신앙이 우리를 살립니다.
예수님이 모세같이 그분의 엑소더스의 길을 가실 때 제자들은 자기들의 그동안의 삶에서 엑소더스를 해야했습니다.  세상 것을 버리더라도 말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버려두었습니까.  그물입니다. 배입니다. 생업의 가장 바탕이 되는 수단입니다.  그물과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이것이 말이 됩니까.  하나도 버릴 수 없고 버려서도 안됩니다. 그 모든 것에는 책임이 따르니까요.  그런데 주님이 부르신 것은 나를 따르라, 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여기서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것만 확실하면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엑소더스입니다.  가장 위대한 일은 주님이 부르시는 부르심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결과를 맡기는 것이지요.  전도를 훈련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결과는 성령께 맡기라, 는 것입니다.  주님은 역사의 큰 현장에 우리를 세우십니다.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큰 현장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준비하는 큰 현장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엑소더스를 하는 일을 하면 주님은 우리를 반드시 큰 현장에 세우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던 일의 응답에 앞장 세우십니다.  엑소더스의 길에 앞서게 하십니다. 나의 엑소더스 그리고 남의 엑소더스의 길을 여는 사람이 됩니다. 순종하면 됩니다. 

제가 2002년 3월31일, 월드컵 직전에 상암구장에서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을 때였지요.  난지도에서 처음으로 대형 기독교 집회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저는 그 때 우리 교우들과 함께 8,9백명의 장애인들 소외된 분들을 모시고 그 집회에 참석하던 때입니다. 아무 순서도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순간 저는 사실 난지도를 선교도시로 바꿔달라고 하는 기도를 드렸었는데 막상 그런 큰 집회가 열릴 때 나는 아무런 순서도 없었습니다. 누가 나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누구에게 나를 세워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때 난지도를 이미지화한 깃발을 만들어서 사용하도록 그렇게 부탁을 주최측에 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어떤 순서는 없었습니다.  스탠드에서 입장식을 보려고 교우들과 앉아서 기다릴 때 갑자기 나를 부른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빨리 내려오시라고 부목사님이 와서 연락을 합니다. 내려갔더니 입장 준비를 하는데 장애인 휠체어를 끌고 입장하라는 것입니다. 전혀 순서에
없던 일이었지요. 나를 부르신다, 는 음성을 그 때 다시 들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기도하면 그리고 우리의 일을 충실히 하다가보면 주님은 우리를 사람의 구원을 위해 그리고 소외된 영혼들을 이끄는 일을 위해 갑자기 우리를 부르시는 순간이 오고 우리를 역사적인 현장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은행 하나를 세우려고 합니다. Bank를 세우는 일입니다. 어떤 뱅크인가요?  제가 어제 새벽기도를 할 때였습니다. 오늘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기도할 때 아, 엑소더스의 일을 한주간에 하나씩 해야겠구나, 우리 교우들과 함께 한주간에 하나씩 할 엑소더스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그 아이디어를 은행에 넣듯이 Exodus Idea Bank를 만들어서 좋은 아이디어를 모아야겠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잘 살려서 한주간에 하나씩 실천을 하자,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출애굽의 5대 운동, 마약, 음란, 폭력, 미혹, 무정으로부터 엑소더스를 하자, 성령, 성결, 화평, 복음, 사랑의 세계로 엑소더스를 하자,고 하는데 보다 구체적으로 한가지씩 선택하여 주님이 주시는 그 일을 하나씩 온 교우가 함께 하자,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분명히 이 운동이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나를 부르시는 그 분의 엑소더스의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먼저 나에게서 엑소더스를 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지난 날의 내가 꿈이 없는 나였다면 이제 꿈 없는 하루에서 엑소더스를 하고 꿈을 꾸는 엑소더스를 하는 것입니다. 꿈의 엑소더스를 먼저 해야 합니다.  여러분, 꿈쟁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꿈꾸시는 그 속으로 들어가시는 엑소더스를 먼저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방법의 첫째는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이번 여름에 우리들이 성경을 일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 봅시다. 성경을 엑소더스 시키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먼지 묻은 자리에서 꺼내주고 펴주고 열어주고 읽으면서 성경이 완전 우리에게 정말 생명 같은 자리에 들어오는 엑소더스를 합시다.  나를 부르시는 주님은 먼저 성경을 엑소더스 시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령의 감동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나의 미래, 가정의 미래, 자녀의 미래, 교회의 미래를 느끼게 됩니다. 가상현실 같은 경험이 옵니다. 그리고 그 세계속에
서 우리는 놀랍게도 우리가 엑소더스의 구체적인 생활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날마다 엑소더스를 할 것입니다.  새벽기도에 깨어나는 엑소더스, 우울한 시작 대신 할렐루야, 찬송하는 엑소더스.  그리고 이제 나는 주님을 따른다,는 결심의 엑소더스, 사람을 낚는 일을 하련다는 사명의 엑소더스를 하면서 기도의 세계로 엑소더스하고 한 영혼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인도자의 엑소더스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늘부터 한가지씩 엑소더스의 일을 해 보십시다. 그 첫째를 오늘부터 한 주간동안 특별히 꼭 할 일 한가지를 말씀드립니다.  바로 무관심에서 엑소더스를 해서 사랑의 나라로 들어가는 엑소더스를 하는 것입니다.  관심이 사랑입니다. 관심의 표현 한마디를 꼭 가족이나 이웃이나 누구에게나 적어도 한번 한 마디는 꼭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관심의 표현은 꼭 사랑합니다, 라는 말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의 표현, 관심의 표현은 아주 다양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바로 주님이 하신 것 같이 잊혀진 땅에 찾아오듯이 찾아주는 것, 그리고 곁에 서 주시는 것, 그리고 관심있게 불러주는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을 엑소더스 시킬 수 있습니다. 무관심의 세계에 잊혀진 사람이 사랑과 관심의 초점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장16절 대로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이처럼, 의 그 표현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사랑의 표현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잊혀진 땅의 백성, 제자들은 그 부르심 속에서 자기를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나를 부르신다, 는 그 사랑의 관심 한 마디에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놓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관심의 말 한마디. 우리가 바로 이 주간의 할 말입니다.  무관심에서 엑소더스 하는 운동입니다. 관심의 세계로 엑소더스하는 운동 한가지. 우리가 함께 힘써보시기를 바랍니다. 태신자 한 분에게 보이는 관심이 엑소더스입니다.  이제 이 번 주간에는 사랑과 관심의 표현 하나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고도 말하십시요. ‘성경, 사랑해요’ 자녀를 향해 한마디 ‘얘, 너
를 깊이 사랑한다’. 이제 저와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나를 알아주시는 음성, 나를 부르시는 음성, 우리가 전해야 할 사랑과 관심의 음성.

4:19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나를 향한 주님의 깊은 관심 속에서 나를 부르시는 음성을 그 누구엔가에게도 전하시면서 사랑과 관심의 세계로 엑소더스하는 일, 한가지를 꼭 하시고 한 영혼에게 위대한 감동을 남기시는 일을 꼭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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